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연표
1968
1988
[아시안컵 준우승 기여]
1988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준우승을 이끌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국가대표 첫 발, 첫 골]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일본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며 첫 골을 기록,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스트라이커 시대를 알렸습니다.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
베이징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팀의 성과에 기여했습니다.
1991
[유럽 도전의 시작]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 선수의 유럽 진출이 흔치 않던 시절, 독일 바이어 04 레버쿠젠 II(아마추어)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그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992
[K리그 명가 포항 입단]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의 지명을 받았으나, 1:8 트레이드를 통해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K리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의 중요한 이적 중 하나입니다.
1993
[포항 리그컵 우승 견인]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주요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이는 포항에서의 첫 우승 기록입니다.
1994
[월드컵 데뷔골 폭발]
1994년 FIFA 월드컵 독일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첫 득점을 올렸습니다.
그의 월드컵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아시안 게임 득점왕 등극]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바탕으로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아시아 무대 최고 공격수임을 입증했습니다.
[역사적인 8골 대기록]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네팔전에서 무려 8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1995
[K리그 전설의 연속골]
K리그에서 8경기 연속골이라는 전무후무한 신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득점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입니다.
[최고의 해, 준우승과 개인상]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AFC 특별상, 한국프로축구 브론즈슈, 골든볼, K리그 베스트 11을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1996
[포항 국내대회 우승과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리그컵 준우승을 거두며 팀의 국내 대회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올림픽 와일드카드 출전]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와일드카드 선수로 발탁되어 본선 2경기에 출장하며 올림픽 무대를 밟았습니다.
1997
[아시아 클럽 챔피언 등극]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며 팀을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었습니다.
1998
[아시아 클럽 챔피언 2연패]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일본 J리그 진출]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9
[J리그 외국인 최초 득점왕]
일본 J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J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J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며 아시아 무대 최고 공격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00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
수원 삼성에서의 부상으로 인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 이적하며 다시 일본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당시 샤샤와의 맞트레이드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시와 레이솔 완전 이적]
가시와 레이솔로 완전 이적하며 홍명보, 유상철 선수와 함께 '코리안 트리오'를 형성, 일본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2
[미국전 부상 투혼 발휘]
2002년 FIFA 월드컵 미국전에서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다 출혈 속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2002년 FIFA 월드컵 4위라는 기적적인 성과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리더십은 팀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켰습니다.
[월드컵 첫 승리 선제골]
2002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4강 신화의 위대한 서막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국가대표 은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전을 끝으로 홍명보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정들었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습니다.
A매치 통산 103경기 50골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2003
[그라운드와 작별]
부상으로 인해 현역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는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황새'라는 애칭과 함께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지도자 경력의 시작]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로 임명되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축구 인생 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2007
[프로팀 감독 데뷔]
해외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며 처음으로 프로팀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2010
[FA컵 준우승 이끌다]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서 FA컵 준우승을 이끌며 팀의 최고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친정팀 포항 복귀]
현역 시절 활약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부름을 받아 감독으로 부임하며 친정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팬들의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2
[감독 첫 우승컵 FA컵]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서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 생활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는 그의 지도자 커리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3
[FA컵 2년 연속 우승]
포항 스틸러스와 FA컵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전술과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결과입니다.
[K리그 우승, 역사적 더블]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울산과의 운명적인 대결 끝에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FA컵 우승과 함께 대한민국 프로 축구 최초로 '더블'을 달성하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이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2016
[FC 서울 사령탑 부임]
FC 서울의 11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극적인 K리그 역전 우승]
FC 서울을 이끌고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리그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를 꺾고 극적인 역전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2013년 포항 감독 시절의 기적을 재연하며 '승부사'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2018
[FC 서울 감독직 사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FC 서울 감독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그의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리그 첫 도전]
중국 갑급리그 옌볜 푸더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해외 리그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2019
[갑작스러운 팀 해체]
옌볜 푸더 팀이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부임 3개월 만에 감독직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았습니다.
2020
[대전 하나 시티즌 초대 감독]
하나금융그룹이 인수한 대전 하나 시티즌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1부 리그 진입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대전 감독직 사임]
선수단 구성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과 경기력으로 인해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
2021
[U-23 대표팀 감독 부임]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미래 한국 축구의 주역들을 육성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022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안 게임 3연패를 이끌었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대회를 제패했습니다.
2023
[프랑스 U-21팀 완파]
티에리 앙리가 이끄는 프랑스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3대 0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유럽 강팀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24
[A대표팀 임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국가대표팀을 안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주민규 최초 발탁 파격]
태국과의 월드컵 2차 예선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 명단을 발표하며 3년간 리그에서 50골 이상 넣은 베테랑 공격수 주민규를 역대 최고령으로 처음 발탁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
2024년 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U-23 팀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 결과로 U-23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대전하나시티즌 2기 감독]
대전 하나 시티즌의 15대 감독으로 다시 선임되며 두 번째로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