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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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교육자, 사회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 카테고리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시청각장애인입니다. 그녀는 앤 설리번 선생의 가르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섰으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인권 운동가로서 전 세계 장애인과 소외된 이들의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불굴의 의지와 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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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80

[헬렌 켈러 출생]

헬렌 켈러는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에서 아서 H. 켈러와 케이트 애덤스 켈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헬렌 켈러는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의 아이비 그린 농장 저택에서 남부 동맹 전직 사무관인 아서 H. 켈러와 로버트 E. 리 남부 동맹 총 사령관의 사촌인 케이트 애덤스 켈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스위스 출신입니다.

1881

[질병으로 인한 시청각 장애 발병]

생후 19개월 후, 헬렌 켈러는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 진단을 받았고, 이 병으로 인해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생후 19개월 후에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의 급성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때는 가정 요리사의 6살 난 딸이자 그녀의 수화를 이해하는 아이인 마르타 워싱턴과 대화가 가능했었습니다.

1886

[어머니의 교육 희망]

헬렌의 어머니 케이트 켈러는 시청각 장애인 로라 브릿맨의 성공적인 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감명받아, 헬렌을 위해 전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1886년, 헬렌의 어머니 케이트 켈러는 찰스 딕슨의 《American Notes》라는 시청각 장애인인 로라 브릿맨에 대한 성공적인 교육에 관해 쓰여진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곧 그녀는 공문을 헬렌과 그의 아버지를 동행하게 하여 눈, 귀, 코, 목에 관련한 전문가인 J. 줄리언 치솜을 찾아 조언을 얻기 위해 볼티모어로 보냈습니다. 그는 이어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그녀의 가족을 연결시켜주었습니다.

1887

[앤 설리번과의 만남]

시력 감퇴가 있는 20살의 학교 졸업생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로 부임하며, 49년간 이어질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조언으로 퍼킨스 시각 장애 학교 교장 선생 마이클 아나가노스는 시력 감퇴가 있는 20살의 학교 졸업생 앤 설리번에게 헬렌의 가정 교사가 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앤 설리번은 1887년 3월에 헬렌의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헬렌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일은 곧 49년간 이어지는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곧 그녀는 헬렌의 가정교사가 되고 나중에는 그녀의 동반자로서 함께하게 됩니다.

[사물과 단어의 연결을 통한 언어 학습]

앤 설리번은 헬렌의 손에 차가운 물을 틀어주고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손바닥에 써주며 사물과 단어를 연상시키는 교육법으로 헬렌의 의사소통에 큰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앤 설리번은 헬렌이 단어의 스펠링을 그녀의 손에 적어주는 식으로, 그녀가 헬렌에게 선물로 가져온 'd-o-l-l'(doll, 인형)의 스펠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달인 4월에는 헬렌이 의사소통 방식에서 큰 발전을 보였는데, 헬렌의 손에 차가운 물을 틀어주고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손바닥에 쓰면서 연상시켜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헬렌은 설리번과 세상의 다른 흔한 사물들을 익히는 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헬렌의 양쪽 눈은 의학적인 이유와 외관적인 이유 때문에 유리 복제품으로 대신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1903

[첫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출간]

22살에 헬렌 켈러는 그녀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를 앤 설리번과 설리번의 남편 존 메이시와 함께 출간하며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22살에는 헬렌 켈러가 그녀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1903)를 앤 설리번과 설리번의 남편 존 메이시와 함께 출간하였습니다. 이 자서전은 그녀가 21살까지 자라온 이야기를 담았고 그녀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썼다고 합니다.

