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연표
1982
[해태 타이거즈 창단]
KBO 리그 출범과 함께 해태제과 본사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되었습니다. 김봉연, 김준환 등 15명의 최소 규모 선수단으로 시작했습니다.
1982년 1월 30일, KBO 리그 출범과 함께 해태제과 본사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되었습니다. 김봉연, 김준환, 김우근을 비롯해 김용남, 김성한, 김종윤, 박전섭, 차정득 등 8명이 군산상고 출신이었고, 광주일고 출신 강만식, 차영화, 이상윤, 방수원, 광주상고 김종모, 최영조 그리고 1978년 이미 야구부를 해체한 전남고 출신 신태중을 포함한 총 15명이라는 6개 구단 중에서도 가장 적은 초미니 선수단으로 OB 베어스와 MBC 청룡에 이어 3번째로 창단되었습니다. 선수들의 대부분은 군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창단 감독 중도 퇴진 및 감독 대행 체제]
창단 첫 시즌, 김동엽 감독이 폭력적인 행동을 문제 삼아 코치진이 팀을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김동엽 감독은 5승 8패의 성적만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조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개막 후 조창수와 유남호 두 코치가 감독의 폭력적인 행동 등을 문제삼으며 팀을 이탈하는 사건이 터졌고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자존심이 상한 김동엽 감독은 5승 8패라는 성적만 남기고 곧장 스스로 옷을 벗고 팀을 떠나버려 조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았습니다. 전기 및 후기 리그 우승을 모두 놓치고 38승 42패, 4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습니다. 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전무후무한 10승(3선발승) - 타점왕(69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김봉연은 22홈런을 기록하여 원년 홈런왕에 올랐습니다.
[김응용 감독 취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의 2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대대적인 팀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1983년 미국 조지아 서던 칼리지에서 야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이 4800만원의 계약금과 연봉을 합친 금액에 부대조건으로 승용차 한 대를 받고 해태 2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대대적인 팀 개편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조창수와 유남호로 이뤄진 기존의 코치진에 군산상고 감독 출신 백기성과 동국대 감독으로 있던 김인식을 추가 영입해 코치 스태프를 강화했습니다. 그 외에도 부족했던 선수를 보강하기 위해 삼성에서 벤치로 밀려나있던 서정환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재일교포 선수인 김무종과 주동식을 영입해 팀의 약점인 배터리를 든든하게 했습니다. 김응용 감독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앞세운 전임 감독과는 정반대로 팀 훈련 외 시간은 철저하게 선수들의 자율에 맡겼으며, 단체 훈련도 하루 3시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1983
[전기 리그 우승 확정]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중위권 전력 예상을 뒤엎고 1983년 6월 24일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6월 초까지 장명부를 앞세운 삼미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고, 2.5게임차로 뒤진 가운데 6월 7일부터 열린 광주 3연전 맞대결을 싹쓸이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습니다. 마침내 6월 24일 삼미가 OB에게 패하면서 해태는 남은 경기와 관계없이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짓게 되었습니다. 막강해진 마운드의 힘이 절대적이었는데, 이상윤이 20승(13선발승)을 거두는 활약으로 에이스로 거듭났고, 기존의 김용남(13승)(7선발승)과 강만식(6승)도 호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김일권으로 시작해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의 힘은 한층 강해져 전기리그 1위를 기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한국시리즈 첫 우승 (V1)]
MBC 청룡과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 1무로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마운드의 이상윤과 타선의 KKK포(김봉연, 김성한, 김종모)가 맹활약했습니다.
MBC 청룡과 맞붙었던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1승 2세이브를 따낸 마운드의 에이스 이상윤과 김용남, 그리고 최초의 언더핸드 주동식과 타선에서는 5경기 8타점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 'KKK포'의 활약 속에 해태는 4승 1무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됩니다.
1984
[KBO 최초 노히트 노런 기록]
광주무등구장에서 벌어진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투수 방수원이 KBO 리그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84년 5월 5일 광주무등구장에서 벌어진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경기에서 투수 방수원이 KBO 리그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해 해태는 연봉 처우에 대한 선수단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악재로 작용하여 전기 리그 4위, 후기 리그 3위로 43승 54패 3무, 최종 순위 5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1985
[선동열, 이순철, 김성한 등 주축 선수들의 활약 시작]
신인 외야수 이순철과 투수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 최다 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됩니다.
