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세계기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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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LG배 세계기왕전(현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은 1996년 창설되어 대한민국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LG가 후원하는 메이저 국제 바둑 기전입니다. 세계 대회 최초로 덤 6집반 제도를 도입하는 등 현대 바둑 규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 최정상급 기사들이 자웅을 겨루는 권위 있는 무대입니다. 이창호 9단의 최다 우승(4회)을 비롯해 매 대회마다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하는 치열한 격전지로 명성이 높으며, 최근 30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규칙 개선과 흥미진진한 명승부를 연출하며 세계 바둑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연표
1996
1996
[제1회 대회 개막]
1974년부터 26년간 개최된 기왕전의 후속으로,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LG가 후원하는 메이저 국제 바둑 기전이 새롭게 창설되었습니다. 세계 대회 최초로 덤 6집 반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며 현대 바둑의 기틀을 다졌습니다.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여하는 예선을 거쳐 세계 최정상급 기사들이 본선 무대에 오르는 형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특히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한국 룰의 6.5집 덤 제도를 채택해 흑백의 유불리 격차를 줄이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97
1997
[이창호의 초대 우승]
제1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한국의 이창호 9단이 유창혁 9단을 상대로 3대 0 완승을 거두며 초대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이창호는 세계 바둑계의 일인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당시 결승전은 한국 최고의 기사들 간의 대결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창호 9단은 단 한 판도 내주지 않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스트레이트 승리를 기록하며 LG배 첫 번째 우승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새겼습니다.
1997
[서양 기사의 첫 세계대회 승리]
제2회 대회 24강전에서 유럽 대표로 출전한 독일의 한스 피치 초단이 일본의 강호 요다 노리모토 9단을 꺾는 대이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서양 출신 기사가 세계 대회에서 기록한 역사적인 첫 승리였습니다.한스 피치 초단은 흑을 잡고 반집 승을 거두며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록 바둑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유럽 출신이었으나, 일본 최고 수준의 기사를 상대로 승리하며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1998
1998
[제2회 대회 왕리청 우승]
제2회 대회 결승전에서 일본 기원 소속의 왕리청 9단이 한국의 유창혁 9단을 3대 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유창혁 9단은 1회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무는 아쉬움을 삼켰습니다.치열한 접전 끝에 풀세트까지 가는 명승부가 펼쳐졌으며, 왕리청 9단이 뒷심을 발휘하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LG배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 소속 기사들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 무대로서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999
1999
[이창호의 두 번째 우승]
제3회 대회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의 마샤오춘 9단을 3대 0으로 완파하며 대회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여주며 중국 바둑의 도전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마샤오춘 9단은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수였으나 이창호 9단의 견고한 바둑 앞에서는 흠집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창호 9단은 1회 대회와 마찬가지로 결승전에서 무실 세트 우승을 기록하며 굳건한 1인자 체제를 공고히 했습니다.
2000
2000
[중국 위빈의 첫 우승]
제4회 대회에서 중국의 위빈 9단이 유창혁 9단을 3대 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 국적 기사로서 LG배에서 기록한 첫 번째 기념비적인 우승이었습니다.유창혁 9단은 이번 패배로 LG배 결승에서만 세 번째 준우승을 기록하는 안타까운 불운을 겪었습니다. 반면 위빈 9단의 우승은 향후 거세게 몰아칠 중국 바둑 돌풍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2001
2001
[전설적인 리버스 스윕 우승]
제5회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이 후배 이세돌 3단을 상대로 1, 2국을 내준 뒤 3, 4, 5국을 내리 따내는 기적 같은 리버스 스윕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대국은 세계 바둑사에 남을 최고의 역전 명승부로 회자됩니다.당시 10대의 무서운 신예였던 이세돌 3단이 파죽지세로 먼저 2승을 거두며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이창호 9단의 경이로운 집중력이 발휘되었습니다. 5국 종국 후 멘탈 붕괴에 빠진 이세돌의 좌절한 표정은 당시 바둑계에서 커다란 화제가 되었습니다.
