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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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패
위나라 장군, 촉한 장군, 망명자, 황친(황족의 인척) + 카테고리
하후패(중국어: 夏侯霸, 자는 중권)는 삼국시대 위나라와 촉한의 저명한 장수입니다. 위나라의 명장 하후연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친이 촉나라의 황충에게 전사하자 촉에 대한 깊은 복수심을 품고 위나라의 장수로 활약했습니다. 조상(曹爽) 정권 하에서 중용되어 대촉 전선에서 활약했으나, 사마의가 일으킨 '고평릉의 변'으로 조상이 몰락하고 앙숙인 곽회가 실권을 잡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적국인 촉한으로 망명하는 극적인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촉한의 황제 유선은 하후패가 자신의 친인척(장비의 아내가 하후패의 사촌)임을 들어 그를 극진히 환대했고, 하후패는 이에 감복하여 위나라에 대한 복수심을 거두고 촉한의 고위 장군으로서 강유와 함께 북벌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가문의 원수였던 나라의 충신이 된 기구한 운명의 인물입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219

[부친 하후연의 전사]

한중 공방전 정군산 전투에서 부친 하후연이 촉나라 장수 황충에게 참수당하여 전사했습니다.
하후패는 아버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촉나라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언젠가 반드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습니다.

220

[편장군 임명 및 작위 수여]

위나라 문제 조비의 황초(黃初) 연간(220년~226년)에 편장군(偏將軍)에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을 넘어 자신의 무용과 지략을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는 군무에 종사하며 위나라 조정 내에서 차근차근 승진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30

[자오곡 전투 선봉 활약]

대사마 조진이 촉을 정벌할 때 하후패가 선봉이 되어 자오곡(子午谷)을 통해 흥세(興勢)로 진격했습니다.
진군 도중 촉나라 주민들의 기습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했으나, 하후패는 당황하지 않고 직접 진두지휘하며 진지를 사수했습니다. 이후 위나라의 구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내며 무사히 철수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239

[조상의 집권과 승진]

명제 조예가 붕어하고 조상(曹爽)이 정권을 잡자, 조상과 친밀했던 하후패는 중용되어 우장군(右將軍)과 토촉호군(討蜀護軍)에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 하후패는 위나라 서부 전선의 핵심 지휘관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는 박위장군(博威將軍)으로 승진하여 옹주와 양주의 군사를 주둔시키며 대촉 방어와 공격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44

[흥세 전투 참전]

조상이 주도한 대규모 촉나라 정벌(흥세 전투)에 참전하여 옹주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촉나라의 대장군 비의가 이끄는 군대와 험준한 지형, 그리고 보급 문제에 가로막혀 고전했습니다. 결국 위나라는 큰 피해를 입고 철수했지만, 하후패는 최전선에서 군을 통솔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247

[곽회와의 갈등 심화]

옹주자사 곽회(郭淮)와 군사 전략 및 정치적 입장을 두고 심각한 불화를 겪었습니다.
하후패는 조상 파벌에 속했고 곽회는 사마의 파벌에 가까웠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물과 기름 같았습니다. 하후패가 이민족을 회유하려던 계획을 곽회가 반대하는 등 사사건건 충돌하며 하후패의 입지는 점차 불안해졌습니다.

249

[음평에서의 조난과 구조]

촉나라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음평(陰平) 지역에서 길을 잃고 식량이 떨어져 극한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길이 끊어진 험준한 산속에서 타고 있던 말을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고 바위 밑에 누워 있었습니다. 하후패의 망명 소식을 들은 촉나라 황제 유선이 사람을 급파하여 그를 구조해 성도로 데려왔습니다.

[유선의 환대와 황친 인정]

성도에 도착한 하후패를 만난 유선은 자신의 자식들이 하후씨의 외손임을 강조하며 그를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과거 장비가 하후연의 조카딸(하후패의 사촌)을 아내로 맞이했고, 그 딸들이 유선의 황후가 되었기 때문에 하후패는 촉한 황실의 외척이었습니다. 유선은 "부친(하후연)은 전장에서 죽은 것이지 내 선친(유비)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며 하후패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촉한의 거기장군 임명]

촉한 조정으로부터 거기장군(車騎將軍)이라는 고위직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망명객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로, 하후패는 이에 감복하여 위나라에 대한 복수심을 거두고 촉한을 위해 충성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유에게 위나라의 내부 사정, 특히 종회와 등애의 위험성을 조언하며 북벌의 주요 참모가 되었습니다.

[고평릉의 변과 망명 결심]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켜 조상을 처형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하후패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촉나라로 망명을 결심했습니다.
하후패의 후원자였던 하후현이 중앙으로 소환되고, 앙숙인 곽회가 정서장군이 되어 하후패의 직속 상관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하후패는 밤중에 몰래 위나라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도주했습니다.

255

[적도 전투 승리]

강유와 함께 북벌에 참전하여 적도(狄道)에서 위나라 옹주자사 왕경의 군대를 대파했습니다.
하후패는 조수(洮水) 서쪽에서 왕경군을 공격하여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왕경은 겨우 성으로 도망쳤고, 이는 촉한 후기 북벌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259

[하후패의 사망]

정확한 사망 연도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255년에서 262년 사이에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62년 조운의 아들 조통 등이 하후패의 죽음을 언급하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사망한 것이 확실합니다. 사후 시호가 내려졌으며, 위나라 명문가 출신으로 적국에서 고위 장군이 되어 생을 마감한 파란만장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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