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 도미코
연표
1440
교토 야마시로국에서 구로우도이자 우쇼벤인 히노 시게마스와 종3위 기타코지 나에코의 딸로 태어났다. 히노가는 아시카가 쇼군가의 인척 가문으로 정실을 배출하던 명문 가문이었다.
1455
[아시카가 요시마사와의 결혼]
16세의 나이로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그의 정실이 되었다.
1455년(고쇼 원년) 8월 27일, 16세의 나이로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그의 정실이 되었다.
1459
[첫 아들 사망과 권력 장악]
아들을 낳았으나 태어나자마자 사망하자, 쇼군의 유모와 측실들을 축출하며 가문 내에서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459년(조로쿠 3년)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 이를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유모 이마마이리노 쓰보네의 저주라고 하여 이마마이리노 쓰보네를 비와호 오키 섬으로 추방하였고, 더불어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측실 네 명을 연달아 축출하면서 가문 내에서 실권을 잡았다. 이마마이리노 쓰보네는 귀양 가던 도중 할복했다.
1462
1462년(간쇼 3년) 딸을 낳았다.
1463
1463년(간쇼 4년) 연달아 딸을 낳았다.
1464
[쇼군 후계자 문제의 시작]
쇼군 요시마사가 아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출가했던 동생 아시카가 요시미를 환속시켜 후계자로 삼고 중신 호소카와 가쓰모토를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자신에게 아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1464년, 출가하여 불문에 귀의한 상태였던 동생 아시카가 요시미에게 후계자 지위를 약속하며 환속시키고 중신 호소카와 가쓰모토를 그 후견으로 삼았다.
1465
[아들 요시히사 출산과 후계 다툼]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를 낳자, 남편의 결정에 반발하여 아들을 다음 쇼군으로 옹립하기 위해 야마나 소젠과 손잡고 아시카가 요시미 세력과 대립했다.
1465년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를 낳은 도미코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결정에 반발하여 아들을 다음 대 쇼군으로 올리기 위해 아시카가 요시히사의 후견 야마나 소젠과 손을 잡고 아시카가 요시미 및 이미 요시미와 손을 잡고 있던 친정 히노씨와 대립하였다.
1467
[오닌의 난 발발]
히노 도미코가 아들 요시히사를 쇼군으로 옹립하려는 시도와 기존 후계자 요시미 간의 대립이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의 대립으로 번지며 무로마치 막부 시대를 격변시킨 오닌의 난이 발발했다.
히노 도미코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와 기존 후계자 아시카가 요시미 간의 후계 다툼이 호소카와 가쓰모토와 야마나 소젠이라는 두 유력 다이묘 세력 간의 대규모 무력 충돌로 확대되어 오닌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 난은 10여년간 지속되며 무로마치 막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일본 전국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1496
1496년 6월 30일(메이오 5년 5월 20일), 히노 도미코는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무로마치 막부의 혼란기와 오닌의 난을 거치며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