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곡선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설명하며 현대 거시경제학의 심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1958년 통계적 관찰로 시작된 이 이론은 정부가 실업과 물가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정책적 희망을 주었으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기대 인플레이션과 자연 실업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수용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곡선은 경제 위기마다 그 형태를 달리하며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과 경제 안정화 정책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나침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연표
1926
[어빙 피셔의 초기 발견]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실업률과 가격 변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선구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그는 통계적 분석을 통해 물가가 상승할 때 실업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음을 처음으로 포착해냈습니다. 이 연구는 훗날 필립스 곡선이라 불릴 거대한 이론적 흐름의 토양을 마련한 최초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피셔의 논문 제목은 '실업과 가격 변동 사이의 통계적 관계'였으며, 이는 1926년 국제 노동 리뷰(International Labour Review)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는 가격 수준의 급격한 변화가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일시적으로 낮추어 고용을 촉진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피셔의 관계'라는 이름으로 재평가받으며 필립스 곡선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습니다.
1958
[필립스의 기념비적 논문]
뉴질랜드 출신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가 영국의 약 10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는 명목 임금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에 명확한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함을 입증하여 경제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발표를 기점으로 실업과 물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표는 그의 이름을 딴 곡선으로 명명됩니다.
논문 '1861-1957년 영국의 실업률과 명목임금 상승률 사이의 관계'는 이코노미카(Economica) 지에 발표되었습니다.
필립스는 실업률이 낮을 때 노동 공급이 부족해져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사실을 곡선 형태로 시각화했습니다.
이 연구는 영국 경제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통계적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60
[사무엘슨과 솔로우의 확장]
폴 사무엘슨과 로버트 솔로우가 필립스의 이론을 미국 데이터에 적용하여 정책적 도구로 변환시킵니다. 그들은 임금 상승률 대신 물가 상승률을 대입하여 실업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상충 관계를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이제 정부는 필립스 곡선을 통해 원하는 실업률을 달성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물가 수준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인플레이션 정책의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필립스 곡선을 거시경제 정책의 핵심 메뉴판으로 제시했습니다.
미국 사회가 0% 인플레이션을 원한다면 5.5%의 실업률을 감내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예시로 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 곡선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개입 정당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1964
[정부 정책의 핵심 지표화]
미국 정부가 경기 부양과 고용 확대를 위해 필립스 곡선의 상충 관계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재정 및 통화 정책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 필립스 곡선은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행정부의 경제 자문관들은 적극적인 경기 대응 정책을 수립하는 데 이 곡선을 활용했습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미세 조정(Fine-tuning)을 통해 경제적 불행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낙관론은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유례없는 호황과 낮은 실업률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67
[프리드먼의 강력한 경고]
밀턴 프리드먼이 전미경제학회 회장 연설을 통해 기존 필립스 곡선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기 시작하면 곡선이 이동하여 더 이상 실업률을 낮출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영구적인 상충 관계를 믿었던 당시 경제학계에 투척된 거대한 폭탄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통화 정책의 역할'이라는 연설에서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자연 실업률'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물가만 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적응적 기대'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설은 필립스 곡선의 역사에서 '통화주의적 전환'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68
[에드먼드 펠프스의 기여]
에드먼드 펠프스가 프리드먼과 독립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가미된 새로운 필립스 곡선 모형을 제시합니다. 그는 개별 기업과 노동자가 정보의 불완전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했습니다. 이를 통해 물가 기대가 변함에 따라 필립스 곡선이 수직으로 변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립했습니다.
펠프스는 '화폐 임금 역학 및 노동 시장 균형' 논문을 통해 마이크로적인 관점에서 거시 경제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노동자들이 명목 임금 인상을 실질 임금 인상으로 착각하는 '화폐 환상'이 깨지는 순간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펠프스는 이 공로를 포함한 거시경제 정책 연구로 200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1970
[이론적 고립과 회의론]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이 실제 경제 현상과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학계에 회의론이 확산됩니다.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하는 기현상이 일부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고정된 곡선이 아닌 이동하는 곡선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사람들의 물가 기대 심리가 고착화되었습니다.
