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연표
1985
한화그룹은 한국 프로 야구 리그 참가를 목표로 1월 15일 창단 준비 위원회를 발족하여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KBO, 제7구단으로 빙그레 이글스 승인]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제7구단으로 공식 승인받아 프로야구단 창단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한화그룹의 창단 준비 위원회가 발족된 다음 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빙그레 이글스를 한국 프로 야구의 7번째 구단으로 승인하며 프로 무대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빙그레 이글스 공식 설립 및 배성서 감독 취임]
대전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이 설립되었고, 배성서 감독이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그 해에는 2군 리그에 참가하며 전력을 다졌습니다.
1985년 3월 11일, 대전광역시를 연고지로 한 '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배성서 감독이 팀의 초대 사령탑을 맡았으며, 팀은 1군 리그 참가에 앞서 2군 리그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1986
[빙그레 이글스 창단 및 1군 리그 참가]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식을 개최하고, 처음으로 1군 리그에 참가하며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86년 3월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성대한 창단식을 열며 빙그레 이글스가 1군 프로 야구 리그에 공식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첫 해 정규 리그 7위로 시즌을 마감했으나, 후기 리그에서는 트레이드된 장명부와 이상군의 활약으로 6위에 오르며 신생팀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전 창단식에 이어 1986년 3월 9일에는 청주종합경기장 야구장에서 두 번째 창단식을 열어 충청 지역 전반에 걸쳐 팬들에게 팀을 알리고 프로야구의 열기를 전했습니다.
1987
[이정훈 선수 신인왕 수상 및 감독 교체]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이정훈 선수가 팀 최초의 신인왕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후 선수들의 부진으로 배성서 감독이 사임하고 김영덕 감독이 새로 취임했습니다.
1987년, 빙그레 이글스는 이정훈 선수가 팀 최초로 신인왕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부진이 이어지자 배성서 감독이 사임하고, 이어서 김영덕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취임하며 팀의 변화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1988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
김영덕 감독 영입 후 정규 시즌 2위를 기록,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3전 전승으로 꺾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2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김영덕 감독 체제 아래 1988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2위를 달성하며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전 전승을 거두며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장거리포 타자 부재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1989
[창단 첫 정규 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준우승)]
창단 4년 만에 6할 승률로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1승 4패를 기록하며 두 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1989년, 빙그레 이글스는 창단 4년 만에 6할의 높은 승률로 정규 시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온 해태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맞붙었으나, 1차전 승리 이후 4연패를 당하며 1승 4패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장종훈 선수의 결정적인 실책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1990
[준플레이오프 탈락 및 내부 갈등]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2패를 당하며 포스트시즌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김영덕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갈등도 표면화되었습니다.
1990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3위를 차지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2패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습니다. 시즌 막판 주전 유격수 장종훈의 어깨 부상과 '종신감독 파동' 등 김영덕 감독과 비북일파 선수들 간의 갈등이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김성갑, 고원부, 유승안, 한희민 등 비북일파 출신들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1991
[한국시리즈 3번째 준우승]
정규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삼성 라이온즈를 3승 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해태 타이거즈에게 0승 4패로 스윕당하며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장종훈 선수는 이 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었습니다.
1991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3승 1패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 시즌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세 번째로 만나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0승 4패로 스윕당하며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주전 유격수 황대연의 플레이오프 부상으로 인한 내야 수비 허점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편, 장종훈 선수는 이 해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며 뛰어난 활약을 인정받았습니다.
1992
[정규 시즌 압도적 1위와 한국시리즈 4번째 준우승]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 정규 시즌 압도적인 1위(81승 2무 43패)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1승 4패로 패배하며 네 번째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장종훈 선수는 41개 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었습니다.
1992년, 빙그레 이글스는 81승 2무 4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습니다. 팀 홈런 146개를 기록하고 장종훈(41홈런), 이정훈(타율 0.360, 25홈런) 등이 맹활약했습니다. 신인 정민철은 14승, 송진우는 19승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3위 롯데 자이언츠에게 1승 4패로 패배하며 네 번째 준우승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황대연의 군 입대로 인한 내야 수비 부실과 대형 투수 부재가 패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장종훈 선수는 2년 연속 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었습니다.
