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
FC 서울은 1983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창단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남자 프로 축구단입니다. K리그1에서 6회 우승을 차지하며 성남 FC와 전북 현대 모터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한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Soul of Seoul'을 모토로 삼아 서울 시민의 열정과 혼을 담은 축구를 지향합니다. 특히 한 시즌 최다 총관중 및 최다 평균관중 기록, 한 경기 최다 관중수 기록을 보유하는 등 뛰어난 흥행력을 자랑하며, 경기력과 마케팅 모두에서 K리그 최고의 구단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연표
1983
FC 서울은 1983년 8월 18일, 구단 공식 창단 발표를 통해 한국 축구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프로축구 역사가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FC 서울의 모기업인 럭키금성그룹은 1983년 11월 9일, 국내 최초로 종합스포츠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전문적인 스포츠 구단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한국 스포츠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 공식 창단]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으로 공식 창단식을 거행하고 출범했으며, 당시 연고지는 충청도로 배정되었습니다.
1983년 12월 22일,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프로축구단으로 공식 창단식을 열고 힘찬 출발을 알렸습니다. 창단 연고지는 충청도였으며, 마스코트는 황소로 선정되었습니다.
1984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1984년 창단 첫 시즌에 K리그 8개 구단 중 7위를 기록하며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는 팀의 초기 성장통을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1985
1985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박세학 감독의 지도와 태국 출신 피아퐁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K리그에서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팀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쾌거였습니다.
1986
1986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프로축구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기록한 데 이어,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훌륭한 성적을 이어갔습니다.
1987
1987년 시즌,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K리그에서 5위에 올랐습니다.
1988
1988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또 하나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1988년 4월 14일부터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창단 때부터 염원했던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장기적인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1989
1989년 10월 16일, 프로축구 특별위원회의 승인을 통해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목표였습니다.
1990
[최초 서울 연고지 K리그 우승]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K리그에서 우승하며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지 프로축구단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0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은 서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K리그에서 우승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서울을 연고지로 둔 구단이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1991
1991년 2월 27일, 럭키금성그룹이 LG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함에 따라 축구단 역시 'LG 치타스'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1992
1992년, LG 치타스는 리그컵(아디다스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93
1993년 시즌, LG 치타스는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상위권을 유지했고, 리그컵(아디다스컵)에서도 4위에 올랐습니다.
1994
1994년, LG 치타스는 리그컵(아디다스컵) 결승에 다시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1995
1995년 말,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추진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에 의해 LG 치타스는 창단 당시부터 원했던 서울을 떠나게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96
1996년 4월, LG 치타스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의 강제 시행으로 인해 연고지를 안양으로 옮겼습니다. 동시에 구단 공식 명칭도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8
1998년, 안양 LG 치타스는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첫 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팀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서울 연고지 활용 필요성 제기]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한 프로축구 발전을 위한 공청회에서 프로스포츠 최대 시장인 서울 연고지 활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1998년 11월,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청회에서 서울 연고지 활용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논의되었습니다. 이는 미래 구단의 서울 복귀에 대한 잠재적인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1999
1999년, 안양 LG 치타스는 아디다스컵 리그컵과 슈퍼컵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99년 11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철폐되고 서울에 프로축구단을 다시 만들기로 잠정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 복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소식이었습니다.
2000
2000년 시즌, 안양 LG 치타스는 최용수 선수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K리그에서 우승하며 구단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2000년부터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철폐 결정에 따라 서울로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
2001년, 안양 LG 치타스는 슈퍼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에 새로운 영광을 안겼습니다. 같은 해 K리그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며 꾸준히 강팀으로서의 위상을 지켰습니다.
2002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안양 LG 치타스는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아쉽게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3
2003년 2월 26일, 안양 LG 치타스는 창단 20주년을 기념하여 역동적인 선수와 볼을 형상화한 새로운 엠블럼을 공개했습니다.
2004
[서울시 신규 구단 창단 공모 실패]
서울특별시가 신규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을 위해 대기업 모집 공고를 냈지만, 실제 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없어 실패했습니다.
2004년 1월 15일, 서울시는 서울월드컵경기장 활용을 위해 신규 대기업을 통한 프로축구단 창단 모집 공고를 발표했지만, 최종적으로 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이 없어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서울시, 기존 구단 이전으로 방침 변경]
신생 서울 연고 구단 창단이 실패하자, 서울시는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통해 서울 연고 구단을 만들기로 방침을 변경했습니다.
