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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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변호사, 방송인, 작가, 광역단체장, 시장 + 카테고리

하시모토 도루는 일본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오사카부 지사와 오사카시 시장을 역임했습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파격적인 개혁 정책으로 주목받았으며, '오사카도 구상'을 통해 오사카 지역 행정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위안부 문제 및 성매매 필요론 등 논란성 발언으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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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9

[부라쿠민 가정에서 출생]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의 부라쿠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대까지 부라쿠민 신분이었으며, 어린 시절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1969년 6월 29일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하타가야정의 부라쿠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하시시타 엔키치 대까지만 해도 그의 집안은 부라쿠민이었으며, 1947년 이후 신분 차별이 사라졌음에도 부라쿠민 가계라는 점과 고아, 야쿠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멸시와 차별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76

[아버지의 죽음]

초등학교 2학년 때 야쿠자였던 아버지가 자살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네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야쿠자였던 아버지가 자살했습니다. 이후 하시모토는 홀어머니 밑에서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을 포함한 세 명의 가족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79

[오사카로 이주]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가족의 집세 문제로 인해 도쿄에서 오사카부 스이타시로 이주했습니다.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79년경, 가족은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도쿄에서 오사카부 스이타시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1년 후에는 오사카시 히가시요도가와구로 다시 이주하며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1983

[어머니의 재혼]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어머니가 재혼했으며, 이후 친아버지 쪽 가족 및 친척들과는 거의 연락 없이 지냈습니다.

하시모토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83년경 어머니가 재혼했습니다. 이후 그는 친아버지 쪽 가족이나 친척들과는 연락이 거의 단절된 채 생활했습니다.

1988

[고등학교 졸업 및 재수]

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입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1년간 재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1988년 3월 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일본국영방송의 퀴즈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졸업 당시 대입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1년간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1990

[와세다 대학 진학]

1년간 재수한 끝에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인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1988년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재수를 거쳐 1990년 4월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1994

[사법시험 합격]

대학 졸업 후 의류 판매 및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4년 3월 대학 졸업 후, 하시모토 도루는 의류 판매 아르바이트와 각종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시험을 준비하여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7

[변호사 자격 취득 및 활동 시작]

사법연수원 수습기간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로펌 가바시마 법률사무소에 입사하여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 3년간 일본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거친 뒤, 1997년 변호사 자격을 얻고 로펌 가바시마 법률사무소에 입사하며 변호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폭력 혐의로 기소된 친부측 삼촌과 사촌 형제의 변호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1998

[개인 변호사 사무실 개소]

로펌을 그만두고 오사카시 키타구에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소하여 독립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1998년 로펌 가바시마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오사카시 키타구에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을 개소하여 독립적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같은 해 기타노 고등학교 동창인 노리코와 결혼했습니다.

2000

[방송 활동 시작]

고교 선배의 부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리 출연한 것을 계기로 TV 방송 프로그램에 진출하여 법률 상담과 시사 의견을 피력하며 대중적 지명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2000년 고교 선배의 부탁으로 MBS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리 출연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01년 1월 4일 아사히 방송의 '와이드ABCDE~스'에 리포터로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을 본격화하며 법률 상담, 정치, 시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한때는 일주일에 9회 이상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지명도를 높였습니다.

2003

['움직이는 법률 상담소' 고정 출연]

일본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움직이는 법률 상담소'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하며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2003년 4월, 하시모토 도루는 쿠보다 노리아키의 후임으로 일본방송의 '움직이는 법률 상담소'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7월부터는 일본방송의 '한 가족의 거기까지 말해 위원회'에도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정치인, 법조인, 시사 문제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6

[오사카부 지사 선거 출마]

지방자치선거에서 오사카부 지사 후보로 출마하며 정치인으로서의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출마는 방송인으로서의 높은 지명도와 맞물려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2006년 말, 하시모토 도루는 지방자치선거에 오사카부 지사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중 그는 기존 정당과 단체들에 대한 비판적 연설을 통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2008

[오사카부 지사 당선 (최연소, 부라쿠민 최초)]

제52대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38세로 일본 내 최연소 광역 지자체 단체장이자 부라쿠민 출신 최초의 도도부현 지사가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2008년 1월 27일 치러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 183만 3천여 표를 얻어 제52대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당선되어 일본 도도부현 지사 중 최연소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부라쿠민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도도부현 지사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오사카부 지사 취임 및 개혁 착수]

오사카부 지사에 취임하며 '오사카는 파산 상태다. 청사를 해체하겠다'는 취임 일성과 함께 자신의 월급과 연금을 30% 삭감하는 등 강력한 재정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2008년 2월 6일,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부 지사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오사카부의 5조 엔에 달하는 채무 경감과 재정 재건을 약속하며, 자신의 월급과 연금을 30% 삭감하고 공무원 임금도 삭감하는 등 파격적인 비용 절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불필요한 청사 매각, 시민 단체 보조금 삭감, 기초 생활 수급 기준 강화 등 전방위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2009

