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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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대한민국 프로 바둑계를 총괄하고 바둑의 보급 및 발전을 도모하는 핵심 재단법인입니다. 1945년 현대 한국 바둑의 선구자인 조남철 선생이 설립한 한성기원을 모태로 출발하여, 수차례의 명칭 변경과 법인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세계적인 프로 기사들을 배출하며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바둑TV 인수와 자회사 설립 등 미디어 생태계로의 확장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본원 이전 문제와 대한바둑협회와의 알력, 수뇌부 공백 사태 등 숱한 위기와 진통을 겪기도 했으나, 최근 신관을 전격 매입하며 내실을 다지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표
1945
이 단체는 대한민국 바둑계를 관할하는 한국기원의 첫 모태가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바둑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첫 공식적인 단체로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1947
당시 국내 바둑의 저변을 더욱 넓히고 조직 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명칭을 변경하며 규모를 키워나갔습니다. 이는 체계적인 기전 운영과 기사 육성을 위한 소중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49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바둑 단체의 공식적인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대한기원으로 명칭을 교체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적인 바둑 보급망을 확보하고 공식적인 행정 체계를 잡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50
소속 기사들에게 단과 급을 부여하여 객관적인 실력 척도를 마련하고 공정한 승단 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프로 바둑 제도의 근간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성과였습니다.
1954
1954.1.8
[사단법인 한국기원 출범]
과거의 대한기원이 사단법인 형태의 한국기원으로 새롭게 출범하며 공식적인 조직 형태의 얼개를 갖췄습니다.정부 부처의 정식 인가를 받기 위한 초석을 다지며 단체 명칭을 한국기원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현대적인 마인드 스포츠 기관으로서의 체계적인 행정 및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955
1955.9.5
[한국기원 창립총회 및 초대 이사장 취임]
한국기원 창립총회가 성대하게 열리고 장경근이 사단법인의 초대 이사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정식으로 사단법인이 발족하면서 기관의 수장을 세우고 투명한 업무 지휘 체계를 완벽하게 완성했습니다. 한국기원은 이를 기점으로 국내외 바둑 대회와 전문 기사 육성을 위한 굵직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습니다.
1962
정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단체가 됨으로써 대외적인 공신력을 완벽하게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제도적 보호 아래에서 바둑 산업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7
1967.7.7
[정기 간행물 《棋界》 창간]
한국기원 최초의 정기 간행물인 잡지 《棋界(기계)》를 정식으로 창간하여 바둑 보급 활동에 나섰습니다.당대의 주요 기보 해설, 기전 소식, 바둑계 동향 등을 대중에게 상세히 전달하며 바둑 팬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창구를 마련했습니다. 이 잡지는 한국 바둑 저널리즘 역사의 훌륭한 효시가 되었습니다.
1968
프로 기사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대국을 치르고 바둑 행정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튼튼한 물리적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한국 바둑의 독립성과 자생력을 한층 강화하는 아주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1969
1969.3.25
[초대 총재 이후락 취임]
기존의 이사장 체제를 넘어서는 기관의 최고 수장 격으로 이후락이 한국기원 초대 총재에 전격 취임했습니다.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재계 유력 인사였던 이후락 총재의 취임으로 한국기원은 거대한 외부 후원과 든든한 정치사회적 지원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한국 바둑의 규모와 기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69.8
[간행물 제호 《바둑》으로 변경]
기존에 매월 발행해 오던 《棋界》의 이름을 독자 친화적인 《바둑》으로 전면 변경하여 출간을 시작했습니다.독자들이 더욱 직관적이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순우리말인 '바둑'으로 제호를 바꾸는 훌륭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 월간지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발행되며 대한민국 바둑계의 가장 대표적인 소식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70
1970.3.25
[재단법인 설립 등기]
조직의 성격을 사단법인 형태에서 재단법인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해 문화공보부에 제179호로 설립 등기를 마쳤습니다.단체의 자산 운용 투명성과 법적 안정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공익성을 띤 거대한 법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였습니다. 이를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바둑 보급 및 국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훌륭한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1970.3.31
[사단법인 한국기원 공식 해산]
새로운 재단법인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매듭짓기 위해 기존 명목상의 사단법인 한국기원을 공식적으로 해산 조치했습니다.법인 성격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과도기적 행정 절차로서, 새로운 위대한 도약을 위한 과거 조직의 깔끔한 마무리 작업이었습니다. 기존의 자산과 주요 사업들의 원활하고 포괄적인 승계가 문제없이 이루어졌습니다.
