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유럽 전쟁, 왕위 계승, 국제 분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4:34
18세기 유럽 지도를 뒤흔든 대규모 국제 분쟁.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을 둘러싼 마리아 테레지아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에 유럽 강대국들이 얽히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용병 위주였던 당대 군대와 달리 프로이센군의 전문적이고 뛰어난 전투력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며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북미와 인도 등 유럽 외부에서도 벌어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엑스라샤펠 조약으로 종결되며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는 인정되었으나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권이 확고해지며 독일 이원주의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 즉위
- 앤슨 제독의 세계 일주 시작
- 프로이센, 슐레지엔 침공으로 전쟁 발발
- 프로이센군, 글로가우 요새 함락
- 영국군, 카르타헤나 대공방전 실패
- 프로이센의 첫 대승, 몰비츠 전투
- 클라인 슈넬렌도르프 조약 체결
- 카를 알베르트, 보헤미아 왕 즉위
- 프랑스군, 프라하 함락
- 카를 7세 황제 즉위 및 뮌헨 함락
- 프리드리히 대왕, 코츠시츠 전투 승리
- 브레슬라우 조약으로 제1차 슐레지엔 전쟁 종료
- 프랑스군, 프라하 퇴각 개시
- 영국군의 영광스러운 승리, 데팅겐 전투
- 스웨덴-러시아, 오보 평화 조약 체결
- 프랑스의 공식 전쟁 선포
- 지중해, 툴롱 해전 발생
- 프리드리히 2세의 보헤미아 침공
- 프라하, 프로이센에 항복
- 바르샤바 사국 동맹 체결
- 카를 7세 황제 사망
- 퓌센 화약 체결
- 프랑스의 대승, 퐁트누아 전투
-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대한 승리, 호엔프리드베르크 전투
- 프란츠 1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즉위
- 이탈리아, 바시그나노 전투에서 연합군 대승
- 프리드리히 대왕, 조르 전투 승리
- 프로이센, 케셀스도르프 전투 대승
- 드레스덴 화약으로 제2차 슐레지엔 전쟁 종료
- 프랑스군, 로쿠르 전투 승리
- 제노바 민중, 오스트리아군 축출
- 영국, 제1차 피니스테레 곶 해전 승리
- 동맹군, 라우펠트 전투에서 대패
- 프랑스군, 베르헌옵좀 함락
- 영국, 제2차 피니스테레 곶 해전 승리
- 프랑스군, 마스트리흐트 함락
- 엑스라샤펠 조약으로 전쟁 종결
1739
[젱킨스의 귀 전쟁 발발]
영국과 스페인 간 아메리카 영유권 문제로 촉발된 전쟁으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동시에 진행되며 해상 작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스페인 식민지를 동서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작전 지연, 조선소 내부의 부패, 육해군 지휘관들의 비애국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다툼으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영국군, 포르토 벨로 점령]
에드워드 버논 제독 지휘 하의 영국군이 스페인 항만 포르토 벨로(현 파나마)를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승리로 평가받습니다.
1740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 즉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사망 후,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했습니다.
그는 완숙기에 이른 상비군 제도를 발전시켜 전쟁 초반 프로이센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습니다.
[앤슨 제독의 세계 일주 시작]
조지 앤슨 제독 휘하의 영국 함대 6척이 스페인 식민지 공격을 위해 출항했습니다.
그는 기함 단 한 척만으로 귀환했음에도, 칠레와 페루 해안을 지나 필리핀 근처에서 막대한 스페인 갈레온을 나포하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앤슨 제독의 항해는 결의와 지구력으로 이루어진 위업으로 평가받으며, 1744년 7월 15일에 기함 센츄리언 한 척만을 이끌고 귀환했습니다.
[프로이센, 슐레지엔 침공으로 전쟁 발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선전포고 없이 슐레지엔 국경을 넘어 공략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실질적인 시작점이자, 프로이센이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을 구실 삼아 발생했으며, 프로이센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슐레지엔 전역을 장악하고 인구와 산업 생산성을 크게 늘렸습니다. 정예화된 상비군 덕분에 점령지 약탈이 없었다는 점이 당시 이례적이었습니다.
1741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툴롱 정박]
스페인 보급 함대가 이탈리아로 출발했으나 영국 함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이후 드 쿠르의 프랑스 함대와 합류하여 툴롱으로 이동해 1744년 1월까지 정박했습니다.
