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num_of_likes 11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C. S. 루이스
소설가, 교수, 신학자, 판타지 작가, 기독교 변증가 + 카테고리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성공회 평신도이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친 학자이다. 무신론자였으나 J.R.R. 톨킨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기독교 변증서인 '순전한 기독교'와 환상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유명하며, '잉클링스' 멤버로 톨킨과 우정을 나눴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98

[C. S. 루이스 탄생]

영국의 소설가이자 성공회 평신도, 학자인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사무 변호사 앨버트 제임스 루이스와 아일랜드 성공회 사제의 딸 플로런스 어거스터 루이스 니 해밀턴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2

['잭'이라는 별명 사용 시작]

4살 때 키우던 개가 차에 치여 죽자, 자기 이름을 개 이름인 '잭시'라 불렀고, 이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잭'으로 불리게 되었다.

4살 때 그의 개 잭시(Jacksie)가 차에 치어 죽었는데, 그 때부터 루이스는 자기 이름을 잭시라고 했고 나중에는 잭(Jack)으로 알려졌다. 그 후 루이스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잭이라고 불렸다.

1908

[위니어드 학교 입학 및 어머니의 사망]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루이스는 위니어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형은 이미 3년 먼저 이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루이스는 처음에는 개인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가 암으로 죽기 직전인 1908년에 위니어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형은 3년 먼저 그 학교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었다.

1913

[맬번 칼리지 입학 및 무신론자 선언]

맬번 칼리지에 입학하여 다음 해 6월까지 다녔으며, 이 시기 어린 시절의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1913년 9월에 루이스는 맬번 칼리지에 입학하여 다음 해 6월까지 다녔다. 이 기간동안 15살 루이스는 어린시절의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신화와 초자연적인 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16

[옥스퍼드 대학교 장학금 획득]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1916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1917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은 다음 해,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여 서머셋 보병 연대 장교로 복역하며 프랑스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서 참호전을 겪었다.

1916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은 다음 해, 루이스는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고,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루이스의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다.

1918

[제1차 세계대전 중 부상]

독일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요양하는 동안 아일랜드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을 겪었다.

1918년 4월 15일, 루이스는 독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여 쉬는 동안 아일랜드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을 겪었다.

[군 복귀]

부상 회복 후 영국 앤도버로 발령받아 복귀하였다.

부상 후 10월에 복귀하여 영국 앤도버로 발령을 받았다.

1921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의 만남]

옥스퍼드로 이사 온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두 번 만났다. 루이스는 예이츠의 시에 표현된 켈트적 영향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921년에 루이스는가 예이츠를 두번 만난 이후로 예이츠는 옥스포드로 이사했다.

1925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임용]

옥스포드 매그달렌 대학에서 교수직을 시작하여 거의 30년 동안 재직했다.

루이스는 옥스포드의 매그단 대학에서 거의 30년 동안 교수했고, 1925년-1954년.

1926

[J.R.R. 톨킨과의 첫 만남]

옥스퍼드 동창이자 친구인 J.R.R. 톨킨을 만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옥스포드 동창이자 친구이고, G.K. Chesterton의 영원한 남자를 통해 1926년 5월 11일 만나게 된 것으로 보이는 J.R.R. 톨킨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기독교를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29

[유신론으로의 개종]

톨킨의 영향으로 무신론을 버리고 유신론으로 개종했으며,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옥스포드의 모들린 대학의 한 방에서, 여러 밤을 지새며 내 마음이 내 일 쪽으로 기우는 그 순간에도, 진정으로 만나게 되지 않기를 열망하는 그에게로 끊임없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매우 두려워하던 그것이 마침내 내게 온 것이다. 그는 1929년 부활절 다음학기에 백기를 들고, 하느님이 하느님임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무릎 꿇고 기도했다.

1931

[기독교(성공회)로의 개종]

J.R.R. 톨킨과 휴고 다이슨과의 긴 토론 후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잉글랜드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였다.