1985년에도 에이스 이상윤의 부상 공백으로 투수력에 애를 먹으면서 전기 리그 3위, 후기 리그 3위로 59승 52패 1무, 최종 순위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였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인 외야수 이순철과 투수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과 최다 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됩니다.
1986
[한국시리즈 4연패 시작 (V2)]
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와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의 맹활약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4연패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선동열은 KBO 최초로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1986년 해태 타이거즈는 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와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의 맹활약으로 전·후기 리그 2위를 기록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김정수의 맹활약으로 4승 1패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를 1번, 빙그레 이글스를 2번 누르고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각각 김정수, 김준환, 문희수, 박철우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였습니다. 선동열은 1986년, 1987년, 1993년에 걸쳐 KBO 최초이자 최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1989
[전라북도 연고권 양도]
새롭게 창단된 쌍방울 레이더스에게 전라북도 연고권을 양도하면서,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 및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이 호남 전 지역에서 광주직할시와 전라남도로 축소되었습니다.
1989년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그동안 유지해 온 전라북도 지역 연고권을 신생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양도하게 됩니다. 또한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 및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도 호남 전 지역에서 광주직할시와 전라남도로 축소되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해 왔는데, 전주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40승 1무 24패, 승률 0.623로 높았습니다. 특히 1987년에는 전국체전의 광주 개최로 인해 플레이오프를 전주야구장으로 옮겨서 치렀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OB 베어스를 전주에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 최초 3타자 연속 홈런]
김준환, 백인호, 박철우가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3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89년 6월 1일 김준환, 백인호, 박철우가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3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김성한, 프로 최초 20-20클럽 가입]
김성한이 프로 야구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이 해 홈런 26개, 도루 32개를 기록했습니다.
1989년 9월 17일 김성한이 프로 야구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이 해 홈런 26개, 도루 32개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0
1990년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해 한국시리즈 5연패에 실패합니다.
1991
[한국시리즈 V6 달성 및 골든 글러브 신기록]
빙그레 이글스를 꺾고 통산 6번째 우승(V6)을 차지했습니다. 이 해 골든 글러브 10명 중 6명(선동열, 장채근, 김성한, 한대화, 이호성, 이순철)을 배출하며 팀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1991년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6번째 우승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해 골든 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무려 6명(선동열, 장채근, 김성한, 한대화, 이호성, 이순철)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팀 최다 수상 신기록을 경신하였습니다.
1991년 4월 19일 김성한이 프로 야구 최초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2
1992년 5월 31일 팀 통산 1,000 홈런을 기록하는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93
[한국시리즈 V7 달성 및 이종범 활약]
괴물 신인 유격수 이종범의 등장과 다승왕 조계현을 비롯한 강력한 투수진의 활약으로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통산 7번째 우승(V7)을 차지했습니다.
1993년 괴물 신인 유격수 이종범의 등장과 다승왕 조계현을 비롯해 선동열, 이대진, 송유석, 이강철 등의 맹활약으로 81승 42패 3무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하여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하였습니다.
[이종범, 프로 최초 더블헤더 선두타자 연속 홈런]
이종범이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더블헤더 경기에서 선두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93년 7월 15일 이종범이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더블헤더 경기에서 선두타자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94
[이종범의 맹타에도 불구하고 준플레이오프 탈락]
이종범이 역대 2위 기록인 0.393의 타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배하여 4위에 머물렀습니다.
1994년 이종범이 0.393(역대 2위)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하여 4위에 머물게 됩니다.
1996
[한국시리즈 V8 달성]
선동열 선수의 이적 공백을 임창용과 강태원 선수가 메우며 현대 유니콘스를 꺾고 통산 8번째 한국시리즈 우승(V8)을 차지했습니다.
1996년 선동열의 주니치 이적의 공백을 투수 임창용과 강태원 선수가 메우며,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여덟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1997
[한국시리즈 V9 달성 및 김상진 최연소 완투승]
이종범, 이대진 등의 맹활약으로 통산 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V9)을 거머쥐었습니다. 15년간 9번의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김상진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했습니다.
