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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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교회는 19세기 말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대한민국 내 동방 정교회 교파입니다. 초기에는 러시아 공사관 내 임시 성당에서 예배를 시작하며 한국 땅에 정교회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러일 전쟁과 러시아 혁명 한국 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신자들의 노력과 외부 지원으로 재건되었습니다. 20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산하의 독자적인 수도 대교구로 승격하며 한국 정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습니다. 현재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에 성당과 수도원을 운영하며 한국 사회에 정교회를 알리고 있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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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97

[한반도 선교 결정]

러시아 정교회 신성종무회의가 한반도 선교를 결정하고 선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당초 그해 입국 예정이었으나 열강의 한반도 각축 상황으로 인해 지연되었습니다.

[러시아 성직자 파송 요청]

조선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약 120명은 성직자 부재로 온전한 전례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이에 주조선 러시아 공사관 부영사 대행 폴랴놉스키는 본국에 조선에서 사목할 성직자를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00

[한국 첫 성찬예배]

제2차 선교회장 흐리산프 솃콥스키 대수도사제와 봉독자 이오나 렙첸코가 한국에 입국했습니다.한성에는 정식 성당이 없어 러시아 공사 니콜라이 마튜닌의 관저를 임시 성당으로 꾸며, 한반도에서 최초로 성찬예배가 봉헌되었습니다.

1903

[정동 성당 건립]

초대 선교사 흐리산프 솃콥스키 신부의 노력으로 한국인 신자 수가 늘어나 임시 성당이 협소해졌습니다.이에 대한제국 고종에게 매입한 정동 부지에 새로운 성당이 건립되었고, 이 성당은 이후 한국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04

[러일 전쟁 선교 중단]

러일 전쟁 발발로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 제국이 한국 주재 러시아인들에게 강제 출국을 명령하면서, 러시아 정교회 선교 사업도 중단되었습니다.

1906

[선교 사업 재개]

러일 전쟁 종전 후 대수도사제 파벨 이바놉스키 신부가 한반도에 입국하며 중단되었던 러시아 정교회 선교 사업이 재개되었습니다.

1912

[한국인 최초 성직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교회 교리를 교습받은 제1기생 중에서 요한 강탁 신부가 배출되어 최초의 한국인 정교회 성직자가 탄생했습니다.

1917

[러시아 혁명 영향]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가 공산화되고 정교회가 박해에 처하게 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조선에 있는 정교회에 대한 지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22

[일본 정교회 편입]

러시아 정교회의 지원이 끊기면서 조선 선교회는 일본 정교회 도쿄 대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의 관할 아래로 편입되었습니다.

1945

[해방 후 관계 중단]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서울의 정교회와 소련의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의 관계가 중단되었습니다.

1950

[한국 전쟁과 와해 위기]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대한민국 유일의 정교회 사제였던 알렉세이 김의한 신부가 인민군에 체포되어 납북되었습니다.게다가 전쟁 중 정동성당이 대파되고 신도는 뿔뿔이 흩어져 한국 정교회는 와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스군 지원으로 재건]

한국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군 종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의 도움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던 신도들이 다시 모였고, 대파되었던 성당도 재건될 수 있었습니다.이는 한국 정교회의 존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54

[문이춘 신부 서품]

그리스군 사제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의 도움으로 한국인 신자 문이춘이 일본 정교회로 파송되어 도쿄 대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1955

[문이춘 신부 재산 회복]

문이춘 신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적산'으로 간주해 압수하려 했던 교회 재산을 오랫동안 소송을 벌인 끝에 승소하여 되찾았습니다.이는 한국 정교회가 재정적 기반을 확립하고 자립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56

[콘스탄티노폴리스 편입]

성탄절에 소집된 신도 총회에서 당시 북미 수도 대교구 산하였던 한국 정교회가 만장일치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 산하로 편입하기로 결의했습니다.총대주교청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1968

[성 니콜라스 대성당 재건]

서울 마포구에 현재의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재건되었습니다.이 성당은 주교좌 성당이자 대한민국 내에서 극히 드문 비잔티움 건축양식을 자랑하며 한국 정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4

[수도 대교구 승격]

오랫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청의 산하 교구로 있던 한국 교구가 수도 대교구로 승격하면서 독자적인 자치권을 획득했습니다.이는 한국 정교회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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