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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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록 밴드,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 + 카테고리

1965년 런던에서 결성된 전설적인 록 밴드. 대중음악사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하고 범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그룹 중 하나. 폭 넓은 장르 실험적인 노래 철학적인 가사 정교한 라이브 공연으로 유명. 초기 사이키델릭 록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변화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 구축.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장 이상 앨범 판매 기록 과 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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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3

[밴드 주역 첫 만남]

건축학과 학생 로저 워터스와 닉 메이슨이 웨스터민스터 대학교에서 만나 리처드 라이트와 함께 밴드 '시그마 6'를 결성했다.

이들은 학교 지하 다방에서 서쳐스의 노래와 자작곡을 연주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멤버 재편 시작]

로저 워터스와 닉 메이슨이 혼지 미술 대학교 강사 마이크 레너드 소유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이후 밥 클로스가 합류하면서 워터스는 리드 기타에서 베이스 기타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1964

[티 세트 그룹명 정착]

밴드는 '티 세트'라는 그룹명으로 고정하기 전까지 메가데스, 압답스 등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

이 무렵 기타리스트 시드 배럿이 워터스와 클로스의 아파트로 이사 오며 밴드에 합류했다.

[첫 데모 녹음]

웨스트 햄스테드의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진행, 블루스 가수 슬림 하포의 원곡 'I'm a King Bee'를 포함한 4곡을 녹음하며 밴드의 첫 데모를 만들었다.

1965

[시드 배럿 리더 등극]

크리스 데니스 탈퇴 후 시드 배럿이 밴드의 리더가 되었다.

같은 해 중반, 밥 클로스가 밴드를 떠나고 배럿이 리드 기타를 맡게 되면서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

배럿이 주로 공연하던 곳에서 동명의 밴드를 알게 되자, 그의 우상이었던 피드몬트 블루스 연주자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실의 이름에서 따와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라는 새로운 밴드 이름을 만들었다.

이 이름은 훗날 '핑크 플로이드'로 줄어들어 밴드의 최종 이름이 된다.

1966

[전문 매니저 계약]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 피터 제너와 앤드루 킹이 밴드의 매니저가 되어 '블랙힐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다.

제너의 제안으로 밴드 이름에서 '사운드'를 빼고 '핑크 플로이드'가 되어 런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핵심 주역으로 부상했다.

1967

[EMI 계약 체결]

EMI와 5,000 파운드(2019년 기준 약 1억 3,900만원)의 선금을 받는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

런던 EMI 스튜디오에서 첫 싱글 'Arnold Layne'과 'Candy and a Currant Bun'을 녹음했다.

[데뷔 싱글 발매]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싱글 'Arnold Layne'이 발매되었다.

가사에 있는 크로스드레싱 언급으로 일부 라디오 방송국에서 금지곡이 되었으나,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밴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히트 싱글과 배럿 악화]

두 번째 싱글 'See Emily Play'를 발매하여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하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리더 시드 배럿의 정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 성공]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 발매되어 영국 차트 6위에 오르며 14주간 상위권을 지켰다.

한 달 후 미국에서도 발매되며 성공적인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첫 미국 투어 혼란]

밴드가 첫 미국 투어를 진행했으나, 투어 기간 동안 시드 배럿의 정신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인터뷰와 공연에서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결국 밴드는 투어를 조기 종료하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데이비드 길모어 합류]

시드 배럿의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밴드의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워지자, 핑크 플로이드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를 새로운 멤버로 영입했다.

1968

[배럿 없는 첫 앨범]

시드 배럿 없는 첫 음반 'A Saucerful of Secrets'가 발매되었다.

소음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적극 활용했으며, 영국 차트 9위를 기록했지만, 핑크 플로이드 앨범 중 유일하게 미국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시드 배럿 밴드 탈퇴]

시드 배럿은 정신 건강 악화로 핑크 플로이드를 공식 탈퇴했다.

그의 빈자리는 데이비드 길모어가 채우며 밴드는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1969

[최초의 더블 앨범]

핑크 플로이드 최초의 더블 앨범 'Ummagumma'는 라이브와 각 멤버의 독립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가장 실험적이고 혼란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평론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국 차트 5위, 미국 차트 74위를 차지했다.

[영화 사운드트랙 참여]

바벳 슈뢰더 감독의 영화 'More' 사운드트랙 'Music from the Film More'를 발표했다.

음반은 영국 차트 9위, 미국 차트 153위를 기록하며 어쿠스틱하고 서정적인 곡들을 많이 수록했다.

1970

[첫 1위 앨범]

아방가르드 작곡가 론 기신과의 협업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한 첫 음반 'Atom Heart Mother'를 발표했다.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55위를 기록하며 당시 핑크 플로이드 앨범 중 최고 성과를 달성했다.

21분 길이의 대곡과 'Alan's Psychedelic Breakfast'와 같은 독특한 시도로 밴드의 실험성을 극대화했다.

1971

[사이키델릭 정점]

밴드의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집약된 마지막 음반 'Meddle'을 발표했다.

23분 길이의 대곡 'Echoes'가 수록되었으며, 영국 차트 3위, 미국 차트 70위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1972

[두 번째 사운드트랙]

바벳 슈뢰더 감독의 영화 'La Valle' 사운드트랙 'Obscured by Clouds'를 발표했다.

짧고 선율적인 곡들을 담아 미국 차트 46위, 영국 차트 6위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처음으로 차트 50위권에 진입했다.

1973

[전설의 명반 탄생]

핑크 플로이드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자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매했다.

