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연표
1982
[MBC 청룡 창단 및 KBO 리그 첫 승리 기록]
MBC 청룡이 창단되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같은 해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리그 최초의 승리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82년 1월 26일 MBC 청룡이 창단되었고, 같은 해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연장 10회 말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11대 7로 승리하며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승리팀으로 기록되었다. 서울을 연고지로 동대문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3
[MBC 청룡, 한국시리즈 첫 진출 및 준우승]
MBC 청룡이 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1무 4패로 무릎을 꿇으며 아쉽게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83년 MBC 청룡이 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1무 4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9
[MBC 청룡, 럭키금성그룹에 매각 결정]
문화방송 노사간 합의에 따라 MBC 청룡의 매각이 결정되었고, 이후 럭키금성그룹이 팀을 인수하게 되면서 8년간의 MBC 청룡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1989년 12월 문화방송 노사간 합의에 의해 MBC 청룡을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한일그룹, 대우그룹, 일화 등이 인수 물망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가장 먼저 움직인 럭키금성그룹에 매각되며 팀명을 LG 트윈스로 변경하게 되었다.
1990
[LG 트윈스 공식 창단 및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
럭키금성그룹이 MBC 청룡 인수를 위한 조인식을 완료했습니다. 이 해 3월 15일, LG 트윈스는 공식 창단식을 거행했으며, 백인천 감독 지휘 아래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4전 전승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는 '신바람 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90년 1월 18일 럭키금성그룹이 MBC 청룡 인수를 위한 조인식을 완료했다. 3월 15일 LG 트윈스 공식 창단식을 거행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지휘 아래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전 전승을 거두며 창단 첫 해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우승을 계기로 10년간 '신바람 야구'라 불리는 LG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94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달성]
이광환 감독의 '자율 야구' 아래 신인 3인방과 이상훈, 김용수 등 주요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압도적인 정규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4승으로 스윕하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994년 이광환 감독의 '자율 야구' 아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등 신인 3인방과 좌완 투수 이상훈, 마무리 투수 김용수 등의 대활약에 힘입어 81승 45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 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격파한 태평양 돌핀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96
[팀 부진으로 이광환 감독 해임]
세대교체 실패와 부상 선수 속출로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정규 시즌 7위에 그쳤고, 이광환 감독이 시즌 중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천보성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96년 세대교체 실패 및 부상선수 속출 등으로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정규 시즌 7위에 그치며 이광환 감독이 시즌 중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수석코치 천보성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997
1997년 이병규, 임선동, 차명석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시즌 2위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1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8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준우승, '신바람 야구' 황금기 마감]
정규 리그 3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현대 유니콘스에게 2승 4패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이 해를 마지막으로 '신바람 야구' 황금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1998년 정규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OB 베어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2승 4패의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이 해를 마지막으로 '신바람 야구'라 불렸던 황금기를 마감하게 된다.
1999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와 감독 교체]
양대 리그 체제에서 매직리그 3위에 그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으며, 천보성 감독이 물러나고 이광은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1999년 매직 리그, 드림 리그로 나뉘어 양대 리그 체제가 출범했다. LG 트윈스는 매직리그 3위에 그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천보성 감독이 물러나고 이광은 감독이 취임하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2000
[플레이오프 패배와 선수단 내홍]
매직리그 1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광은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단과의 불화가 발생했고, 김용수 선수가 은퇴식 없이 팀을 떠나는 아쉬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2000년 시즌 매직리그 1위에 올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드림리그 2위였던 두산 베어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2승 4패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이광은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과 주변 코치들의 만류에도 마무리 투수를 고집한 결정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이광은 감독과 선수단 장악 문제를 놓고 불화를 빚은 최고참 김용수가 시즌 후 은퇴식 없이 팀을 떠났다.
2001
[이광은 감독 해임 및 김성근 감독대행 체제 전환]
시즌 내내 부진을 겪으며 이광은 감독이 해임되었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1군 감독 대행으로 시즌을 이끌었다. 시즌 후 김성근은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01년 시즌 내내 부진을 겪었고, 결국 5월 16일 이광은 감독이 해임되고 시즌 중 수석코치로 올린 김성근이 1군 감독 대행으로 시즌을 치르게 되었다. 시즌 후 김성근은 LG 트윈스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 시즌 후 LG 야구단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어윤태 전 LG 야구단 단장이 LG스포츠 신임 사장으로 부임했다.