2002
2002
[유창혁의 4전 5기 우승]
제6회 대회 결승에서 유창혁 9단이 스승 조훈현 9단을 상대로 3대 2의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우승컵을 품에 안았습니다. 무려 세 번의 준우승 끝에 이루어낸 값진 인간 승리였습니다.유창혁 9단은 1회, 2회, 4회 대회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6회 대회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무서운 집념으로 최종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침내 정상에 등극하며 묵은 한을 완벽하게 풀어냈습니다.
2003
2003
[이세돌의 비 9단 최초 우승]
제7회 대회 결승에서 이세돌 3단이 전 대회 결승 상대였던 이창호 9단을 3대 1로 꺾고 통쾌한 설욕전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메이저 세계 대회 사상 최초로 9단이 아닌 기사가 우승한 진기록이기도 합니다.2년 전 뼈아픈 역전패의 아픔을 딛고 한층 성숙한 기량으로 돌아온 이세돌 3단은 세계 최강 이창호 9단을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이 눈부신 우승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세돌은 특별 승단 규정에 의해 단숨에 6단으로 승단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2004
2004
[이창호의 최다 4회 우승 금자탑]
제8회 대회에서 이창호 9단이 목진석 7단을 3대 1로 물리치고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LG배 역대 최다 우승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이창호 9단은 신예들의 거센 도전을 특유의 두터운 반면 운영으로 잠재우며 자신의 시대를 연장했습니다. 동시에 대회 주최 측은 제9회 예선부터 기존 4강까지 주어졌던 차기 대회 시드를 결승 진출자 2명으로 대폭 축소하는 규정 변경을 발표했습니다.
2005
2005
[장쉬 우승 및 흑백 선택권 도입]
제9회 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장쉬 9단이 중국의 위빈 9단을 3대 1로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제10회 대회부터 돌가리기에서 이긴 기사가 흑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전격 도입되었습니다.장쉬 9단의 우승 이후, 일본기원 소속 기사들은 2024년 응씨배 전까지 메이저 세계 대회 개인전에서 오랫동안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기나긴 암흑기에 빠지게 됩니다. 새롭게 도입된 흑백 선택권 제도는 기사들의 전술적 선호를 존중하는 응씨배의 선진적인 방식을 적극 수용한 결과였습니다.
2006
2006
[구리 우승 및 점심시간 축소]
제10회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구리 9단이 자국 후배 천야오예 5단을 3대 2로 힘겹게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지는 11회 대회부터는 본선 대국 중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점심시간이 45분으로 단축되었습니다.구리 9단은 천야오예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정상에 오르며 중국 바둑의 새로운 에이스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주최 측은 외부의 조언을 듣거나 바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대폭 줄이고 감시를 강화하는 엄격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2007
2007
[대만기원 기사의 최초 세계대회 우승]
제11회 결승에서 대만의 저우쥔쉰 9단이 중국의 후야오위 8단을 2대 1로 꺾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만 국적의 대만기원 소속 기사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것이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입니다.저우쥔쉰 9단은 얼굴의 큰 붉은 점 때문에 '홍면기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변의 오랜 편견을 극복하고 실력 하나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그의 기적 같은 우승은 바둑 변방으로 여겨졌던 대만 바둑계에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준 상징적인 쾌거였습니다.
2008
2008
[초단 돌풍과 이세돌의 두 번째 우승]
제12회 대회 결승에서 이세돌 9단이 '초단 돌풍'의 거센 주역인 한상훈 2단을 2대 1로 누르고 대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상훈은 초단 신분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유례없는 거대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한상훈은 결승 진출의 막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단으로 특별 승단한 상태로 결승전에 임했으며,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 성과로 다시 3단으로 승단하는 진기록을 낳았습니다. 이세돌 9단은 무서운 후배의 거센 도전을 노련하게 방어하며 세계 정상급 기사의 품격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009
2009
[사찰에서 열린 이색 결승전]
제13회 대회 결승전은 메이저 국제 바둑 기전 사상 최초로 강원도 인제군의 고찰 백담사에서 독특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고즈넉한 무대에서 중국의 구리 9단이 이세돌 9단을 2대 0으로 완벽히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한중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던 두 천재 기사의 맞대결로 전 세계 바둑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구리 9단은 백담사의 차분하고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완벽한 수읽기를 뽐내며 2연승을 거두고 LG배 통산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2010
2010
[쿵제의 우승과 중국의 거센 강세]
제14회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쿵제 9단이 이창호 9단을 2대 0으로 완파하며 우승의 영광을 단숨에 안았습니다. 이로써 중국 기사들이 2년 연속 LG배를 제패하며 본격적인 중국 바둑의 강세가 뚜렷하게 이어졌습니다.세계대회 우승 청부사로 불리던 이창호 9단은 홈그라운드 한국 팬들의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쿵제 9단의 치밀하고 두터운 반면 운영에 밀려 완패를 당했습니다. 쿵제 9단은 이 우승을 통해 자신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당대 세계 바둑계의 1인자로 강력하게 떠올랐습니다.