1904

[세계 최초 시청각 장애인 학사 학위 취득]

24살의 헬렌 켈러는 레드클리프 대학교를 졸업하며 세계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시청각 장애인이 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헬렌 켈러는 1888년 5월 퍼킨스 시각 장애 학교에 등록하고, 1894년에는 뉴욕의 라이트 휴머슨 청각 장애 학교와 호레스 만 청각 장애 학교를 다녔습니다. 1896년에는 매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거쳐, 1900년에는 하버드대학교 부속 여자대학교였던 레드클리프 대학교 입학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녀는 점자 타자기를 이용하여 과제물을 제출하는 등 학업에 열중했으며,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학문 능력으로 존중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마크 트웨인의 도움으로 스텐다드 오일의 헨리 H. 로저스 부부의 지원을 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1904년에 24살이 된 헬렌 켈러는 레드클리프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고,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1908

[『내가 사는 세계』 집필]

헬렌 켈러는 그녀가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인지하는지를 다룬 『내가 사는 세계』를 집필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그녀가 어떻게 세계를 느끼는지 알게 깨닫게 해주는 『내가 사는 세계』를 1908년에 집필하였습니다.

1909

[미국 사회당 입당 및 사회주의 운동 시작]

29세의 헬렌 켈러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하여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활발한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29세 때인 1909년 미국 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 1901년 창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그녀는 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발표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1909년부터 1921년까지 노동 계급의 지원자들에게 투서하였으며, 미국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자인 유진 뎁스의 모든 대통령 선거 운동들을 지원하였습니다.

1912

[세계산업노동자 단체(IWW) 가입]

헬렌 켈러는 노동자 권익 향상에 힘쓰는 단체인 세계산업노동자 단체(IWW)에 가입하며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1912년에 세계산업노동자 단체(IWW 혹은 워블리)에 가입했으며, 의회 사회주의는 "정치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1916년과 1918년 사이에 IWW를 위한 글을 썼습니다. 『내가 왜 IWW가 되었나』라는 글에서 헬렌 켈러는 시각 장애인들의 상태를 조사하며 잘못된 노동 환경이 고용주들의 탐욕과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사회악이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러한 실천적인 행동의 동기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여성들을 장님인 상태로 끝나는 수치스러운 삶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1913

[『어둠의 바깥』 출판]

사회주의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인 『어둠의 바깥』이 출판되어 그녀의 사회 참여적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어둠의 바깥』이라는 사회주의에 대해 쓴 에세이 시리즈는 191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1914

[폴리 톰슨과의 동행 시작]

앤 설리번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자 폴리 톰슨을 활동보조인으로 고용했으며, 그녀는 이후 헬렌 켈러의 동반자로 함께했습니다.

1914년경부터 앤 설리번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자 폴리 톰슨이라는 여성을 활동보조인으로 고용하였습니다. 폴리 톰슨은 스코틀랜드에서 온 젊은 여성으로 시청각 장애인에 관한 경험이 전무했으나 경험이 쌓이며 헬렌 켈러의 활동보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15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 설립]

헬렌 켈러는 조지 케슬러와 함께 시각, 건강, 영양 연구에 전념하는 국제 단체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을 설립했습니다.

1915년, 헬렌 켈러와 조지 케슬러는 비전과 건강, 영양 연구에 열심인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여성 참정권론자이자 평화주의자,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반대자였으며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에 여성 피임 지원자였습니다.

1920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 설립 기여]

헬렌 켈러는 미국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주요 단체인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의 설립을 도왔습니다.

1920년에는 그녀가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의 설립을 도왔습니다.

1927

[『나의 종교』 출판]

그녀의 영적인 자서전이자 논란이 많은 스베덴보리 신학을 지지하는 내용의 『나의 종교』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녀의 영적인 자서전인 『나의 종교』는 1927년에 출판되었고 『내 어둠속의 빛』과 같이 다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자서전은 논란이 많은 신비주의 신학자인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지지합니다. 그는 최후의 심판과 예수의 부활에 종교적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1936

[평생의 동반자 앤 설리번의 사망]

49년간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이자 동반자였던 앤 설리번이 사망했습니다. 헬렌은 이후 폴리 톰슨과 코네티컷으로 이사하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가르치는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헬렌 켈러의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14년경부터 앤 설리번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자 폴리 톰슨이라는 여성을 활동보조인으로 고용하였습니다. 폴리 톰슨은 스코틀랜드에서 온 젊은 여성으로 시청각 장애인에 관한 경험이 전무했으나 경험이 쌓이 끝에 헬렌 켈러의 활동보조 노동을 하였습니다. 헬렌 켈러는 퀸스의 포레스트 힐즈로 앤 설리번과 남편 존 메이시와 함께 이사했고, 집을 미국 시각 장애 재단의 지지를 위한 노력의 거점처럼 삼았습니다. 1936년, 앤 설리번이 사망하고 나서 헬렌 켈러와 폴리 톰슨은 코네티컷으로 이사했습니다.