유신론으로 개종한 1929년 이후, 루이스는 1931년 늦은 밤 그의 가까운 친구인 J.R.R. 톨킨과 Hugo Dyson 과의 산책에서 한 긴 토론 이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동물원에 가는 길, 그의 형과의 대화에서 그가 기독교 신앙에 헌신하기로 했음을 명확히 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신자가 되었고, 그가 로마 가톨릭교회로 복귀하기를 바랐던 톨킨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1933

[소설 '순례자의 귀향' 출간]

기독교인이 된 이후 첫 소설인 '순례자의 귀향'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존 번얀의 '천로역정'을 바탕으로 루이스의 기독교적 경험을 묘사했다.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된 이후로 쓴 첫 번째 소설은 존 번얀(John Bunyan)의 《천로역정》을 그의 기독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한 순례자의 귀향(1933)이다.

1936

[학술 저서 '사랑의 우화' 출간]

후기 중세의 우화적인 것에 집중한 학술 저서 '사랑의 우화'를 출간했다.

그의 학문적인 연구는 특히 후기 중세의 우화적인 것에 집중되었다. 그의 사랑의 우화(1936)는 후기 중세의 장미설화 같은 작품의 묘사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일조 하였다.

1938

[소설 '침묵의 행성 밖으로' 출간]

성인 독자를 위한 공상 과학소설 공간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침묵의 행성 밖으로'를 출간했다.

공간3부작(우주3부작 또는 랜섬3부작이라고도 한다)은 비인간적 과학소설의 트렌드를 보는 루이스의 시선을 반영했다. 1편 조용한 혹성 밖에서는, 분명 그의 친구 JRR톨킨과 나눈 이런 트렌드에 관한 다음의 대화에 대해 기록되어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우주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집필하고, 톨킨은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집필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했다.

1940

[비소설 '고통의 문제' 출간]

비소설 '고통의 문제'를 출간했다.

비소설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1940년, 홍성사)를 출간하였다.

1942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출간]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풍자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출간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 1942년, 홍성사)를 출간하였다.

1943

['인간 폐지'와 '페렐란드라' 출간]

비소설 '인간 폐지'와 공간 3부작의 두 번째 소설 '페렐란드라'를 출간했다. '페렐란드라'는 금성의 새로운 에덴동산과 유혹을 묘사한다.

'인간 폐지'(The Abolition of Man, 1943년, 홍성사)를 출간했고, 두 번째 소설 《피어랜드라》(Perelandra)는 금성의 새로운 에덴동산에 새로운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을 유혹하는 새로운 “뱀의 형상”을 묘사한다.

1945

[소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출간]

'위대한 이혼'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진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출간했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1945년)을 출간하였다.

1946

[소설 '그 가공할 힘' 출간]

공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그 가공할 힘'을 출간했다.

'그 가공할 힘'(1946년)을 출간했다.

1949

[비소설 '영광의 무게' 출간]

초기 라디오 방송 내용을 기반으로 한 비소설 '영광의 무게'를 출간했다.

영광의 무게 (The Weight of Glory, and Other Addresses, 1949년, based on earlier radio broadcasts; 증보판 1980년, 홍성사)를 출간하였다.

1950

['사자와 마녀와 옷장' 출간 (나니아 연대기 시작)]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첫 권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출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의 학자로서의 업적 이외에 루이스는 여러 인기 있는 소설을 썼고, 어른을 위한 공상 과학소설 공간 3부작이나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소설인 나니아연대기를 썼다. 대부분 그의 작품들은 암암리에 죄나 인류가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멀어졌다가 구원받는 식의 기독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첫 번째 작품 '사자와 마녀와 옷장'(1950년)이 출간되었다.

1951

['캐스피언 왕자' 출간]

'나니아 연대기'의 두 번째 작품 '캐스피언 왕자'를 출간했다.

'나니아 연대기'의 '캐스피언 왕자'(1951년)를 출간하였다.

1952

['순전한 기독교' 출간 및 조이 데이빗먼과의 만남]

그의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서인 '순전한 기독교'를 출간했으며, 미래의 아내가 될 조이 데이빗먼을 처음 만났다.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1952년, 1943년 라디오 방송내용을 책으로 묶음, 홍성사)를 출간하였다. 또한 1952년 9월 루이스는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이라는 여성을 처음으로 만난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새벽 출정호의 항해' 출간]

'나니아 연대기' 중 '새벽 출정호의 항해'를 출간했다.

'나니아 연대기' 중 '새벽 출정호의 항해'(1952년)를 출간했다.

1953

[조이 데이빗먼 영국 이주 및 '은의자' 출간]

조이 데이빗먼이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나니아 연대기' 중 '은의자'를 출간했다.

조이는 1953년에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은의자'(1953년)를 출간하였다.

