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연표
1394
[한양 도성 계획 및 건축 시작]
조선왕조의 새 수도 한양의 터를 정하고, 궁궐, 관청, 그리고 도성을 포함한 주요 건축물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1394년 9월, 한양(지금의 서울)을 조선의 수도로 정하고, 같은 해 10월부터 궁궐, 관청, 그리고 도시 방어를 위한 성곽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1395
[도성축조도감 설치 및 성터 조사]
한양을 방위하기 위한 도성을 쌓기 위해 도성축조도감이 설치되었으며, 정도전이 성터를 조사·측량하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1395년(태조 4년), 조선의 새로운 수도 한양을 방위할 도성을 건설하기 위해 도성축조도감이 설치되었습니다.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이 들어설 자리를 조사하고 측량하는 작업이 실시되었습니다.
1396
[한양 도성 축성 시작]
전국에서 11만 8천 7백여 명의 장정이 동원되어 한양 도성 축성이 시작되었습니다. 97구간으로 나누어 각 구간마다 천자문 번호를 부여하며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396년(태조 5년) 음력 1월 9일(양력 2월 16일),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1만 8천 7백여 명이 동원되어 한양 도성 축성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성은 9970보 길이에 40자 2치 높이로 계획되었으며, 97구간으로 나뉘어 각 구간마다 천자문에 따른 번호가 부여되었습니다.
[한양 도성 성벽 일차 완공]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도성 축성 작업이 시작된 지 98일 만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성벽 축조가 일차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1396년(태조 5년) 음력 1월 9일 축성을 시작하여 전후 98일 만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따라 성벽의 축조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한양의 기본적인 방어 체계가 갖춰졌습니다.
[한양 도성 성문 완공]
도성 건설과 함께 정북쪽 숙정문, 정동쪽 흥인문 등 여덟 개의 성문과 하나의 수문이 모두 완성되어 한양 도성의 기본 골격이 갖춰졌습니다.
1396년(태조 5년) 음력 9월 24일(양력 10월 16일), 한양 도성의 성문들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정북쪽에는 숙청문(숙정문), 동북쪽에는 홍화문(혜화문), 정동쪽에는 흥인문(흥인지문), 동남쪽에는 광희문, 정남쪽에는 숭례문, 소북쪽에는 소덕문(소의문), 정서쪽에는 돈의문, 서북쪽에는 창의문이 세워졌고, 수문 1소도 함께 마련되었습니다.
1422
[세종 시기 도성 대대적 보수]
태조 때 흙으로 쌓았던 구간들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세종의 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2만여 명의 인력이 38일 만에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1422년(세종 4년), 태조 시기에 흙으로 쌓았던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단행되었습니다. 봉족과 잡색 등 총 32만 2천 4백 명이 동원되어 38일 만에 성곽을 대대적으로 고쳤습니다. 이때 각 도별로 새로이 구간이 할당되었으며, 이를 돌에 새기는 각자성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451
[문종 시기 도성 보수]
조선 문종 즉위 원년, 한양 도성에 대한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으나,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부가 부서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후에 임진왜란(1592년)을 겪으며 도성의 일부가 부서지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1616
[광해군 시기 도성 개수]
광해군 8년에 한양 도성 성곽에 대한 개수 작업이 이루어졌으나, 병자호란으로 인해 다시 부서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1616년(광해군 8년)에 한양 도성을 개수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병자호란(1636년)이 발발하면서 다시 성곽이 부서지는 피해를 입게 되었고, 청나라와의 약조로 인해 한동안 보수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1704
[숙종 시기 성벽 수축 시작]
병자호란 이후 방치되었던 한양 도성 성벽이 숙종 30년에 이조판서 이유의 주장에 따라 5군문의 장정을 동원하여 대규모 수축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1704년(숙종 30년), 병자호란 이후 부서진 채 방치되었던 한양 도성 성벽의 수축이 논의되었습니다. 이조판서 이유의 주장에 따라 5군문의 장정을 동원한 대규모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711
[숙종 시기 성벽 수축 완료]
숙종 30년에 시작된 대규모 성벽 수축 공사가 숙종 37년에 이르러 완료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성곽은 현재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주요 특징을 형성합니다.