신생 구단 창단이 어렵게 되자, 2004년 1월 29일 서울시는 기존 프로축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허용하여 서울 연고 구단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2004년 2월 2일,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시의 방침 변경 후 곧바로 서울 연고지 복귀를 공식 선언하며 과거의 연고지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K리그 연맹, 기존 구단 서울 이전 허용]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선 창단, 후 이전' 원칙을 파기하고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허용하는 안이 승인되었습니다.
2004년 2월 6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그동안 고수해온 '선 창단, 후 이전' 원칙을 깨고 기존 구단의 서울 연고지 이전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이는 서울 연고지 활용의 시급성을 인정한 결과였습니다.
[안양 LG 치타스, 서울 연고지 복귀 확정]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안양 LG 치타스의 서울 입성이 만장일치로 승인되어, 과거 연고지였던 서울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2004년 3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의 만장일치 승인으로 안양 LG 치타스는 마침내 서울로 연고지를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구단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FC 서울'로 구단 명칭 공식 변경]
공모를 통해 응모한 후보작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FC 서울'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2004년 3월 19일, 안양 LG 치타스는 팬 공모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FC 서울'로 구단 공식 명칭을 변경하며 서울 시민의 자부심을 담은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2004년 3월 29일, FC 서울은 서울특별시와 공식적인 연고지 협약을 체결하며 대한민국 수도를 대표하는 프로축구단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GS그룹으로 운영권 변경]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가 진행되면서 FC 서울을 운영하던 LG스포츠가 (주)GS스포츠로 사명 변경, GS그룹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6월 1일, LG그룹과 GS그룹의 계열 분리 과정에서 FC 서울의 운영 주체인 LG스포츠가 (주)GS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하고 GS그룹 산하로 편입되었습니다.
2005
['박주영 신드롬'으로 최다 관중 기록]
박주영 선수의 입단으로 '박주영 신드롬'이라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한 시즌 최다 관중인 45만 8605명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FC 서울은 박주영 선수의 입단과 함께 '박주영 신드롬'을 일으키며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한 시즌 동안 45만 8605명이라는 최다 관중을 기록하며 K리그 흥행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2005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 분리 승인으로 GS스포츠는 GS그룹에 완전히 편입되어 FC 서울의 운영 주체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했습니다.
2006
[첫 리그컵 우승 및 한국 최초 LED 광고 도입]
K리그의 리그컵 대회인 삼성 하우젠컵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습니다. 또한,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경기장에 LED 광고보드를 도입했습니다.
2006년, FC 서울은 삼성 하우젠컵 리그컵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에 새로운 우승컵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 중 최초로 경기장에 LED 광고보드를 도입하여 팬들에게 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혁신적인 마케팅을 선보였습니다.
2007
2007년 1월 8일, FC 서울은 2002 FIFA 월드컵에서 터키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셰놀 귀네슈 감독을 영입하며 팀의 전력 강화와 새로운 축구 스타일 도입을 시도했습니다.
[국내 프로 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 경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K리그 25년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 기록이자 국내 프로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일 경기 사상 최다인 55,397명의 입장 관중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2007년 4월 8일, FC 서울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라이벌전에서 무려 55,397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국내 프로 스포츠 단일 경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흥행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8
[K리그 준우승 및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K리그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7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2008년 시즌, FC 서울은 기성용과 이청용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K리그 정규시즌 2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와 함께 7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며 아시아 무대로의 복귀를 알렸습니다.
2009
2009년 11월 24일, 셰놀 귀네슈 감독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서 FC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는 비록 우승컵을 안기지는 못했지만 패스에 중점을 둔 매력적인 공격 축구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9년 12월 14일, FC 서울은 셰놀 귀네슈 감독의 후임으로 포르투갈 출신의 넬루 빙가다 감독을 영입하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2010
[K리그 우승 및 전례 없는 관중 기록 경신]
리그컵(포스코컵) 우승과 K리그 우승(10년 만에, 통산 네 번째)을 달성했습니다. K리그 역대 정규시즌 사상 가장 높은 승점, 단일 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 단일 시즌 최다 총관중 신기록, 단일 정규시즌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 등 다수의 관중 관련 기록들을 경신하며 K리그 최고의 구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2010년, FC 서울은 리그컵(포스코컵)과 K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는 더블을 달성하며 10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히 이 시즌에는 K리그 역대 최고 승점, 단일 경기 최다 관중(60,747명), 단일 시즌 최다 총관중(546,397명), 단일 정규시즌 최다 평균 관중(30,849명) 등 전례 없는 수많은 관중 기록들을 경신하며 성적과 인기 모두에서 K리그 최고의 구단임을 입증했습니다.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 재경신]
성남 일화 천마와의 K리그 경기에서 60,747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2007년에 FC 서울이 세웠던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3년 만에 경신했습니다.
