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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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하인리히 루이트폴트 힘러는 나치 독일의 제4대 친위대 제국지도자(Reichsführer-SS)이자 홀로코스트의 주요 설계자로, 나치 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고 악명 높은 권력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00년 뮌헨의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23년 나치당에 입당하여 1929년 친위대(SS)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소규모 경호 부대에 불과했던 SS를 100만 명 규모의 거대한 준군사조직으로 성장시켰으며, 게슈타포를 비롯한 모든 경찰 및 보안 부대를 통제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무장친위대(Waffen-SS)를 지휘하고 절멸 수용소 및 특수작전부대(Einsatzgruppen)를 창설 및 운영하며 약 600만 명의 유대인과 수많은 소수민족의 학살을 총지휘했습니다. 대전 말기 연합군과 비밀리에 평화 협상을 시도하다 히틀러에게 발각되어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었고, 체포된 직후 1945년 5월 영국군 구금 상태에서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연표
1900
보수적인 중산층 가톨릭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학교 부교장인 요제프 게프하르트 힘러였으며, 그가 직접 가르쳤던 바이에른 왕실 하인리히 왕자의 이름을 따서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1915
아버지가 왕실 인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그를 장교 후보생으로 추천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군사 및 신체 단련에 매진하며 장교의 꿈을 키웠습니다.
1917
장교를 꿈꾸며 훈련소에 입소하였으나, 형 게프하르트와 달리 실전에 투입되기도 전에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전투에는 단 한 번도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1918
장교의 꿈이 좌절된 후 란츠후트로 돌아가 중단했던 김나지움(문법학교) 학업을 마저 마쳐야만 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조국의 현실은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19
[뮌헨 공과대학교 입학]
농장 실습과 투병 생활을 거친 후, 뮌헨 공과대학교(Technische Hochschule)에 입학하여 농학을 전공했습니다.대학 생활 동안 펜싱 동아리인 '아폴로 연맹'에 합류하여 활동했습니다. 비록 동아리 회장이 유대인이었고 정중하게 지냈지만, 점차 반유대주의 성향이 싹트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1922
베르사유 조약 반대 시위에 직접 참여했으며, 일기장에 반유대주의적 발언과 인종주의 서적 독서 목록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농학 학위 취득 후 군 경력과 박사 과정 진학에 모두 실패하며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1923
자신의 극우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신념과 일치하는 나치당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에른스트 룀의 제안으로 제국전기협회(Bund Reichskriegsflagge)라는 준군사조직에도 가입했습니다.
에른스트 룀 휘하의 준군사조직 일원으로 쿠데타에 참여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파로 직장을 잃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좌절을 겪었습니다.
1924
[나치당 선전 보조원 활동]
당의 혼란기를 이용해 나치당 간부 그레고어 슈트라써 밑에서 비서 및 선전 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히틀러 수감 이후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을 기회로 삼아 권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바이에른 전역을 돌며 연설과 선전물을 배포하며 조직 내에서 입지를 차근차근 강화했습니다.
1925
SS 번호 168번을 부여받고 SS 지도자(SS-Führer)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26년에는 하바이에른 지역의 구역 지도자로 임명되며 승진 가도를 달렸습니다.
1927
이 직책에서 폭넓은 자유를 누리며 유대인, 프리메이슨, 정적들에 대한 방대한 통계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는 훗날 그가 구축하게 될 억압적이고 정교한 관료주의 시스템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친위대 부국장 임명]
히틀러에 의해 SS 상급지도자(SS-Oberführer) 계급과 함께 친위대 부국장으로 전격 임명되었습니다.히틀러에게 SS를 인종적으로 순수하고 충성스러운 강력한 엘리트 집단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히틀러는 이 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핵심 간부로 기용했습니다.
1928
이듬해인 1929년 8월, 외동딸인 구드룬(Gudrun)이 태어났습니다. 힘러는 딸을 매우 맹목적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나, 훗날 부부 관계는 소원해져 비서였던 헤트비히 포타스트와 내연 관계를 맺게 됩니다.