1704년(숙종 30년)에 시작된 한양 도성 성벽 수축 공사는 1711년(숙종 37년)까지 이어져 완료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지어진 성곽은 직사각형으로 돌을 잘라서 축성하는 등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며, 현재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1743
[영조 시기 도성 보수]
숙종 시대의 대규모 보수 이후, 영조 19년에 한양 도성 성곽에 대한 추가 보수 작업이 다시 한번 이루어졌습니다.
1743년(영조 19년)에 한양 도성 성곽을 다시 고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효종, 현종, 영조, 순조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부분적인 개수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1752
[청계천 치성 축조 건의]
어영청의 홍봉한이 도성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청계천을 파내고 치성을 축조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이는 도성 방어 체계의 개선을 위한 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1752년 11월, 어영청의 홍봉한이 청계천을 파내고 성곽 방어 시설인 치성을 축조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이는 도성 방어 시설을 보강하기 위한 중요한 제안이었습니다.
[흥인문-광희문 구간 치성 축조 결정]
우의정 김상로의 주장을 통해 흥인문과 광희문 사이에 다섯 개의 치성을 쌓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홍봉한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결과였습니다.
1752년 12월, 홍봉한의 건의와 우의정 김상로의 주장을 받아들여, 도성 동쪽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흥인문과 광희문 사이에 5개의 치성(雉城)을 축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753
[치성 축조 완료]
흥인문과 광희문 사이에 치성 5개를 쌓는 공사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건의를 했던 홍봉한에게 상이 내려졌습니다.
1753년 5월 24일, 흥인문과 광희문 사이에 치성 5개를 쌓는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공사의 성공적인 완료를 기념하여 어영청의 홍봉한에게 상이 내려졌습니다.
1788
[성저십리 관할 명확화]
수도 한양의 교외 지역인 성저십리 주민들이 한성부와 경기도에 이중으로 부담을 지던 구조가 해소되고, 오직 한성부에 대해서만 부담을 지는 것으로 명확히 정리되었습니다.
1788년 무렵, 성곽 외부 교외 지역인 성저십리 주민들이 한성부와 이웃한 경기도에 요역을 이중으로 부담하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성저십리 지역이 한성부가 관할하는 수도 한양 오부의 일부로서 오직 한성부에 대해서만 부담을 진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1907
[일제에 의한 도성 철거 결정]
이완용 등의 주장으로 일제는 한양 도성의 철거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전차 선로 부설 등 근대화를 명분으로 한 조선의 문화유산 파괴였습니다.
1907년(고종 44년) 6월, 이완용 등의 주장에 따라 한양 도성을 철거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전차 선로 부설과 도시 계획을 명분으로 이루어진 일제에 의한 조선의 유산 파괴였습니다.
[숭례문 북측 성벽 철거 시작]
성벽처리위원회 설립 이후, 숭례문의 북쪽 성벽이 본격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했으며, 그 주변 남지도 매립되었습니다. 이는 도성 파괴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907년 9월부터 숭례문의 북쪽 성벽이 철거되기 시작하고, 남지도 매립되었습니다. 이는 일제의 도성 철거 계획이 실제 실행으로 옮겨진 첫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성벽처리위원회 설치]
도성 철거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성벽 처리 위원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도성의 체계적인 파괴를 위한 공식적인 기구였습니다.
1907년(순종 즉위년) 7월 30일, 한양 도성 철거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을 위해 성벽처리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도성 철거 작업의 진행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908
1908년 3월에는 흥인지문의 좌우 성벽이 헐렸습니다. 이는 서울 전차 선로의 부설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근대적인 도시 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도성이 파괴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소의문 및 숭례문 성벽 파괴]
일제에 의해 소의문과 숭례문 좌우의 성벽 총 77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도심부 성곽의 광범위한 훼손으로 이어졌습니다.
1908년 9월에는 소의문과 숭례문 좌우의 성벽 총 77간이 파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도시계획과 전차 노선 건설 등으로 인해 서대문, 동대문, 숭례문 부근의 성벽들이 대거 훼손되었습니다.
