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올림픽
연표
1894
[근대 올림픽 시작]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주도로 스포츠를 통한 국제사회 화해를 목표로 근대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이는 전 세계인의 화합을 위한 거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1896
[제1회 아테네 올림픽]
세계 최초의 근대 하계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습니다.14개국 245명의 선수가 참가한,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대규모 국제 행사였습니다.스포츠를 통한 국제사회 화해를 꿈꾼 쿠베르탱 남작의 염원이 첫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습니다.
1900
[파리 올림픽, 여성 첫 참가]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은 이전 대회보다 4배 이상 많은 선수가 참가하며 규모를 키웠습니다.이 대회에서는 11명의 여성 선수가 테니스와 크리켓 종목에 첫 출전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다만 파리 박람회와 함께 열려 올림픽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1904
[세인트루이스 메달 전통]
유럽 선수들의 대서양 횡단 부담으로 선수 규모가 줄어든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박람회의 일부로 열려 올림픽 정체성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메달 수상자에게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하는 전통이 이때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06
[비공식 10주년 대회]
아테네에서 올림픽 1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열렸으나, IOC는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이 대회를 올림픽 경기로 간주하며, 1900년과 1904년 대회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1908
[마라톤 정식 거리 확정]
런던 올림픽에서 마라톤 경주가 현재의 공식 거리인 42.195km로 처음 실시되었습니다.이 거리는 귀빈석 앞에서 경주가 끝나도록 하기 위해 결정되었습니다.이 대회에서는 이탈리아 도란도 피에트리가 결승선을 통과 직전 도움을 받아 실격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1912
[짐 소프 메달 박탈 논란]
2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며 규모를 키운 스톡홀름 올림픽.10종 경기와 근대 5종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짐 소프는 이전에 돈을 받고 야구 경기에 출전한 사실이 드러나 아마추어리즘 위반으로 메달을 박탈당했습니다.이는 올림픽 역사상 큰 논란으로 남았습니다.
1916
[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191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이 안타깝게도 취소되었습니다.전쟁이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를 멈추게 한 첫 사례였습니다.
1920
[전쟁 상흔 속 올림픽]
제1차 세계 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안트베르펀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사상 가장 많은 선수가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치러진 다소 침체된 대회로 기록됩니다.
1924
[파보 누르미 5관왕]
3000여 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한 파리 올림픽에서는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 선수가 단체전 3개와 개인전 1500m, 5000m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총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어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1928
[여성 육상 & 스폰서십]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들이 육상 종목에 최초로 참가하며 스포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또한 코카콜라가 후원하는 첫 스폰서십이 도입되어 대회의 활성화와 상업화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32
[대공황 속 로스앤젤레스]
세계적인 대공황의 영향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치러졌습니다.경제 위기가 올림픽 개최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대회였습니다.
1936
[나치 선전과 영웅 탄생]
나치 독일이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한 베를린 올림픽.아리안족 우월주의를 내세웠던 아돌프 히틀러의 예상과 달리,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가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인종차별에 일침을 가했습니다.또한 한국의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40
[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40년 도쿄(후에 헬싱키로 변경) 하계 올림픽이 취소되었습니다.연이은 전쟁으로 올림픽이 두 번이나 열리지 못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1944
[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 (2)]
제2차 세계 대전의 지속으로 1944년 런던 하계 올림픽 또한 취소되었습니다.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올림픽 정신이 전쟁 앞에 무릎 꿇는 안타까운 시기였습니다.
1948
[전후 첫, 韓 첫 참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은 전쟁의 주범인 독일과 일본이 배제된 채 치러졌습니다.네덜란드의 파니 블랑커르코엔 선수는 육상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갓 독립한 대한민국이 이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감격적인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52
[자토페크 신화와 냉전]
헬싱키 올림픽은 '인간 기관차'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페크 선수가 10,000m, 5,000m, 그리고 생전 처음 출전한 마라톤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육상 3관왕 신화를 쓴 대회였습니다.또한 한국은 전쟁 중에도 참가하여 세계의 박수를 받았으나, 냉전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선수촌이 분리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1956
[남반구 첫 & 동서독 단일]
남반구에서 최초로 개최된 멜버른 올림픽은 성공적이었지만, 헝가리 사태 여파로 헝가리-소련 수구 경기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등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특이하게도 승마 경기는 호주 검역 문제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습니다.이 대회에서 동서독이 사상 최초로 단일팀으로 참여했습니다.