2010년 5월 5일, FC 서울은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60,747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3년 전 자신이 세웠던 국내 프로 스포츠 단일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습니다. 이는 K리그 역대 최고 흥행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넬루 빙가다 감독 재계약 결렬]
넬루 빙가다 감독과의 재계약 협상이 연봉 조건 등의 의견 차이로 최종 결렬되어 팀을 떠났습니다.
2010년 12월 13일, 넬루 빙가다 감독은 연봉 조건 차이로 인해 FC 서울과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부임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0년 12월 28일, FC 서울은 넬루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황보관 감독을 선임했다고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2011
2011년, 최용수 감독 대행 체제 아래 FC 서울은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인 7연승을 기록하며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2011년 2월, FC 서울은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중 최초로 티켓북을 판매하는 혁신적인 마케팅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2011년 4월 26일, 황보관 감독이 초라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에 팀의 수습을 위해 최용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긴급히 부임했습니다.
[최용수 감독 정식 선임]
감독 대행 기간 동안 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최용수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1년 12월 9일, 최용수 감독 대행은 팀을 정상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FC 서울의 제10대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2
[K리그 5번째 우승 및 최용수 감독 역사적인 기록]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통산 다섯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역대 최다 승점 및 최다승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클럽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축구인이 되었습니다.
2012년, FC 서울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K리그에서 우승하며 구단 통산 다섯 번째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와 함께 역대 최다 승점 96점과 최다승 29승을 기록하며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특히 최용수 감독은 K리그 최초로 한 클럽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광저우 헝다에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11년 만에 아시아 정상 등극을 노린 결과였습니다.
2013년, FC 서울은 11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며 아시아 챔피언의 꿈을 꾸었으나, 광저우 헝다와의 접전 끝에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4
[FA컵 준우승 및 리그 3위]
FA컵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리그에서는 최종 3위를 차지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2014년 시즌, FC 서울은 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K리그 클래식에서는 극적으로 3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확보했습니다.
[창단 30주년 기념 올드스타 매치]
창단 30주년 기념 친선 경기인 바이엘 04 레버쿠젠전에서 FC 서울 올드스타와 우리동네 예체능팀의 축구 맞대결 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2014년 7월 30일, FC 서울은 창단 30주년을 기념하여 바이엘 04 레버쿠젠과의 친선 경기에 앞서 구단의 전설적인 올드스타들과 인기 예능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 팀의 특별한 축구 맞대결을 펼쳐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2015
[FA컵 우승 및 오스마르 선수 역사적인 기록]
FA컵 결승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꺾고 17년 만에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스페인 국적의 오스마르 이바녜스 선수는 K리그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 역사상 최초로 리그 전 경기(38경기)를 소화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5년, FC 서울은 FA컵 결승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대1로 제압하고 17년 만에 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또한 팀의 부주장인 오스마르 이바녜스 선수는 K리그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 최초로 리그 38경기 전 경기에 출전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뛰어난 활약과 꾸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2015년 3월 10일, FC 서울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박주영이 해외 생활을 마치고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와 팬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의 복귀는 팀 전력 강화에 큰 기대감을 불어넣었습니다.
2016
2016년 1월, 과거 FC 서울의 핵심 공격수였던 데얀 다먀노비치 선수가 중국 슈퍼리그 생활을 마치고 친정팀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팀의 공격력 강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1984–1985 레트로 유니폼' 발매]
구단 역사상 창단 유니폼이자 첫 K리그 우승(V1) 유니폼인 '1984–1985 레트로 유니폼'이 발매되었습니다.
2016년 6월 18일, FC 서울은 구단 창단 유니폼이자 첫 K리그 우승의 영광이 담긴 '1984–1985 레트로 유니폼'을 발매하며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16년 6월 21일, FC 서울은 최용수 감독의 뒤를 이어 구단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2016년 6월 22일, 최용수 감독은 안산 무궁화 축구단과의 FA컵 16강전을 마지막으로 FC 서울 감독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K리그 클래식 극적인 역전 우승]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1위 전북 현대 모터스를 꺾고 극적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통산 여섯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16년 11월 6일, FC 서울은 K리그 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전북 현대 모터스를 꺾고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구단 통산 여섯 번째 리그 우승이자 황선홍 감독 부임 첫 시즌의 값진 성과였습니다.