1997년에도 이종범, 이대진 등의 맹활약으로 아홉 번째 우승을 거머쥐어, 15년간 우승 9번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우는데, 투수 김상진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최연소 완투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종범, 프로 최초 3할-30홈런-30도루 달성]
이종범이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3할 타율-30홈런-30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30-3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1997년 이종범이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3할 타율-30홈런-30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30-3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1997년 8월 8일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1,000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1998
[이종범 이적 및 IMF로 인한 모기업 자금난]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한 후, 해태는 시즌 5위를 기록했습니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모기업 해태제과의 자금난이 심해져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한 후 맞은 첫 시즌인 1998년에 해태는 시즌 5위를 기록했습니다. 장성호(.312)라는 새로운 좌타자를 발견한 데 위안을 삼았습니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 모기업 해태제과의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이는 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악재가 되었습니다. 이 여파로 쌍방울 레이더스처럼 몇몇 선수들이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습니다.
1998년 5월 12일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KBO 리그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
[팀 최다 홈런 기록 경신]
양준혁, 홍현우, 트레이시 샌더스의 맹활약으로 팀 최다 홈런 기록(210개)을 경신했으나, 마운드의 부진으로 통합 7위에 머물렀습니다.
1999년 투수 임창용을 상대로 트레이드로 영입한 좌타자 양준혁과 홍현우, 트레이시 샌더스의 맹활약으로 팀 최다 홈런 기록(210개)을 경신하였으나, 마운드의 부진으로 통합 7위에 머물게 됩니다.
2000
[김응용 감독 이적 및 김성한 감독 승격]
해태의 9회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이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났고, 김성한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습니다.
2000년에도 역시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6위에 머물렀고, 해태의 통산 우승 9회를 이룬 김응용 감독마저 2000 시즌을 마치고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면서 김성한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승격했습니다.
2001
[이종범, KIA 타이거즈로 복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웨이버 공시된 이종범이 친정팀으로 다시 복귀하며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KIA는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2001년 6월 1일 웨이버 공시된 이종범을 다시 영입하는 등 공격적인 팀 운영으로 다시 전통 강호로 떠오르게 됩니다.
[기아자동차 인수 및 KIA 타이거즈로 팀명 변경]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하며 팀명이 'KIA 타이거즈'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01년 시즌 중반인 7월에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했고, 동년 8월 1일부터 KIA 타이거즈로 팀명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는 인수대금 180억 원과 KBO 가입금 30억 원을 합하여 210억 원을 KBO에 팀 인수 창단 금액으로 내고 야구단을 인수했습니다. 공식적인 표기는 'KIA 타이거즈'이며, '기아 타이거즈'로 읽지만 한글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KIA 타이거즈 구단에서는 이에 대해서 기아(起亞)가 굶주림(飢餓)로 혼동되는 것을 방지하고 두 글자 모두 받침이 없어 약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기아가 생산하는 자동차에도 한글 대신 영어 'KIA'만을 사용하고 야구단 유니폼에도 한글을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2002
[김진우 활약 속 플레이오프 탈락]
‘제2의 선동열’이라 불린 신인 김진우 선수의 가세로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에 밀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02년에는 ‘제2의 선동열’이란 찬사를 받은 신인 김진우도 가세하여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쳤으나, 김성한 감독의 ‘김진우 마무리’ 악수로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에 밀려 탈락하였습니다.
2003
[홍세완 유격수 최초 100타점 기록 속 플레이오프 탈락]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쳤으나 또다시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패배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홍세완은 국내 유격수 최초로 세자리수 타점(10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003년에도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쳤으나 또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였습니다. 홍세완은 국내 유격수 최초로 세자리수 타점(10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004
[감독 교체와 준플레이오프 진출]
4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김성한 감독이 총감독으로 오르고 유남호 감독대행이 새 감독으로 취임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2004년에는 4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김성한 감독이 총감독으로 오르고(사실상 해임) 유남호 감독 대행이 새 감독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2005
[창단 첫 최하위 기록 및 감독 교체]
팀 사상 최다패인 76패와 최저 승률인 0.392를 기록하며 창단 후 첫 8위(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유남호 감독이 해임되고 서정환 감독대행이 취임했습니다.