1993
[빙그레 이글스 마지막 시즌]
이정훈, 장종훈 선수 부상, 한희민 트레이드 등 부진에 시달려 정규 시즌 5위로 마감했습니다. 구대성 선수가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첫 해 부진했습니다. 시즌 후 모그룹명을 따라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을 변경했으며, 김영덕 감독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습니다.
1993년, 빙그레 이글스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베테랑 투수 한희민의 트레이드 등 여러 악재로 인해 부진에 시달렸고 정규 시즌 5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프로 2년차 정민철이 홀로 고군분투했으며, 구대성 선수가 1차 지명으로 입단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시즌 후인 11월 1일, 구단은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모기업명인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을 변경했습니다. 김영덕 감독도 계약 기간 만료로 팀을 떠나며 빙그레 시대의 막을 내렸습니다. 강병철 감독 부임과 함께 일본과의 커넥션이 끊어지고 2군 운영의 파행도 드러났습니다.
1993년 11월 1일, 팀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빙그레 이글스'에서 모그룹명인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을 변경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4
[강병철 감독 시대 개막 및 세대교체 추진]
강병철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을 맡았지만, 이후 5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은 두 차례에 그쳤습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 등 향후 팀의 주축이 될 선수들을 대거 지명하며 세대교체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새로운 구단명 '한화 이글스'와 함께 강병철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한화는 두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에 그치는 부진을 겪었으나,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영우, 송지만, 임수민 등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할 주축 선수들을 대거 지명하며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물꼬를 텄습니다. 기존 송진우와 정민철이 좌우 에이스로 자리 잡았고, 데뷔 초 부진했던 구대성도 '대성불패'로 거듭났습니다. 강병철 감독은 부임과 함께 북일고 출신 선수들을 홀대하여 내부 갈등이 있었으나 한용덕 선수는 잔류했습니다.
1998
[강병철 감독 경질 및 이희수 감독대행 체제]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강병철 감독이 올스타전 진행 중 경질되었고, 이희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이끌었습니다.
1998년 7월 9일, 올스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강병철 감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북일고 감독 출신인 이희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맡아 남은 시즌을 치렀고, 시즌 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99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양대 리그 출범 후 매직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를 4승 1패로 누르고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구대성 선수가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1999년, 새로운 양대 리그 체제에서 한화 이글스는 매직 리그 2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드림 리그 1위 두산 베어스를 플레이오프에서 4전 전승으로 압도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한화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4승 1패의 전적으로 창단 이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역사를 썼습니다. 외국인 타자 댄 로마이어와 제이 데이비스가 맹활약했고, 정민철이 18승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구대성 선수가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2000
[우승 다음 해의 부진과 주축 선수 이탈]
우승 다음 해인 2000년, 타선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투수진 운영 난조로 시즌 7위로 추락했습니다. 에이스 정민철의 요미우리 진출과 이상목의 부상 이탈, 구대성의 일본 진출 등으로 전력 손실이 컸습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 뒤, 2000년 한화 이글스는 3할 타자 3명, 20홈런 타자 5명으로 이루어진 강타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시즌 7위로 추락했습니다. 전년도 에이스 정민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진출, 이상목의 부상 이탈, 그리고 시즌 후 구대성의 일본 프로 야구 진출로 팀의 핵심 투수들이 대거 이탈하며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희수 감독과의 재계약도 불발되고 댄 로마이어도 방출되었습니다.
2001
[김태균 신인왕 수상 및 준플레이오프 탈락]
구대성의 공백으로 마무리 투수 부재에 시달렸지만 5할 미만의 승률로 4위에 올랐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 베어스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으며, 신인 내야수 김태균 선수가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2001년, 갑작스런 구대성의 공백으로 한화는 마무리 투수 부재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할이 안 되는 승률로 4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습니다. 이 해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신인 내야수 김태균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2002
[이광환 감독 경질]
시즌 7위를 기록한 후 이광환 감독이 경질되었습니다. 장종훈 선수가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노쇠화를 보였습니다.
