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후디니
연표
1874
유대교 랍비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랍비 메이어 사무엘 와이즈와 세실리아이다. 그는 훗날 1907년 인터뷰에서 자신이 1874년 4월 6일 위스콘신 애플턴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878
[미국 이민 및 개명]
해리 후디니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여 이름을 에리치(Ehrich)로 바꾸고, '해리'라는 별명을 얻다.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 시기 에리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그를 '에리' 또는 '해리'라고 불렀다.
1880
정확한 날짜는 불확실하나, 이 시기부터 마술에 대한 재능을 보이며 카드 다루기에 몰두했다.
1883
정확한 날짜는 불확실하나, 이 시기부터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1885
[탈출 묘기 시작 및 예명 사용]
해리 후디니가 11살에 밧줄 풀기와 자물쇠 따기 묘기를 선보이며 탈출 마술의 기반을 다지고, '후디니'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당시 유명했던 프랑스 마술사 로버트 후딘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예명을 '후디니'로 정했다. 이 시기부터 탈출 마술의 잠재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1894
베스는 훗날 그의 마술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00
[탈출 마술로 세계적 명성]
해리 후디니가 신기에 가까운 탈출 묘기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며 마술계의 전설로 부상하다.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강물로 뛰어들거나, 도난 방지용 은행 금고에 들어가도 당당히 탈출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마술로 대중을 열광시켰다.
1913
[가짜 영매 적발 활동 시작]
해리 후디니가 어머니 세실리아의 사망 이후 가짜 영매와 사기꾼 초능력자들을 적발하는 활동을 시작하다.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고자 영매를 찾아갔다가 사기꾼임을 깨달은 후, 평생에 걸쳐 사기꾼들을 적발하는 데 헌신했다.
1920
[저서 '마술사와 그들의 요령' 출간]
해리 후디니가 마술에 대한 그의 지식과 통찰을 담은 저서 '마술사와 그들의 요령'을 출간하다.
이 책은 그의 마술 철학과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24
그는 마술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대중과 공유했다.
1926
[맥길대학교 복부 강타 사건]
해리 후디니가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교 방문 중 자신의 힘을 과시하다 학생에게 복부를 강타당하는 사고를 겪다.
조슬린 고든 화이트헤드라는 학생이 때린 강 펀치를 정통으로 맞아 훗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맥길대학교에서의 복부 강타 사고 이틀 후, 1926년 10월 31일 오후 1시 26분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마술사 학회에 이름이 새겨졌다.
1943
그녀는 후디니 옆에 묻히고 싶어했으나, 기독교(가톨릭) 가족들의 반대로 근처 웨스트 체스터의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