미국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4천만 장 이상 판매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로 등극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741주 이상, 영국 앨범 차트에 301주 이상 등재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광기, 자본주의 등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재즈 요소를 수용해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1975

[배럿을 위한 헌정 앨범]

'부재'를 주제로 한 앨범 'Wish You Were Here'를 발표했다.

특히 시드 배럿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Shine On You Crazy Diamond'가 큰 감동을 주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 성공을 이어갔다.

앨범 녹음 중 시드 배럿이 스튜디오에 나타났으나, 너무 변한 모습에 멤버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일화가 있다.

1977

[워터스 지배력 시작]

로저 워터스의 강력한 영향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앨범 'Animals'를 발매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 모티브를 따와 현대 사회를 비판했으며, 앨범 커버의 거대한 돼지 모형은 밴드의 상징이 되었다.

1979

[록 오페라 'The Wall']

고립과 단절을 다룬 록 오페라 앨범 'The Wall'을 발표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등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고, 미국에서 1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11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앨범 제작 중 로저 워터스가 릭 라이트를 해고하며 밴드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앨범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비틀즈 이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두 장 가진 밴드가 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82

[영화 'The Wall' 개봉]

앨범의 음악과 모티브를 바탕으로 한 영화 'Pink Floyd: The Wall'이 개봉했다.

앨런 파커 감독, 밥 겔도프 주연으로, 박스오피스에서 1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를 마쳤다.

1983

[워터스 솔로작 'The Final Cut']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에게 헌정된 앨범 'The Final Cut'을 발매했다.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분노를 담아 'The Wall'보다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6위를 기록하며 워터스의 지배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1984

[멤버 솔로 활동 시작]

핑크 플로이드의 활동이 잠정 중단된 가운데,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를 비롯한 멤버들이 각자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85

[로저 워터스 탈퇴]

로저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 탈퇴를 공식 발표하며 밴드는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였다.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이 '핑크 플로이드' 이름으로 새 앨범을 제작하려 하자 워터스와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1986

[밴드 명칭 사용권 승소]

로저 워터스와의 밴드 명칭 사용권에 대한 법적 공방에서 법원이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길모어와 메이슨은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1987

[새로운 시작의 앨범]

로저 워터스 없이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이 주축이 된 앨범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을 발표했다.

릭 라이트가 세션으로 참여 후 정식 멤버로 재가입했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차트 3위를 기록했다.

1994

[마지막 정규 앨범]

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 'The Division Bell'을 발표했다.

릭 라이트가 정식 멤버로 참여하며 밴드의 결속력이 강화되었고,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95

[첫 그래미상 수상]

핑크 플로이드는 'Marooned'로 결성 이래 처음으로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하며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1996

[로큰롤 명예의 전당]

미국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로저 워터스는 불참했지만, 데이비드 길모어는 연설에서 워터스와 시드 배럿 모두에게 영광을 돌렸다.

2000

[라이브 앨범 발매]

1980~81년 런던에서 열린 'The Wall' 콘서트 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 'Is There Anybody Out There?'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미국 음반 차트 19위를 기록하며 팬들에게 과거의 명 공연을 다시 선사했다.

2001

[베스트 앨범 'Echoes']

밴드의 베스트 앨범 'Echoes'가 발매되었다.

모든 멤버가 선곡, 편집, 마스터링 과정에 참여했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여전한 인기를 증명했다.

2002

[로저 워터스 내한]

로저 워터스가 전 세계 라이브 투어 'In the Flesh'의 일환으로 서울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단독 공연을 가졌다.

핑크 플로이드 시절의 히트곡과 솔로곡을 선보이며 한국 팬들을 열광시켰다.

2003

[매니저 스티브 오로크 사망]

오랫동안 밴드의 매니저를 맡았던 스티브 오로크가 사망했다.

로저 워터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그의 장례식에서 'Fat Old Sun'과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연주하며 추모했다.

2005

[역사적 재결합: 라이브 8]

로저 워터스를 포함한 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24년 만에 '라이브 8' 콘서트에서 일시적으로 재결합하여 공연했다.

이 감동적인 재회는 콘서트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재결합 공연 후 핑크 플로이드 앨범의 판매량이 급증했으며, 데이비드 길모어는 수익금 기부를 촉구하며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핑크 플로이드가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의 추천으로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릭 라이트는 불참했고, 로저 워터스는 비디오 스크린을 통해 참여했다.

2006

[시드 배럿 사망]

핑크 플로이드의 창립 멤버이자 초기 리더였던 시드 배럿이 당뇨로 60세에 사망했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기억된다.

2008

[폴라 음악상 수상]

핑크 플로이드가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부터 권위 있는 폴라 음악상을 수상했다.

리더 로저 워터스와 드러머 닉 메이슨이 시상식에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릭 라이트 사망]

핑크 플로이드의 키보디스트 리처드 라이트가 암 투병 끝에 65세로 사망했다.

데이비드 길모어는 그의 '마법 같은' 음악적 기여와 친구로서의 관계를 애도하는 추도문을 발표했다.

2011

[월 투어 깜짝 합류]

로저 워터스의 'The Wall Live' 투어 중 영국 O2 아레나 공연에서 데이비드 길모어가 깜짝 등장하여 'Comfortably Numb'을 함께 공연했다.

마지막 곡에서는 닉 메이슨까지 합류해 세 명의 멤버가 함께 무대에 섰다.

2014

[최후의 앨범 'Endless River']

폴리 샘슨이 핑크 플로이드의 새로운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될 'The Endless River'의 출시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로저 워터스 없이 데이비드 길모어, 닉 메이슨, 릭 라이트가 참여하여 20년 만에 발표된 밴드의 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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