2002년, 한화 이글스는 시즌 7위에 머물렀고, 이에 이광환 감독이 경질되었습니다. 팀의 베테랑이자 상징적인 선수였던 장종훈이 타율 .248, 12홈런으로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며 팀의 침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후임 감독으로는 윤동균 코치가 거론되었으나 팀을 떠나 무산되었고, 유승안 전 코치가 발탁되었습니다.
2003
[유승안 감독 부임과 송지만 이적]
유승안 감독 부임 첫 해에 5위를 기록했습니다. 프런트와의 마찰로 1999년 우승 멤버였던 외야수 송지만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2003년, 유승안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팀은 시즌 5위를 기록했으나, 시즌 후 프런트와의 마찰로 인해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송지만 선수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유승안 감독은 세대교체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노장 선수들을 지나치게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04
[유승안 감독 시대 종료 및 김인식 감독 선임]
시즌 7위로 부진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 유승안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인식 감독이 새로 선임되었습니다.
2004년, 한화 이글스는 시즌 7위에 그치며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유승안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고, '야구인생 기로'에 섰던 김인식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유승안 시프트 사건 발생]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1사 만루 위기에 유승안 감독이 좌익수 이영우를 내야로 불러들이는 '내야 5인 수비망' 시프트를 지시했으나, 좌측 적시타로 이어져 득점을 허용하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2004년 6월 25일 잠실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3:0으로 뒤진 8회, 1사 만루의 위기 상황에서 유승안 감독은 내야 병살을 유도하기 위해 좌익수 이영우를 내야로 불러들이는 파격적인 '내야 5인 수비 시프트'를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좌측으로 날아가는 2타점 적시타였고, 이영우가 제 위치에 있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기에 '유승안 시프트 사건'으로 회자되며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2005
[김인식 감독 부임 첫 해 포스트시즌 진출]
김인식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를 3승 2패로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3전 전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2005년, 한화 이글스는 정규 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새로운 활력을 보였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3승 2패의 역전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두산 베어스에게 3전 전패를 당해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2006
[류현진 신인상·MVP 동시 석권 (KBO 최초)]
2차 1순위로 입단한 '괴물 투수' 류현진이 데뷔 첫 해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신인상과 MVP를 동시 석권하는 KBO 리그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했으나 준우승했습니다.
2006년은 한화 이글스의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해였습니다. 2차 1순위로 입단한 좌완 투수 류현진은 프로 데뷔 첫 해에 다승(18승), 평균자책(2.23), 탈삼진(204개)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동시에 신인상과 MVP를 석권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문동환의 16승과 구대성의 37세이브가 더해져 정규 시즌 3위로 마쳤고,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삼성 라이온즈에게 1승 1무 4패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외국인 선수 제이 데이비스가 이 해를 끝으로 팀을 떠났습니다.
2007
[준플레이오프 승리, 플레이오프 탈락]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3전 전패를 당하며 또 다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2007년, 한화 이글스는 제이콥 크루즈, 세드릭 바워스 등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며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2승 1패로 승리하며 전년도 한국시리즈 패배를 되갚았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2005년에 이어 또 다시 3전 전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2008
[암흑기의 시작과 류현진 병역 해결]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불구하고 주전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 베이징 올림픽 후유증으로 정규 시즌 5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류현진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을 해결한 것은 긍정적인 소식이었습니다.
2008년, 외야수 덕 클락과 좌투수 브래드 토머스를 영입하며 시즌 중반까지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주전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 베이징 올림픽 출전으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인해 정규 시즌 5위로 마감하며 기나긴 암흑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다행히 류현진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문제를 해결한 것은 팀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9
[창단 첫 최하위 기록 및 레전드 은퇴]
팀 창단 원년인 1986년 이후 최초로 정규 시즌 최하위(8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레전드 투수 송진우와 정민철이 현역에서 은퇴했고, 이들의 배번 21번과 23번은 영구 결번 처리되었습니다. 김인식 감독이 계약 만료로 물러났습니다.
2009년, 한화 이글스는 덕 클락의 이적, 빅터 디아즈 방출 등 외국인 선수 교체와 김태균 선수의 뇌진탕 부상 등의 악재가 겹치며 정규 시즌 8위를 기록, 1986년 팀 창단 원년 이후 최초로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팀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투수 송진우와 정민철이 현역에서 은퇴하며 21번과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김인식 감독은 계약 기간 만료로 팀을 떠났습니다. 시즌 후 김태균과 이범호가 FA를 선언하고 일본 프로 야구로 진출하며 팀의 전력 손실이 더욱 커졌습니다.
