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에런

num_of_likes 131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야구 선수, 스포츠인, 홈런왕, 사회 운동가 + 카테고리

메이저 리그 역사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넘어선 위대한 타자이자,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사회 운동가였다. 야구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수많은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에도 후학 양성과 사회 공헌에 힘썼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34

[위대한 홈런왕의 탄생]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에스텔라와 허버트 에런의 세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34년 2월 5일 앨라배마주 모빌의 다운더베이에서 태어났다. 에스텔라와 허버트 에런의 세 번째 자식이었다. 어린 시절 전기, 창문, 실내 수도 시설 등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잔디 깎기, 감자 캐기, 얼음 배달 등의 일을 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삼촌 버바에게 야구의 복잡한 룰을 배웠고, 비싼 야구공 대신 골프공에 나일론 팬츠 호스를 감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1952

[프로 야구 경력 시작]

니그로 리그의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스와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보스턴 브레이브스 스카우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노던 리그의 오클레어 베어스에서 인종적으로 합류된 팀에서 활약하며 "올해의 신인 선수" 상을 수상했다.

18세에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스와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클라운스 소유자가 보스턴 브레이브스 팀장에게 에런을 소개했고, 에런은 노던 리그의 오클레어 베어스에 합류하여 첫 인종적으로 합류된 팀에서 활약했다. 이 첫 시즌 동안 노던 리그 올스타 경기에 선발되었고 87경기에서 9홈런, 타율 0.336을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 선수" 상을 수상했다. 시즌 후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스가 니그로 리그 월드 시리즈를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1954

[메이저 리그 데뷔]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좌익수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팀 동료의 부상으로 얻은 기회를 통해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1954년 봄 훈련 중 보비 톰슨의 발목 부상으로 좌익수로 메이저 리그 팀에 가입할 기회를 얻었다. 4월 13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ML 첫 홈런 기록]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빅 라시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쳤다.

1954년 4월 23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 빅 라시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홈런을 기록했다.

1957

[월드 시리즈 우승 주역]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월드 시리즈에서 3개의 홈런과 7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43년 만에 브레이브스의 첫 타이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57년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월드 시리즈에서 3개의 홈런과 7개의 타점, 타율 0.393을 기록하며 브레이브스가 43년 만에 첫 타이틀을 우승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ML 내셔널 리그 타이틀 확보 및 MVP 수상]

카디널스전에서 11회 역전 홈런을 치며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내셔널 리그 타이틀을 확정 지었다. 이 시즌 홈런, 타점, 득점 부문 리그를 이끌며 리그 MVP를 수상했다.

1957년 9월 23일, 카디널스의 빌리 머펫을 상대로 11회 초 2점 홈런을 치면서 브레이브스에게 4대 2의 승리와 내셔널 리그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이 시즌에 홈런(44개), 타점(132개), 득점(118개)에서 리그를 이끌며 리그 MVP 상을 수상했다.

196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의 이적]

소속팀 브레이브스가 밀워키에서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적 첫해에도 44개의 홈런과 127개의 타점으로 리그를 이끌었다.

1966년 브레이브스가 애틀랜타로 이적했으며, 에런은 44개의 홈런과 127개의 타점으로 리그를 이끌며 이에 응답했다.

1968

[대기록, 통산 500호 홈런 달성]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투수 마이크 매코믹을 상대로 통산 500호 홈런을 쳤다. 홈구장에서 3만 4천 명의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그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1968년 7월 14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 마이크 매코믹에 500번째 홈런을 쳤다. 에런이 홈구장에서 트로피를 수상할 때 3만 4천 명이 넘는 관중들이 그에게 몇 분 동안 기립 박수를 보냈다.

1970

[3000안타 달성과 전무후무한 기록]

신시내티 레즈의 웨인 심슨을 상대로 3000번째 경력 안타를 기록했다.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 메이저 리그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1970년 5월 17일 에런은 자신의 3000번째 경력 안타를 수집하기 위해 신시내티 레즈의 투수 웨인 심슨에 1루타를 쳤다. 그는 500개의 경력 홈런 대 3000개의 경력 안타와 함께 첫 선수가 되었다.