2002
[한국시리즈 준우승, 잃어버린 10년의 시작]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정규 시즌 4위로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 라이온즈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의 지도 아래 66승 6무 61패를 기록하며 2경기 차이로 두산 베어스를 누르고 4위로 포스트 시즌에 턱걸이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2승으로 스윕했고, 플레이오프에서 KIA 타이거즈를 시리즈 스코어 3승 2패로 누르며 1998년 이후 4년 만에, 4위 팀으로는 통산 3번째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리턴 매치를 가졌으나, 9회말 통한의 끝내기 역전패를 당하며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헌납했다. 이 시리즈는 많은 야구 팬들에게 한국시리즈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화제되었지만, 이후 LG는 급격히 내리막길로 치달으며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잃어버린 10년을 겪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 해임]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예상 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구단 고위층과의 마찰과 팀 컬러 불일치 등을 이유로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었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물렀다는 것과 1998년까지 LG 야구, 축구, 씨름, 배구단장을 거쳤지만 다른 계열사로 발령이 나서 야구단을 떠났다가 2001년 시즌 후 LG스포츠 사장으로 부임한 어윤태 전 LG 야구단 단장 등 구단 고위층과 2002년 시즌 내내 마찰을 빚은 데 이어 LG의 팀 컬러와 감독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었다.
[팬 클럽, 구단 고위층 퇴진 요구 시위]
김성근 감독 해임에 반발한 팬 클럽 회원 30여 명이 어윤태 당시 사장과 유성민 당시 단장의 동반 퇴진을 결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2002년 11월 26일 오후 7시, 팬 클럽 회원 30여 명이 어윤태 당시 사장과 유성민 당시 단장 동반 퇴진 결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3
[이광환 감독 복귀와 재차 부진]
1994년 우승 주역 이광환 감독이 다시 부임했으나, 시즌 중반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다 후반기에 하락세를 보이며 정규리그 6위에 그쳤고, 이광환 감독은 사임 후 2군 감독으로 물러났습니다.
2003년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이광환 감독을 복귀시키며 우승을 노렸다. 11승을 기록한 좌완 에이스 이승호의 활약을 필두로 시즌 중반 때만 해도 상위권을 유지해 오다가 중후반 무렵 가면서 점점 떨어져 갔고 결국 정규리그 6위에 그치며 이광환 감독은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2군 감독으로 내려갔다.
2004
[이순철 감독 체제에서 계속된 암흑기]
이순철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팀은 2004년, 2005년 6위, 2006년 최하위 8위로 계속해서 부진의 늪에 빠졌습니다. FA 홍현우 트레이드와 이용규 이적 등 선수 이탈이 겹치며 팀 전력이 약화되었습니다.
2004년 이순철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순철 감독 시절 LG 트윈스는 팬들이 기대했던 것 이하로 크게 부진하였고 일정한 야구 스타일을 보여 주지 못해 계속해서 추락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2004년, 2005년 6위, 2006년 최하위 8위에 그치며 한계를 절감했다.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유지현, 김재현, 이상훈 등이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구단과의 갈등으로 차례로 팀을 떠났으나 팀에서 별다른 인재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 큰 타격이 되었다. FA로 영입했던 홍현우는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2004년 11월에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이 트레이드 때 같이 간 중견수 이용규는 KIA 타이거즈의 테이블 세터로 맹활약하여 LG에게는 마이너스가 되었다.
2006
[감독 및 구단 고위층 교체]
이순철 감독이 시즌 중 물러났고, 어윤태 사장과 유성민 단장도 각각 2004년과 2005년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2006년 이순철 감독은 시즌 중 물러났고 어윤태 사장은 2004년을 끝으로 LG스포츠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유성민 단장은 2005년을 끝으로 야구단 단장직에서 사퇴하였다.