2011
2011
[조선족 기사 퍄오원야오의 첫 제패]
제15회 대회 결승전에서 퍄오원야오 5단이 전년도 우승자인 쿵제 9단을 2대 0으로 가볍게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중국 소수민족인 조선족 출신 기사 중 최초로 메이저 세계 대회를 제패하는 역사적인 엄청난 기록을 남겼습니다.퍄오원야오 5단은 탄탄한 기본기와 날카로운 수읽기를 바탕으로 자국의 당대 최고수 쿵제 9단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는 대이변을 연출했습니다. 그는 이번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의 막대한 공로를 특별히 인정받아 단숨에 9단으로 수직 승단하는 겹경사를 누렸습니다.
2012
2012
[장웨이제의 우승과 세대교체의 신호탄]
제16회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무서운 신예 장웨이제 5단이 관록의 이창호 9단을 2대 0으로 확실하게 제압하며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90년대생 젊은 기사들의 맹렬한 약진을 알리는 본격적인 세대교체의 서막이 강렬하게 올랐습니다.이창호 9단은 통산 5회 우승을 굳게 노리며 고군분투했으나, 체력과 수읽기에서 앞선 젊은 장웨이제의 무서운 패기를 넘지 못하고 또다시 준우승에 머무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습니다. 장웨이제 역시 이 대회 우승 규정에 따라 즉시 9단으로 특별 승단하며 중국 바둑의 새로운 듬직한 간판으로 부상했습니다.
2013
2013
[대회 명칭 변경 및 룰 개정]
제17회 대회(스웨 5단 우승) 이후, 제18회부터 기존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주최사의 이름을 명확히 넣은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으로 공식 대회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초읽기 시간 등 세부 대국 규정의 대폭적인 수정이 단행되었습니다.기존 1분 5회였던 초읽기 여유 규정이 40초 5회로 대폭 단축되어 대국 템포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빨라졌습니다. 아울러 본선 진출자 전원에게 지급되던 기본 대국료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대신 32강전부터 성적에 따라 상금을 차등 지급하는 철저한 성과주의 상금제로 시스템을 개편했습니다.
2014
2014
[퉈자시 우승과 중국의 무서운 6연패]
제18회 대회 결승에서 퉈자시 3단이 저우루이양 9단을 2대 1로 누르고 감격적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중국 소속 기사들이 제13회부터 18회까지 무려 6년 연속으로 LG배 우승 트로피를 완벽하게 독식하는 엄청난 기염을 토했습니다.자국 기사 간의 형제 대결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퉈자시 3단은 첫 판을 무기력하게 내주고도 침착하게 2, 3국을 연달아 따내며 짜릿한 대역전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우승 직후 그는 9단으로 특별 승단하였으며, 역대 LG배 우승자 중 가장 낮은 단위(3단)로 우승한 이세돌과 공동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2015
2015
[박정환, 한국의 기나긴 침묵을 깨다]
제19회 결승전에서 박정환 9단이 김지석 9단을 2대 1로 완벽히 제압하고 마침내 우승컵을 한국으로 탈환했습니다. 무려 6년 동안 견고하게 이어지던 중국의 LG배 독주를 통쾌하게 저지하고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극적으로 세워준 의미 있는 승리였습니다.이번 19회 대회부터는 치열한 대국 몰입도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본선 대국 중에 주어지던 점심시간이 전면 폐지되는 획기적인 규칙이 도입되었습니다. 한국 최고 기사들 간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결승 맞대결 끝에 박정환 9단이 승리하며 한국 바둑계에 가뭄의 단비 같은 엄청난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2016
2016
[강동윤 우승으로 한국 2연패 달성]
제20회 대회 결승에서 한국의 강동윤 9단이 박영훈 9단을 상대로 2대 1의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 기사들이 2년 연속 우승 및 2년 연속 결승 형제 대결을 독차지하며 과거 바둑 최강국의 영광을 되찾았습니다.강동윤 9단은 끈질긴 반집 승부와 복잡한 난전 끝에 박영훈 9단의 치밀하고 정확한 계산력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중국세에 억눌려 오랜 기간 고전하던 한국 바둑이 완벽하게 주도권을 다시 되찾아오며 세계 무대에서의 강력한 경쟁력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입증한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받습니다.