2005년 KIA 타이거즈는 팀 사상 최다패인 76패와 최저 승률인 0.392의 승률을 기록하여 창단 후 첫 8위(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유남호 감독 역시 해임되고 서정환 감독 대행이 새 감독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2006
[준플레이오프 진출 및 한기주 최다 계약금 기록]
외국인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의 맹활약에 힘입어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한화 이글스에 패배했습니다. 한기주는 KBO 사상 최다 계약금 10억을 기록했습니다.
2006년 외국인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의 맹활약에 힘입어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를 힘든 경쟁 끝에 누르고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한기주는 입단 당시 KBO 리그 사상 최다 계약금인 10억을 기록했습니다.
2007
[두 번째 최하위 및 '엘롯기 동맹' 별명, 손지환 최초 무보살 트리플 플레이]
마운드 붕괴와 장타력 부재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현곤이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하고 최희섭이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진했고, '엘롯기 동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손지환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무보살 트리플 플레이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야심차게 맞이한 2007년 시즌에서 마운드의 붕괴와 장타력의 부재로 인하여 수위 타자 타이틀을 차지한 이현곤의 활약과 최희섭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최하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LG, 롯데와 번갈아 하위권에 머무른다고 하여 한국시리즈에서 많이 우승한 팀답지 않게 엘롯기(LG, 롯데, KIA) 동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손지환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무보살 트리플 플레이를 기록했습니다.
[조범현 감독 선임 및 서재응 영입]
서정환 감독이 해임되고 조범현 배터리 코치가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또한 메이저 리그 출신 투수 서재응 선수를 영입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2007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는 서정환 감독을 해임하고 2007년 6월 20일에 영입한 조범현 배터리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 및 메이저 리그 출신 투수 서재응 선수를 2007년 12월 17일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하였습니다.
2009
2009년 7월 3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전에서 선발 타자 전원이 한 이닝에 득점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역대 월간 최다승 및 김상현 최다 홈런·타점 타이 기록]
20승 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역대 월간 최다승 및 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김상현은 역대 월간 최다 홈런(15개)과 최다 타점(38타점)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년 8월, 20승 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역대 월간 최다승 및 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김상현은 역대 월간 최다 홈런(15개)과 최다 타점(38타점)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정규 시즌 1위 확정]
군산월명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승리하며 2009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 1위를 확정 지었습니다.
2009년 시즌은 초반에 불안하게 시작되었으나, 릭 구톰슨, 아킬리노 로페즈, 윤석민, 양현종의 호투와 오랜 부진에서 벗어난 이종범과 장성호, 최희섭, 이용규 그리고 LG 트윈스에서 돌아온 김상현의 활약에 힘입어 후반기 시작과 함께 선두를 달렸고, 마침내 2009년 9월 24일 군산월명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승리하면서 2009 프로야구 정규 시즌 1위를 군산에서 확정, 그리고, 12년 만에 2009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였습니다.
[한국시리즈 V10 달성 (KIA 첫 우승)]
SK 와이번스와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접전 끝에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 홈런으로 4승 3패를 기록, 12년 만이자 KIA 타이거즈로 팀명 변경 후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V10)을 차지했습니다. 안치홍은 한국시리즈 최연소 홈런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는 데뷔팀 SK 와이번스를 맞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 홈런으로 4승 3패를 기록하여 12년만의 우승이자 기아자동차로 구단주가 바뀐 이후 최초, 팀 창단 이래 구단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기록을 포함하여 팀의 열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고 조범현 감독은 감독 생활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하여 명장의 반열에 오릅니다. 안치홍은 2009년 10월 24일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19세 3개월 22일의 나이로 한국시리즈 최연소 홈런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0
2010년 5월 30일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20,000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KBO 유일 한 이닝 사이클링 홈런 기록]
사직 롯데 자이언츠 전 3회초에 이용규, 채종범, 최희섭, 이용규가 차례로 홈런을 치며 한 이닝 사이클링 홈런이라는 KBO 리그 유일무이한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용규는 한 이닝 최다 타점(7점)과 한 경기 최다 타점(8점)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0년 7월 2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 전 3회초, 이용규 3점 홈런 -> 채종범 2점 홈런 -> 최희섭 1점 홈런 -> 이용규 만루 홈런으로 한 이닝 사이클링 홈런이라는 KBO 리그 유일무이한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용규는 한 이닝 최다 타점(7점)과 한 경기 최다 타점(8점) 타이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0년 8월 7일 KBO 리그 역대 두 번째로 팀 통산 3,000 홈런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1
[역대 최초 연장 끝내기 삼중살]
SK 와이번스 전 11회말 연장 승부에서 역대 최초로 끝내기 삼중살을 기록하며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2011년 5월 8일 SK 와이번스 전 11회말 연장 승부에서 역대 최초로 끝내기 삼중살을 기록하며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조범현 감독 경질 및 선동열 감독 취임, 윤석민 4관왕 MVP]
일부 극성 팬들의 사퇴 압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이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국보 투수' 선동열이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해 윤석민은 투수 4관왕(다승, 평균 자책점, 탈삼진, 승률)을 차지하며 시즌 MVP를 수상했습니다.
