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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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조인, 정치인, 공안검사,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당대표 + 카테고리

- 탁월한 공안 검사로서 법조계 경력을 쌓았다. - 제63대 법무부 장관과 제44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며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 자유한국당 및 미래통합당 당대표를 지내며 보수 진영의 리더로 활동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57

[황교안 출생]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는 황해도 출신으로 6.25 전쟁을 피해 서울로 이주했으며, 아버지는 고물상 등을 했다.

1980

[만성 담마진 병역면제]

만성 담마진(두드러기 질환)으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되었다.

이 과정에서 병무청의 비정상적인 면제 판정 순서가 논란이 되었다.

황교안은 1980년 7월 10일 병원으로부터 두드러기 질환 판정을 받았는데 이미 7월 4일 병무청으로부터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아 논란이 되었다. 당시 군의관과 병무청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규정 미비와 기록 방식의 오해 소지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되었으나, 병역 비리 의혹은 계속 제기되었다.

1981

[사법시험 합격]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2

[검사 시보 시작]

사법연수원 13기로 수료한 후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검사 활동을 시작했다.

1990

[공안 검사 활동 시작]

서울지검 공안2부 재직 당시, 전민련 국제협력국장 김현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며 공안 검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김현장에게 국가기밀누설, 회합통신, 금품수수죄 등을 적용하여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고,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게 했다.

1992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관여]

서울지검 공안1부 재직 당시, ‘남한조선노동당 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대표 비서 이근희를 구속기소했다.

이근희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하여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게 했다.

1998

[국가보안법 해설서 출간]

검사 시절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낼 정도로 체제·이념 문제에 전문성이 있는 공안 검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2001

[아가페 이사 활동 시작]

민영 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온 개신교 단체 '아가페'의 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재소자들의 확실한 갱생을 위해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2월까지 이사로 재직했으며, 교도소 건립을 위해 본인 명의로 30만원을 헌금했고, 법무법인 로고스는 1,783만 9,000원을 기부했다.

2002

[한총련 시위대 구속수사]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 재직 당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를 점거 농성한 한총련 대학생 38명 전원을 구속수사했다.

2005

[강정구 교수 사건 개입]

국가보안법과 사상의 자유 논란이 컸던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구속수사를 추진했으나, 당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불구속 기소 처리되어 갈등을 빚었다.

이 갈등으로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삼성 X파일 사건 수사]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 검사 재직 시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삼성 측 인사를 모두 불기소 처분하며 ‘재벌 봐주기’ 비판을 받았다.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언론인과 녹취록 전문을 실은 편집장, 실명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여 '불법 도청 사건'으로 몰고 가는 방향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2007

[이명박 비판 블로그]

자신의 블로그에 <하느님 편에서 보기>라는 글을 통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명박의 '추한 모습'을 비판했다.

유력 경선 후보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졌음에도 경선 경쟁이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2009

[집회 시위법 해설서 출간]

《집회 시위법 해설》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1

[검찰 퇴직]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뒤 검찰에서 퇴직했다.

[법무법인 태평양 입사]

검찰 퇴직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6개월간 15억9천여만 원의 급여를 받았으며,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였다.

총 119건의 사건을 담당했으나 19건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아 '전화변론' 의혹을 받았다. 또한 2013년 법무부 장관 지명 후 5일간 1억1714만원의 '임명 축하금'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장 선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에 위촉되고 같은 날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3

[법무부 장관 내정]

박근혜 정부에서 제63대 법무부 장관 후보로 내정되었으며,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통과했다.

[제63대 법무부 장관 취임]

제63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재직 중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채동욱 총장 감찰 지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자 감찰을 지시했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세계최초 사례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반대하고, 수사팀 윤석열 부장검사 등을 징계 후 좌천시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선 개입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설명]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라 규정했다.

[삼성 금전 수수 의혹]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박범계 의원이 황교안의 이름이 2002년 삼성 떡값 명단에 있으며 떡값 액수는 500만 원이라고 주장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자술서에 따르면 황교안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 되면서 삼성의 관리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황교안은 2007년 특검에서 '혐의 없음'으로 발표되었다며 해명했으나, 2013년 11월 김진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삼성 특검' 수사 자료가 공개되며 2002~2003년 삼성 떡값 리스트에 이름이 확인되어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2014

[통진당 해산 TF 구성]

이석기 의원 등이 구속된 직후 법무부에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TF를 만들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주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정부 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에 출석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이 결정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이 북한식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당 해산을 거듭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시부터 위헌 정당 심판을 준비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5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

제44대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청와대의 발표 연기 해프닝 등으로 '공안 총리' 논란 및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제44대 국무총리 취임]

제44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국정을 이끌었다.