2017
2017
[당이페이 우승 및 최정 9단의 예선 돌풍]
제21회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당이페이 9단이 저우루이양 9단을 2대 0으로 셧아웃시키며 정상을 굳건히 차지했습니다. 한편, 이 대회 예선에서는 한국의 독보적인 여자 기사인 최정 9단이 치열한 통합예선을 자력으로 통과하는 대기록을 멋지게 작성했습니다.별도의 여자조나 중장년조 배려 없이 세계적인 남성 강호들이 총출동하는 매우 가혹한 통합예선 시스템에서, 최정 9단이 내로라하는 기사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본선에 당당히 진출한 것은 바둑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최정은 22회, 24회 대회에서도 실력으로 예선을 통과하는 눈부신 진기록을 이어갑니다.
2018
2018
[셰얼하오의 우승과 일본 이야마 유타의 선전]
제22회 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셰얼하오 5단이 일본의 절대적인 1인자 이야마 유타 9단을 2대 1로 힘겹게 꺾고 우승의 영광을 온전히 누렸습니다. 이야마 유타는 정말 오랜만에 일본 바둑을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려놓으며 자국의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최근 부진하던 일본 기사가 메이저 세계 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큰 사건으로, 자국 내 7관왕에 빛나는 이야마 유타의 놀라운 저력이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셰얼하오 5단의 예리하고 공격적인 기세를 끝내 막지 못했고, 셰얼하오는 이 짜릿한 우승을 통해 9단으로 특별 승단하는 엄청난 기쁨을 누렸습니다.
2019
2019
[양딩신의 우승 및 예선 점심시간 완전 폐지]
제23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양딩신 7단이 스웨 9단을 2대 1로 짜릿하게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하며 9단으로 단숨에 수직 승단했습니다. 이 대회부터는 본선 토너먼트에 이어 치열한 예선 대국에서도 점심시간이 완전히 폐지되는 엄격한 룰이 새롭게 적용되었습니다.최첨단 AI를 활용한 부정행위 방지와 대국의 끊김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그동안 1시간씩 보장되던 예선 점심시간마저 없애며, 기사들은 간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며 쉼 없이 대국에만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양딩신은 대회 내내 극적인 역전승을 거듭하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끝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2020
2020
[신진서의 시대 선포]
제24회 대회 결승에서 한국 바둑의 현재이자 압도적인 미래인 신진서 9단이 선배 박정환 9단을 2대 0으로 완파하며 생애 첫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의 벅찬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무결점의 경이로운 인공지능 같은 바둑으로 본격적인 '신진서의 시대'를 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신진서 9단은 한국 랭킹 1, 2위 간의 숨 막히는 맞대결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결승전에서 박정환 9단의 두터운 노련미를 완벽히 압도하는 내용으로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이 첫 우승을 기점으로 그는 세계 바둑계의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무섭게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2021
2021
[신민준의 첫 우승과 코로나19 예선 방식 변경]
제25회 결승에서 신민준 9단이 중국의 콧대 높은 절대 에이스 커제 9단을 상대로 1국 패배 후 2, 3국을 내리 따내는 짜릿한 2대 1 역전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또한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의 통합예선 대신 국가별 분리 예선이 처음으로 치러졌습니다.신민준 9단은 생애 첫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을 당대 최고의 스타 기사인 커제 9단을 꺾고 달성하며 세계 바둑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각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대규모 통합예선이 불가능해진 탓에, 각국 기원별로 인원을 할당하여 자국 내에서 온라인 및 자체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자를 선발하는 불가피한 고육지책이 도입되었습니다.
