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문
연표
1794
[수원 화성 건설 시작]
조선 정조대왕의 지시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그를 기리고 새 시대를 열고자 수원 화성 건설의 대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이는 효심과 강력한 왕권이 어우러진 정조 시대의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1795
[화서문 공사 시작]
수원 화성의 서쪽 관문인 화서문 건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문은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주요 통로 역할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1796
[수원 화성 대역사 완성]
정조대왕의 염원이었던 수원 화성 전체가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성곽의 장점과 조선의 과학적 건축 기술이 결합된,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화서문, 웅장한 모습 드러내다]
마침내 수원 화서문이 완성되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쪽 대문으로서, 견고한 축대 위에 아름다운 팔작지붕을 얹은 1층 건물로 지어졌습니다.문의 앞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이 있어 성문을 겹겹으로 보호하며, 특히 옹성 북쪽으로는 한국 성곽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방어 시설인 공심돈이 연결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화서문은 중국 성곽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조선의 뛰어난 건축 기술이 집약된 수원 화성의 서쪽 관문입니다. 특히, 성 내부가 비어있고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며 사방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공심돈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초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공심돈과의 연결은 화서문의 방어 기능을 극대화하며, 일대의 경치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독특한 시설로 평가받습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 실명판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64
[화서문, 보물로 지정]
수원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이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이는 화서문이 지닌 뛰어난 예술성과 보존 가치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1975
[수원 화성, 대대적인 보수]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수원 화성이 대대적인 중수 공사를 통해 보수되었습니다.이때 화서문 또한 정비를 거쳐 본래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