[프로이센군, 글로가우 요새 함락]
안할트-데사우의 소 레오폴트 공작 휘하 프로이센군이 글로가우 요새를 기습하여 한 시간 만에 함락시키는 놀랍도록 정확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영국군, 카르타헤나 대공방전 실패]
버논 제독과 챌로너 오글 제독 휘하의 영국 육해군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를 공격했으나, 작전 지연으로 스페인 제독 돈 블라스 데 레소에게 방비할 시간을 주어 실패하고 영국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영국군은 육군 없이 해군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려 했고, 스페인 방어군은 지휘를 일원화하여 이를 격퇴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첫 대승, 몰비츠 전투]
프로이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몰비츠에서 벌인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의 장병들의 첫 전투입니다.
프리드리히는 퇴각했지만, 슈베린 원수의 뛰어난 지휘로 프로이센 보병대가 승리하며 새로운 군사 강국 프로이센의 등장을 유럽에 알렸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전투 중 오스트리아 경기병에게 사로잡힐 뻔하기도 했지만, 이 승리로 브리크를 지켜냈습니다.
[러시아-스웨덴 전쟁, 스웨덴군 대패]
러시아-스웨덴 전쟁 중 빌만스트란드(현 핀란드 라펜란타)에서 스웨덴군이 압도적인 러시아군에 의해 완패했습니다.
이 전쟁은 러시아가 프로이센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스웨덴이 견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클라인 슈넬렌도르프 조약 체결]
프리드리히 대왕과 나이페르크 장군이 맺은 흥미로운 조약으로, 프로이센은 나이세를 형식적인 공성전 끝에 넘겨받고 오스트리아군은 저항 없이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프리드리히의 고립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카를 알베르트, 보헤미아 왕 즉위]
바이에른의 선제후 카를 알베르트가 보헤미아의 왕으로 즉위하며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황위 계승권을 주장했습니다.
[프랑스군, 프라하 함락]
프랑스군이 프라하를 강습하여 함락시켰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 프란츠 대공은 너무 늦게 움직여 요새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 바이에른 압박 시작]
오스트리아의 케벤휠러 장군이 도나우강에서 진군하여 동맹군을 린츠에 가두고 바이에른 영내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742
[러시아군, 헬싱키 함락]
헬싱키가 압도적인 러시아군에게 함락당하는 대패를 스웨덴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프로이센 연합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전멸은 면했습니다.
[카를 7세 황제 즉위 및 뮌헨 함락]
바이에른의 카를 알베르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7세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그의 본거지 뮌헨은 오스트리아에 항복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코츠시츠 전투 승리]
프리드리히 대왕이 추격해오던 카를 공의 오스트리아군과 코츠시츠에서 치열한 격전 끝에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 기병대는 패주하는 적군을 추격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 명성을 떨쳤습니다.
[프랑스군, 사하이 전투 승리]
브로이 휘하의 프랑스군이 블타바에 남아있던 오스트리아군을 습격하여 작지만 심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브레슬라우 조약으로 제1차 슐레지엔 전쟁 종료]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양도하고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로써 제1차 슐레지엔 전쟁은 종결되었으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 프라하 포위 해제]
오스트리아군이 프라하에 대한 포위를 풀고, 새로운 프랑스군을 상대하기 위해 암베르크로 진군했습니다.
[프랑스군, 프라하 퇴각 개시]
벨르일 원수 지휘 하의 프랑스군이 식량 부족과 겨울을 맞아 드 셰베르 휘하 소규모 수비대를 남겨두고 프라하에서 에게르 강으로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26일까지 이어진 이 퇴각은 벨르일 원수의 뛰어난 용병 능력이 돋보였으나, 날씨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1743
[스페인군, 캄포 산토에서 피로스의 승리]
이탈리아 파나로에서 스페인군이 트라운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6개월간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이는 피로스의 승리로 평가됩니다.
[바이에른군, 브라우나우에서 대패]
프랑스와 바이에른군의 합동 작전 실패로 인해 브라우나우 근교에서 바이에른군이 오스트리아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습니다.
[영국군의 영광스러운 승리, 데팅겐 전투]
조지 2세가 친히 지휘하는 영국 및 동맹군이 노아유 원수 휘하의 프랑스군과 격돌하여 승리한 전투로, 영국군의 영광스러운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조지 2세는 경험 많은 노아유 원수에게 거의 완벽하게 속았으나, 동맹군이 행군을 강행하며 교전을 벌여 프랑스군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웨덴-러시아, 오보 평화 조약 체결]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어 양국은 중립 상태가 되었고, 이는 이후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 단독 동맹을 맺는 계기가 됩니다.
