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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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프로게이머, 방송인, e스포츠 감독, 포커 플레이어 + 카테고리

- 전설적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자 준우승의 아이콘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음. - 특유의 폭풍저그 경기 스타일과 2 징크스로 팬덤을 형성하며 e스포츠 황금기를 이끌었음. - 프로게이머 은퇴 후 더 지니어스 우승 등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제2의 전성기를 맞았음. - 최근 결혼과 득남으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며 2 징크스를 극복해나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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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82

[폭풍저그, 홍진호 탄생]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덕군 신탄진읍(현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훗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전설이 될 준비를 시작했다.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살에 상경하여 프로게이머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0

[프로게이머 데뷔 및 첫 우승]

Game-i(후에 IS와 합병)에 입단하며 프로게이머 활동을 정식으로 시작했다.입단 직후 iTV 한게임배 서바이벌 리그에서 우승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고, GameRacer MeSa배 개인전 준우승 등 초고속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가을 무렵 Game-i에 입단했으며, 청오정보통신 NETEL배 전국팀플대회 준우승, 배틀탑 제2회 청강배 3위, Gamei배 주장원전 우승 등 데뷔 초부터 다양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1

[코카콜라 스타리그 준우승]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에서 당대 최강의 라이벌 임요환과 맞붙었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이 경기는 '임진록'이라는 전설적인 라이벌 매치의 시작을 알렸으며, 홍진호의 '준우승 징크스'의 서막을 열었다.

이 대회는 홍진호의 첫 메이저 개인리그 결승 진출이었으며, 이후 그의 커리어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준우승' 이미지의 시작점이 되었다.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이벤트전 황제 등극]

GameBugs배 스타최강자전, PSB메가패스배 사이버그랑프리 리그, iTV 신인왕전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이벤트전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 시작했다.이는 그의 뛰어난 실력이 큰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당시 정규리그 외에 펼쳐졌던 KT 왕중왕전, KTEC KPGA 위너스 챔피언십, 벼룩시장 FindAll배 챌린저오픈 스타리그를 모두 석권하며 '이벤트전 그랜드슬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2002

[KPGA TOUR 2차 준우승]

Reebok 2002 KPGA TOUR 2차리그 결승전에서 이윤열에게 패배하며 또다시 준우승을 기록했다.이 대회는 이윤열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스타 플레이어 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며, 홍진호의 2인자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그는 KPGA TOUR 1차리그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이 시기 메이저 대회에서 연이어 아쉬운 결과를 맞았다. 2002년 12월 11일에는 이윤열과 함께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로 임대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KT배 왕중왕전 우승]

KT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며 그의 커리어에 '2'와의 특별한 인연을 각인시켰다.이 대회는 당시 공식전으로 인정되어 차기 스타리그 1번 시드를 부여받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비공식전으로 변경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는 1982년 2남 중 둘째로 태어났고,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우승으로 상금 2200만원을 획득하는 등 '2'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WCG 개인전 2위 기록]

WCG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결승에서 또다시 임요환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세계적인 무대에서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아쉬운 순간이었으나, 그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제2회 WCG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자격을 입증했으나, 본선 결승에서는 아쉽게 임요환에게 패했다. 당시 홍진호는 역대 KeSPA 랭킹 최장기간 2위(12개월)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3

[MSL-스타리그 연속 준우승]

TG삼보 MSL과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각각 준우승에 그치며 그의 '준우승 징크스'는 더욱 깊어졌다.특히 Olympus배 스타리그 준우승은 그가 가장 아쉬워했던 결승전으로 꼽힌다.

이 해 그는 MBC 여수 4대 천왕전, KBC 파워게임쇼 4대천왕전, 벼룩시장 FindAll배 GhemTV 챌린저 오픈, KTEC배 KPGA 투어 위너스챔피언쉽 결승에서 우승하며 이벤트전 강자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KTF 재이적 및 억대 연봉 계약]

KTF 매직엔스와의 연봉 협상이 결렬되면서 투나 SG(현 위메이드 폭스)로 복귀했다.그러나 4개월 뒤인 2004년 4월 20일, KTF 매직엔스와 3년간 총 4억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연봉 계약을 체결하며 팀으로 복귀, 역대 2번째 억대 연봉자 기록을 세웠다.

이는 임요환에 이은 2번째 기록으로, 그의 높은 인기와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KTF에서 2008년 공군 입대 전까지 활약했다.

2004

[임요환에게 '3연벙' 굴욕]

EVER 스타리그 4강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임요환에게 벙커링이라는 같은 전략에 3번 연속 패배하는 이른바 '3연벙'으로 3:0 완패를 당했다.이는 홍진호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임진록'의 또 다른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이 경기로 인해 홍진호의 성적이 하락세를 겪었으며, 임요환의 군 입대와 함께 클래식 임진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5

[최장시간 저그 대 저그전 승리]

SO1 스타리그 16강 D조 1경기에서 김준영과 대결, 역대 최장 시간 저그 대 저그전이라는 기록적인 명승부를 펼치며 승리했다.이 경기는 저그의 다채로운 유닛 조합과 운영형 전략의 진수를 보여준 경기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는 저그의 거의 모든 유닛과 마법이 등장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초반 불리했던 전황을 딛고 역전승을 거두며 그의 뛰어난 전략적 능력을 과시했다.