[김재박 감독 및 박명환 영입으로 재도전]
절치부심한 구단은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이자 현대 유니콘스에서 4회 우승을 이끈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두산 베어스에서 FA를 선언한 박명환을 영입하며 재도약을 준비했습니다.
2006년 시즌이 끝난 뒤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이자 현대 유니콘스에서 4회 우승을 이룬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두산 베어스에서 FA를 선언한 투수 박명환을 영입해 오면서 새롭게 시즌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다.
2007
[4강 경쟁 끝 5위 마감]
삼성과 막판 4강 경쟁을 벌이는 등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나, 막판 접전 끝에 5위에 그치며 가을 야구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2007년 이대형, 조인성 등의 활약과 함께 삼성과 막판 4강 경쟁을 벌이는 듯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으나, 막판 접전 끝에 5위에 그치며 가을 야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2008
[주요 선수 부진으로 다시 8위 추락]
박명환 부상, 박용택과 조인성 부진이 겹치며 용병 선수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46승 80패로 다시 한번 8위를 기록하는 치욕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8 시즌은 작년 팀을 이끌었던 박명환의 부상, 돌아온 박용택과 거액 FA 계약을 체결했던 조인성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시즌 중반 용병으로 영입된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과 1루수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46승 80패(승률 0.365)에 그치며 불과 2년 만에 치욕적인 8위를 다시 경험한다.
2009
[투수진 붕괴로 7위 마감]
이진영과 정성훈을 영입하며 시즌 한때 2위까지 치고 올랐으나, 용병 투수 부상과 투수진 붕괴로 7위에 그쳤습니다. 박용택이 타격왕을 차지했으나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2009 시즌 이진영과 정성훈을 영입하며 한 해를 준비한 LG는 시즌 한 때 강력한 타력을 바탕으로 2위까지 치고 오르며 기세 좋은 모습을 보여 줬으나, 용병 크리스 옥스프링의 뜻밖의 팔꿈치 부상과 급격한 투수진 붕괴를 이겨내지 못하고 또다시 7위를 기록하며 부진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와중 박용택이 분전하며 타격왕을 차지하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재박 감독 물러남 및 뼈아픈 트레이드]
김재박 감독이 성적 부진과 계약 기간 만료로 물러났고, 김상현 트레이드는 이용규 트레이드와 더불어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09년 시즌이 마감된 후 큰 기대를 모으며 취임했던 김재박 감독은 별 성과 없이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물러났다. 특히 김상현의 트레이드는 LG 트윈스에게 이용규의 트레이드와 더불어 뼈아픈 트레이드가 되었다.
2010
[박종훈 감독 체제와 선수단 내홍]
박종훈 감독 영입 후 시즌 초 이형종, 봉중근 선수 등과 관련된 잡음이 발생했습니다. 박현준, 김선규, 윤요섭 영입에도 불구하고 6위에 그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김재박 감독이 물러난 뒤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을 맡았던 박종훈 감독을 영입했다.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의 외야수 이택근을 영입했고 이상열을 좌완 불펜 강화 차원에서 영입하여 2010년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시즌 개막과 동시에 투수 이형종, 에이스 봉중근의 부인이 박종훈 감독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고, 7월에는 투수 서승화가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발언 등 안팎으로 홍역을 치렀다. SK 와이번스와의 4대3 트레이드로 박현준, 김선규, 윤상균을 영입하고 맹타를 휘두른 조인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6위에 그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형종 선수 임의탈퇴 및 복귀 선언]
투수 이형종이 미니홈피에 박종훈 감독 비난글을 올린 후,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결국 임의탈퇴 공시되었습니다. 그는 방황 끝에 2013년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2010년 4월 2일 투수 이형종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박종훈 감독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5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프로 데뷔 첫 선발승을 신고했으나, 이후 부상으로 2군에 다시 내려가 또 다시 잡음을 일으킨 뒤 8월 10일에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방황 끝에 2013년에 복귀를 선언하였다.