2010
[한대화 감독 부임과 2년 연속 최하위]
한대화 감독이 부임했으나, 주축 투수들의 은퇴와 부상, 타선의 부진으로 2년 연속 최하위(8위)를 기록했습니다. 최진행 선수가 새로운 다이너마이트 주포로 떠올랐습니다. 시즌 후 대대적인 선수 방출과 FA 이도형, 최영필, 이영우, 구대성 선수와의 결별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2010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였던 한대화가 리빌딩을 목표로 감독에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송진우, 정민철 등 베테랑 투수들의 은퇴와 류현진을 제외한 투수진의 괴멸적인 부진, 주전 타자들의 부진이 겹치며 2년 연속 최하위인 8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찰청에서 제대한 최진행이 이대호에 이어 홈런 2위를 기록하며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대수, 정원석, 장성호 등을 영입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시즌 후 팀 리빌딩을 명목으로 대거 선수들을 방출하며 논란이 일었고, 이영우가 은퇴, 구대성이 KBO를 떠났습니다.
2011
[탈꼴찌 성공과 주요 선수 영입]
주전 선수들의 병역 이행, 이범호 선수 이탈 등으로 전력이 약화되어 시즌 초 최악의 부진을 겪었으나, 시즌 중반부터 반등에 성공하여 공동 6위로 탈꼴찌에 성공했습니다. 이대수 선수가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시즌 후 김태균, 박찬호 선수가 팀에 합류했습니다.
2011년, 김태완, 송광민 등 리빌딩 핵심 선수들의 병역 이행과 이범호 선수를 KIA에 빼앗기며 전력 약화를 겪었습니다. 4월 승률 3할 미만의 최악의 부진과 구단 운영진 총 사퇴 사태를 겪었으나, 5월 중순 조인성-전현태 충돌 사건 이후 팀이 환골탈태하며 급격한 상승세를 탔습니다. 박정진, 신주영 등 투수진이 활약하고 장성호가 부활했습니다.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며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했고, 이대수, 카림 가르시아의 만루 홈런 포함 3일 연속 만루 홈런이라는 KBO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결국 공동 6위로 탈꼴찌에 성공했으며, 이대수가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스토브리그에서 김태균과 박찬호가 한화 이글스에 합류했습니다.
2012
[최하위 추락과 한대화 감독 경질]
김태균, 송신영, 박찬호 등 주요 선수 영입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최하위(8위)로 추락했습니다. 결국 한대화 감독이 경질되었고, 한용덕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2012년, 김태균, 송신영, 박찬호 등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브라이언 배스, 숀 헨 등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과 류현진의 승운 부재 속에 또 다시 최하위인 8위로 추락했습니다. 결국 8월 28일, 한대화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고, 한용덕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이끌었습니다. 팀은 얇은 선수층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즌 최종 순위 8위로 마감했습니다.