[제1차 카스텔델피노 전투]
알프스에서 스페인-피에몬테 전쟁 중 카스텔델피노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프랑스군의 공세적 움직임은 철저히 분쇄되고 말았습니다.
1744
[프랑스의 공식 전쟁 선포]
프랑스가 이전까지 보조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오스트리아와 사르데냐를 상대로 직접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전쟁이 확대되었습니다.
[프랑스 함대, 영국 해협 침공 실패]
드 로케푀이 휘하의 프랑스 전열 함대가 영국 해협에 진입하여 영국 본토 공략을 준비했으나, 열악한 장비와 노리스 제독의 영국 함대 존재를 파악하고 퇴각했습니다.
[지중해, 툴롱 해전 발생]
지중해에서 매튜 제독 지휘 하의 영국 함대와 스페인-프랑스 연합 함대 사이에 벌어진 해전입니다.
영국 함대는 지휘관 간의 불화와 무질서로 인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이후 함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레스토크는 자신의 상급자인 매튜의 명령에 반대하며 전투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혼란에 처한 영국 함대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 라인 강 도하 성공]
오스트리아의 카를 공이 트라운 원수의 보좌를 받아 교묘하게 라인 강을 건너 필립스부르크에 도달했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군의 작전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보헤미아 침공]
오스트리아가 다른 전선에 주의를 기울이는 틈을 타, 프리드리히 대왕이 비밀리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보헤미아를 침공했습니다.
이로써 제2차 슐레지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이센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프라하를 향해 진군했습니다.
[스페인-나폴리 연합군, 벨레트리 전투 승리]
스페인-나폴리 연합군이 이탈리아 벨레트리에 집결하여 로브코비츠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을 격퇴했습니다.
[사르데냐 왕, 마돈나 델 올모에서 패배]
사르데냐 왕이 코니(쿠네오) 근교 마돈나 델 올모에서 벌어진 중요한 전투에서 패했으나, 프랑스군은 요새 공략에는 실패했습니다.
1745
[바이에른군, 파펜호펜에서 대패]
바이에른군이 겨울 숙영지에서 분산된 채로 오스트리아군에게 격파당하고 파펜호펜 전투에서 대패했습니다.
이는 황제군이 사실상 소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르샤바 사국 동맹 체결]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작센이 바르샤바에서 사국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습니다.
[카를 7세 황제 사망]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7세가 사망하며 황제위가 공석이 되었고, 새로운 선거가 열려 황제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제노바 공화국, 프랑스-스페인과 비밀 동맹]
제노바 공화국이 프랑스, 스페인, 나폴리 왕국과 비밀동맹을 맺으며 이탈리아 전역의 정치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퓌센 화약 체결]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선제후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 프란츠 대공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선거에서 지원하는 조건으로 영지를 보존하는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황제군이 사실상 소멸하며 프리드리히는 다시 고립되었습니다.
[영국군, 루이스버그 요새 공격 개시]
북아메리카에서 조지 왕 전쟁의 일환으로 윌리엄 페퍼럴이 지휘하는 영국군이 프랑스의 루이스버그 요새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대승, 퐁트누아 전투]
루이 15세와 삭스 원수 지휘 하의 프랑스군이 투르네를 공략하고, 컴벌랜드 공작의 지원군을 퐁트누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삭스 원수가 자신의 천재성을 최대한 발휘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대한 승리, 호엔프리드베르크 전투]
프리드리히 대왕이 카를 공이 이끄는 오스트리아-작센 연합군을 상대로 거둔 그의 경력 중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입니다.
조직적인 추격으로 카를 공을 산으로 퇴각시켰습니다.
이 승리는 로이텐이나 로스바흐의 승리 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높이 평가됩니다.
[영국군, 루이스버그 요새 함락]
북아메리카의 조지 왕 전쟁에서 영국군이 케이프브레턴섬에 있는 프랑스의 루이스버그 요새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러나 평화 조약으로 프랑스에게 양도되어 영국 식민지 주민들의 분노를 야기했습니다.
[프란츠 1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즉위]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 프란츠 대공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로 즉위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탈리아, 바시그나노 전투에서 연합군 대승]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8만 명의 전력을 갖추고 사르데냐군을 공격하여 승리했습니다.
조미니는 병력 집중이 승리를 이끌었다며 '전쟁 전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전투라고 평했습니다.