1963
[서울성곽 사적 지정]
훼손된 한양 도성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서울성곽'이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63년 1월 21일, 한양 도성은 '서울성곽'이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국가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도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1974
[한양도성 복원사업 시작]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사업이 시작되었으며, 한양도성 복원 사업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75
[광희문 문루 복원 시작]
한양도성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광희문의 문루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훼손된 도성 건축물의 원형을 되찾으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한양도성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첫 단계로 광희문 문루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훼손된 성벽의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삼청지구 성곽 해체 및 복원]
창의문부터 숙정문까지의 삼청지구에서 성곽과 여장 해체 및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75년 9월 18일부터 1976년 10월 21일까지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의 삼청지구에서 성곽 1994m와 여장 1403m를 해체하고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76
[성북지구 성곽 보수 및 주변 정비]
숙정문부터 혜화문까지의 성북지구에서 성곽 보수 공사와 함께 주변 건물 정비가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76년 10월 4일부터 1978년 3월 20일까지 숙정문에서 혜화문까지의 성북지구에서 1429m에 달하는 성곽을 보수하고, 동시에 일대 건물을 정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76년 11월 22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광희문 남쪽 성곽을 광희지구로 지정하고 여장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77
[남산 구간 성벽 및 여장 복원]
장충체육관에서 남산 동쪽까지의 장충지구와 남산 일대의 남산지구에서 성벽과 여장을 복원하는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 말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77년 10월 4일부터 1978년 12월 31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남산 동쪽까지의 장충지구(1053m)와 남산 일대의 남산지구(1639m)에서 성벽과 여장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청운지구 성곽 복원 시작]
돈의문 북쪽에서 창의문까지의 청운지구에서 성곽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여러 단계에 걸쳐 1980년까지 완료되었습니다.
1977년 12월 26일부터 1980년 4월 30일까지 돈의문 북쪽에서 창의문까지의 1626m 구간인 청운지구에서 성곽 복원 공사가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1979
[삼선지구 성곽 및 여장 복원]
혜화문부터 낙산 정상까지의 삼선지구에서 성곽과 여장을 복원하는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진행되었습니다.
1979년 6월 1일부터 1980년 8월 12일까지 혜화문부터 낙산 정상까지의 삼선지구에서 성곽 1037m와 여장 1033m를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80
[동숭지구 성곽 및 여장 복원 완료]
낙산 정상에서 흥인지문까지의 동숭지구에서 성곽과 여장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2개의 암문도 개설되었습니다.
1980년 9월 30일부터 1982년 6월 16일까지 낙산 정상에서 흥인지문까지의 동숭지구에서 성곽 1051m와 여장 520.5m를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2개의 암문도 새롭게 개설되었습니다.
1993
[창의문 및 인왕산 구간 민간 개방]
1.21 사태 이후 통제되었던 창의문과 인왕산 오르는 구간이 민간인에게 개방되어 시민들의 접근성이 향상되었습니다.
1993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보안을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창의문과 인왕산을 오르는 구간이 민간에 개방되었습니다. 이는 시민들이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을 다시 탐방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1994
1994년에 혜화문 문루가 복원되었습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성문 중 하나로, 복원을 통해 그 역사적 가치와 도시 미관이 회복되었습니다.
1996
1996년, 인왕산 구간에 위치한 국사당과 치마바위 사이의 성곽 중 56m 구간에 대한 보수 작업이 진행되어 성곽의 훼손을 막고 원형 보존에 기여했습니다.
1997
[국사당-치마바위 구간 성곽 추가 보수]
전년도에 이어 국사당과 치마바위 사이의 성곽 중 추가로 45m 구간에 대한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1997년, 인왕산 구간의 국사당과 치마바위 사이 성곽 중 45m 구간에 대한 추가 보수 작업이 이루어져, 해당 구간의 성곽 보존 상태를 더욱 개선했습니다.
2004
2004년경, 광희문 남쪽 성곽 구간에 대한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공사를 통해 훼손된 성곽 부분이 정비되어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에 기여했습니다.
