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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자동차, 모터사이클, 엔진 제조사,독일, 다국적 기업 + 카테고리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자동차, 모터사이클 및 엔진 제조 기업입니다. 1916년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로 시작해 '바이에른 자동차 제작소(BMW)'로 이름을 변경하며 성장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와 함께 독일 3대 고급차 제조사로 꼽히며, 롤스로이스 자동차, BMW 미니 등 다양한 브랜드를 산하에 두고 있습니다. 2018년 대한민국 내 차량 연쇄 화재 사고로 한때 큰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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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16

[하늘에서 시작된 엔진의 명가]

바이에른 비행기 제조주식회사(BFW)가 설립되며 BMW 역사의 장대한 막이 올랐습니다. 초기에는 군용 비행기 엔진 생산에 집중하며 고도의 정밀 제어 기술력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때 축적된 항공 엔진 설계의 노하우는 훗날 BMW 자동차가 고성능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창립자 중 한 명인 칼 라프의 '라프 모토렌베르케'를 계승하여 탄생했으며, 1차 세계대전 중 독일 항공 산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17

[바이에른 자동차 제작소(BMW)로 사명 변경]

라프 모토렌 베르케는 회사 이름을 '바이에른 자동차 제작소(Bayerische Motoren Werke)', 즉 BMW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기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17년 회사 이름을 ‘바이에른 자동차 제작소(Bayerische Motoren Werke)로 변경했습니다.

1918

[주식회사 상장 및 군용 항공기 엔진 납품]

BMW는 주식회사로 상장되었고, 프란츠 요세프 포프의 경영 하에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여 독일 군대에 납품하는 주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18년 주식회사로 상장시켰습니다. 이후 포프의 경영 하에 BMW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해 독일 군대에 납품했습니다.

1923

[BMW 모토라드, 첫 오토바이 'R32' 출시]

BMW 오토바이 사업 부문인 BMW 모토라드는 첫 번째 성공적인 오토바이 모델인 'R32'를 생산했으며, 이 모델의 기본 구조는 1980년대 후반까지 사용되었습니다.

BMW는 오토바이 엔진과 오토바이를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BMW 오토바이 회사는 BMW Motorrad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BMW의 첫 번째 성공적인 오토바이 모델은 R시리즈 'R32' 로 1923년에 생산되었다. 이 오토바이의 기본 구조틀은 1980년대 후반까지 사용되었다.

1933

[브랜드의 얼굴, 키드니 그릴]

BMW 303 모델을 통해 브랜드의 영원한 상징이 될 '키드니 그릴' 디자인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두 개의 콩팥 모양을 형상화한 이 독특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BMW만의 독보적인 패밀리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고성능 엔진을 식히는 기술적 기능과 심미적 자부심을 동시에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키드니 그릴은 시대의 미학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끊임없이 변모해왔으며, 현재는 디지털 센서를 포함하는 지능형 패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1955

[보급형 콤팩트 차량 'BMW 700' 출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 발맞춰 보급형 콤팩트 차량인 'BMW 700'을 제작했습니다. 이 차량은 출시 전부터 큰 인기를 끌며 18만 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BMW는 전쟁 후 독일의 힘든 경제 상황에 맞추어 보급형 콤팩트 차량인 BMW 700을 제작했다. BMW 700은 모노코크 바디(일체형 프레임 차량구조)와 후방 엔진 구조가 특징적이었으며, 세단, 쿠페, 컨버터블 총 세가지 종류로 출시되었다. BMW 700은 출시 전부터 1만 5천 대의 주문을 기록했으며, 1965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총 18만 1천 대가 판매되었다.

1959

[재정난 극복 및 독립성 확보]

심각한 재정난으로 다임러-벤츠로의 인수합병이 논의되었으나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소형차 'BMW 600' 생산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헤르베르트 콴트가 대주주로 올라서며 BMW의 독립성을 유지했습니다.

1959년까지 BMW의 자동차 부문은 재정난에 빠져있었으며, 사업을 청산할 것인지 계속할 방안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주주총회가 열렸다. 경영진은 당시 인수합병을 제안해온 다임러-벤츠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BMW가 다임러-벤츠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의견으로 이는 무산되었다. 회의는 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고 전 항공기 제조사인 Messerschmitt사와 Heinkel사처럼 인기 있는 독일의 소형차 사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BMW의 오토바이 엔진을 변형하여 이용하고 있던 소형차인 이탈리아의 Iso Isetta의 제조권을 구입하였다. 이로서 BMW 600이 생산되었다. 이 방안은 성공적이었고 회사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후 헤르베르트 콴트가 BMW의 나머지 주식을 모두 사들이면서 BMW는 독립회사로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 1959년부터 BMW AG의 지배 대주주는 46%의 주식을 소유한 콴트가(家)이고 나머지는 일반주주들이다.

1961

['BMW 뉴 클래스' 첫 모델 'BMW 1500' 출시]

'BMW 뉴 클래스'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BMW 1500'을 시장에 출시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형 엔진 차량 생산을 재개했습니다.

1961년 ‘BMW 뉴 클래스’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로 BMW 1500을 시장에 출시했다. 이때 뉴 클래스의 의미는 BMW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산하지 않았던 1,500cc~2,000cc (준중형) 엔진 차량이라는 의미였다. 1500은 대량생산을 겨냥한 실용적인 3박스 세단이었다. 하지만 다른 BMW 차들보다 날카로운 라인이 특징적이었다.