1954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임용 및 '말과 소년' 출간]

조이 데이빗먼이 이혼했으며, 루이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영어 교수직을 맡아 활발한 학술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나니아 연대기'의 '말과 소년'을 출간했다.

조이가 이혼을 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의 일이었다. 단순한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루이스는 옥스포드의 매그단 대학에서 거의 30년 동안 교수했고, 1925년-1954년 그리고 그 이후에 캠브리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영어에 관한 교수직을 맡는다. '나니아 연대기'의 '말과 소년'(1954년)을 출간하였다.

1955

[자서전 '예기치 못한 기쁨' 출간]

자신의 자서전인 '예기치 못한 기쁨'과 '나니아 연대기' 중 '마법사의 조카'를 출간했다.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 1955년, 자서전, 홍성사)과 '나니아 연대기'의 '마법사의 조카'(1955년)를 출간하였다.

1956

[조이 데이빗먼과의 혼인 신고 및 소설 출간]

조이 데이빗먼의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혼인 신고를 했으며, 소설 '우리들이 얼굴을 찾을 때까지'와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전투'를 출간했다.

1956년 영국 정부가 조이의 비자를 더 이상 연장해 주지 않자 루이스는 그녀에게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독신으로 살아온 루이스를 곁에서 지켜 본 친구들 가운데는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루이스는 혼인 신고가 조이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얼굴을 찾을 때까지'(1956년)와 '나니아 연대기'의 '마지막 전투'(1956년)를 출간하였다.

[조이 데이빗먼의 골수암 판정]

결혼을 결심한 조이 데이빗먼이 골수암 판정을 받아 루이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루이스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 판정을 받게 되자 루이스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루이스의 어머니 또한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다. 루이스의 문학적인 표현을 빌자면,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

[조이 데이빗먼과의 정식 결혼]

조이 데이빗먼의 골수암 투병 중 병실에서 성공회 예식에 따라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다.

1958

[북아일랜드에서 허니문]

북아일랜드 크라우포드즈번에서 허니문을 보냈으며, 그는 이를 "내 아일랜드 삶"이라 불렀다.

북아일랜드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였고, 심지어 그의 허니문 또한 1958년 올드 인의 크라우포드즈번(Crawfordsnurn)에서 보냈다. 그는 이에 대해 “내 아일랜드 삶”이라 일컬었다.

[비소설 '시편 사색' 출간]

비소설 '시편 사색'을 출간했다.

비소설 '시편 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 1958년, 홍성사)을 출간하였다.

1959

[조이 데이빗먼의 암 재발]

조이 데이빗먼의 골수암이 재발하여 건강이 다시 악화되었다.

결혼식 이후 한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59년 가을에 골수암이 재발했다.

1960

[아내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 사망 및 비소설 출간]

아내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가 세상을 떠났으며, 비소설 '네 가지 사랑'과 '세상의 마지막 밤'을 출간했다.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또한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 1960년, 홍성사)과 '세상의 마지막 밤'(1960년)을 출간했다.

1961

['헤아려 본 슬픔' 등 출간]

아내의 죽음 이후의 슬픔을 담은 '헤아려 본 슬픔'을 익명으로 출간했으며, '문학 비평에서의 실험'도 출간했다.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 (initially published under the pseudonym "N. W. Clerk", 1961년, 홍성사)과 '문학 비평에서의 실험'(1961년)을 출간하였다.

1962

['편지를 요청한 그들' 출간]

비소설 '편지를 요청한 그들'을 출간했다.

비소설 '편지를 요청한 그들'(They Asked for a Paper, 1962년)을 출간했다.

1963

['개인기도: 말콤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비소설 '개인기도: 말콤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간했다.

비소설 '개인기도: 말콤에게 보내는 편지'(1963년)를 출간하였다.

[C. S. 루이스 사망]

영국의 소설가이자 성공회 평신도, 학자인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가 향년 64세로 사망했다.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1963년 11월 22일 사망했다.

1964

[사후 학술 저서 '버려진 이미지' 출간]

사후에 그의 마지막 학술 저서인 '버려진 이미지: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소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중세 세계관의 요약이다.

그의 마지막 학술 저서인 버려진 이미지(The Discarded Image):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소개(1964)는 그 칭호에서 말하듯 우주의 “버려진 이미지” 중세 세계관의 요약이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C. S. 루이스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