1971

[통산 600호 홈런 달성]

자이언츠의 게일로드 페리에게 자신의 600번째 경력 홈런을 쳤다. 이 시즌, 그는 최고의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71년 4월 27일 에런은 자이언츠의 게일로드 페리에게 자신의 600번째 경력 홈런을 쳤다. 그 시즌에 그는 각각 0.410과 0.669의 출루율과 장타율로 하나의 시즌에 자신의 최고 경력을 기록하였다. 그는 또한 0.327의 타구 평균과 함께 47개의 홈런을 치고 118개의 타점을 기록하였다.

1973

[통산 700호 홈런 달성]

켄 브렛을 상대로 통산 700번째 경력 홈런을 쳤다. 3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뛰어난 장타력을 과시했다.

1973년 39세의 나이에 불구하고 120개의 경기들 만을 활약한 에런은 다른 40개의 홈런 캠페인에서 들어왔다. 7월 21일 그는 켄 브렛에 자신의 700번째 경력 홈런을 쳤다.

1974

[베이브 루스 기록 경신, MLB 홈런왕 등극]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앨 다우닝을 상대로 통산 715호 홈런을 쳐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어섰다. 5만 5천 명의 관중들이 환호했으며, 인종차별적 위협 속에서 이뤄낸 위대한 기록이었다.

1974년 신시내티 레즈의 잭 빌링햄을 상대로 오프닝 데이의 1번째 이닝에서 에런은 자신의 714번째 경력 홈런과 함께 베이브 루스와 동점을 매겼다. 4일 후, 4월 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상대로 앨 다우닝을 상대로 4회의 이닝의 말에서 에런은 5만 5천 명의 관중들을 대혼란으로 보내는 애틀랜타에서 좌익수의 울타리로 발포하며 715호 홈런을 기록,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어섰다. 오프시즌 동안 인종차별적인 전보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백인 영웅 베이브 루스의 기록이 깨지는 걸 두려워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보낸 온갖 협박편지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역사적인 기록이었다.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

로저 알렉산더와 데이브 메이를 상대로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하며,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던 도시에서 마무리할 기회를 얻었다.

1974년 11월 2일 로저 알렉산더와 데이브 메이를 위하여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되어 자신이 시작한 도시에서 자신의 경력을 끝낼 수 있었다. 나이와 부상으로 그해 타율 0.268을 기록했다.

1976

[통산 755호, 마지막 홈런 기록]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투수 딕 드래고를 상대로 자신의 755번째이자 마지막 홈런을 쳤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 마지막 홈런이었다.

1976년 7월 20일 에런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투수 딕 드래고에 자신의 755번째이자 마지막 홈런을 쳤다.

[선수 경력 마지막 경기]

밀워키 카운티 스타디움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23년간의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976년 10월 3일 밀워키 카운티 스타디움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을 마지막으로 메이저 리그 선수 경력을 마쳤다.

1982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97.83%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전설적인 선수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1982년 그는 97.83%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국프로야구에 영향, 첫 내한]

삼성그룹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하여 홈런 레이스, 사인회, 타격 지도 등으로 한국프로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현역 은퇴 후 1982년 8월 26일 삼성그룹의 초청을 받아 첫 내한했으며, 같은 해 9월 2일까지 대한민국에 머물면서 홈런 레이스, 사인회, 타격 지도 등을 했다.

1999

['행크 에런 상' 제정]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이 그의 이름을 딴 '행크 에런 상'을 제정했다. 이는 그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을 깬 지 25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한 것이다.

1999년 2월 5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은 에런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25주년을 맞아 행크 에런 상의 창조를 선언하였다. 이 상은 아메리칸과 내셔널 리그 양쪽에서 최고 타자들에게 해마다 수여되고 있다.

2021

[전설의 별이 지다]

애틀랜타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전 세계 야구 팬들이 그를 추모하며 위대한 야구인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그의 삶을 기렸다.

2021년 1월 23일 애틀랜타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미국 내 야구 팬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그를 추모했다. 장훈과 왕정치 역시 그를 애도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행크 에런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