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H. 로런스
연표
1885
1885년 9월 11일 영국 중부 노팅엄셔 이스트우드의 탄광촌에서 광부 아버지 아서 존 로런스와 전직 교사 어머니 리디아 비어졸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녀 중 넷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학력과 교양 차이, 노동자 계급 의식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10
1910년, 그의 첫 번째 소설 ≪하얀 공작≫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로런스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어머니 사망과 시집 집필]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하면서 큰 좌절을 겪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아들과 연인≫에 투영되었으며, 그는 충격 속에서도 ≪아모레즈≫ 등 연애시를 집필하며 정신적인 위안을 찾았다.
1910년 12월 9일, 연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했다. 이 죽음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좌절을 안겼고, 소설 ≪아들과 연인≫의 모렐 부인 죽음에 영향을 주었다. 로런스는 큰 충격으로 중병을 앓으면서도, 이를 버티기 위한 정신적 위안으로 ≪아모레즈≫, ≪사랑의 시≫, ≪새로운 시≫에 실린 대부분의 연애시를 집필했다.
1912
[프리다와의 만남과 사랑의 도피]
노팅엄 대학 은사의 부인 프리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영국을 떠나 독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집 ≪보라, 우리는 이겨 냈도다≫를 집필했다.
1912년, 그는 노팅엄 대학 시절의 은사인 위클리 교수에게 취직을 부탁하러 갔다가 위클리 교수의 부인 프리다를 만나게 되었다. 그보다 여섯 살 연상에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프리다와 로런스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영국을 떠나 독일로 사랑의 도피를 갔다. 프랑스 국경과 접한 독일의 한 지방에 묵던 중 영국의 스파이로 체포되었으나 프리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이 밀월여행 중 알프스를 넘어 리바까지 도보 여행을 하며 시집 ≪보라, 우리는 이겨 냈도다≫의 사랑시들을 썼다.
1913
그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 ≪아들과 연인≫이 1913년에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의 관계와 젊은 시절의 사랑을 다루며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1914
[프리다와 결혼 및 ≪무지개≫ 발매 중지]
프리다와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소설 ≪무지개≫를 출간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발매 중지 처분을 받고 로런스는 외설 작가로 낙인찍혔다.
1914년 프리다가 위클리 교수와 정식으로 이혼하자 로런스는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같은 해 소설 ≪무지개≫를 출간했지만, 곧 비도덕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발매 중지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로런스는 외설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혔다.
1920
1920년, 그의 소설 ≪사랑에 빠진 여인(Women in Love)≫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성(性)에 대한 신비를 탐구하며 로런스 특유의 주제 의식을 심화시켰다.
1928
[≪채털리 부인의 사랑≫ 출간 및 외설 논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으나, 영국 언론은 이를 외설물로 공박하며 로런스의 외설 작가 악명을 더욱 높였다. 해적판이 나돌고 시집과 함께 압수되는 고난을 겪었다.
1928년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이 미국과 이탈리아의 피렌체, 프랑스의 파리에서 출간되었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외설 작가라는 악명을 더해 주었다. 영국 신문들은 이 작품을 외설물이라고 공박했으며, 해적판이 미국에서 나돌 정도였다. 1929년에는 이 소설과 시집 ≪팬지≫가 영국 경시청에 의해 압수당했다.
1929
1929년, 영국 경시청은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함께 그가 쓴 시집 ≪팬지≫를 외설물로 간주하여 압수 조치했다. 이는 로런스의 작품에 대한 당대의 보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30
[사망]
폐병이 악화되어 프랑스 요양원에서 지내다 요양원을 나온 다음 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말년에 ≪마지막 시집≫과 ≪도망간 수탉≫ 등의 작품을 남겼다.
로런스는 1930년 폐병이 심해져 의사의 권고로 프랑스 남부 방스의 요양원에 들어갔다. 요양원에서 나온 다음 날인 3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빌라 로버몬드에서 사망했다. 그는 평생 고난과 질병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옮겨 다니며 계속 작품을 썼으며, 말년의 ≪마지막 시집≫은 그의 시적인 성취를, ≪도망간 수탉≫(후에 ≪죽었던 사나이≫로 개정)은 그의 작품 기저인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