1970.4.2
[재단법인 한국기원 정식 출범]
서울지방법원에 제34호로 재단법인 등기를 완전히 마치고 문화공보부 소관의 '재단법인 한국기원'으로 정식 출범했습니다.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뼈대가 완벽하게 구축된 매우 역사적인 날입니다. 전문 기사의 권익을 철저히 보호하고 올바른 기도 발전을 도모하는 국내 유일의 프로 바둑 관할 단체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1994
1994.9.29
[한국기원 홍익동 시대 개막]
한국기원의 본원 회관을 기존 건물에서 벗어나 서울 성동구 홍익동(마장로)의 새로운 건물로 전면 이전했습니다.바둑계의 외연 확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더 넓고 현대적인 대국장 시설과 효율적인 행정 공간을 갖춘 신사옥으로 과감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펼쳐진 홍익동 시대는 한국 바둑이 세계 무대를 모조리 제패하는 찬란한 황금기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2000
2000.5.3
[자회사 세계사이버기원 창립]
본격적인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도래에 발맞추어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자회사인 '세계사이버기원(주)'를 전격 창립했습니다.온라인 대국 전문 서비스인 '사이버오로'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바둑 팬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온라인으로 대국을 즐기고 주요 경기를 생중계로 관전할 수 있는 훌륭한 인프라를 마련했습니다.
2005
2005
[대한바둑협회 분리와 이원화]
한국기원 내 아마추어 보급팀과 기존 아마바둑협회가 통합되어 '대한바둑협회'가 새롭게 독립 설립되며 프로와 아마추어 관할이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바둑을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아 대한체육회에 가맹하기 위한 과정에서 큰 내부 갈등이 있었습니다. 조남철 원로 등의 거센 반대로 기원의 명칭 변경이 무산되자, 결국 프로는 한국기원이 전담하고 아마추어는 협회가 총괄하는 이원화된 행정 구조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2014
2014
[본원 화성 동탄 이전 추진]
경기도 화성시 측과 거창하게 양해각서(MOU)를 맺고 본원을 화성 동탄신도시로 통째로 이전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했습니다.점차 노후화되어 가는 홍익동 건물을 떠나 최신식 인프라를 완벽히 갖춘 새로운 바둑의 메카를 조성하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복잡한 부지 변경 문제와 거주민들의 반발, 코로나19 등의 연이은 악재가 겹치며 결국 최종적으로 뼈아픈 무산을 겪게 되었습니다.
2016
2016.1.1
[바둑TV 인수 및 직접 운영]
거대 미디어 기업 CJ E&M으로부터 전문 채널인 바둑TV를 전격적으로 되사들여 한국기원이 직접 채널 운영을 시작했습니다.주요 기전의 중계권과 바둑 관련 미디어 콘텐츠 전반에 대한 독자적이고 강력한 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인 조치였습니다. 한국기원 산하 기관으로서 더욱 공격적인 바둑 대중화 보급과 자체적인 든든한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2016.3
[전자초시계 전면 도입]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알파고 대국)'를 결정적인 기점으로 삼아 국내 모든 공식 대국에도 전자초시계를 재빨리 도입했습니다.오랜 세월 쓰이던 아날로그 방식의 계시기에서 과감히 벗어나 대국 시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끌어올리는 현대적 시스템으로 갈아탔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맞춘 경기 환경의 대대적이고 성공적인 개선 조치 중 하나로 높이 평가받습니다.
2016.8
[대한바둑협회와의 갈등 재점화]
신상철 후보가 새로운 대한바둑협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잠잠했던 프로와 아마추어를 관할하는 두 단체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거세게 떠올랐습니다.이전까지는 홍석현 총재가 양 단체의 수장을 동시에 겸직하며 불만을 억제해 왔으나, 신 회장이 당선과 함께 기원과의 명확한 분리 공약을 강하게 내걸었습니다. 이후 K바둑 인수 과정에서의 문제와 파벌 다툼 의혹까지 겹치며 양측의 알력이 극도로 심화되었습니다.