1937

[일본 방문 및 아키타 견 소개]

일본 아키타현을 방문하여 충견 하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키타 견 카미케이지고를 선물 받으며 미국에 아키타 견을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은 39여개 국가들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의 몇 차례 방문으로 일본의 인기인이 되었습니다. 1937년 7월에 일본의 아키타현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1935년에 죽은 유명한 개 충견 하치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일본인에게 아키타 견을 갖고 싶다고 말했으며 한 마리를 한 달도 안돼서 받았고 이름은 카미케이지고였습니다. 이 개가 개 홍역으로 죽었을 때 이 개의 형이었던 캔잔고가 일본 정부의 공식 선물로서 1938년 7월에 왔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 두 마리의 개를 통해 미국에 아키타 견을 소개하며 미국인들이 이 개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57

[위니 코베리의 활동보조 시작]

폴리 톰슨이 회복 불가능한 발작을 일으키자, 간호사 위니 코베리가 헬렌의 비서 겸 활동보조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폴리 톰슨은 1957년에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는 발작을 일으켰고, 1960년에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1957년에 원래 폴리 톰슨을 치료하기 위해 데려온 간호사인 위니 코베리는 톰슨의 사망한 이후에도, 헬렌의 집에 남아서 헬렌 켈러의 비서 겸 활동보조 노동을 하였습니다.

1961

[건강 악화 및 말년 생활]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리며 말년을 자택에서 보냈습니다.

헬렌 켈러는 1961년에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렸고 말년을 그녀의 집에서만 보냈습니다.

1964

[대통령 자유 훈장 수훈]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에게 수여되는 가장 높은 훈장 중 하나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으며 그녀의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1961년에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렸고 말년을 그녀의 집에서만 보냈던 헬렌 켈러는 1964년 9월 14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서 가장 높은 두 개의 훈장 중 하나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965년에는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헬렌 켈러는 '미국 시각 장애인 재단'의 기부 활성화를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1968

[헬렌 켈러 사망]

88세의 나이로 코네티컷 웨스트포드의 아컨 리지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1968년 6월 1일에 코네티컷, 웨스트포드 아컨 리지(Arcan Ridge)에 위치한 그녀의 집에서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은 워싱턴 D.C.에 위치한 성공회 대성당인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행해졌으며 그녀의 유해는 영원한 동료이자 선생이었던 앤 설리번과 폴리 톰슨의 옆에 놓였습니다.

2009

2009.10.7 사후 41년

[미국 국회의사당에 헬렌 켈러 동상 제막]

미국 국회의사당 방문객 센터 '미국 조각 수집관'에 7살 헬렌 켈러의 동상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의회의사당에 전시된 것 중 처음으로 장애인이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입니다.

2009년 10월 7일, 헬렌 켈러의 동색 동상이 '미국 조각 수집관'(National Statuary Hall Collection)에 1908년 자베즈 커리(Jabez Lamar Monroe Curry)의 앨라배마주 동상 대신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이 동상은 '미국 국회의사당' 방문객 센터에 전시되어 있으며, 수중 펌프 앞에 서있는 7살의 헬렌 켈러를 담아냈습니다. 이 동상은 그녀가 W-A-T-E-R(물)이라는 단어를 앤 설리번이 그녀의 손에 써가면서 처음으로 이해했을 때의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쓰여 있는 글은 일반 글자와 점자로 쓰여 있습니다. 이 동상은 미국 의회의사당에 전시된 것들 중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이면서 혹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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