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데 산마르틴
연표
1778
[영웅의 탄생과 유년 시절]
남아메리카의 영웅, 호세 데 산마르틴이 아르헨티나 코리엔테스주의 야페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7살 어린 나이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귀족 학교에서 수학하며 칠레 출신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친구가 되는 특별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808
[스페인군에서의 각성]
호세 데 산마르틴은 스페인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일렌 전투와 알부에라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독립 지지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남아메리카의 자유를 향한 그의 거대한 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1812
[조국으로의 회귀]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영국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오늘날의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의 귀환은 남아메리카 독립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813
[산 로렌소 전투의 승리]
남아메리카 합중국에 투신한 그는 산 로렌소 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며 독립군의 사기를 드높였습니다.
이 승리를 발판 삼아 스페인 식민 지배의 심장부인 리마를 공격할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게 됩니다.
1817
[전설적인 안데스 횡단]
산마르틴은 멘도사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거친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로 향하는 역사적인 횡단을 감행했습니다.
이 전설적인 군사 작전은 남아메리카 독립 전쟁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리마 공격 계획의 일환으로 쿠요에서 군대를 조직하여 칠레를 먼저 해방시킨 후 바다를 통해 리마를 공격한다는 그의 독창적인 전략이었습니다.
1818
[칠레 독립을 확정한 대승]
안데스 횡단 후, 산마르틴은 마이푸 전투에서 스페인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하며 독립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겼습니다.
이 대승은 칠레의 독립을 사실상 확정 지었으며, 이후 페루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819
[자유를 쟁취한 칠레]
마이푸 전투의 승리에 힘입어 산마르틴은 칠레의 독립을 성공시켰습니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남아메리카 해방의 선봉에 섰습니다.
1820
[페루 독립의 초석]
칠레 독립에 이어 산마르틴은 페루 독립에도 성공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남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스페인 식민 지배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821
[페루 독립 선언과 보호자 취임]
페루의 공식적인 독립 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산마르틴은 부왕령의 수도를 장악하며 '페루의 보호자'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 독립 페루의 안정을 위해 힘썼습니다.
1822
[볼리바르와의 미스터리한 만남과 은퇴]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동료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와 운명적인 밀실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 직후 산마르틴은 돌연 페루를 떠나 군대 지휘관직과 정계에서 물러났습니다.
회담의 내막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있습니다.
이 만남 이후 볼리바르는 페루를 완전 해방하는 과업을 맡게 되었고, 산마르틴은 홀연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1824
[영웅의 쓸쓸한 망명]
조국에서 중앙 집권론자들의 비난을 받던 산마르틴은 프랑스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남아메리카 해방을 이끈 위대한 영웅에게는 다소 쓸쓸한 말년의 시작이었습니다.
1850
[위대한 해방자의 서거]
프랑스에서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던 호세 데 산마르틴은 볼로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스페인으로부터 남아메리카를 해방시킨 위대한 영웅이자 아르헨티나 국민의 영원한 아버지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