[CNN, 홍진호 인터뷰]

미국의 뉴스전문방송국 CNN이 대한민국의 e스포츠 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홍진호를 대표 선수로 인터뷰했다.이는 한국 e스포츠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당시 그는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주목받았으며, 그의 활약은 e스포츠가 단순한 게임을 넘어선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우승]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상금 2200만원을 획득했다.그는 이외에도 블리즈컨 2005 스타크래프트 부문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번 '이벤트전의 황제'라는 명성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이벤트전에서의 강한 모습은 메이저 대회 준우승 징크스와 대비되어 그의 독특한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켰다. 2005년 KTF 매직엔스는 프로리그 전기리그와 그랜드파이널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팀 또한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8

[공군 입대 및 ACE 배속]

공군에 입대하여 e스포츠 병과를 받아 2009년 1월 공군 ACE에 배속되었다.오랜 라이벌 임요환의 전역 직후 입대하여 두 선수가 같은 팀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팬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공군 ACE에서의 복무는 그의 프로게이머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으며, 팀의 사기 진작과 팬심 결집에 크게 기여했다.

2009

[735일 만의 극적인 승리]

공군 입대 후 5전 전패를 기록하던 중,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서 당시 KeSPA 랭킹 2위 김택용을 상대로 '3센치 드랍'이라는 기가 막힌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었다.이는 마지막 승리 이후 무려 735일(2년 5일) 만의 승리로, 경기 종료 후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이 경기는 전국 남성 13-25세 기준 최고 시청률 2.293%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고, 그의 이름이 국내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뜨거운 화제였다.

[임요환전 222승 달성]

신한은행 프로리그에서 임요환을 상대로 승리하며 통산 대 테란전 222승을 달성, 또 다른 '2'의 기록을 세웠다.이는 최초이자 최후의 프로리그 '임진록' 공식전으로 기록되었다.

2010년 8월 14일 프로리그 올스타전에서는 압도적인 뮤탈리스크 운영으로 임요환을 꺾고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의 '임진록' 최종 전적은 비공식전 포함 33:35로 임요환이 다소 우세하다.

2010

[이제동 격파 및 공군 ACE 10승 견인]

당시 KeSPA 랭킹 2위이자 저그 대 저그전 최강자로 불리던 이제동을 상대로 5년 전 김준영전과 같은 장기전 끝에 명승부를 펼치며 승리했다.이는 공군 ACE의 창단 후 최초 프로리그 10승을 확정짓는 값진 승리였다.

이 승리는 홍진호의 3연승으로 이어졌으며, 6월 이후 홍진호가 승리한 경기에서는 모두 팀이 승리하여 공군 ACE의 창단 후 최초 프로리그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1

[프로게이머 은퇴 선언]

자신의 팬카페에 '안주하는 것보다 도전하는 삶이 좋기에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했다.이후 6월 25일 용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은퇴식 당일 2차전에서 2시 22분에 마지막 경기를 시작했으며, 이 경기는 그의 통산 테란전 200번째 경기였다. 은퇴 직후 그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2위를 차지하며 '2'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12

[LoL 게임단 감독 취임]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단 제닉스 스톰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e스포츠계에 복귀했다.2013년 2월 13일에는 팀의 프론트로 자리를 옮기며 게임단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아주부 챔피언스리그에서 소속팀 제닉스 스톰이 경기시간 22분만에 승리하는 등, 그의 '2' 징크스는 LoL에서도 이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화' 발언 논란 및 사과]

LOL 나이트 쇼 '나는 캐리다' 13화 방송 중 '민주화'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당시 제작진과 출연진의 제지를 받았으며, 이후 2013년 7월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는 게임 용어로 사용되던 단어가 정치적 의미로 오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홍진호는 인터뷰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좋다'고 밝히며 당시 발언의 경위를 설명했다.

2013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우승]

tvN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여 뛰어난 전략과 심리전으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이는 '준우승의 아이콘'이었던 그에게 생애 첫 우승 타이틀을 안겨주며 대중적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우승 후 동료 출연자들의 요구에 따라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콩댄스'를 추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그는 프로게이머를 넘어선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2014

[프로야구 시구, '2' 징크스 발현]

국내 프로야구 한화-LG전 시구자로 나섰다.2연패 중이던 한화는 이날 2번의 역전 끝에 승리하며 2연패에서 탈출했고, 2회에 2연속 홈런이 터지는 등 그의 '2' 징크스가 스포츠 경기에서도 발현되어 화제를 모았다.

2015년 탑기어 코리아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LAP타임에서 2번째로 트랙을 돌아 최고 기록을 세우고,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D-222일이라는 또 다른 '2' 관련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2024

[결혼 2달 만에 '콩콩이' 아빠]

2024년 결혼 2달 만에 아내의 임신 소식을 발표하였습니다. 태명은 '콩콩이'입니다.

그는 '2'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왔는데, 이번 득남 소식 또한 '결혼 2개월 만'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2'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0살 연하 비연예인과 결혼]

10살 연하의 비연예인 여성과 서울 모처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했다.오랜 팬들의 축하 속에서 드디어 '솔로' 징크스를 깨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결혼 발표 후에도 방송에서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이며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결혼 후 두 달 만인 5월에는 아빠가 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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