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거 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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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독일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분데스리가 창립 멤버로, 반세기 넘게 1부 리그에서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아 '분데스리가의 공룡'이라 불렸던 명문 구단입니다. 1919년 세 개의 지역 클럽이 병합되어 탄생한 이후, 우베 젤러라는 전설적인 영웅을 배출하며 황금기를 열었고 유럽 무대의 최정상을 호령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훗날 손흥민 등 수많은 스타가 거쳐간 북독일 축구의 굳건한 심장으로서 위대한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창단부터 첫 유럽 대항전 제패까지의 찬란한 전반부 서사를 먼저 소개합니다.
연표
1887
1887
[클럽의 가장 오래된 뿌리]
북독일 지역에서 육상 단체로 출발한 한 모임이 훗날 거대한 축구 제국의 가장 오래된 기원이 됩니다. 초기에는 육상을 주력으로 삼았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국인 멤버들이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도입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역사적인 대통합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됩니다.SC 게르마니아 1887(SC Germania 1887)은 현재 함부르거 SV의 공식적인 창립 연도로 인정받고 있는 뼈대 깊은 클럽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육상 클럽이었으나 지역 내 체육 문화 발전을 주도하며 훗날 거대 병합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기능했습니다.
1888
1888
[두 번째 기둥의 탄생]
항구 도시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축구팀이 결성되어 지역 내 스포츠 열기를 더했습니다. 이들은 빠르게 기량을 성장시키며 지역 대회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습니다. 북독일 축구계의 판도를 양분할 중요한 단체로 자리매김합니다.함부르거 FC 1888(Hamburger FC 1888)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명문 아마추어 구단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게르마니아 1887과 함께 지역 리그를 선도하며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1906
1906
[세 번째 퍼즐 조각]
기존 클럽들에 대항하기 위해 뜻을 모은 젊은이들이 새롭고 패기 넘치는 구단을 창설합니다. 이들은 특유의 상징색과 강렬한 엠블럼 디자인을 통해 팬들을 매료시켰습니다. 훗날 탄생할 통합 구단의 시각적 정체성을 완성하는 데 막대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FC 팔케 06(FC Falke 06)은 위대한 병합에 참여한 세 클럽 중 가장 늦게 창단되었지만 독보적인 팀 컬러를 자랑했습니다.
현재 함부르거 SV가 가슴에 달고 뛰는 상징적인 마름모꼴 엠블럼의 원형이 바로 이 클럽의 로고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10
1910
[첫 번째 안식처 마련]
팀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체계적인 훈련과 경기를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전용 구장이 문을 엽니다. 이곳은 지역 팬들이 빽빽하게 운집하여 열광하는 축구 성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질 클럽의 역사적인 첫 무대입니다.스포츠플라츠 암 로텐바움(Sportplatz am Rothenbaum)은 구단 초창기의 핵심적인 홈경기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증축을 거쳤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도 클럽의 주요 훈련장 및 2군 전용 경기장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1919
1919
[위대한 병합과 탄생]
전쟁의 참상으로 극심한 인력난과 재정난을 겪던 지역 내 세 클럽이 생존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로 결단합니다. 이 역사적인 결합을 통해 압도적인 자본과 선수단을 갖춘 거대 구단이 마침내 출범합니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북독일의 절대 지배자가 탄생했습니다.SC 게르마니아 1887, 함부르거 FC 1888, FC 팔케 06이 공식적으로 합병하여 마침내 '함부르거 SV(Hamburger Sport-Verein)'가 창설되었습니다.
클럽의 공식 색상은 파란색, 흰색, 검은색이나, 홈 유니폼은 전통적인 함부르크 시의 상징을 본떠 붉은색 반바지와 흰색 상의를 채택했습니다.
1922
1922
[승자 없는 끝장 승부]
전국 대회의 최정상을 가리는 무대에서 당대 최강팀과 맞붙었으나, 전례 없는 혈투 끝에 두 번이나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재경기마저 상대 팀의 인원 부족으로 무효 처리되면서 우승팀을 온전히 가리지 못하는 초유의 촌극이 벌어집니다.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기이한 결승전으로 깊게 각인되었습니다.1. FC 뉘른베르크와의 챔피언십 첫 결승전은 189분이라는 경이로운 시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해 일몰로 중단되었습니다.