[오사카부 재정 흑자 전환]

취임 2년 만에 강력한 재정 개혁 정책으로 오사카부의 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며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입증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부 지사 취임 2년차인 2009년 말, 공무원 임금 삭감, 시민 단체 보조금 삭감, 기초 생활 수급자 수급 기준 강화 등 강력한 행정 개혁을 통해 오사카부의 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다보스 포럼 영 글로벌 리더 선정]

세계 경제 포럼(다보스 포럼)에서 '영 글로벌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2009년 1월, 하시모토 도루는 세계 경제 포럼(다보스 포럼)의 '영 글로벌 리더'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개혁적인 행보와 정치적 리더십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총무성 지방자치 고문 위촉]

일본 총무성의 지방자치 담당 고문으로 위촉되어 지방자치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2009년 10월 30일, 하시모토 도루는 총무성 지방자치 담당 고문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지방 행정 개혁 경험과 전문성이 인정받은 결과로, 중앙 정부에서도 그의 의견을 경청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2010

['오사카도 구상' 발표]

공명당 연하회에서 '오사카도 구상'을 발표하며 오사카부와 오사카시를 통합하여 하나의 '오사카도'로 만들고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2010년 1월 12일, 하시모토 도루는 공명당 연하회에서 '오사카도 구상'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 구상을 통해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별도로 시설을 짓고 도시 계획을 중복되게 세우는 등 세금 낭비 문제를 해결하고, 광역 행정을 통한 '하나의 오사카'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구상이 되었습니다.

[오사카 유신회 창립 및 당수 취임]

'오사카도 구상' 실현을 위해 지역 정당인 '오사카 유신회'를 창립하고 스스로 당수에 취임하며 정책 추진의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2010년 4월 19일, 하시모토 도루는 '새로운 오사카와 구상'의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지역 정당인 '오사카 유신회'를 창립했으며, 자신이 직접 당수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책 구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행보였습니다.

2011

[기미가요 제창 의무화 조례 도입]

교육기본조례에 오사카부 내 각종 공식 행사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는 기립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2011년 6월, 하시모토 도루는 교육기본조례를 도입하면서 오사카부 내의 각종 공식 행사에서 '기미가요'의 제창을 의무화하는 기립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그는 일본 국내 공식 행사에서 국가를 연주하고 기립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사카부 지사 사임]

자신의 핵심 정책인 '오사카도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잔여 임기가 4개월 남았음에도 오사카부 지사직을 전격 사임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2011년 10월 31일, 자신의 지론인 '오사카도 구상'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잔여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오사카부 지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광역단체장이 한 등급 낮은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임한 이례적인 사례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사카 시장 당선]

오사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동시에 치러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도 측근이 당선되어 오사카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권력이 완전히 교체되었습니다.

2011년 11월 27일 치러진 오사카부 지사와 오사카시 시장 선거에서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 시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동시에 오사카 유신회의 간사장인 마쓰이 이치로가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되면서, 사실상 오사카 부내의 지방자치단체 권력이 하시모토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되었습니다.

[오사카 시장 취임]

제19대 오사카 시장에 취임하여 '오사카도 구상'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2011년 12월 19일 제19대 오사카 시장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오사카부지사 시절부터 추진해온 '오사카도 구상'을 시장의 위치에서 직접 실행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12

[유신회 정치숙 개설]

정치 신인 양성을 위한 '유신회 정치숙'을 개설하였습니다. 당초 400명 지원에 200명 선발을 계획하였으나 3, 000명 이상이 지원하여 2, 024명의 1기생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2012년 3월, 소수의 명문가가 기득권을 독점하는 기존 정치 체제에 반대하며 새로운 정치 신인 발굴을 위해 '유신회 정치숙'을 개설했습니다.

[위안부 강제징집론 의혹 제기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옛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언하며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하시모토 도루는 8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옛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언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위안부 제도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일지도 모른다. 한국 쪽 주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유신회 당수 취임]

오사카 유신회가 시민단체 등과 통합하여 '일본유신회'로 개편되었고, 하시모토 도루가 당수에 취임하며 전국 정당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2012년 9월 10일, 하시모토 도루가 이끌던 오사카 유신회는 시민단체 등과 통합하여 '일본유신회'로 개편되었고, 하시모토가 당수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지역 정당의 한계를 넘어 전국적인 정치 세력으로 발돋움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외국인 참정권 반대]

지역 사회 조례 제정에는 찬성하는 한편, 일본인이 아닌 이들에게 참정권을 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외국인 참정권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2012년 9월 19일, 하시모토 도루는 지역 사회의 조례 제정에 대해서는 찬성했지만, 일본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본 정부의 참정권을 줄 필요가 없고 일본 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외국인 참정권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아사히 신문 비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인권운동가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 아사히 신문이 비판하자, '지금까지 본 아사히 기자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쁘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12년 9월 25일, 하시모토 도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출신의 인권운동가 김복동의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은 데 대해 아사히 신문이 트위터에서 비판하자, 그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본 아사히 기자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쁘다', '기자라는 건 그렇게 위대한 건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비판했습니다.