2013
[김응용 감독 부임, 개막 최다 연패와 9위 기록]
김응용 감독 부임 후 FA 영입 실패와 함께 시즌 개막 후 13연패라는 KBO 리그 한 시즌 개막 최다 연패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9개 구단으로 치러진 첫 시즌에서 팀 사상 최초로 9위(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2013년, '야구계의 대부' 김응용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류현진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포스팅으로 이적시키며 280억원의 거금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FA 영입에 실패하며 시즌 초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즌 개막 후 13연패를 기록하여 KBO 리그 한 시즌 개막 최다 연패 신기록을 세웠고, 투수 혹사 논란 등 선수 운용에 대한 비판도 거셌습니다. 결국 신생팀 NC 다이노스에게도 밀리며 KBO 리그 팀 사상 최초로 9위를 기록하는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시즌 후 이브랜드와 바티스타는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2014
[이용규, 정근우 영입에도 최하위 기록]
FA로 이용규와 정근우를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으나, 또 다시 시즌 최종 최하위(9위)를 기록하며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시즌 후 김응용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김성근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2014년, FA 기간을 통해 이용규와 정근우를 영입하며 전력 보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2차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가 정근우의 보상선수로 '데려갈 만한 선수가 없다'고 밝히는 등 여전히 얇은 선수층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결국 시즌 최종 성적은 또 다시 최하위인 9위를 기록하며 최근 6년 동안 5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하는 최악의 암흑기를 이어갔습니다. 시즌 종료 후 김응용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한화 이글스의 제10대 사령탑으로 '야신' 김성근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2015
[김성근 감독 부임과 대규모 선수 영입]
김성근 감독 부임 후 권혁, 배영수, 송은범 등 FA 선수와 방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팀 전력을 강화했습니다. 최종 순위는 6위를 기록했습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FA 시장을 통해 권혁, 배영수, 송은범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고, 타 팀에서 방출된 선수 8명과도 계약하며 대규모 선수 보강을 단행했습니다. 팬들의 뜨거운 기대 속에 '가을 야구'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최종 순위는 6위를 기록하며 전년도보다 상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6
[주요 선수와 FA 계약 및 추가 영입]
김태균, 조인성 선수와 FA 계약을 체결하고, 심수창, 정우람 선수를 외부 영입하며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최종 순위는 7위를 기록했습니다.
2016년, 한화 이글스는 팀의 주축 선수인 김태균, 조인성 선수와 FA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또한, 심수창과 정우람 선수를 외부 FA로 영입하며 투수진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최종 순위는 7위에 머물렀습니다.
2017
[김성근 감독 경질]
시즌 초반 부진한 팀 성적과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 등의 이유로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었고, 이상군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잔여 시즌을 이끌었습니다.
2017년 5월 23일, 시즌 초반 팀 성적 부진과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로 인해 김성근 감독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습니다. 이후 이상군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한화 이글스는 최종 순위 8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정근우, 이용규 등 주요 선수들이 부상이 많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2018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한용덕 감독이 부임하며 제러드 호잉 등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시즌 초 부진을 딛고 5월 이후 순위가 급상승하여 정규 시즌 3위로 2007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로 패배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2018년, 두산 베어스 코치였던 한용덕이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제러드 호잉, 제이슨 휠러, 키버스 샘슨 등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 변화를 꾀했습니다. 시즌 전 하위권으로 분류되었으나,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5월 이후 순위가 급상승하여 정규 시즌 3위로 마감했습니다. 이는 2007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쾌거였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에게 1승 3패로 패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9
[암흑기 재림]
워릭 서폴드, 채드 벨 등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고 제러드 호잉과 재계약했으나, 한용덕 감독과 이용규 선수 간의 불화가 발생했습니다. 시즌을 9위로 마감하며 다시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2019년, 워릭 서폴드와 채드 벨 등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고 제러드 호잉과 재계약하며 2018년의 기세를 이어가려 했으나, 3월 17일 한용덕 감독과 이용규 선수 간의 불화로 이용규 선수가 육성군으로 통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시즌을 9위로 마치며 다시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2019년 11월 23일, 한화 이글스의 젊은 유망주였던 투수 김성훈 선수가 안타깝게도 실족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팬들과 야구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습니다.
2020
[한국프로야구 최다 연패 타이 기록과 감독 사임]
시즌 초반 14연패를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한용덕 감독이 사임한 후, 연패는 18연패까지 이어져 삼미 슈퍼스타즈와 KBO 리그 최다 연패 타이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2020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해창, 정진호, 이현호 등을 영입하고 김문호, 장시환 등을 보강했으나, 시즌 초반부터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인 14연패를 기록한 데 이어, 6월 7일 한용덕 감독이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최원호 2군 감독이 감독 대행을 맡았음에도 연패는 끊기지 않고 18연패까지 이어져,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KBO 리그 최다 연패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박종태 한화이글스 대표이사는 김경문에게 선수들을 줄빠따를 지시했다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2025
[7년 만의 포스트시즌 및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 (준우승)]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2018년 이후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2006년 이후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LG 트윈스에 1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2025년, 한화 이글스는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2018년 이후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승 2패로 승리하며 2006년 이후 19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LG 트윈스에 1승 4패로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