2011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KBO 최초)]
시즌 초 1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으나, 봉중근의 부상과 임찬규의 역전패 등으로 페이스가 흔들렸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박병호 등을 내주고 송신영, 김성현을 영입하는 역대급 실책을 저질렀고, 결국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KBO 리그 사상 최초의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2011년 시즌 초반 잠깐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에이스 봉중근이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선발 투수 빅 3라 불리는 박현준과 레다메스 리즈, 벤자민 주키치의 활약으로 8개 구단 중 30승에 선착했고, 승패마진이 +10까지 올려놓았다. 그러나, 6월 17일 잠실 SK전에서 마무리 임찬규가 밀어내기 4실점으로 역전패 당한 이후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7월 21일 목동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3연전을 모두 패하면서 승패마진이 0으로 추락했다.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3시간 남기고 넥센 히어로즈와의 트레이드로 투수 심수창과 내야수 박병호를 내주고 투수 송신영과 김성현을 영입하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역대급 실수를 저질렀으나, 분위기 반전에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9월 24일 잠실 SK전 패배로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게 됐다. 이는 KBO 리그 사상 최초의 일이다.
[박종훈 감독 사임 및 김기태 감독 취임]
삼성과의 시즌 최종전을 마친 후 박종훈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으로 김기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2011년 10월 6일 삼성과의 최종전을 마친 후 외야수 출신 감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박종훈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후임으로 수석코치 김기태가 취임했다.
2012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KBO 최초 기록)]
전력 출혈과 승부조작 사건 등으로 인해 정규 시즌 7위에 그치며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두자릿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최초의 기록입니다.
시즌 시작 전에 전력 출혈이 크게 생긴 LG는 우려했던 대로 2012년 정규 시즌 7위에 그치며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이자 두자릿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박현준, 김성현 승부조작 사건 연루]
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이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영구 제명되었고, LG의 이전 트레이드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2012년 2월 14일 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이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성현은 2월 28일 긴급 체포되어 승부 조작 사실을 시인했고, 박현준도 3월 2일 검찰 조사에서 승부조작 브로커와 김성현과의 대질심문 끝에 승부조작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3월 5일 KBO는 박현준과 김성현에 대해 일단 야구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고, 추후 형사 처벌이 확정되면 영구 제명 등의 강력한 중징계를 가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LG도 3월 6일 이들 두 선수를 방출했고, KBO에 영구 제명을 요청하게 되고 동시에 제명안이 확정되었다. 3월 14일 검찰 수사 결과 김성현은 구속 기소, 박현준은 불구속 기소로 최종 결정됨으로써 두 사람은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2010년 SK, 2011년 넥센을 상대로 한 LG의 트레이드는 또다시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삼성과의 첫 트레이드 및 FA 영입]
삼성 라이온즈와 구단 간 최초로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전력 보강을 꾀했습니다. 또한 FA 시장에서 정현욱을 영입하고 내부 FA 이진영, 정성훈을 잔류시키며 성공적인 내부 단속을 했습니다.
2012년 FA 시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 불펜 투수 정현욱을 기간 4년 간 총액 28억 6천만 원의 조건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내부 FA였던 이진영과 정성훈을 일찌감치 FA 우선협상 기간 초기에 각각 4년 간 총액 34억 원에 계약, 팀에 잔류시키면서 성공적인 내부 단속과 함께 FA 시장을 마무리했다. 2012년 12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 구단 간 최초로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현재윤, 김효남, 손주인 (삼성→LG) ↔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 (LG→삼성)).
2013
[플레이오프에서 아쉬운 패배]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야수들의 활약과 신진 세력의 성장, 그리고 견고한 불펜과 선발진 덕분에 팀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하며 선전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LG 트윈스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리버스 스윕을 하고 올라온 두산 베어스에 플레이오프에서 3대1로 패하면서, 2013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의 선전의 배경에는 각각 타율 부문 1, 3, 4, 10위를 차지한 이병규, 이진영, 박용택, 정성훈을 비롯한 베테랑 야수들의 활약과 정의윤, 김용의, 문선재, 손주인 등 신진 세력의 성장이 있었으며, 봉중근, 이동현 등 건재한 불펜과 2년 만에 10승 투수 3명(류제국, 레다메스 리즈, 우규민)이 등장한 선발진은 팀 평균자책점 1위 (3.72)를 달성하였다.