2013

[위안부 필요론 및 성매매 필요론 발언]

오사카 시청 기자회견에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며 위안부 필요론을 주장했고, 미군 병사의 성욕 해소를 위해 '풍속업' 활용을 제안했다고 밝혀 국내외에서 큰 파문과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2013년 5월 13일,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 시청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또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방문 시 사령관에게 미군 병사들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풍속업을 더 활용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고 밝혀,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니시무라 신고 의원 제명]

니시무라 신고 의원이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자, 하시모토는 그를 제명하고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2013년 5월 17일, 일본유신회 소속 니시무라 신고 의원이 당 회의에서 하시모토 시장의 위안부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하시모토 도루는 즉시 니시무라 의원의 발언이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비난하고 그를 제명 처분하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미군 성매매 활용 제안 발언 철회]

오키나와 미군 사령관에게 성매매 업소 활용을 제안한 발언에 대해 미군과 미국 국민에게 사과하고 발언을 철회했습니다.

2013년 5월 25일, 하시모토 도루는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키나와 미군 후텐마 기지 사령관에게 미군 병사의 성욕 해소를 위해 풍속업소를 활용하라고 제안했던 발언에 대해 '미군과 미국 국민에게 사죄하며 발언을 철회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군 내 성폭력과 오키나와에서의 미군 병사 성범죄를 없애기 위한 뜻을 전달하려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사카이시 시장 선거 패배]

오사카부 사카이시 시장 선거에서 하시모토가 이끄는 일본유신회 후보가 패배하여 '오사카도 구상' 추진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2013년 9월 29일 치러진 사카이시 시장 선거에서 '오사카도 구상'에 반대하는 현직 시장이 하시모토 도루가 이끄는 일본유신회 산하 오사카유신회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결과는 하시모토의 '오사카도 구상' 추진에 큰 난항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2014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정당 반대 직면]

주요 정당들을 소집하여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자민당과 공명당 등 각 당이 일제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여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2014년 1월 31일,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도 구상' 추진을 위해 주요 정당들을 소집하여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자민당과 공명당 등 각 당이 그의 계획에 일제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하시모토는 '재신임' 카드를 꺼내 반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시장직 사퇴 (재신임 요청)]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시민들의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 오사카 시장직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정책에 대한 시민의 직접적인 판단을 구하는 이례적인 정치 행보였습니다.

2014년 2월 7일,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정치적 재신임을 묻기 위해 시의회 의장에게 시장직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는 자신이 재출마를 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며, 시민의 직접적인 판단을 구하는 도박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시장직 사퇴]

'오사카도 구상' 실현을 위한 재신임을 묻기 위해 공식적으로 시장직을 사퇴했습니다. 그의 사퇴는 재선거로 이어졌습니다.

하시모토 도루는 2014년 2월 27일, '오사카도 구상론'을 관철시키기 위한 재신임을 묻기 위해 오사카 시장직을 공식적으로 사퇴했습니다. 사직서는 20일 후에 수리되었으며, 그는 곧바로 재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오사카 시장 재취임]

자신이 사퇴하여 치러진 재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어 다시 시장직에 복귀했습니다. 이는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시민의 지지를 재확인하는 결과로 해석되었습니다.

2014년 3월 23일, 하시모토 도루는 자신이 사퇴하여 치러진 재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오사카 시장직으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이 결과는 그의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유럽의 위안부 운영 지적]

유럽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판하자, 프랑스군과 연합군 역시 위안부를 운영했다고 지적하며 유럽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2014년 6월 15일,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 시내 가두연설에서 유럽인들이 '일본이 성 노예를 운영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너희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반박할 수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프랑스군도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주장하며 유럽의 이중잣대를 비판했습니다.

2015

[오사카도 구상 주민투표 추진]

오사카시와 오사카부의 2중 행정을 해소하기 위한 행정구역 개편안인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신념과 리더십을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5년 5월, 하시모토 도루 시장은 오사카시와 오사카부가 인프라 정비 등 광역 행정 권한을 각각 보유하면서 발생하는 '2중 행정'을 해소해야 한다며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3월 17일 실시되는 주민투표에서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을 앞지르면 관련 법을 제정하여 도쿄도와 비슷한 오사카도를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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