재경기에서 뉘른베르크 선수들이 부상과 퇴장으로 7명만 남게 되자 심판이 경기를 종료시켰고, 협회가 함부르크의 우승을 선언했으나 구단 측에서 스포츠맨십을 이유로 트로피를 자진 반납했습니다.
1923
1923
[마침내 들어올린 첫 축배]
지난 시즌의 뼈아픈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결승 무대에 올라 압도적인 기량을 뽐냅니다. 수도를 연고로 한 강팀을 완벽하게 제압하며 합병 이후 구단 역사상 최초로 전국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북독일을 넘어 진정한 전국구 강자로 인정받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결승전에서 우니온 오버쇠네바이데(Union Oberschöneweide)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감격적인 빅토리아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팀은 독일 전역에 클럽의 위용을 과시하며 구단 역사상 첫 번째 눈부신 전성기의 포문을 열게 됩니다.
1928
1928
[영광의 두 번째 별]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파죽지세로 결승에 진출하여 또 다른 신흥 강호를 마주합니다. 화끈한 난타전을 펼친 끝에 큰 점수 차로 대승을 거두며 통산 두 번째 전국 대회 우승 트로피를 수집합니다. 전간기 독일 무대 최강팀의 입지를 빈틈없이 공고히 다집니다.결승 무대에서 만난 강호 헤르타 BSC를 5:2로 처참하게 격파하며 다시 한번 독일 축구의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당시 함부르크는 북독일 지역 리그에서 1920년대 내내 압도적인 우승 횟수를 자랑하며 지역 내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1933
1933
[정권 교체와 암흑기]
국가의 정치 체제가 급변하면서 축구 리그 역시 전체주의 정권의 입맛에 맞게 전면적으로 재편됩니다. 지역 리그에서는 여전히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전국 단위 대회에서는 신흥 강호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거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클럽 역시 뼈아픈 침체기를 감내해야 했습니다.나치 정권이 체제 선전을 위해 새롭게 도입한 '가울리가 노르트마르크(Gauliga Nordmark)' 리그에 편입되어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샬케 04 등이 전국 무대를 지배한 반면, 함부르크는 가울리가 우승에도 불구하고 전국 챔피언십 결승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하는 등 상대적 부진을 겪었습니다.
1947
1947
[폐허 위에서 쓴 독주극]
파괴적인 전쟁이 끝난 후, 새롭게 출범한 지역 최상위 리그에서 그야말로 적수가 없는 절대 지배자로 군림합니다. 무려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든 시즌의 우승을 독식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새로운 황금기를 맞이하기 위한 가장 튼튼한 토대가 마련됩니다.1947년부터 1963년 분데스리가 창설 전까지 존재했던 오버리가 노르트(Oberliga Nord) 체제에서 16번의 시즌 중 무려 15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역 라이벌인 FC 장크트 파울리 등이 대항마로 나섰으나, 함부르크의 압도적인 전력과 기세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53
1953
[새로운 심장의 박동]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잔해를 모아 지어진 거대한 현대식 경기장으로 둥지를 옮깁니다. 수만 명의 관중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이 웅장한 무대는 클럽의 다가올 영광을 넉넉히 담아낼 그릇이 됩니다. 이 구장은 이후 수차례의 증축을 거치며 클럽과 끈끈한 운명을 함께합니다.제2차 세계대전 후 알토나 지역에 새롭게 건축된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Volksparkstadion)이 공식 개장하며 클럽의 새 시대를 알렸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수차례 개축되었으며, 월드컵과 유로 등 대형 국제 대회를 성공적으로 유치하는 북독일 최대의 축구 성지로 자리매김합니다.
1954
1954
[전설의 서막을 올리다]
클럽의 유스 시스템을 거친 한 당찬 젊은 공격수가 성인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득점력과 아크로바틱한 슈팅은 단숨에 팬들을 흠뻑 매료시켰습니다. 훗날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될 영웅의 위대한 첫 발걸음입니다.팬들 사이에서 '우어 젤러(Unser Uwe, 우리의 우베)'라 불리게 될 구단 역대 최고의 레전드 우베 젤러가 1군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는 오직 함부르크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구단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고, 팀의 영원한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0
1960
[32년 만에 되찾은 왕좌]
구단의 간판 스트라이커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팀을 전국 대회 결승으로 이끕니다. 팽팽한 접전 끝에 극적인 역전 결승골이 터지며 무려 30여 년 만에 챔피언 트로피를 품에 안습니다. 좁은 지역 무대를 넘어 마침내 독일 전역의 진정한 제왕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결승전에서 1. FC 쾰른을 3:2로 꺾고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전국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우승을 바탕으로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여 이듬해 4강에까지 오르는 놀라운 국제적 성과를 기록합니다.