2016년 12월 3일, FC 서울은 FA컵 결승에서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17
[부진한 시즌, ACL 진출 실패]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과 FA컵 16강 탈락의 아픔을 겪었으며, 리그 5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7년 시즌, FC 서울은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과 FA컵 16강 탈락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리그에서도 5위에 머물러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쳤습니다.
[하대성 선수 FC 서울 복귀]
FC 도쿄에서 뛰던 하대성 선수가 다카하기 요지로 선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FC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2017년 1월 18일, FC 서울은 FC 도쿄에서 활약하던 하대성 선수를 다카하기 요지로 선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팀의 중원을 강화했습니다.
2017년 6월 20일, FC 서울은 중원 강화를 위해 알아인 FC에서 활약하던 이명주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2017년 6월 26일, FC 서울은 외국인 선수 강화를 위해 트락토르 사지 소속의 칼레드 샤피에이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2017년 7월 26일, FC 서울은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샤르자 FC 소속의 송진형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 보강에 나섰습니다.
2018
2018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FC 서울은 FA컵 16강 탈락에 이어 리그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으며 9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2018년 1월, FC 서울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데얀 다먀노비치가 구단의 최대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면서 많은 팬들에게 충격과 분노,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황선홍 감독 사퇴 및 이을용 감독 대행 부임]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황선홍 감독이 자진 사퇴했으며, 이을용 2군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8년 4월 30일, FC 서울은 지속된 성적 부진으로 인해 황선홍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팀의 수습을 위해 이을용 2군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했습니다.
[이재하 단장 사퇴 및 강명원 단장 선임]
이재하 단장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강명원 단장이 후임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8년 9월 28일, FC 서울은 팀의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재하 단장이 사퇴했습니다. 후임으로는 GS칼텍스 서울 KIXX 강명원 단장이 선임되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최용수 감독 2년 만에 재취임]
이을용 감독 대행 체제가 6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 최용수 감독이 사임한 지 2년 만에 FC 서울 제12대 감독으로 재취임했습니다.
2018년 10월 11일, FC 서울은 이을용 감독 대행 체제를 마무리하고, 2년 전 팀을 떠났던 최용수 감독을 제12대 감독으로 다시 선임했습니다. 이는 팀의 위기 극복을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구단 최초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및 잔류 성공]
상주 상무와의 K리그1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1승 1무의 성적으로 K리그1 잔류를 확정지었습니다.
2018년 12월 1일, FC 서울은 상주 상무와의 최종전 패배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1승 1무의 저력을 보여주며 K리그1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2019
2019년 시즌, FC 서울은 최용수 감독의 지도 아래 K리그1에서 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2020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여 다시 한번 아시아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2020
[잦은 감독 대행 교체와 ACL 탈락]
최용수 감독 사퇴 후 김호영, 박혁순, 이원준 등 여러 감독 대행 체제를 거쳤으며,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습니다.
2020년, 최용수 감독 사퇴 이후 FC 서울은 김호영, 박혁순, 이원준 등 세 명의 감독 대행 체제를 겪는 혼란 속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최용수 감독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
K리그1 2020 시즌 개막 후 3승 1무 9패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용수 감독이 자진 사퇴했습니다.
2020년 7월 30일, FC 서울은 K리그1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최용수 감독이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는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20년 12월 8일, FC 서울은 광주 FC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박진섭 감독을 제13대 감독으로 선임하며 팀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했습니다.
2021
2021년 시즌, 박진섭 감독 체제 하의 FC 서울은 불안정한 경기력으로 리그 하위권을 맴돌았고, 결국 시즌 막바지에는 12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습니다.
2021년 9월 6일, FC 서울은 지속된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박진섭 감독이 자진 사퇴했습니다. 팀의 구원 투수로 안익수 감독이 새롭게 선임되어 위기 극복에 나섰습니다.
2022
2022년, 안익수 감독 체제의 FC 서울은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23
2023년 8월 22일, 안익수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용하면서 김진규 감독 대행 체제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14일, FC 서울은 김기동 감독의 선임을 공식 발표하며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2024
2024년, 김기동 감독은 FC 서울 부임 첫 시즌을 최종 4위로 마무리하며 팀의 안정화와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