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연표
1563
[천재의 탄생]
조선 중기, 강원도 강릉의 명문가에서 학자 허엽의 셋째 딸 허초희가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시재(詩才)와 예술적 재능을 보였으며, 훗날 '난설헌'이라는 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1570
[8세 신동, 광한전백옥루상량문]
단 8세의 나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배려로 당대 최고의 시인 이달에게 시와 글을 배우는 특별한 기회를 얻는다.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1577
[불운의 시작, 결혼]
15세 무렵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혼인했으나, 재주 많은 난설헌을 꺼리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냉대 속에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그녀의 시 세계에 깊은 애상적 정서를 드리우는 계기가 된다.
1579
[첫 아이와의 이별]
결혼 생활의 불행에 더해 첫 아이인 딸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이어진 비극은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시를 통해 슬픔을 달래는 계기가 된다.
1580
[아버지의 죽음]
결혼 생활의 불행 속에서 의지할 곳이었던 아버지 허엽마저 객사하는 비극을 겪는다.
연이은 가족의 불행은 그녀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1582
[애달픈 곡자시의 탄생]
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는 비극을 겪는다.
이 깊은 슬픔을 담아 <곡자(哭子)>라는 애절한 시를 지었으며, 뱃속의 아이마저 사산하며 연이은 불행 속에서 삶의 의지를 잃어갔다.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로 시작하는 <곡자>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1583
[오빠 허봉의 귀양]
둘째 오빠 허봉이 율곡 이이를 비판하다 귀양을 가게 되면서, 난설헌은 또 다른 가족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끊이지 않는 불행 속에서도 그녀는 시와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하려 노력했다.
1588
[오빠 허봉의 객사]
귀양에서 풀린 후 방랑하던 오빠 허봉이 금강산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난설헌은 죽기 전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소각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1589
[남편 김성립의 재혼]
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같은 해, 남편 김성립은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남양 홍씨와 재혼한다.
생전 난설헌을 외면했던 남편의 행보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더욱 부각시킨다.
[27세, 천재의 요절]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에 한성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임신 중 아이를 잃고 가족들의 연이은 비극 속에 몸과 마음이 병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죽기 직전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라는 시를 남기며 자신의 짧고 비극적인 삶을 예감했다.
1590
[허균의 헌정, 난설헌집 초고]
동생 허균은 누나의 시재를 아깝게 여겨, 친정에 있던 난설헌의 시들과 기억에 남은 작품들을 모아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당대 명재상 류성룡에게 서문을 받아 그녀의 예술혼을 세상에 알릴 준비를 시작한다.
1592
[남편 김성립, 전사]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 김성립은 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한다.
사후 그 공로로 증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난설헌 또한 증 정부인으로 추증되어 비로소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1598
[명나라에 전해진 시편]
동생 허균이 정유재란 때 원정 나온 명나라 오명제에게 난설헌의 시 200여 편을 전해주면서, 그녀의 시는 명나라에서 편찬된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 당대 명망 높은 시집에 실리게 된다.
1606
[중국에 울려 퍼진 이름]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누나의 시를 전하자, 이들은 그녀의 천재성에 탄복하여 적극적인 지원 속에 《난설헌집》이 명나라에서 정식으로 간행된다.
이로써 난설헌은 당대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1607
[조선에서 빛을 보다]
명나라에서의 간행에 이어, 허균은 조선에서도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여, 누나의 뛰어난 시재가 조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평가받는 계기를 마련한다.
1612
[또 다른 시집, 취사원창]
그녀의 미간행 시집으로 알려진 《취사원창》(聚沙元倡)이 중국에서 발간되었다.
이 시집은 2000년에 이르러 새롭게 발굴되어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1711
[일본을 사로잡은 시인]
명나라에 이어 일본에서도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해 《난설헌집》이 간행되고 널리 애송되면서, 난설헌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다졌다.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2000
[잃어버린 시집의 재발견]
청나라 만력 40년(1612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시집 ≪취사원창≫(聚沙元倡)이 2000년 9월, 새롭게 발굴되었다.
이 발견은 허난설헌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위상이 다시금 주목받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