1960
[맨발의 영웅, 알리 데뷔]
로마 올림픽에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 선수가 맨발로 마라톤을 제패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습니다.'무하마드 알리'로 알려진 캐시어스 클레이가 권투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후에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메달을 던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소련은 기계체조에서 16개 중 15개의 금메달을 휩쓸었고, 동서독은 다시 단일팀으로 출전했습니다.
1964
[아시아 첫 & 위성 중계]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도쿄 올림픽은 위성 중계가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첫 대회로, 올림픽이 전 세계적 인기를 얻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아베베 비킬라는 맹장수술 후 6주 만에 참가하여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동서독 단일팀은 이 대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968
[고산지대 & 밥 비먼 점프]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열린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독특한 경기 환경을 제공했습니다.미국의 밥 비먼 선수는 멀리뛰기에서 8.90m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이 기록은 무려 23년간 깨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대회는 여자 선수가 최초로 성화를 점화한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1972
[뮌헨 참사와 비운의 대회]
뮌헨 올림픽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검은 9월단'의 습격으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한 올림픽 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인 '뮌헨 참사'가 발생했습니다.경기는 계속되었으나 '초상집'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미국의 마크 스피츠 선수가 수영에서 7개의 금메달을 획득하고 북한의 리호준 선수가 사격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지만, 비극의 그림자가 짙었습니다.
1976
[비용 문제 & 최초 10점]
몬트리올 올림픽은 막대한 비용(약 15조 원 추산)이 투입되어 시민들이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실패를 기록하며, 올림픽 상업화의 그림자를 보여주었습니다.뉴질랜드의 인종차별 이슈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와 넬리 킴이 체조에서 사상 처음 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감동을 선사했고, 한국의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80
[서방 보이콧 반쪽 대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미국을 비롯한 66개 서방 진영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집단 보이콧하면서 '반쪽 대회'로 치러졌습니다.그리스, 영국, 호주만이 보이콧에 불참하며 올림픽 전 대회 참가 기록을 이어나갔습니다.
1984
[동구권 보이콧 & 상업화]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포함한 14개 동구권 국가들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하며 또다시 '반쪽 대회'가 되었습니다.하지만 이 대회는 최대한 상업적인 면에 집중하여 운영상 적자를 면하고, 올림픽이 상업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8
[동서 화합 & 약물 스캔들]
서울 올림픽은 냉전 종식 전 동서 양 진영과 제3세계 국가들이 집단 불참 없이 모두 참가하며 '화합의 장'을 연 뜻 깊은 대회였습니다.그러나 100m 달리기 선수 벤 존슨의 스테로이드 약물 적발을 시작으로 선수들의 약물 사용 문제가 크게 불거져 올림픽의 새 이슈로 떠올랐고, 이후 선수 관리 및 규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1992
[프로 선수 첫 참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아마추어 대회였던 올림픽에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미국의 농구 드림팀이 프로 선수들로 구성되어 출전하여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또한 구 소련에서 독립한 여러 국가들이 이 대회에 대거 참가했습니다.
1996
[상업화 논란 속 애틀랜타]
코카콜라 본사가 위치한 애틀랜타에서 열린 올림픽은 개최지 선정부터 상업적 영향력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더욱 상업적인 올림픽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미국의 마이클 존슨이 2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캐나다의 도너번 베일리가 1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는 등 훌륭한 경기들도 펼쳐졌습니다.
2000
[원주민 화합 & 아마추어]
시드니 올림픽은 호주 원주민 출신 성화 점화자 캐시 프리먼이 400m에서 우승하며 백인과 원주민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뱀장어'라는 별명의 적도기니 수영선수 에릭 무삼바니는 이른바 '개헤엄'으로 올림픽 아마추어 정신을 되새기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4
[본고장 회귀, 테러 대비]
근대 올림픽의 본고장인 아테네에서 다시 열린 대회는 전 세계적인 테러 공포에 맞서 15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테러 대비에 지출했습니다.이는 올림픽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더라도 테러 대비 등 새로운 비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6
[남미 최초의 올림픽]
근대 올림픽 역사 120년 만에 최초로 남미 대륙에서 개최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전 세계인의 축제가 지구 반대편까지 확장되는 의미 있는 대회였습니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