2013년 1월에는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을 받았던 투수 류제국이 병역을 마치고 입단을 확정하였다.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및 플레이오프 직행]
시즌 종료를 2경기 앞두고 극적으로 정규리그 2위를 확정하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과 16년 만의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습니다. 봉중근은 한 시즌 팀 최다 세이브(38세이브)를 달성했으며, 최동수 선수의 은퇴식도 함께 열렸습니다.
5월 중순 7위까지 쳐졌으나 '운명의 33연전'에서 22승 9패를 기록하며 놀라운 승률을 보였다. 6월 30일 SK전에서 승리하면서 10연속 위닝 시리즈를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를 2경기 앞두고 자력으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10월 5일 두산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하였고, 넥센 히어로즈의 패배로 LG는 극적으로 2위를 확정지으며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 "잃어버린 10년"을 청산했다.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자, LG의 플레이오프 직행은 1997년 이후 16년 만이었다. 같은 날 마무리 투수 봉중근은 한 시즌 팀 최다 세이브(38세이브)를 달성하였다. 또한 이날 경기 후에는 1루수 최동수의 은퇴식이 열렸다.
2014
[김기태 감독 사임 및 양상문 감독 부임]
시즌 개막 후 17경기만 진행된 상태에서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조계현 감독 대행 체제를 거쳐 양상문 해설위원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2014년 4월 23일 시즌 개막 후 17게임만 진행된 상태에서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조계현 감독 대행이 잠시 팀을 이끌었다. 이후 2014년 5월 11일 넥센전 이후 양상문 MBC Sports+ 해설위원을 신임 감독으로 맞이하게 된다.
[극적인 포스트시즌 진출과 플레이오프 패배]
최종전 패배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불투명해졌으나, 넥센 히어로즈의 승리로 극적으로 4위를 확정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를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패배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되었습니다.
2014년 최종전에서 10월 17일에 롯데에 패하여 2014년 KBO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지는 듯했으나 넥센 히어로즈가 SK 와이번스를 저지하면서 LG의 4위가 본격적으로 확정되어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를 3승 1패로 누르고 넥센 히어로즈와 PO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LG 트윈스는 정규시즌 2위인 넥센 히어로즈와 사상 최초의 엘넥라시코 경기를 펼쳤지만 시리즈 전적 1대3으로 패하면서 2014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다.
2015
[SK 와이번스와 3대3 트레이드]
SK 와이번스와 정의윤, 신재웅, 신동훈을 내주고 임훈, 진해수, 여건욱을 받는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이는 팀 리빌딩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15년 7월 정의윤, 신재웅, 신동훈을 SK 와이번스로 이직시키고, 임훈, 진해수, 여건욱을 받는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16
[리빌딩 선언과 이진영 이적]
이진영 선수가 2차 드래프트로 KT 위즈로 이적하고, FA 정상호를 영입하는 등 리빌딩을 천명하며 '뛰는 야구'를 선언했습니다.
2016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인 이진영은 2차 드래프트에서 KT 위즈에 지명을 받아 KT 위즈로 이적하였다. 양상문 감독은 시즌 시작을 앞두고 리빌딩을 천명하면서, 팀의 색깔을 뛰는 야구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FA 정상호를 영입하기도 했다.
[KBO 최초 개막 2연속 연장 끝내기 승리]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 시리즈에서 KBO 최초로 두 경기 연속 연장 끝내기 승리라는 기록을 세우며 단독 1위로 올라섰습니다.
2016년 4월 1일 한화 이글스와 개막 시리즈에서 경기를 하였다. 여기서 LG 트윈스는 두경기 연속 연장 끝내기 승이라는 KBO 최초의 기록을 세우고, 단독 1위로 오르지만, SK에게 시즌 첫 스윕패를 당하고 만다.
[포스트시즌 진출 및 플레이오프 좌절]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승리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IA 타이거즈에 승리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를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게 패배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은 다시 좌절되었습니다.
2016년 10월 3일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승리한 LG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 2016년 10월 10일부터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는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패배하였지만, 2차전에서 승리하면서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7대0으로 승리했고, 시리즈 전적 3대1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LG 트윈스는 정규시즌 2위인 NC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으나, 1대3으로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이 또 다시 좌절되었다.
