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연표
1920
[출생]
스페인 계통의 부유한 가족에게 태어나 페루의 외교관이자 제5대 유엔 사무총장, 제28대 페루 총리를 역임하게 될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가 태어났습니다.
리마에서 케야르에서 온 선조와 함께 스페인 계통의 부유한 가족에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리마의 콜레기오 산아구스틴에서, 그러고나서 페루 로마 교황청립 리마 가톨릭 대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1940
20세의 나이에 페루 외무부에 가입하여 1944년 외교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1944
페루 외무부에서 공식적으로 외교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어서 프랑스, 영국, 볼리비아, 브라질 주재 페루 대사관에서 서기를 지냈고, 후에 스위스, 소련, 폴란드, 베네수엘라 주재 페루 대사를 지냈습니다.
1946
유엔 총회로 페루 사절단의 일원으로 지냈습니다. 그는 총회의 25회부터 30회 정기 회의를 통하여 다시 사절단의 일원을 지냈습니다.
1964
외교 업무의 20년 후, 그는 〈외교법 입문서〉를 저서하였습니다.
1971
유엔으로 페루의 영구적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1975년까지 유엔 총회의 전체 정기 회의들로 조국의 사절단을 지도하였습니다.
1973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페루 대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페루를 대표했으며, 1974년 키프로스 위기 당시 이사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페레스 데 케야르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조국을 대표하였습니다. 그는 1974년 7월 키프로스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안전 보장 이사회의 회장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1975
[키프로스 사무총장 특별 대표 임명]
키프로스에서 사무총장의 특별 대표로 임명되어 1977년 12월까지 이 직위를 수행했습니다.
키프로스에서 사무총장의 특별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페루 외무부에 재가입했을 때 1977년 12월까지 이 직위를 보유하였습니다.
1979
[유엔 사무차장 임명]
특별 정치 문제를 위한 유엔 사무차장으로 임명되었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사무총장의 개인적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특별 정치 문제를 위한 유엔 사무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직위를 보유한 동안 1981년 4월부터 아프가니스탄으로 사무총장의 개인적 대표로 활동하였습니다.
1981
[제5대 유엔 사무총장 취임]
쿠르트 발트하임을 계승하여 제5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86년 10월에는 두 번째 임기로 재선되었습니다.
쿠르트 발트하임을 계승하여 제5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고, 1986년 10월 두 번째 기간을 위하여 재선되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세계는 기념비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1982
자신의 두 기간 동안 포클랜드 전쟁의 여파로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중재들을 이끌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공식 임기 시작]
제5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공식 임기를 시작하며, 냉전 해빙기 국제 평화와 협력을 위한 중대한 역할들을 수행하게 됩니다.
제5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공식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소련 붕괴, 독일 통일, 베를린 장벽 붕괴,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등 세계사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85
[이란-이라크 전쟁 중재 방문]
1980년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의 해결을 위해 테헤란과 바그다드를 방문하여 토론을 시작하고 평화를 모색했습니다.
1980년에 시작된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교전으로 자신의 책임을 적용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주의 표준을 위하여 양국에 책임을 묻는 데 약속되기도 하였고, 유엔 팀들이 그 지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의 종말을 향할 토론을 시작하는 데 1985년 테헤란과 바그다드를 둘다 방문하였습니다.
1987
이베로 아메리카 협동의 흥행으로 아스투리아스 왕자 상을 수상했습니다.
1988
[유엔 평화유지군 노벨 평화상 수상]
그의 지휘 아래 유엔 평화유지군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유엔의 평화 유지 역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페레스 데 케야르의 지휘 아래 유엔 평화유지군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엔의 평화 유지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평화 중재 노력을 통해 8년간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 간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부터 계속되던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싸움이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 전쟁은 그의 재임 기간 중 중요한 외교적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1989
공동 안전의 국제적 이해로 올로프 팔메 상을 수상했습니다.
국제적 이해로 네루 상을 수상했습니다.
1990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대응]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구속적인 역할에 있어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페레스 데 케야르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구속하는 지도적인 역할을 택하였습니다.
1991
1991년 남북한이 동시 유엔에 가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세계에서 기념적인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캄보디아 평화 협정 조인]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의 교전 난민들을 돕기 위한 유엔 원조 노력 감독 후, 11년간의 전쟁을 끝내는 평화 협정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연루로 조인되었습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사이에 교전의 난민들을 보조하는 데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을 따라 대량의 유엔 원조 노력이 전개된 그의 감독 아래 있었습니다. 전쟁의 11년 후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연루와 함께 교전의 정당들 사이에 동의서가 1991년 10월에 조인되었습니다.
10년 세월에 걸친 제5대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유엔은 평화 구축과 국제 협력에 있어 많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95
페루의 대통령을 위하여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상대로 비성공적으로 출마하였습니다.
2000
[페루 총리 및 외무장관 취임]
부패 혐의에 따른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사임 이후 격동기에 페루 총리 및 외무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부패 혐의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사임에 이어 격동기 동안 그는 페루에서 외무장관은 물론 총리를 지냈습니다.
2001
페루 총리 및 외무장관직에서 퇴임하였습니다.
2004
프랑스 주재 페루 대사로서 자신의 직위로부터 물러났습니다. 자신의 퇴직에 그는 지속적으로 프랑스에 거주하였습니다.
2005
심근경색을 겪어 파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는 7월 30일 퇴원하였습니다.
2017
[페루 총리 중 최장수 기록 달성]
알프레도 솔프 이 무로의 기록을 경신하며 페루 역사상 여러 총리 중에 가장 긴 인생을 산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35,581일의 수명과 함께 알프레도 솔프 이 무로를 통과하였고, 페루의 역사상 여러 총리 중에 가장 긴 인생을 살았습니다.
2020
리마에서 10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