1963
1963
[역사적인 첫 컵대회 제패]
통합 프로 리그 출범을 코앞에 두고 열린 전국 컵대회 결승에서 압도적인 공격력을 과시하며 역사적인 첫 우승을 달성합니다. 당대 최고의 활약을 펼친 간판 공격수가 해트트릭을 쏘아 올리며 팀에 완벽한 승리를 안겼습니다. 이는 다가올 험난한 프로 무대를 앞두고 구단의 전력을 과시한 훌륭한 예열이었습니다.우베 젤러가 결승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폭발시키며 3:0 완승을 견인했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DFB-포칼 트로피를 획득하며 다가올 분데스리가 원년 시즌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1963
['분데스리가의 공룡' 출범]
독일 전역을 통합하는 최초의 프로 축구 리그가 출범하자, 북독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당당히 창립 멤버에 합류합니다. 역사적인 첫 경기부터 무승부를 기록하며 프로 무대의 지독한 생존 경쟁을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훗날 반세기가 넘도록 단 한 번도 강등을 허락하지 않을 대기록의 첫 페이지가 열렸습니다.서독 전역의 최고 클럽 16개를 모아 야심 차게 출범한 분데스리가(Bundesliga)의 원년 멤버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함부르크는 무려 2018년까지 단 한 번의 강등 없이 1부 리그를 굳건히 지켰으며, 이로 인해 리그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공룡(Dino)'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됩니다.
1968
1968
[첫 유럽 대항전 결승 진출]
리그 내 우승컵의 영광을 발판 삼아 유럽의 쟁쟁한 강호들이 겨루는 국제 대회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비록 이탈리아의 막강한 명문 팀에게 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유럽 전역에 팀의 뛰어난 경쟁력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준 무대였습니다.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지안니 리베라가 버틴 이탈리아의 AC 밀란에게 0:2로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 결승에 오르며 국제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여실히 입증한 기념비적인 시즌이었습니다.
1972
1972
[영원한 캡틴의 작별]
클럽의 화려한 중흥기를 이끌었던 역사상 최고의 전설이 오랜 세월 누볐던 그라운드를 마침내 떠납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대거 초청되어 헌정 경기를 치르며 그의 위대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었습니다.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새로운 세대교체가 불가피해진 결정적인 순간입니다.세계 올스타팀(World XI)이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에 초청되어 우베 젤러의 은퇴를 기념하는 감동적인 헌정 경기를 가졌습니다.
젤러의 은퇴 이후 구단은 잠시 전력 누수를 겪으며 과도기를 거치게 되지만, 머지않아 도래할 70년대 후반의 찬란한 황금기를 착실하게 준비하게 됩니다.
1973
1973
[과도기를 끊어낸 컵대회 제패]
전설의 은퇴 이후 얕은 침체기에 빠질 뻔했던 팀이 새롭게 신설된 컵대회에서 보란 듯이 우승하며 반등의 강력한 신호탄을 쏩니다.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공격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거북한 지역 라이벌을 가볍게 제압했습니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던 무척 귀중한 트로피였습니다.당시 신설되었던 DFB-리가포칼(Ligapokal) 결승전에서 라이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두며 대회 초대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이 값진 우승은 1970년대 후반부터 매섭게 몰아칠 구단 역사상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향한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1976
1976
[진정한 황금기의 서막]
안정적인 전력을 새롭게 구축한 구단이 오랜만에 국가적인 메이저 컵대회 정상에 서며 과거의 영광을 완벽히 재현해 냅니다. 이 짜릿한 우승을 통해 다음 시즌 유럽 클럽 대항전 진출권을 당당히 확보하게 됩니다. 유럽 제패라는 거대한 꿈을 향한 위대한 항해가 닻을 올렸습니다.DFB-포칼 결승전에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을 2:0으로 물리치고 구단 역사상 두 번째 DFB-포칼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후 구단은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케빈 키건 등을 영입하며 분데스리가는 물론 유럽 전역을 호령할 역대 최고의 스쿼드를 완성해 나갑니다.