2018
2018
[대국 자동기록시스템 개발]
당시 손근기 프로기사회장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복잡한 바둑 기보를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기록해 주는 혁신적인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사람이 수기로 적으며 발생할 수 있는 기보 기록의 치명적인 오류를 방지하고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첨단 기술 도입의 훌륭한 일환이었습니다. 내셔널바둑리그 등에서 야심 차게 시범 운영되었으나, 종종 발생하는 일부 표기 오류 문제로 인해 전면적인 공식 사용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18.11
[지도부 총사퇴 및 위기]
바둑계 내부에서 터져 나온 미투 운동과 K바둑 인수 특혜 논란 등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며, 홍석현 총재를 비롯한 중앙일보계 지도부가 전격적으로 총사퇴했습니다.수뇌부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인해 바둑리그 후원사들이 잇따라 이탈하고 주요 대회가 일시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 등 사상 초유의 기원 행정 마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한국기원은 조직 전체의 걷잡을 수 없는 엄청난 혼란을 시급히 수습해야 하는 벼랑 끝 위기에 몰렸습니다.
2018.12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출범]
지도부 공백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를 위원장으로 내세운 13인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긴급히 꾸렸습니다.비대위는 실무를 총괄할 사무총장에 김영삼 9단을 곧바로 선임하며 무너진 조직의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거물급 스폰서들의 연쇄 이탈을 막고 안정적인 기전 운영을 담보하기 위한 전방위적이고 필사적인 정상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2019
2019.5.27
[임채정 신임 총재 취임]
위태로웠던 비상대책위원회 임시 체제를 끝내고, 과거 국회의장을 지냈던 임채정 신임 총재를 새롭게 추대하여 공식적인 취임식을 거행했습니다.정치권의 묵직한 거물급 인사의 영입으로 크게 흔들리던 한국기원의 리더십을 단숨에 바로 세우고 이탈했던 외부 스폰서들과의 신뢰 관계를 원만하게 회복해 냈습니다. 이 취임은 마비되었던 기원 행정의 완벽한 정상화와 재도약의 기틀을 단단히 다진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2020
2020
[의정부 바둑경기장 건립 추진]
과거 화성시 이전 무산의 아픔을 딛고, 경기도 의정부시의 옛 600기무부대 부지에 대규모 바둑전용경기장을 짓고 본원을 통째로 이전하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습니다.의정부시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최첨단 바둑 전용 경기장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전 세계에 밝혔습니다. 2026년 입주 완료를 목표로 삼고 지자체 차원의 대대적이고 파격적인 행정적 지원 약속을 이끌어 냈습니다.
2023
2023.9
[의정부 이전 무산 수순]
정치인들을 대거 초청해 화려한 착공식까지 무사히 거행했으나, 결국 원자재 가격의 걷잡을 수 없는 폭등과 시의회의 매서운 예산 삭감 제동으로 무산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건축 비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다, 시장 교체 이후 막대한 세금 낭비라는 거센 논란이 일며 사업이 전면 보류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을 벗어나면 바둑 산업이 크게 위축된다는 내부 기사들의 거센 집단 반발도 겹치며 탈서울 계획은 사실상 완전 백지화되었습니다.
2024
2024.11
[마장로 신관 전격 매입]
연이은 지방 이전의 쓰라린 실패를 인정하고 서울 잔류를 최종 확정 지은 뒤, 기존 홍익동 본원 바로 인근에 위치한 건물을 약 180억 원의 거금을 들여 매입했습니다.당시 예산이 넉넉지 않았던 한국기원의 팍팍한 재정 사정에도 불구하고 정태순 이사장의 과감한 결단과 통 큰 금전적 지원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쾌거로 무려 십여 년간 끌어오며 피로감을 주었던 본사 확장 이전 논란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깔끔하게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2025
2025.1
[임시 대국 규정 제정 논란]
경기 도중 기사가 장고에 빠졌을 때 심판에게 대국 일시 중단을 임의로 요청해 꼼수로 시간을 벌 수 있게 하는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임시 규정을 제정하여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이 해괴한 규정으로 인해 최근 대회의 우승 타이틀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며 국내외 바둑 팬들과 프로 기사들의 거센 항의와 질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무리한 행정으로 인해 한국기원과 한국 바둑계 전체의 신뢰도가 크게 실추되는 뼈아픈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2025.9.23
[직제 개편 및 정태순 이사장 취임]
문화체육관광부의 엄격한 정관 변경 승인을 마친 후, 기존의 총재 체제에서 이사장 체제로 직제를 전면 개편하고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이 공식 취임했습니다.새로운 강력한 리더십의 등장과 함께 신관 매입이라는 오랜 숙원 사업이 속전속결로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말끔하게 리모델링된 신관 건물에서 새로운 주요 대회의 추첨식을 성대하게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마장로 신관 시대'의 희망찬 서막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