2011년 10월 18일 KIA 타이거즈에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따른 일부 극성 팬들의 과도한 사퇴 압박으로 인해 조범현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바뀐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이루었고 2011 시즌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룬 감독이었지만 결국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선동열 감독이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이 해 투수 윤석민은 2011시즌에 다승(17승 5패 1세), 평균 자책점(2.45), 탈삼진(178개), 승률(0.773)의 4관왕을 차지하여 1989~91년 선동열 이후 선발투수 4관왕, 2006년 류현진 이후 5년 만의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어내어 시즌 MVP를 거머쥐었습니다.
2012
[서재응, KBO 역대 최다 선발 무실점 이닝 기록 경신]
서재응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선발 무실점 이닝 기록(44이닝)을 경신하며 철벽 마운드를 자랑했습니다.
2012년 서재응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선발 무실점 이닝 기록(44이닝)을 경신했습니다. 이전 기록은 선동열의 37이닝(1986~1987년)이었습니다.
2012년 6월 6일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3,700 도루를 달성했습니다.
2013
2013년 5월 23일 KBO 리그 역대 두 번째로 팀 통산 2,000승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14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홈구장 이전]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을 떠나 최신 시설을 갖춘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홈구장을 옮겨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4년 시즌부터는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을 떠나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홈구장을 옮겼습니다.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3년 연속 탈락에도 불구하고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하는 역대 최초의 감독이 되었으나, 많은 팬들이 재계약에 반대했고, 안치홍이 경찰청 입대를 선언하자 "임의탈퇴 공시하겠다"라는 발언이 나온 사실이 드러난 후 팬들의 항의로 재계약 6일 만인 2014년 10월 25일, 결국 KIA 타이거즈 감독직을 사퇴했습니다.
2014년 10월 28일 3일 전 자진사퇴한 선동열 감독의 후임으로 김기태 전 LG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계약기간은 3년입니다. 수석코치는 LG 트윈스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해태 타이거즈 레전드 출신의 조계현 LG 트윈스 2군 감독을 영입하였습니다. 1군 타격코치에는 박흥식 전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를, 1군 수비코치에는 김민호 전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를 각각 영입하였습니다.
2015
[한화 이글스와 4:3 트레이드]
한화 이글스와 4:3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유창식, 김광수, 노수광, 오준혁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2015년 5월 6일에는 KIA와 한화의 4:3 트레이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한화로부터 투수 유창식·김광수, 외야수 노수광·오준혁을 받고, KIA 타이거즈 투수 임준섭·박성호, 외야수 이종환을 내주는 4:3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역대 두 번째 팀 2,100승 달성]
KT 위즈 전에서 홍건희 선수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대 두 번째로 팀 통산 2,100승을 달성했습니다.
2015년 5월 13일 KT 위즈 전에서 홍건희 선수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대 두 번째로 팀 통산 2,100승을 달성했습니다.
[최희섭, KBO 역대 최고령 통산 100호 홈런]
최희섭이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만 36세 2개월 5일로 KBO 역대 최고령 통산 100호 홈런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5년 5월 21일 최희섭이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만 36세 2개월 5일로 KBO 역대 최고령 통산 100호 홈런 기록을 세웠습니다.
[역대 최초 팀 4,100도루 달성]
한화 이글스 전에서 김민우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4,100 도루를 달성했습니다.
2015년 7월 2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김민우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4,100 도루를 달성했습니다.