1977
1977
[구단 최초의 유럽 대륙 제패]
지난 시즌 컵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나선 국제 무대에서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며 다시 한번 결승에 오릅니다. 막강한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은 끝에 통쾌한 쐐기골로 승리를 거둡니다. 마침내 대륙 정상에 구단의 이름을 새겨 넣으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섰습니다.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벨기에의 절대 강호 RSC 안데를레흐트를 2:0으로 격파하고 클럽 역사상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게오르크 폴케르트의 선제골과 펠릭스 마가트의 추가골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가장 역사적인 쾌거 중 하나였습니다.
1979
1979
[키건과 함께한 리그 제패]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를 영입한 후 마침내 통합 프로 리그 출범 이후 첫 정상을 차지합니다. 압도적인 공격 전술을 바탕으로 지역 라이벌들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며 통산 네 번째 전국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클럽의 가장 눈부신 황금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잉글랜드 출신의 발롱도르 수상자 케빈 키건의 맹활약에 힘입어 분데스리가 출범(1963년) 이후 첫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브란코 제베치 감독의 혹독한 체력 훈련과 전술이 빛을 발하며 유럽 전역에 함부르크의 위용을 과시하게 됩니다.
1980
1980
[아쉬운 유럽 최상위 무대 준우승]
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최고 권위의 유럽 대항전에서 거침없이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다크호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맙니다. 비록 패배했으나 세계 축구의 중심에 확실히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습니다.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잉글랜드의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0:1로 패하며 아쉽게 '빅이어'를 눈앞에서 놓쳤습니다.
케빈 키건의 이탈 등 선수단 변화가 있었으나, 이 뼈아픈 패배는 훗날 유럽 제패를 위한 소중한 자양분이 됩니다.
1982
1982
[전설적인 명장의 부임과 무패행진]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명장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팀은 역대 최강의 조직력을 갖추게 됩니다. 특유의 전방 압박과 오프사이드 트랩 전술을 완벽히 이식하며 다시 한번 리그 최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무패 행진의 대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에른스트 하펠 감독이 부임한 첫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을 따돌리고 분데스리가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기 함부르크는 분데스리가 36경기 연속 무패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세우며 유럽 전역에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습니다.
1983
1983
[영광의 '더블' 달성]
유럽 제패의 엄청난 기세를 몰아 자국 리그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막강한 득점 기계들의 활약에 힘입어 구단 역사상 유일무이한 더블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구단 창단 이래 가장 빛나는 황금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입니다.에른스트 하펠 감독의 지휘 아래 분데스리가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유러피언컵 우승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이 시즌은 함부르거 SV 100년이 넘는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최전성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3
[마침내 들어올린 '빅이어']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밤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펼쳐집니다. 이탈리아 최강의 군단을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 슛이 결승골로 이어지며 마침내 유럽 클럽 대항전의 최정상에 등극합니다. 유럽 챔피언이라는 영원불멸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전설을 완성했습니다.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던 유벤투스를 상대로 펠릭스 마가트가 통쾌한 결승골을 터뜨려 1: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함부르크는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독일 클럽 사상 두 번째로 빅이어를 차지한 위대한 구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1987
1987
[황금기의 끝자락, 마지막 우승]
영원할 것 같았던 전성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가운데, 컵대회 결승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며 귀중한 트로피를 추가합니다. 하지만 이 우승은 구단이 차지한 마지막 메이저 대회 트로피가 되고 맙니다. 화려했던 시대와의 씁쓸한 작별을 고하는 영광스러운 피날레였습니다.DFB-포칼 결승전에서 슈투트가르트 키커스를 3:1로 물리치고 구단 통산 세 번째 포칼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후 함부르크는 잦은 감독 교체와 경영진의 내분으로 인해 기나긴 암흑기로 접어들며, 수십 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2000
2000
[최첨단 경기장으로의 재탄생]
과거의 영광을 함께했던 낡은 구장이 철거되고, 축구 전용의 최첨단 현대식 구장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하여 팬들을 맞이합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거리가 대폭 좁혀져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요새로 거듭났습니다. 다가올 새 천년의 재도약을 위한 거대한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육상 트랙이 있던 기존의 구장을 완전히 허물고 90도 회전시켜 축구 전용 구장인 'AOL 아레나(현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로 전면 재개장했습니다.