1962

[부활의 이름, 노이어 클라세]

파산 직전의 회사를 살려낸 혁신 모델 '노이어 클라세(New Class) 1500'을 출시하며 현대적 스포츠 세단의 개념을 확립했습니다. 실용적인 세단에 역동적인 주행 감성을 결합한 이 모델은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BMW는 오늘날 3, 5시리즈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라인업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노이어 클라세는 'Sheer Driving Pleasure(진정한 운전의 즐거움)'라는 슬로건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며 BMW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1982

[BMW 모토라드 K시리즈 오토바이 생산]

BMW 모토라드에서 K시리즈 오토바이 생산을 시작하며 오토바이 라인업을 확장했습니다.

1982년, K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988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다]

대한민국의 수입차 시장 개방과 맞물려 코오롱상사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공식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7시리즈를 포함한 고급 세단들이 소개되며 한국의 부유층과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보수적이었던 한국 자동차 시장에 '프리미엄 수입차'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극소수의 상류층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BMW 특유의 역동적인 주행 성능이 입소문을 타며 브랜드 마니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995

[한국 법인 BMW 코리아 설립]

수입차 브랜드 중 최초로 한국 직진출 법인인 'BMW 코리아'를 설립하며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습니다. 단순히 차를 파는 것을 넘어 전국적인 서비스 네트워크와 부품 공급망을 구축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훗날 BMW가 한국 수입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된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수입차 업계 최초의 현지 법인 설립은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BMW 그룹의 전략적 판단이었습니다.

1999

[SUV의 편견을 깬 X5]

오프로드 중심이었던 SUV 시장에 스포츠 세단의 주행 성능을 접목한 세계 최초의 SAV 'X5'를 선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SUV도 고급스럽고 빠를 수 있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X5의 성공은 향후 BMW가 한국 시장에서 강력한 SUV 라인업을 구축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X5는 승용차와 같은 모노코크 바디를 채택하여 SUV 특유의 둔탁함을 지우고 세련된 온로드 성능을 구현했습니다.

2014

[인천 드라이빙 센터 개장]

독일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대규모 브랜드 경험 공간인 'BMW 드라이빙 센터'를 영종도에 건립했습니다. 고객들이 직접 서킷을 주행하며 자동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이 공간은 한국 사회로의 적극적인 투자를 상징합니다. 이는 BMW가 단순한 판매사를 넘어 한국의 자동차 문화를 이끄는 리더임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축구장 33개 크기의 대지에 조성된 드라이빙 센터는 연간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자동차 테마파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8

[대한민국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고]

대한민국에서 BMW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화재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BMW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으나,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2018년 들어 36대의 BMW 차량이 운행 중 불길에 휩싸였고, 특히 7월부터는 화재가 하루 이틀꼴로 발생했다. 디젤차의 배기가스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한 장치 가운데 하나인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에서 샌 냉각수의 침전물들이 쌓여 있다가 고온의 배기가스에 노출돼 발화되었다는 게 BMW 측의 공식 설명이다. BMW는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는 차량 약 10만 대를 리콜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화재가 이어졌다는 점, 안전진단을 마치고 문제가 없다는 확인서까지 받은 BMW 차량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 등으로 인해 BMW 측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일부 소비자들은 서울남대문경찰서에 BMW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일부 주차장들은 BMW 차량의 주차를 거절하기도 하였다. 국토교통부는 8월 16일 긴급안전진단을 받지 않은 BMW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해 점검 명령과 운행정지 명령을 발동할 것을 시·도에 요청했다.

2019

[사후 서비스 강화로 정면돌파]

화재 사태 이후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서비스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리콜 이행률 99%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달성했습니다. 'BMW 서비스 케어' 등 한국 특화 서비스를 도입하며 사후 관리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이탈하던 고객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국 고객들을 위한 전용 멤버십 혜택과 투명한 정비 예약 시스템을 강화하여 브랜드 충성도를 다시 구축했습니다.

2022

[플래그십 전기 세단 i7의 습격]

압도적인 기술력과 럭셔리함을 갖춘 대형 전기 세단 i7을 한국 시장에 전격 출시하며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웅장한 디자인과 영화관 같은 뒷좌석 시어터 스크린은 한국 럭셔리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는 내연기관뿐만 아니라 전기차 영역에서도 BMW가 정점에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i7은 출시 직후 한국 회장님들의 의전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S를 압도하며 선전했습니다.

2023

[전 세계 최초 한국 공개, 신형 5시리즈]

브랜드의 핵심 모델인 '8세대 신형 5시리즈'를 전 세계 국가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공개하고 출시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BMW 전 세계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전략적 핵심 요충지임을 본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한국 고객들의 안목과 요구사항이 BMW 신차 개발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합니다.

BMW 그룹 회장 올리버 집세는 수차례 방한하여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삼성 등 한국 파트너사들과의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2024

[8년 만의 한국 수입차 1위 탈환]

연간 판매량에서 영원한 라이벌인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8년 만에 대한민국 수입차 시장 1위 왕좌에 복귀했습니다. 화재 사태의 아픔을 딛고 공격적인 신차 출시와 고객 만족도 향상으로 이뤄낸 값진 승리였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수입차 브랜드로서 BMW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진 결과입니다.

특히 5시리즈와 X5 등 주력 모델들이 전 연령층에서 고른 인기를 얻으며 양적, 질적 성장을 모두 이뤄냈습니다.

2025

[노이어 클라세와 미래의 한국]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노이어 클라세' 기반의 신차들을 한국 시장에 도입하며 전동화의 완전한 통합을 선언했습니다. 삼성SDI와 협력한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해 주행 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디지털 경험을 극대화했습니다. 2025년은 BMW가 한국 시장에서 다시 한번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미래 지향적 원년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IT 기술과 BMW의 엔지니어링이 결합된 커넥티드 서비스는 전 세계 BMW 모델들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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