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년 전쟁
연표
1648
[잉글랜드 내전과 왕당파의 후퇴]
잉글랜드 내전(1642-1651)이 막바지에 이르자,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가 승기를 잡았습니다. 패배한 왕당파 해군은 잉글랜드 남서쪽 끝에 위치한 실리 제도로 후퇴하여 최후의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승리가 유력한 의회파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 내전 기간 동안 네덜란드는 의회파와 동맹을 맺었습니다.1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크롬웰의 군대에 의해 영국 본토에서 밀려난 왕당파 해군은 존 그랜빌 경의 지배하에 있던 실리 제도를 마지막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이곳을 기지로 삼아 해상에서 의회파 및 그 동맹국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651
[네덜란드 실리 제도에 선전포고]
실리 제도에 근거지를 둔 왕당파 해군이 네덜란드 상선을 지속적으로 약탈하자, 네덜란드는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마르턴 트롬프 제독의 함대를 파견했습니다. 왕당파가 보상 요구를 거부하자, 트롬프 제독은 잉글랜드 전체가 아닌 왕당파가 점령한 '실리 제도'에 국한하여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역사상 가장 길고 평화로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왕당파 해군의 해적 행위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네덜란드는 12척의 군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마르턴 하르페르츠존 트롬프 제독의 지휘 아래 실리 제도로 보냈습니다. 보상 요구가 거부되자, 트롬프 제독은 자신의 위임에 따라 실리 제도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의회파가 장악한 잉글랜드 본토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분쟁 지역을 국지적으로 한정한 조치였습니다.
[의회파의 실리 제도 점령]
네덜란드가 선전포고를 한 지 불과 몇 주 뒤, 의회파의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실리 제도를 함락시키고 왕당파를 항복시켰습니다. 전쟁의 명분이 사라진 네덜란드 함대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이후 더 큰 규모의 제1차 영란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작은 전쟁은 평화 협정 없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네덜란드의 선전포고 직후, 의회파의 제독 로버트 블레이크는 실리 제도의 왕당파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함대를 이끌고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1651년 6월, 왕당파는 블레이크에게 항복했고, 이로써 네덜란드가 전쟁을 선포했던 대상이 소멸했습니다. 네덜란드 함대는 별다른 교전 없이 철수했고, 이 특이한 선전포고는 공식적인 종전 절차 없이 역사 속으로 잊혔습니다.
1985
[잊혀진 전쟁의 재발견]
300년 이상이 흐른 뒤, 실리 제도의 지역 역사가이자 의회 의장인 로이 덩컨이 기록을 조사하던 중 네덜란드와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 '신화'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런던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에 공식적으로 문의했습니다. 대사관 측은 기록 보관소를 확인한 후, 실제로 종전 기록이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실리 제도 의회 의장이자 열정적인 지역 역사가였던 로이 덩컨은 지역의 전설로만 내려오던 이 이야기를 파고들었습니다. 1985년, 그는 런던의 네덜란드 대사관에 서신을 보내 전쟁 상태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문의했고, 대사관 직원의 조사 결과 공식적인 평화 조약이 체결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1986
[335년 만의 평화 협정 체결]
로이 덩컨의 초청으로 네덜란드 대사 레인 하위데코페르가 실리 제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335년간 지속된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평화 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이로써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은 유머러스한 외교 행사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1986년 4월 17일, 네덜란드 대사 욘커르 레인 하위데코페르가 헬리콥터를 타고 실리 제도를 방문하여 공식적인 평화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 상징적인 행사를 통해 335년간의 명목상 전쟁 상태가 종결되었습니다. 당시 대사는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내는 것이 얼마나 끔찍했겠습니까"라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