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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
유목제국, 부족연합, 고대 민족 + 카테고리

4~6세기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를 지배한 유목민족입니다. 공포의 정복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유럽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며 서방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말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뛰어난 기마술과 궁술로 게르만 민족 대이동을 촉발 로마 제국 멸망에 큰 영향을 미친 대륙의 지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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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370

[폭풍처럼 나타난 훈족의 서막]

카스피해 북서쪽에 갑자기 나타난 훈족은 마치 폭풍처럼 서쪽으로 몰아쳤습니다.

볼가강을 건넌 이들은 당시 로마 제국 국경에 살던 알라니족과 고트족 등 수많은 게르만족을 맹렬히 정복하며 유럽 역사에 충격적인 첫 등장을 알렸습니다.

유럽 전승에 따르면 훈족은 스키티아로 알려진 볼가강 동쪽에 살았다고 처음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인도이란계 민족인 알라니족의 서쪽 이주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370년대에 훈족은 볼가강에 이르러 로마 국경 밖 게르만족을 정복하고 많은 이들이 로마 영토로 도망치게 했습니다.

395

[동로마를 향한 첫 번째 불길한 그림자]

훈족은 동로마 제국에 전례 없는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트라키아를 휩쓸고 아르메니아와 카파도키아까지 약탈하며 시리아 안티오키아를 위협하는 등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했습니다.

동시에 훈족은 사산 제국 이란도 침공하여 수도 크테시폰 인근까지 접근했으나, 이란인들의 반격에 극심한 패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430

[유럽에 새겨진 훈족의 거대한 발자취]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훈족은 마침내 유럽에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영토를 건설하며 강력한 유목 제국의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이 위대한 성과는 훈족의 절정기를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특히 아틸라 왕의 지도하에서 훈족들은 동로마 제국에 잦고 파괴적인 약탈을 벌였습니다.

434

[공포의 두 얼굴, 아틸라와 블레다의 시대 개막]

전설적인 정복자 아틸라가 그의 형 블레다와 함께 훈족 부족 연합의 공동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 야망 넘치는 두 형제의 등장은 훈족 역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두 형제는 숙부 루길라만큼이나 야망이 넘쳤습니다. 이듬해인 435년, 이들은 동로마에게 훈족들의 무역 권한과 로마로부터 매년 조공을 받기로 한 마르구스 조약을 서명하도록 강요했습니다.

440

[깨진 약속, 로마를 향한 훈족의 칼날]

동로마가 훈족과의 '마르구스 조약'을 어기자, 아틸라와 블레다는 즉시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로마의 요새들을 파괴하고 여러 도시를 휩쓸며, 훈족의 압도적인 힘에 로마는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훈족과 로마인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고, 훈족은 마르구스, 싱기두눔, 비미나키움 등의 도시들을 파괴했습니다. 441년에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2년 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조공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고 전쟁이 재개됐습니다. 이후 전쟁에서 훈족 군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접근했고 갈리폴리 케르소네소스 전투에서 로마군에 패배하기 전까지 몇몇 도시들을 약탈했습니다.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훈족의 요구를 들어주고 443년 가을에 두 훈족 왕들과 아나톨리포스 조약을 맺었습니다.

445

[신의 채찍, 아틸라의 절대 군주 등극]

형 블레다가 사망하자, 아틸라는 훈족의 유일한 지배자로 등극하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제 그는 '신의 채찍'이라는 별명처럼 거침없는 정복 활동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블레다 사후, 아틸라가 훈족의 단독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447

[아틸라, 동로마를 다시 흔들다]

아틸라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발칸반도와 트라키아를 침공, 동로마 제국을 또다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렸습니다.

이 침략은 로마가 아틸라에게 막대한 금을 조공으로 바치며 종결되었습니다.

그 전쟁은 로마인들이 아틸라에게 연간 2,100 파운드의 금을 지불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449년에 종결되었습니다. 동로마 제국 곳곳을 약탈한 훈족들은 서로마 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451

[서방 세계의 운명을 건 대격돌, 카탈라우눔 전투]

서로마 제국 황제의 누이 호노리아의 도움 요청과 프랑크 왕위 계승 분쟁을 명분으로, 아틸라는 그의 무시무시한 군대를 이끌고 갈리아를 침공했습니다.

오를레앙을 포위한 훈족은 로마-서고트 연합군과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하나인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격돌했습니다.

갈리아에 들어오자마자, 훈족들은 맨처음 메츠를 공격했고, 그러고 나서 아틸라의 군대는 파리와 트루아를 지나쳐 오를레앙에 포위 공격을 가했습니다. 플라비우스 아이티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오를레앙을 구원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로마와 서고트족 연합군은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훈족을 격퇴시켰습니다.

452

[교황의 힘! 아틸라, 로마 앞에서 멈추다]

아틸라는 호노리아와 서로마 영토를 다시 요구하며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를 침공, 수많은 도시를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교황 레오 1세의 담대한 중재와 설득으로 아틸라는 약탈을 멈추고 이탈리아에서 철수했습니다.

로마가 약탈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는 교황 레오 1세뿐만 아니라 고위 관리 세 명의 대사를 파견했고, 아틸라는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고 황제와 강화 협상을 맺을 것이라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453

[공포의 종언, 아틸라의 죽음]

공포의 제왕 아틸라가 그의 결혼식 날 밤, 갑작스러운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던 훈족 제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틸라 사망 후, 훈 제국은 봉신화된 게르만족과 훈족 지배층 간의 내부 권력 갈등을 마주했습니다.

454

[제국의 몰락, 네다오 전투의 패배]

아틸라 사후 훈 제국은 내부 분열과 봉신화된 게르만족의 반란에 직면했습니다.

게피드족 왕 아르다리크가 이끈 게르만 연합군과의 네다오 전투에서 훈족은 크게 패배하며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제국의 힘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아틸라가 총애하던 아들이자 아카치리족의 통치자였던 엘라라크가 이끄는 훈족은 게피드족의 왕 아르다리크가 이끈 게르만족 연합군과 교전했습니다. 동시에 발라미르 휘하의 아말리계 고트족들도 반란을 일으켜 훈족을 물리쳤다고 전해집니다.

469

[훈족의 마지막 왕, 뎅기지크의 최후]

아틸라의 아들 뎅기지크가 트라키아에서 패배하고 전사하며, 훈족은 점차 불가르족 같은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던 위대한 제국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뎅기지크는 에르나크의 도움 없이 467년에 로마를 공격했지만, 로마군에게 둘러싸여 포위되었습니다. 469년에 뎅기지크는 트라키아에서 패배하고 전사했으며, 이후 훈족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에르나크 휘하의 훈족들이 쿠티구르족, 우티구르계 훈족, 불가르족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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