[FA 우규민 이적 및 차우찬 영입]
시즌 종료 후 우규민 선수가 FA 계약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12월 14일에는 차우찬 선수를 FA로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12월 5일 우규민은 4년 6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여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고 12월 14일 차우찬을 4년 95억원에 영입했다.
2017
[개막 6연승에도 포스트시즌 실패 및 감독 교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 6연승을 달성했으나, 이후 5연패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고 최종적으로 6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양상문이 단장으로 승격하고, 류중일이 제1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7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 6연승을 달성했지만 6연승 이후 5연패를 달려 아쉬움을 남겼다. 최종적으로 6위를 기록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시즌 종료 후, 양상문이 단장으로 승격하고 그의 후임으로는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인 류중일이 제 1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시즌 종료 후 4년 115억원으로 김현수와의 계약에 성공하였다.
2018
[시즌 후반기 급격한 추락으로 8위 마감]
8월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며 선전했으나, 9월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최종 8위로 추락,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8년 8월까지 2~3위를 다툴 정도로 시즌 초반 선전하였지만 두산과의 나쁜 전적과 다른 경기들 때문에 9월부터 급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8위까지 추락하여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2019
[와일드카드 승리 후 준플레이오프 패배]
정규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NC 다이노스에 승리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게 패배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2019년 정규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에서 5위 NC 다이노스에게 승리를 거두고 준플레이오프에서 3위 키움 히어로즈에게 패배하였다.
2020
[최종전 패배로 4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3위에서 4위로 떨어졌습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승리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20년 LG 트윈스는 최종전까지도 꽤 선전한 경기를 했었고, 3위까지 올라갔다. 최종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1점차로 패배하는 바람에 4위로 떨어졌다.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4대3으로 이겨 2020년 KBO 포스트시즌에 직행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하였다.
시즌 후 류중일 감독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사퇴했고, 류지현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다.
2021
[준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두산에게 패배]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다시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박해민을 FA로 영입했습니다.
2021년 LG 트윈스는 최종전을 앞두고 2020년 때처럼 똑같이 3위를 유지했지만, 4위 두산 베어스와의 격차가 많이 났기 때문에 사실상 LG 트윈스는 안정적으로 2021년 KBO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최종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2점차로 지는 바람에 그대로 3위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2020년처럼 2021년 때에도 키움 히어로즈를 꺾은 두산 베어스를 만나 패배하였다. 2021년 시즌 종료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박해민을 계약 기간 4년과 총액 60억원에 계약을 체결하여 영입하였다.
2022
[플레이오프 리버스 스윕 패배와 감독 교체]
구단 정규리그 최다승 신기록인 87승으로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게 1승 후 3연패를 당하는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 여파로 류지현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하고 염경엽에게 감독직을 넘겼습니다.
2022년 구단 정규리그 최다승 신기록으로 87승을 하여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였다. 하지만, 키움 히어로즈에게 1승 후 3연패로 리버스 스윕을 당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 여파로 류지현 감독은 계약 만료 후 재계약하지 못하고 염경엽에게 감독직을 넘겨야 했다.
2023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V3)]
염경엽 감독 부임 후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KT 위즈를 4승 1패로 제압하며 29년 만에 팀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오프 리버스 스윕패의 여파로 LG 트윈스는 류지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염경엽을 후임 감독으로 영입했다. 염경엽 감독이 부임하고 김정준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설왕설래가 오갔으나, 시즌 중간부터 치고 나가며 29년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1년만에 한국시리즈 직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KT 위즈와 상대하여 전적 4승 1패로 KT 위즈를 제압, 29년 만에 팀 통산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고난의 시간을 청산했다.
2024
[준플레이오프 승리 후 플레이오프 탈락]
페넌트레이스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를 3승 2패로 이겼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1승 3패로 탈락하여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24년 페넌트레이스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준플레이오프에서 kt wiz를 3승 2패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승 3패로 탈락하여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했다.
2025
[페넌트레이스 우승 및 네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V4)]
2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를 4승 1패로 꺾으며 팀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25년 2년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를 4승 1패로 승리하며 팀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