1929
[친위대 제국지도자(Reichsführer-SS) 취임]
에르하르트 하이덴의 뒤를 이어 히틀러의 승인 아래 제4대 친위대 제국지도자에 공식 취임했습니다.취임 당시 약 290명에 불과했던 초라한 조직을 불과 1년 만에 3,000명 이상으로 급격히 늘렸습니다. 그의 특유의 꼼꼼한 조직력과 야심이 빛을 발하며 SS의 성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34
[게슈타포 및 독일 전역 경찰 통제권 확보]
히틀러에 의해 프로이센 외곽의 모든 독일 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게슈타포 지휘권까지 넘겨받았습니다.같은 날 헤르만 괴링으로부터 비밀국가경찰인 게슈타포(Gestapo)의 통제권을 완전히 넘겨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독일 치안 및 보안 권력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을 완벽하게 확보했습니다.
[장검의 밤 숙청 주도]
히틀러 및 하이드리히 등과 모의하여 돌격대(SA) 수장 에른스트 룀과 당내외 정적들을 암살하는 '장검의 밤' 사건을 주도했습니다.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경쟁 조직 SA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SS는 SA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일 내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무장 조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친위대(SS)의 완전한 독립]
장검의 밤 숙청 공로를 인정받아 SS는 정식으로 SA에서 분리되어 히틀러에게만 직속 보고하는 독립 조직이 되었습니다.이로 인해 힘러의 직함인 '친위대 제국지도자(Reichsführer-SS)'는 국방군의 육군 원수 계급과 동등한 SS 최고 공식 계급으로 격상되며 그 위상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1936
[독일 경찰청장 임명]
전체 경찰력을 통괄하는 신설 직책인 '독일 경찰청장(Chief of the German Police)'에 임명되었습니다.명목상으로는 내무부 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오직 SS의 지휘 아래 모든 경찰 조직을 통합시켰습니다.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SS의 사조직처럼 통제하며 공포 정치를 본격화했습니다.
1939
[국가보안본부(RSHA) 창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보안경찰(SiPo)과 보안대(SD)를 하나로 통합하여 국가보안본부(RSHA)를 창설했습니다.가장 유능하고 잔혹한 부하였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국가보안본부의 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나치 독일의 국내외 첩보, 치안, 억압을 담당하는 기구를 일원화하고 고도화했습니다.
1941
[동부종합계획 초안 작성 지시]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 하루 전, 동유럽 내 인종 청소와 영토 지배를 위한 '동부종합계획(Generalplan Ost)' 초안 작성을 지시했습니다.수천만 명에 달하는 슬라브인, 유대인 등을 강제 이주, 노예화, 학살하여 게르만족의 생존권(Lebensraum)을 마련하려는 악랄한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훗날 홀로코스트와 동유럽 대학살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1943
[제국 행정 전권대사 임명]
히틀러의 깊은 신임을 바탕으로 전시 행정 권력을 독점하는 '제국 행정 전권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군사와 경찰, 보안 권력에 더하여 제국 행정 전반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습니다. 독일 내 행정 체계는 사실상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내무부 장관 취임]
전임자 빌헬름 프릭을 대체하여 나치 독일의 내무부 장관(Reichsminister of the Interior)에 공식 취임했습니다.치안 병력 통수권에 더해 명실상부한 국가 내정 최고 책임자로 올라섰습니다. 히틀러 바로 다음가는 나치 독일 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으로 무자비한 공포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1945
[모든 공직에서 해임]
서방 연합군과 비밀 평화 협상을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분노한 히틀러에 의해 모든 공직에서 파면당했습니다.전쟁 패배를 직감하고 히틀러 몰래 서방 측과 접촉해 항복을 타진했으나, 이 사실이 로이터 통신 등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극도로 배신감을 느낀 히틀러는 죽기 직전 그를 반역자로 선언하고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영국군 구금 중 음독 자살]
가짜 신분으로 도주하려다 영국군에게 체포되었고, 뤼네부르크에서 심문을 받던 중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습니다.체포 후 신분이 들통나자 영국군 장교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치아 사이에 숨겨두었던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정당한 죗값을 법정에서 치르지 않고 비겁하게 도피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