[역대 네 번째 팀 900세이브 달성]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윤석민 선수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대 네 번째로 팀 통산 900 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
2015년 7월 21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윤석민 선수의 활약으로 KBO 리그 역대 네 번째로 팀 통산 900 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
[이범호, KBO 통산 만루 홈런 신기록 및 250홈런 달성]
이범호가 두산 베어스 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KBO 통산 만루 홈런 신기록(13개)을 세웠습니다. 또한 통산 250홈런도 달성했습니다.
2015년 10월 3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이범호가 유희관을 상대로 KBO 통산 만루 홈런 신기록(13개)을 세웠습니다. 이와 함께 KBO 통산 250 홈런을 달성하며 역대 13번째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6
[최영필, KBO 최고령 세이브 기록]
최영필이 KT 위즈 전에서 만 41세 10개월 27일로 KBO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6년 4월 9일 KT 위즈 전에서 최영필이 만 41세 10개월 27일로 KBO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세웠습니다.
[김주찬, 팀 통산 최초 사이클링 히트]
김주찬이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팀 통산 최초이자 KBO 역대 19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2016년 4월 15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김주찬이 팀 통산 최초이자 KBO 역대 19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으나, 와일드카드 1차전 승리 후 2차전에서 LG 트윈스에 패배하여 준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16년 10월 5일 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습니다.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헥터 노에시의 호투로 4-2로 승리하였으나, 2차전 김용의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최형우 FA 영입 (100억 원)]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최형우를 4년 총액 100억 원에 계약하며 FA 영입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KBO 리그 FA 역사상 최고액 계약이었습니다.
2016년 시즌 종료 후, 나지완이 4년 계약금 16억원, 연봉 6억원 등 총액 40억원에 계약을 체결하여 잔류하였고, 11월 24일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최형우를 4년 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 등 총액 100억원에 계약을 체결하여 영입하였습니다. 외국인 선수 쪽에서는 브렛 필과 지크 스프루일을 방출시켰고, 로저 버나디나와 팻 딘을 각각 85만 달러, 9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여 영입한 후 헥터 노에시와 170만 달러에 재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2017
[양현종-헥터 20승 듀오 탄생 및 외국인 선수 기록]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가 각각 20승을 달성하며 KBO 역대 두 번째 20승 듀오를 탄생시켰습니다. 헥터 노에시는 팀 역사상 최초의 20승 외국인 선수입니다. 로저 버나디나는 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 20-2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2017년 시즌에는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가 각각 20승을 달성하며 KBO 역대 두 번째 선발 20승 듀오를 탄생시켰습니다. 헥터 노에시는 팀 역사상 최초의 20승 외국인 선수(모두 선발)이며, 로저 버나디나는 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 20-2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KBO 역대 최초 8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
SK 와이번스 전에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8게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미일 프로야구리그를 통틀어 최초의 기록입니다.
2017년 7월 5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8게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한미일 프로야구리그를 통틀어 최초의 기록입니다.
[로저 버나디나, 팀 최초 외국인 선수 사이클링 히트]
KT 위즈 전에서 로저 버나디나가 팀 역사상 최초이자 KBO 역대 두 번째 외국인 선수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2017년 8월 3일 KT 위즈 전에서 로저 버나디나가 팀 역사상 최초이자 KBO 역대 두 번째 외국인 선수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습니다.
[8년 만의 정규 시즌 1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에서 10-2 대승을 거두며 2009년 이후 8년 만에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7년 시즌에서는 강력한 타선과 헥터와 양현종의 20승 듀오 등을 앞세워 경쟁자들이 추격도 거셌지만 결국 정규시즌 1위자리를 계속 지켜갔고 마침내 10월 3일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에서 10-2 대승을 거둬, 2009년 이후 8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한국시리즈 V11 달성 및 양현종 MVP 3관왕]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며 8년 만에 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V11)을 차지했습니다. 양현종은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 최동원상을 동시 석권했습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하였는데 1차전을 먼저 내줬으나 2차전부터 5차전까지 내리 4연승을 거두어 한국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기록하고 두산 베어스를 꺾어 8년만에 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두산 베어스와 더불어 80년대, 90년대, 00년대, 10년대 모두 우승을 경험한 구단이 되었습니다. 양현종은 KBO 최초로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 동시 석권 및 최동원상을 수상했습니다.
