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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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일본 총리 + 카테고리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의 유력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제93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의 장기 집권 시대를 54년 만에 종식시키고 민주당 정권을 수립하며 총리에 올랐다. 총리 재임 중 미국 후텐마 기지 이전 등 난관에 부딪혀 결국 사임했으나, 2015년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무릎 꿇고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는 등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애'를 강조하는 독자적인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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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7

[일본 도쿄에서 탄생]

일본 도쿄의 유력 정치 명문가 하토야마 가문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조부, 부친, 동생 모두 일본 정치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외조부는 유명 기업의 창업자였다.

도쿄도 고이시카와 구(현 분쿄구)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고,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0년대에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첫 자유민주당 정권을 담당했다. 외조부 이시바시 쇼지로는 브리지스톤 창업자다.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도 참의원으로 재직하며 1970년대에 외무장관을 지냈고,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도 유력 정치인으로 여러 부처의 장관을 지냈다.

1984

[교수직 퇴직 및 정계 입문]

도쿄 공업대학과 센슈 대학에서 경영학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도쿄 대학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도쿄 공업대학과 센슈 대학에서 경영학 조교수로 일했으며, 1984년에 정계 입문을 이유로 퇴직하였다.

1986

[중의원 선거 당선]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홋카이도를 지역구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 지역구 내 득표율 2위로 처음 당선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자민당 다나카파의 신인으로서 1986년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홋카이도를 지역구로 일본 중의원 제38회 선거에 출마해 지역구 내 득표율 2위의 성적으로 당선되었다.

1988

[정치 연구회 결성 및 비리 폭로]

'유토피아 정치 연구회'라는 초파벌적 정치집단을 결성하여 리크루트 뇌물수수 사건 등 당내 비리를 폭로했다. 이 집단은 후에 신당 사키가케로 이어졌다.

1988년에 '유토피아 정치 연구회'라는 초파벌적 정치집단을 결성, 리크루트 뇌물수수 사건 등의 당내 비리를 폭로하였고, 이 집단은 신당 사키가케로 이어졌다.

1993

[자민당 탈당 및 신당 사키가케 활동]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참여했으며, 호소카와 내각에서 내각 관방 정무부장관을 지내며 55년 자민당 체제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정치 흐름에 합류했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참여하였고, 55년 자민당 체제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호소카와 내각에서는 내각 관방 정무부장관을 담당하였다. 이후 성립된 자사사 연립 정권 하에서는 사키가케의 간사장을 맡았다.

1996

[민주당 창당 참여]

신당 사키가케를 일신하려던 시도가 실패한 후, 간 나오토, 동생 구니오 등과 함께 구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도 참여하며 당내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

1996년에는 사키가케를 일신하여 새로이 창당하고자 하였으나 실패, 그 해 여음에 간 나오토, 동생 구니오 등과 함께 구 민주당에 참여했고,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여 간사장을 맡았다.

1999

[민주당 대표 취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여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당 대표로 재직하며 당을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야당 당수로도 활동했다.

1999년의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수가 되어 1999년 9월 25일부터 2002년 12월 10일까지 당 대표로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야당 당수로도 활동했다.

2002

[민주당 대표직 사임]

총선거에서 자민당에게 참패를 당하며 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했으나, 당내 최대 파벌인 하토야마 그룹의 대표로서 계속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2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에게 참패를 당하며 당 대표를 사직하였으나, 대표 사직 후에도 당내 최대 파벌인 하토야마 그룹의 대표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2005

[중의원 7선 달성]

중의원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제44회 총선에서 7선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중의원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7선을 기록했다.

2009

[민주당 당수 복귀]

정치 자금 스캔들로 오자와 이치로 당 대표가 사퇴하자 열린 대표 선거에서 오카다 가쓰야를 꺾고 승리하며 7년여 만에 민주당 당수로 복귀했다.

2007년의 참의원 선거의 대승 이후에도 간사장 직을 유지하였으나, 2009년 5월에 오자와 이치로 당 대표가 정치 자금 스캔들로 사퇴하면서 열린 대표 선거에서 오카다 가쓰야를 꺾고 승리, 7년여 만에 당수로 돌아왔다.

[총선거 압승으로 정권 교체 견인]

대표 취임 후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의 54년 장기 집권 체제를 끝내고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

대표 취임 후 여러 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아소 다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총 480석 중에서 308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고, 1955년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가 54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제93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취임]

총선 압승의 결과로 특별 국회에서 제93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며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2009년 9월 16일에 열린 특별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되었다. 총리 취임 이후에는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의 이행을 놓고 자민당 등과 대립, 연립정당인 사민당, 국민신당 등과도 마찰을 빚고 있었다.

2010

[내각총리대신직 사임]

총리 취임 후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등 공약 이행 문제를 겪고 비판받던 중, 결국 민주당 간사장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총리 취임 이후에는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의 이행을 놓고 자민당 등과 대립, 연립정당인 사민당, 국민신당 등과도 마찰을 빚고 있었다. 주요 공약은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 등인데, 이 중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인해 미국의 심기를 자극, 대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주범이 되었다. 5월 말까지 이전지를 확정짓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하기로 했었다. 이 외에도 전 비서의 정치자금 비리 등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큰 정부의 복지수준을 주장하는 데 비해 선거를 이유로 증세에는 반대하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어 각 언론사에서는 그 밑천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결국 2010년 6월 2일 총리직에서 사임했고 후임은 간 나오토가 대행을 맡았다.

2015

[서대문 형무소 방문 및 역사 사죄]

일본 총리로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여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과거 일본의 가혹 행위에 대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역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로 주목받았다.

2015년 일본 총리로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문 등 일본의 가혹 행위를 사죄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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