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
연표
BC 3C
전국 시대 중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사상가, 작가인 한비가 기원전 280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알려진 정보는 대부분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 있습니다.
[순자의 문하생이 되다]
한비가 이사와 함께 스승 순자의 문하에서 법가, 유가, 도가, 묵가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우며 법치주의 사상을 정립했습니다.
한비는 어릴 적 법가 사상가인 이사와 함께 순자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학문을 닦았습니다. 이사는 말주변이 뛰어났으나, 한비는 학문적 역량이 이사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법가 외에도 유가, 도가, 묵가 등 다양한 학파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법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는 사상을 정립했습니다.
[진왕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다]
한비가 저술한 '고분'과 '오두' 등의 글이 진나라 왕(훗날 진시황)의 눈에 띄어 깊은 감명을 주었고, 진왕은 그를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였으나, 당시 약해지고 있던 한나라 왕에게 여러 개혁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가 저술한 '고분'과 '오두' 등이 진나라 왕(훗날 진시황 영정)에게 전해져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진왕은 한비의 법가 사상에 매료되어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진왕 정은 한비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한비는 진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한 사신으로 진에 파견되어 진왕 정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진왕 정은 한비를 만나보고 그의 달변에 다시 한번 깊은 호감을 표했습니다.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 한비는 진왕 정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나, 순자 문하에서 함께 배웠던 동문 이사의 질투와 음모에 휘말려 투옥당했습니다. 이사는 진왕에게 한비가 결국 한나라를 위할 것이라고 모함했고, 결국 한비는 진나라 감옥에서 음독 자살로 49세의 나이에 생애를 마감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