이 승리의 여세를 몰아 연합군은 알레산드리아, 발렌차, 카살레 몬페라토를 함락시켰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조르 전투 승리]
프리드리히 대왕이 위태로운 포진에도 불구하고 전진해오는 적군을 상대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가 벌어진 곳은 훗날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의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카톨리슈-헨네르스도르프 전투 승리]
프리드리히 대왕이 드레스덴에 도착하여 카톨리슈-헨네르스도르프에서 작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파하며 프로이센의 위기 상황을 타개했습니다.
[프로이센, 케셀스도르프 전투 대승]
안할트-데사우 공 레오폴트 1세 지휘의 프로이센 2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한 작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직접 공격하여 완벽히 패주시키며 마리아 테레지아가 결국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레스덴 화약으로 제2차 슐레지엔 전쟁 종료]
드레스덴 화약이 체결되며 프리드리히는 선제후의 권한을 인정받고 브레슬라우 조약으로 얻은 슐레지엔 영유권을 확고히 했습니다.
이로써 제2차 슐레지엔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1746
[인도, 제1차 카르나티크 전쟁 발발]
인도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제1차 카르나티크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인도 지배권을 놓고 양국이 격돌했습니다.
[피아첸차 전투]
이탈리아에서 마유부아 원수 지휘의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오스트리아군과 힘든 싸움을 벌였으나, 스페인 왕세자의 강요로 퇴각했습니다.
[프랑스 사략 함대, 마드라스 공격 시작]
인도에서 마에 드 라 부르도네가 이끄는 프랑스 사략 함대가 영국 함대의 별다른 저항 없이 마드라스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군, 로토프레도 전투 승리]
마유부아 원수와 그의 아들 등 참모진의 뛰어난 지도력으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며 제노바로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군, 로쿠르 전투 승리]
리에주 근교에서 로트링겐의 카를 공이 이끄는 동맹군과 삭스 원수 지휘의 프랑스군이 격돌하여 프랑스군이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는 삭스 원수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11월 11일까지 이어진 이 봉기로 오스트리아군은 알프스를 향해 출진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747
[영국, 제1차 피니스테레 곶 해전 승리]
앤슨 제독 휘하의 영국 함대가 해협에서 프랑스 수송선을 습격하여 격침시키거나 나포하며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는 '제1차 피니스테레 곶 해전'이라 명명되었습니다.
[동맹군, 라우펠트 전투에서 대패]
오라녜 공과 컴벌랜드 공작 지휘의 동맹군이 삭스 원수 지휘의 프랑스군에게 심각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프랑스군, 아시에타 요새 공략 실패 및 지휘관 전사]
벨르일 원수의 동생 슈발리에 드 벨르일 휘하 프랑스 정예군단이 엑사일(콜 델 아시에타) 요새 공략 중 패하고 슈발리에 드 벨르일이 전사했습니다.
[프랑스군, 베르헌옵좀 함락]
삭스 원수의 명령으로 로웬달 원수 휘하 별동대가 베르헌옵좀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이는 네덜란드 본국의 위험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영국, 제2차 피니스테레 곶 해전 승리]
막강한 프랑스 수송선대가 영국 함대에게 습격당했습니다.
프랑스 제독 데셀비에 드 레탕뒤에르는 뛰어난 방어를 지휘했으나 해전에서 패배했습니다.
비록 해전에서는 패했지만, 에탕뒤에르의 활약 덕분에 수송선 대부분이 서인도로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다른 해역에서 영국 함대에게 공격당하거나 나포되어 프랑스 정부는 해상에서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1748
[프랑스군, 마스트리흐트 함락]
삭스 원수와 로웬달 원수가 지휘하는 프랑스군 전군에 공격을 받아 마스트리흐트가 함락당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마지막 주요 공방전 중 하나였습니다.
대규모 러시아군이 도착하여 동맹군에 합류했으나 너무 늦었습니다.
[영국 해군, 쿠바 해안에서 스페인 함대 공격]
찰스 놀스 제독 휘하의 영국 함대가 쿠바 해안에서 스페인 함대를 습격했습니다.
놀스 제독은 우세한 전황을 이끌었으나 평화 조약 정보에 따라 작전을 중지했습니다.
[엑스라샤펠 조약으로 전쟁 종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엑스라샤펠(아헨)에서 평화 조약 체결로 종결되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이 인정되고,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을 영유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독일 이원주의가 촉발되었으며, 이는 순수한 독일 민족주의와 독일 전토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움직임을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