2018
[와일드카드 결정전 탈락]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초반 부진을 딛고 최종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게 패배하여 한 경기 만에 가을야구를 마감했습니다.
2018년 초반에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위권을 전전하였습니다. 후반기에 좋은 성적을 내어 시즌 최종성적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키움에게 6대 10으로 패배하여 포스트시즌이 한 경기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2019
[김기태 감독 자진사퇴 및 박흥식 감독대행 선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기태 감독이 자진사퇴했습니다. 다음 날 박흥식 전 2군 감독이 감독대행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9년 5월 16일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자진사퇴하였습니다. 2019년 5월 17일 박흥식 전 2군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선임했습니다.
[구단 최초 외국인 감독 맷 윌리엄스 선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전직 MLB 선수 및 감독이었던 맷 윌리엄스를 영입했습니다.
2019년 시즌을 7위로 마무리한 후 기존 박흥식 감독대행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이종범이나 조계현 등 구단의 스타들을 감독으로 영입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10월 15일 공식 발표가 났는데, 바로 구단 역사상 최초 외국인 감독으로 전직 MLB선수와 감독으로 있었던 맷 윌리엄스를 영입했다고 밝혔습니다. 계약기간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이며 마치 최초 외국인 감독으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제리 로이스터와 유사한 계약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1
2022년까지 계약을 맺은 맷 윌리엄스가 성적 부진을 책임으로 조기 계약 해지를 하여 2021 리그가 끝난 지금 김종국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2021 리그가 끝난 지금 김종국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2022
2022 시즌을 앞두고,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나성범을 계약기간 6년 총액 150억원에 계약을 체결하여 영입하였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 점수차 승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3:0으로 승리하며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 점수차 경기 기록과 팀 최다 득점 타이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2022년 7월 24일 KIA vs 롯데의 경기에서 23:0으로 KIA가 승리하며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 점수차 경기인 동시에, 팀 최다 득점 타이를 만들어냈습니다.
[4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및 와일드카드 결정전 탈락]
KT 위즈를 상대로 11득점을 내며 승리, 자력으로 정규시즌 5위를 확정하며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 위즈에게 패배하며 가을야구를 한 경기 만에 마감했습니다.
2022년 10월 7일에 kt 위즈를 상대로 대거 11득점을 내면서 자력으로 정규시즌 5위로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 위즈에게 2:6으로 패하면서 한 경기 만에 가을야구를 마감하였습니다.
2023
[9연승 후 포스트시즌 탈락]
10년 만의 9연승을 달리며 한때 우승 가능성까지 언급되었으나, 9월 중순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급격히 무너지며 7연패를 기록,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23년엔 10년 만의 9연승을 달리며 한때 12번째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으나 9월 중순부터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급격히 7연패를 찍고 팀이 무너져 내렸고 결국 73승 2무 69패 0.514 5할 승률을 기록했으나 5위 두산베어스에게 불과 1게임 차로 밀린 6위로 포스트 시즌에 탈락합니다. 2015년 10구단 체제 출범 이후 6위팀 최고 승률입니다.
2024
[김도영, KBO 최초 월간 10-10 클럽 가입 및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 경신]
김도영이 KBO 최초로 월간 10-10 클럽에 가입했으며,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143득점)을 경신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2024년 김도영이 KBO 최초로 월간 10-1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또한 KBO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143득점)을 경신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2024시즌을 앞둔 상태에서 김종국 감독이 배임 수재 혐의로 인해 2024년 1월 29일 부로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2024년 2월 13일, 김종국 감독의 후임으로 팀의 타격코치를 맡았던 이범호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습니다.
[정규시즌 우승 확정]
비록 SSG 랜더스에게 0:2로 패했지만, 같은 시간 2위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에게 지면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2024년 9월 17일에 KIA 타이거즈는 비록 0:2로 SSG 랜더스에게 졌지만 같은 시간에 잠실야구장에서 2위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에게 4:8로 지는 바람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
[한국시리즈 V12 달성]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7:5로 승리하며 2017년 이후 7년 만이자 팀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V12)을 차지했습니다. 연고지 광주에서는 37년 만의 우승입니다. 김선빈이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
2024년 10월 28일에 한국시리즈 5차전서 7:5로 승리를 거두며, 연고지 광주에서는 37년 만이자, 2017년 이후 7년 만에 팀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김선빈이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