약 5만 7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웅장한 신구장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주요 경기를 치르는 등 북독일 축구의 거대한 심장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2000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의 명승부]
길었던 암흑기를 끊어내고 모처럼 유럽 최상위 무대에 복귀하여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엄청난 명승부를 펼칩니다. 비록 다음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유럽의 거함을 상대로 난타전을 벌이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상징적인 밤이었습니다.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개막전에서 이탈리아의 거함 유벤투스를 상대로 4:4라는 믿기 힘든 펠레스코어 명승부를 연출하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안토니 예보아 등 스타 플레이어들의 활약이 빛났으며, 오랜 침체를 겪던 구단이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기념비적인 경기입니다.
2005
2005
[인터토토컵 제패와 부활의 날갯짓]
강등 위기에 몰렸던 팀을 구원한 젊은 사령탑의 지휘 아래, 유럽 클럽들이 격돌하는 국제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반등에 성공합니다. 이를 발판 삼아 상위권 클럽 대항전 본선 진출권을 따내며 쏠쏠한 성과를 거둡니다. 다시금 강호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토마스 돌 감독 체제하에 UEFA 인터토토컵 결승에서 스페인의 발렌시아 CF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 등 뛰어난 미드필더를 영입하며 다시 분데스리가 상위권 경쟁에 뛰어드는 등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준비를 마칩니다.
2010
2010
[열여덟 살 손흥민의 등장]
구단의 유스 시스템이 정성껏 길러낸 대한민국의 어린 선수가 1부 리그 성인 무대 데뷔전에서 전광석화 같은 득점을 터뜨리며 전 세계를 경악시킵니다. 팀의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단숨에 혜성 같은 에이스로 급부상합니다. 훗날 세계 최고로 성장할 선수의 가장 눈부신 첫 발걸음입니다.손흥민 선수가 1. FC 쾰른과의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골키퍼를 제치고 환상적인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만 18세 3개월 22일의 득점으로 무려 39년간 깨지지 않던 함부르크 구단 역사상 분데스리가 최연소 득점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2013
2013
[흔들리는 팀을 지탱한 소년 가장]
구단의 재정난과 부진으로 강등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젊은 공격수가 폭발적인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구세주로 등극합니다. 중원의 에이스와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위기에 빠진 팀을 수렁에서 연일 건져 올렸습니다. 구단의 암흑기 속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난 보석이었습니다.2012-13 시즌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서 12골을 폭발시키며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와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며 팀의 공격을 홀로 이끌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꿀벌 군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멀티골을 터뜨리는 등 강팀 킬러로 명성을 떨치며 함부르크의 1부 리그 생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2013
[최고 이적료를 남긴 손흥민과의 작별]
수년간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눈부신 기량을 뽐낸 에이스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들었던 클럽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가치에 걸맞은 막대한 이적료는 재정난에 허덕이던 구단에 가뭄의 단비 같은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화려하고도 슬픈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손흥민 선수는 1,000만 유로(당시 환율 약 150억 원)라는 함부르크 구단 역사상 역대 최고 이적료 수입 기록을 안겨주며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습니다. 함부르크 팬들은 유스 시절부터 애지중지 키워온 그가 남긴 헌신과 거액의 이적료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그의 앞날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2014
2014
[기적처럼 멈춰 세운 강등의 시계]
끝없는 부진 속에 창단 이래 최초로 하부 리그 강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립니다. 숨 막히는 벼랑 끝 승부에서 원정 다득점 원칙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간신히 1부 리그 생존을 확정 짓습니다. '분데스리가의 공룡'이라는 낡은 자존심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낸 식은땀 흐르는 순간이었습니다.정규 리그를 16위로 마감한 후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의 치열한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 합계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으로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구단의 방만한 경영을 질타하는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2014
[구단 체질 개선을 위한 독립법인화]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구단은 만성적인 재정난과 비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거대한 개혁을 단행합니다. 프로 축구 부문을 주식회사로 완전히 분리하여 외부 자본 수혈의 길을 엽니다. 지역 출신의 거부 구단주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환골탈태를 시도합니다.압도적인 회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된 'HSV 플러스(HSVPlus)' 프로젝트에 따라 프로 축구 부문이 독립된 주식회사 구조로 재편되었습니다.