2006
[홍련사~촛대바위 구간 개방]
북악산 백악구간 중 홍련사에서 촛대바위까지의 일부 구간이 개방되어 일반인들이 탐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6년 4월 1일, 북악산 백악구간 중 홍련사에서 촛대바위까지의 구간이 개방되었습니다. 이는 청와대 보안으로 통제되었던 지역의 점진적인 개방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2007
2007년 하반기에 인왕산 구간의 약 300m에 달하는 성곽이 복원되었습니다. 이로써 인왕산의 아름다운 성곽길을 다시 거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악산 나머지 구간 개방]
촛대바위에서 창의문까지의 북악산 나머지 구간이 모두 공개되어 40년 만에 북악산 한양도성 전 구간이 민간에 개방되었습니다.
2007년 4월 5일, 촛대바위에서 창의문까지의 나머지 구간이 공개되면서 북악산 한양도성이 40년 만에 전면 개방되었습니다. 이제 시민들은 백악구간을 통해 서울의 아름다운 도성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
[삼선동 일대 탐방로 조성]
삼선동 일대 한양도성 성곽 외벽을 따라 새로운 탐방로가 조성되어 시민들이 더욱 쉽게 성곽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년 말경, 삼선동 일대의 성곽 외벽을 따라 탐방로가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이 탐방로는 낙산 구간의 접근성을 높여 시민들이 한양도성의 아름다움을 더욱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간수문과 성곽 발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을 위한 발굴 조사 중, 과거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이간수문과 일대 성곽이 발견되어 역사적인 재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 11월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을 위한 발굴 조사 과정에서 멸실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이간수문과 그 일대 성곽이 극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한양도성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인왕산 정상 서측 구간 복원]
인왕산 정상 서측에 위치한 283m 구간의 성곽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로써 인왕산 구간의 훼손된 성곽이 상당 부분 제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2008년 12월, 인왕산 정상 서측에 위치한 283m 구간의 성곽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는 인왕산 구간의 역사적 경관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2009
2009년에 인왕산 동측의 일부 성곽 구간에 대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인왕산 전체 구간의 연속성 있는 복원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이간수문 및 성곽 복원 공개]
발굴된 이간수문과 치성을 포함하여 142m 구간의 성곽이 복원되고, 멸실되었던 123m 구간은 성곽임을 드러내도록 공개되었습니다.
2009년 10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발굴 조사에서 드러난 이간수문과 치성 1개를 포함하여 142m 구간의 성곽이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멸실된 123m 구간은 돌을 쌓아 성곽의 흔적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공개되어 시민들에게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2010
[인왕산 범바위 일대 치성 복원]
인왕산 범바위 일대의 치성 등 성곽 시설물들이 복원되어 인왕산 구간의 역사적 경관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10년 12월, 인왕산 범바위 일대의 치성 등 성곽 시설물들이 복원되었습니다. 이로써 인왕산 구간의 성곽이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아동광장 부근 성곽 및 지형 복원]
남산 회현자락 재정비 사업의 1단계 완료로 아동광장 부근 84m의 성곽과 본래의 지형이 복원되었습니다.
2010년 7월 29일, 남산 회현자락 재정비 사업의 1단계가 완료되면서 아동광장 부근의 84m 성곽과 본래 지형이 복원되었습니다. 이는 남산 구간의 역사적 경관 회복에 기여했습니다.
[창덕여중 지하 서울성곽 기초 확인]
정동 창덕여중 지하 발굴 조사에서 소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서울성곽의 기초부가 확인되어 도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2010년 10월 19일, 정동 창덕여중 지하 발굴 조사에서 소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서울성곽의 기초부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한양도성의 정확한 옛 경로와 구조를 밝히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2011
2011년 1월 말, 반얀트리클럽호텔(옛 타워호텔) 내부 구간에 호텔 측에서 조성한 450m 길이의 탐방로가 개방되었습니다. 이 구간은 과거 김수근이 설계한 자유센터 건설 시 성곽을 축대로 옮겨 사용했던 곳입니다.
