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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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야구 감독, 야구 해설가, 스포츠인 + 카테고리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이자 감독, 해설가. '타도 요미우리'를 외치며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했고, 주니치, 한신, 라쿠텐 세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뜨거운 리더십을 보여준 '불꽃의 사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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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7

[호시노 센이치 탄생]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인 호시노 센이치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태어났다.

호시노 센이치(星野 仙一)는 1947년 1월 22일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태어났다. 훗날 일본 프로 야구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전설적인 업적을 남기게 된다.

1968

[프로 야구 드래프트 1순위 지명]

주니치 드래곤스에 1순위로 지명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어릴 적 동경했던 무라야마 미노루와 같은 등번호 11번을 원했지만, 대신 2배인 22번을 희망했다. 이 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드래프트 착오로 인해 '타도 요미우리'라는 평생의 신념을 갖게 된다.

196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이 취임한 주니치 드래곤스에 1순위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소년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투수 무라야마 미노루를 동경하여 그와 같은 등번호 11번을 착용하고 싶었으나 번호가 비어있지 않아 대신 숫자를 2배로 늘린 22번을 희망했다. 드래프트에 관해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사전 약속이 있었으나 요미우리가 고교생 투수 시마노 오사무를 1순위로 지명하자, 호시노는 요미우리에 대한 응어리와 함께 '타도 요미우리'라는 평생의 기본 입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1974

[첫 타이틀 획득 및 센트럴 리그 우승 견인]

일본 프로 야구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최초 제정)을 획득하고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을 저지하고 주니치의 20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1974년 시즌에 10세이브를 기록하여 신설된 최다 세이브 투수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동시에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 요미우리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V9)을 저지하며 주니치 드래곤스의 20년 만의 두 번째 센트럴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우승을 결정지은 경기에서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2승 4패로 패배하여 우승에는 실패했다.

1982

[현역 은퇴 결정]

1982년 주니치의 두 번째 리그 우승을 계기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으며, 10월 12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1981년부터 투수 코치를 겸임했던 호시노 센이치는 1982년 자신의 두 번째인 주니치 드래곤스의 리그 우승을 계기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10월 12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가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으며, 이듬해 1983년 4월 3일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시범 경기가 은퇴 경기가 되었다. 그는 통산 146승 121패 34세이브를 기록하며 '프로의 투수로서는 200승에 도달할 수 없었던 2류 성적이지만 마음가짐과 기백, 기합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1986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 취임]

시즌 종료 후 야마우치 가즈히로 감독의 후임으로 주니치 드래곤스의 감독에 취임했다.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전후 세대 감독이 되었다. 대대적인 전력 보강과 팀 개편을 단행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NHK 야구 해설위원과 닛칸 스포츠 등의 야구 평론가를 맡다가 1986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야마우치 가즈히로 감독의 후임으로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에 취임하며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전후 세대 감독이 되었다. 취임 후 롯데 오리온스로부터 오치아이 히로미쓰를 4대 1 맞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단행했고, 드래프트에서 곤도 신이치, 다쓰나미 가즈요시 등 즉시 전력감 고교생을 영입하며 팀 색깔 교체에 앞장섰다. 그 결과 1988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03

[한신 타이거스 리그 우승 및 감독직 사임]

가네모토 도모아키 등 주력 선수들의 활약과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신 타이거스를 18년 만에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고혈압 등 건강상의 이유로 일본 시리즈 직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주니치 감독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1년 시즌 종료 후 만년 하위팀이던 한신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1년차인 2002년 팀을 4위로 끌어올린 후, 2003년에는 가네모토 도모아키, 이라부 히데키 등 베테랑과 이마오카 마코토, 아카호시 노리히로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한신 타이거스를 압도적인 강함으로 이끌어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7월 8일 센트럴 리그 사상 가장 빠른 우승 매직 넘버 49를 점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3승 4패로 패배했고,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인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일본 시리즈 직후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7

[베이징 올림픽 일본 대표팀 감독 취임 및 올림픽 실패]

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며 '금메달 외에는 필요없다'고 공언했으나, 4위에 그쳤다. 이로 인해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 내정에서도 비판 여론으로 인해 물러났다.

2007년 1월 25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금메달 외에는 필요없다'고 공언하며 올림픽 본선에 임했으나, 결과는 4위에 그쳤고 상위 3개 팀에게 5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대회 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안 됐다'며 선수들을 옹호했으나, 책임을 전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으나, 올림픽 성적 부진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인해 2008년 10월 22일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취임]

한신을 퇴단하고 퍼시픽 리그 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다. 선수와 감독 경력을 통틀어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에 소속하게 되었다.

2010년 10월, 퍼시픽 리그 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호시노 센이치를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고자 교섭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고, 10월 19일 호시노는 한신 시니어 디렉터직을 퇴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10월 27일 미야기현 센다이시 내에서 정식으로 라쿠텐 감독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로써 선수와 감독 시절을 통틀어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 가맹 구단의 소속을 두게 되었고, 등번호는 주니치와 한신 감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77'번으로 결정했다.

2012

[감독 통산 1000승 달성]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투수 출신 감독이자 전후 세대 감독으로는 최초로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역대 12번째 기록이다.

2012년 5월 11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투수 출신 감독이자 전후 세대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감독 통산 1000승(42무 876패)을 달성했다. 이는 역대 12번째의 기록이며, 오 사다하루 이래의 대기록이었다. 첫 승리는 주니치 감독 시절인 1987년 4월 12일이었으며,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918번째 경기에서 달성되었다.

2013

[라쿠텐 골든이글스 구단 첫 퍼시픽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구단 창단 이후 최초로 퍼시픽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에서 4승 3패로 승리하며 구단 첫 일본 시리즈 우승과 개인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이라는 영예를 동시에 안았다. 66세의 나이로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2013년 4월 19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판정에 불만을 품고 구심에게 폭언을 가해 통산 6번째 퇴장 처분을 받는 등 '불꽃 리더십'을 선보였다. 그는 구단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전반기 1위를 지키며 9월 26일 퍼시픽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는 미하라 오사무, 니시모토 유키오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다른 세 개 구단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 된 기록이다. 이어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 7차전에서 3대 0으로 승리하며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을 통틀어 자신의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고, 라쿠텐 구단에게도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66세의 나이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나가시마 시게오의 기록을 뛰어넘는 일본 프로 야구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2014

[라쿠텐 감독 사임 및 지도자 은퇴]

핵심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의 이적으로 인한 팀 전력 약화와 황색인대골화증 수술로 자리를 비우는 등 어려움 끝에 라쿠텐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10월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며 야구계를 떠났다.

2014년 시즌 전, 우승의 주역 중 하나인 핵심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며 팀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는 팀의 부진으로 이어졌고, 시즌 중 황색인대골화증으로 수술을 받으며 자리를 비우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14년 9월 19일 라쿠텐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10월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며 야구계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라쿠텐 구단의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18

[영면]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향년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부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호시노 센이치는 2018년 1월 4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일본 야구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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