억만장자 클라우스미하엘 퀴네(Klaus-Michael Kühne)가 주요 투자자로 나서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으나, 경영 간섭 논란이 일며 근본적인 성적 부진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습니다.
2015
2015
[경기 종료 1분 전의 기적]
불과 1년 만에 또다시 강등의 벼랑 끝에 서게 된 팀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 패배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절망이 구장을 뒤덮던 마지막 순간, 환상적인 프리킥 한 방이 기적처럼 골망을 가르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갑니다. 구단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소름 돋는 잔류 드라마가 쓰여졌습니다.카를스루에 SC와의 강등 플레이오프 2차전 원정 경기에서 0:1로 뒤져 강등이 확정적이었던 후반 46분, 마르셀로 디아스가 천금 같은 직접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니콜라이 뮐러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지며 2:1로 승리, 구단을 지키던 시계가 멈출 뻔한 위기를 2년 연속으로 넘겼습니다.
2018
2018
[54년 만에 멈춘 역사적인 시계]
수년 동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던 생존 본능도 마침내 처참한 한계에 다다르고 맙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 팀의 결과에 밀려 구단 창단 이후 최초의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맞이합니다. 분데스리가를 지키던 유일한 원년 멤버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2017-18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했으나 최종 17위를 기록, 창단 후 무려 54년 넘게 지켜온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충격적인 강등을 당했습니다.
홈구장 한편에서 1부 리그 생존 시간을 1초 단위로 자랑스럽게 표시하던 상징적인 전광판 시계도 이 순간 54년 261일 36분 2초를 끝으로 영원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2019
2019
[엇갈린 승격의 꿈과 4위 징크스]
강등의 충격을 딛고 1년 만에 곧바로 1부 리그 복귀를 자신했으나, 시즌 막바지 믿을 수 없는 연쇄 부진에 빠지며 승격 티켓을 허무하게 놓치고 맙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도 승격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지독한 악몽의 첫 단추가 끼워집니다. 전 세계 팬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2부 리그 강등 첫 시즌인 2018-19 시즌, 전반기만 해도 선두를 달리며 다이렉트 승격이 유력해 보였으나 후반기 급격한 추락으로 최종 4위에 머물며 승격에 실패했습니다.
이 잔혹한 '4위 징크스'는 이후 무려 세 시즌(19-20, 20-21) 연속으로 반복되며 함부르크 팬들에게 끝없는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2022
2022
[플레이오프의 잔혹한 역전패]
기나긴 하부 리그 생활을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잡아 1부 리그 팀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섭니다. 원정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며 1부 복귀를 눈앞에 두었으나, 정작 안방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잔혹한 운명의 장난에 또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2021-22 시즌 2부 리그 3위를 기록하며 헤르타 BSC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습니다.
베를린 원정 1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두었으나, 홈인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에서 열린 2차전에서 0:2로 완패하며 합계 스코어 1:2로 다 잡았던 승격 티켓을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2023
2023
[두 번째 플레이오프 좌절과 눈물]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단 1점 차이로 다이렉트 승격을 놓치고 맙니다. 이어진 승격 플레이오프에서는 1부 리그 강호의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깊어지는 2부 리그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씁쓸한 현실을 재차 확인했습니다.2022-23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 후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다이렉트 승격을 축하했으나, 같은 시각 경쟁 팀이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3위로 밀려나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이어진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 합계 1:6으로 처참하게 완패하며 승격이 또다시 좌절되었습니다.
2024
2024
[끝나지 않은 2부 리그에서의 사투]
수많은 감독 교체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승격의 문턱에서 뼈아픈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 유럽을 호령하던 거인의 자존심은 많이 상처 입었지만, 여전히 북독일 팬들의 변함없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부활을 꿈꿉니다. 언젠가 다시 멈췄던 시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치열한 사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2023-24 시즌 역시 또다시 4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했습니다.
무려 6시즌 연속 2부 리그에 머물게 되었음에도 홈구장에는 매 경기 5만 명 이상의 평균 관중이 운집하며 분데스리가 최상위권의 압도적인 팬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클럽의 찬란한 영광을 되찾기 위한 끝없는 도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