2022
2022
[신진서 2관왕 및 본선 규모 24강 대폭 축소]
제26회 대회 결승에서 신진서 9단이 중국의 양딩신 9단을 2대 0으로 완벽히 셧아웃시키며 통산 두 번째 LG배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 대회부터는 본선 토너먼트 진출 인원이 기존의 32강 체제에서 24강으로 대폭 축소 개편되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신진서 9단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빈틈없이 정교한 바둑으로 중국의 에이스 양딩신을 무너뜨렸습니다. 24강 체제로 토너먼트 구조가 변경되면서 국가 시드를 받은 최상위권 랭커 기사들은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하여 16강부터 대국을 치르는 등 본선 운영의 효율성과 승부의 박진감이 한층 더해졌습니다.
2023
2023
[중국 딩하오의 압도적인 무실세트 우승]
제27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차세대 선두 주자 딩하오 9단이 자국의 관록 있는 선배 양딩신 9단을 2대 0으로 깔끔하게 제압하고 새로운 챔피언 자리에 우뚝 올랐습니다. 양딩신은 2년 연속으로 대회 결승에서 0대 2 완패를 당하는 지독하고 뼈아픈 불운에 울었습니다.딩하오 9단은 가혹한 대회 일정 내내 단 한 판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고 절정의 컨디션을 굳건히 과시하며 생애 첫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컵을 높이 들어 올렸습니다. 반면 양딩신 9단은 23회 대회 우승 이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허무하게 미끄러지며 승부의 세계에서 극명한 명암이 교차하는 잔인한 순간이었습니다.
2024
2024
[신진서의 세 번째 정상 탈환]
제28회 결승에서 신진서 9단이 동료 변상일 9단을 상대로 2대 0 완승을 거두며 대회 통산 3회 우승이라는 거대한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전설적인 이창호 9단(4회)에 이어 대회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 걸출한 기사가 되었습니다.오랜만에 성사된 한국 선수들끼리의 결승전에서 신진서 9단은 동갑내기 최고의 라이벌인 변상일 9단을 상대로 한 수 위의 압도적인 기량을 거침없이 선보이며 빈틈없는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의 무적 행진을 굳건히 이어가며 자타공인 현존 세계 최고수임을 만천하에 완벽히 재입증했습니다.
2025
2025
[변상일 우승과 커제의 판정 불만 철수 사태]
제29회 대회 결승에서 변상일 9단이 커제 9단에게 2대 1로 승리하며 감격적인 첫 LG배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대국 중 벌어진 규칙 해석 및 판정 논란에 강한 불만을 품은 커제 9단이 시상식을 전격 보이콧하고 돌연 철수하는 초유의 촌극이 발생했습니다.치열한 반집 접전이 이어지던 중 불거진 심판의 판정 시비는 중국 바둑계 전체의 거센 항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변상일 9단은 어수선하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놀라운 강철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값진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우승을 달성했으나, 끝내 찝찝한 뒷맛을 남긴 채 시상식이 반쪽짜리로 파행 운영되고 말았습니다.
2026
2026
[중국 바둑협회 보이콧과 신민준 두 번째 우승]
제30회 대회는 전년도 결승전의 거센 판정 논란 후폭풍으로 중국 바둑협회가 대회 전면 불참을 선언하는 사상 초유의 거대한 파행 속에 불안하게 치러졌습니다. 결승에서 한국의 신민준 9단이 일본의 이치리키 료 9단을 2대 1로 꺾고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세계 최강을 다투는 중국 기사들이 대거 빠진 채 치러져 반쪽짜리 대회라는 오명 속에 권위가 크게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결승에서는 끈질기게 따라붙은 일본 1인자 이치리키 료의 매서운 도전을 신민준 9단이 놀라운 뒷심으로 노련하게 막아내며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정상에 오르는 값진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