[낙산 진입부 및 남산 구간 탐방로 개방]
낙산 북쪽 67m 구간의 계단이 추가로 개통되었고, 신라호텔 등을 지나는 남산 성곽 안쪽 탐방로 1090m가 개방되어 도성길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2011년 1월 11일, 낙산 북쪽 창경궁로와 연결되는 부분에 7m 고도차를 극복하는 67m 구간이 추가로 개통되었습니다. 같은 날 신라호텔, 서울클럽, 민주평화통일자문협의처를 지나는 성곽 안쪽 탐방로 1090m도 개방되어 시민들의 도성길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칭 변경]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0호의 명칭이 '서울성곽'에서 '서울 한양도성'으로 변경되어 역사적 맥락과 상징성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2011년 7월 28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10호의 명칭이 기존 '서울성곽'에서 '서울 한양도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문화재의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순성놀이' 행사 재개]
조선 시대 한양 사람들이 즐겼던 성곽 걷기 문화인 '순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행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 9월 24일, 서울특별시와 시민단체 서울KYC의 주최 하에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인 순성 행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순성 문화를 계승하고 시민들에게 한양도성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2011년 10월 2일, 인왕산 구간에 위치한 월암근린공원 부근의 140m 성곽이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이 구간은 시대별 축성 기법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받습니다.
2012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 복원 완료]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서, 총 길이 18,627m 중 약 69%에 해당하는 12,771m의 성곽 복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012년 9월,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의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서, 한양도성 총 길이 18,627m 중 69%에 해당하는 12,771m의 복원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한양도성 복원 사업의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백범광장 부근 성곽 및 지형 복원]
남산 회현자락 재정비 사업의 2단계 완료로 백범광장 부근 239m의 성곽과 지형이 복원되었습니다.
2012년 6월 9일, 남산 회현자락 재정비 사업 2단계가 완료되면서 백범광장 부근의 239m 성곽과 지형이 복원되었습니다. 이로써 남산 구간의 역사적 경관이 더욱 회복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서울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12년 11월 23일, 서울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세계 현존 수도 중 최장 기간인 514년 동안 도성 역할을 수행했으며, 내사산 능선을 따라 자연 친화적으로 축조된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평가받았습니다. 잠정목록 등재는 1년 뒤부터 세계유산 등재 신청 자격이 부여되는 첫 단계입니다.
2013
[숭례문 복구 및 성벽 복원 마무리]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 복원이 마무리되어, 훼손되었던 숭례문 주변의 경관이 회복되었습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동시에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 복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전쟁 등으로 훼손되었던 숭례문과 그 주변 성벽의 원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2014
[남산 회현자락 성곽 및 각자 발굴]
남산 회현자락에서 189m 길이의 성곽과 '내자육백척(柰字六百尺)' 각자, 그리고 조선신궁 배전의 콘크리트 기초부가 발굴되었습니다.
2014년 8월, 남산 회현자락에서 189m 길이의 성곽과 함께 각자성석인 '내자육백척(柰字六百尺)',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던 조선신궁 배전의 콘크리트 기초부가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도성의 역사적 증거와 일제강점기 흔적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2015
[서울 한양도성 사적 추가 지정]
문화재청 고시를 통해 '서울 한양도성'의 사적 구역이 추가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도성의 보호 및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였습니다.
2015년 11월 23일, 문화재청 고시 제2015-113호를 통해 '서울 한양도성'의 사적 추가 지정이 고시되었습니다. 이는 문화재 구역과 보호 구역의 면적을 확대하여 도성의 보존 가치를 더욱 높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2017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무산]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던 한양도성이 최종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불가 통보를 받으며 등재가 무산되었습니다.
2017년 3월,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던 한양도성이 세계문화유산 최종 등재 심사에서 등재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되었으나, 그 역사적 가치는 여전히 높이 평가됩니다.
2024
[북악산 성곽 일부 붕괴]
장맛비로 인해 북악산 백악쉼터 인근 성곽 약 30m 구간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해당 탐방로의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2024년 7월 9일, 장마로 인한 집중 호우로 북악산 백악쉼터 인근의 한양도성 성곽 약 30m 구간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종로구청은 등산객 신고를 받고 탐방로 입구 일대의 출입을 통제하고 긴급 복구에 착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