2016

[대통령 권한대행 시작]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권한대행 시절 본인의 취임을 기념하는 시계 등을 만들어 배포하여 '대통령 놀이' 논란이 일었다. 또한 기무사 계엄령 준비 문서에 권한대행의 서명란이 확인되어 반란 계획 관여 의혹을 받았다.

2017

[대선 불출마 선언]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었으나,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종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취임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마쳤다.

[국무총리 퇴임]

문재인 대통령이 황교안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함에 따라 퇴임했다.

2018

[역사 교육 과정 논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 과정 및 집필 기준 시안에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 표현이 등장하자,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도 가능하냐'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민주주의의 한 내용인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박이 있었다.

[수필집 '황교안의 답' 출판]

자신의 수필집인 《황교안의 답》을 출판했으며, 출판기념회에서 박근혜 정부를 '개혁지향정부'라고 평가하며 '적폐 청산'을 비판했다.

2019

[자유한국당 입당]

자유한국당에 입당했으며,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가적 시련'에 송구함을 표하면서도 '모든 것을 국정농단으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당선]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종합 득표율 50.1%를 기록하며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입당 43일 만의 쾌거였다.

[경남FC 경기장 선거유세 논란]

창원성산 보궐선거 기간 중 경남FC 홈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하여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규정을 위반했다.

이로 인해 경남FC는 2천만 원의 제재금 징계를 받았다.

당명이 적힌 점퍼를 입고 경기장 내로 진입했으며, 구단 측의 만류에도 선거운동을 강행했다. 이후 경남FC가 자유한국당 측에 벌금 대납을 요청했으나 황 대표는 선거법 문제를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불교 의식 거부 논란]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에 참석하여 합장과 관불 의식 등 불교 의식을 거부해 불교계로부터 '공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크리스천으로 절에 잘 가지 않아 절차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사과했으며, 향후 타 종교 이해 노력을 약속했다.

[아들 특혜 논란 발언]

숙명여대 특강에서 자신의 아들이 KT에 취업한 사례를 들며 '스펙 없이 특정 역량을 갖추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아들의 스펙과 취업 과정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들은 마케팅 직군으로 입사 후 10개월 만에 법무실로 배치되었는데, 당시 윤리경영실장이 전 검사였고 법무실장은 검사 시절 후배였다. 이로 인해 '전관예우'를 통한 특혜 채용 및 배치 의혹이 불거졌다. 또한 아들의 학점과 영어성적을 실제보다 낮게 말한 것이 논란이 되자 '낮은 점수를 높였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반대는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조국 사퇴 촉구 삭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임명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 릴레이에 동참, 야당 대표로서 삭발을 강행했다.

[계엄령 문건 책임 논란]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기무사가 불법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문건이 공개되자, '계'자도 못 들었다며 보고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고소·고발을 통해 사법조치하겠다고 강경 대응했다.

[국회 앞 단식 농성 시작]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철회, 공수처 설치법 및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중단 등 3가지 조건을 걸고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 농성 중 '황제 단식' 논란이 일었으며, 8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된 후 단식을 중단하고 당무에 복귀했다.

[예산안 강행 처리 규탄]

한국당을 제외한 여당과 일부 야당의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 강행 처리에 대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규탄하며, 선거법·공수처법을 '목숨 걸고 막겠다'고 밝혔다.

[선거법 개정안 가결 규탄]

필리버스터로 맞섰던 선거법 개정안이 가결되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비판했다.

2020

[21대 총선 종로 출마 선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를 반드시 정권 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며 종로구 출마를 선언했다.

[미래통합당 당대표 역임]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 향한 전진 4.0 등 중도·보수 단체들이 통합하여 탄생한 미래통합당의 당대표를 역임했다.

[N번방 사건 발언 논란]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N번방 사건 가입자 신상 공개에 대해 '단순 호기심으로 들어와 활동을 그만둔 사람들은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빚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은 돈을 지불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접속한 참여자들에게 죄가 없다고 보는 것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황교안은 '법리적 차원에서 처벌 양형은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일반론적인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총선 패배 및 당대표 사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했으나 이낙연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패배하며 낙선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미래통합당의 당대표직을 비롯한 모든 당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투표 시 기표소 가림막 문제로 부정선거를 주장했으나, 본인이 법무부 장관이던 2014년 도입된 제도임이 드러나 논란이 있었다.

2021

[20대 대선 출마 선언]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했으나 2차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부정선거방지대 대표 취임]

제20대 대선이 부정선거가 되면 안 된다면서 부정선거방지대의 총괄대표에 취임했다.

2022

[사전투표 부정선거 주장]

대선 사전투표는 부정선거라며 본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황교안 등을 사전투표 반대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힘 대표 재도전]

국민의힘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등록했으며, 2023년 2월 본선에 진출해 타 후보들을 매섭게 공격하며 대표직에 다시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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