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모리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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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일본 총리, 구마모토현 지사, 언론인, 도예가 + 카테고리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일본의 제79대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자 히고 호소카와 가문의 18대 당주이다. 비자민당 출신으로 3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내며 높은 지지율로 취임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표명하며 한일 관계 개선에 기여했으나, 정치자금 문제로 10개월 만에 사퇴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도예가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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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38

[출생]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출생했다.

1938년 1월 14일,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태어났다.

1963

[아사히 신문 기자 활동 시작]

조치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조치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63년 4월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여 기자로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68

[아사히 신문 퇴사]

아사히 신문을 퇴사했다.

기자 활동을 마치고 1968년에 아사히 신문사를 퇴사했다.

1969

[중의원 선거 낙선]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아쉽게 낙선했다.

1969년 12월,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정치 활동을 시도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1971

[참의원 선거 당선 및 정계 입문]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참의원 선거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자민당의 공천을 받고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를 계기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77

[참의원 선거 재선]

자민당 후보로 참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압도적인 승리로 재선에 성공했다.

197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1983

[구마모토현 지사 취임]

구마모토현 지사로 취임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1983년 2월, 구마모토현 지사로 취임하여 1991년까지 지사를 역임하며 지역 행정을 이끌었다.

1991

[구마모토현 지사 퇴임]

구마모토현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1991년에 구마모토현 지사직을 마무리했다.

1992

[일본신당 결성 및 당 대표 취임]

새로운 정치 흐름을 주도하며 일본신당을 결성하고 당 대표로 취임했다.

1992년 5월 22일, 일본신당을 결성하고 당 대표로 취임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의 중심에 섰다.

1993

[태평양 전쟁 침략 인정 및 사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태평양 전쟁이 침략 전쟁이자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정하며 일본의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 행위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다.

총리로 취임한 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며, 잘못된 전쟁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의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전쟁 행위를 시인하는 등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다.

[제79대 일본 총리 취임]

자유민주당의 과반 의석 실패 후 7개 야당의 연립 정권 논의 끝에 제79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이는 1955년 이후 38년 만의 정권 교체이자 비자민당 출신 총리의 탄생으로, 전후 역대 총리 중 최고인 74%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1993년 8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자유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하자 호소카와가 이끄는 일본신당을 비롯한 7개 야당들의 연립 정권 논의가 시작되었고, 호소카와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1993년 8월 9일, 1955년 이후 3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실현시키며 비자민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의 제79대 총리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전후 역대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74%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사과]

대한민국 경주를 방문하여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일본의 한반도 식민 통치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다.

1993년 11월 대한민국 경주를 방문하여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 일본의 한반도 식민 통치를 지배한 것에 대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드린다"라고 사과와 유감을 표명했다.

1994

[총리직 사퇴 선언]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정치권이 들썩이자 돌연 총리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듬해인 1994년 4월 28일,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정치권이 들썩이자 돌연 총리직 사퇴를 선언했다.

[저격 위협]

도쿄 니시 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신당 총회에 참석한 후 침략전쟁 발언에 불만을 품은 범인의 저격 위협을 받았으나 무사했다.

총리직 사퇴 후인 1994년 5월 30일, 도쿄 니시 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신당 총회에 참석한 후 노조에 마사가스라는 범인의 저격 위협을 받았으나 무사하였다. 범인은 침략전쟁 발언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비자민 연립정권 붕괴]

총리 사퇴 후 발생한 내분으로 인해 비자민 연립정권이 불과 10개월 만에 붕괴되었다.

총리직 사퇴 이후 발생한 내분으로 인해 비자민 연립정권은 불과 10개월 만인 1994년 6월에 붕괴되고 말았다.

1998

[정계 은퇴 및 도예가 활동 시작]

환갑을 맞아 중의원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후 도예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5월 7일, 환갑을 맞이하여 중의원을 사퇴함과 동시에 정계를 은퇴하고 도예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04

[한국에서 도자기 작품 활동]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을 방문하여 도예가 민영기 씨와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작품 활동을 했다.

2004년 여름, 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산청군을 방문하여 도예가 민영기 씨와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작품 활동을 한 바 있다.

2005

[히고 호소카와 가문 당주 취임]

히고 호소카와 가문의 제18대 당주로 취임했다.

2005년에 히고 호소카와 가문의 제18대 당주 자리에 올랐다.

2010

[한일병합 강제성 발언]

한일 병합은 강제된 것이라는 발언을 하여 국제 사회에 다시 한번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켰다.

2010년 8월 14일, "한일 병합은 강제된 것"이라고 발언하며 역사적 진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011

[일본 관광 홍보 참여]

일본 관광 홍보 활동에 참여하여 일본의 매력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2011년 1월 14일, 일본 관광 홍보 활동에 참여하여 일본의 다양한 관광지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2014

[도쿄 도지사 선거 출마 및 낙선]

도쿄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2014년 1월 14일, 도쿄 도지사 후보에 출마했으나,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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