기존의 정적인 필립스 곡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정책 입안자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는 케인스주의적 미세 조정 정책이 처음으로 중대한 신뢰의 위기를 맞이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973
[제1차 석유 파동의 충격]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 가격의 급등이 전 세계 경제에 공급 측면의 거대한 충격을 가합니다. 생산 비용이 폭등하면서 물가는 치솟고 생산은 위축되어 실업이 증가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필립스 곡선의 기본 전제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OPEC의 석유 금수 조치로 원유 가격이 4배 이상 뛰어오르며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수요를 조절하여 물가와 고용을 관리하려던 기존의 필립스 곡선 기반 정책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공급 충격이 거시 경제 지표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이 전 세계 경제학자들에게 각인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1975
[NAIRU 개념의 탄생]
모딜리아니와 파파데모스가 인플레이션을 가속하지 않는 실업률 수준인 'NAIRU' 개념을 공식 제안합니다. 이는 프리드먼의 자연 실업률을 정책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정교화한 개념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제 중앙은행의 목표는 실업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이 임계치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NAIRU는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의 약자로, 현재까지도 통화 정책의 핵심 지표로 쓰입니다.
실업률이 이 지점보다 낮아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급격히 커진다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이 개념의 도입은 필립스 곡선이 정책적 수단에서 경제의 한계를 파악하는 지표로 성격이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1976
[루카스 비판의 등장]
로버트 루카스가 과거의 통계 자료에 의존한 정책 결정은 사람들의 반응을 반영하지 못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상하기 때문에 정부의 기만적인 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비판은 필립스 곡선을 포함한 거시경제 모형 전반의 구조적 개편을 이끌어냈습니다.
루카스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도입하여 거시 경제학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올려 고용을 늘리려 해도, 사람들은 이를 미리 알고 행동을 수정하므로 효과가 사라집니다.
이후 모든 거시경제 모형은 개별 경제 주체의 합리적 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미시적 기초'를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1977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점]
주요 선진국들이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유례없는 고통에 직면하며 필립스 곡선의 붕괴를 목도합니다. 과거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 쏟아지자 학계는 필립스 곡선의 무용론까지 제기하게 됩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듯 보였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3%를 넘어섰고, 실업률 또한 급격히 상승하여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필립스 곡선이 보여주던 매끄러운 역관계는 데이터상에서 완전히 무너진 '산포도' 형태로 변했습니다.
이 시기의 실패는 케인스주의의 퇴조와 공급 중시 경제학의 부상을 가속화했습니다.
1979
[폴 볼커의 금리 인상 결단]
미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통스러운 초고금리 정책을 전격 시행합니다. 그는 실업률이 폭등하는 한이 있더라도 물가 기대 심리를 꺾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경제을 압박했습니다. 이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필립스 곡선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이론을 실전에서 증명하기 위한 가혹한 시험대였습니다.
볼커는 기준 금리를 최고 20%까지 올리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여 시장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실업률은 10%를 돌파하며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으나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이 필립스 곡선을 안정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사례입니다.
1981
[디스인플레이션의 성공]
가혹한 긴축 정책의 결과로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한 자릿수로 급격히 떨어지며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물가가 잡히자 사람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필립스 곡선도 하향 안정화되었습니다. 실업률은 높은 수준에서 정체되었으나,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경험은 장기 필립스 곡선이 수직이라는 프리드먼의 가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물가 안정이 확보된 이후에야 경제가 다시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승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물가 안정 목표제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4
[경직적 물가 연구의 진전]
경제 주체들이 가격을 즉각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가격 경직성'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됩니다. 메뉴 비용이나 계약 기간의 존재로 인해 단기적으로 필립스 곡선의 상충 관계가 유효할 수 있음을 새롭게 규명했습니다. 이는 무너졌던 필립스 곡선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려는 뉴케인스주의자들의 노력이었습니다.
그레고리 맨큐 등은 가격 조정에 비용이 발생한다는 '메뉴 비용' 이론을 통해 시장의 불완전성을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미시적 기초는 단기 필립스 곡선이 왜 우상향(실업과 물가는 반대)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강화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1990년대 이후 주류 경제학의 기반이 되는 뉴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의 초석이 됩니다.
1990
[뉴케인스주의 종합의 시대]
합리적 기대와 가격 경직성을 결합한 '새로운 거시경제적 종합'이 이루어지며 필립스 곡선이 재탄생합니다. 이제 곡선은 단순한 과거의 통계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은 수학적 모델로 변모했습니다. 이 새로운 곡선은 현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분석용 표준 모형으로 채택됩니다.
이를 '뉴케인스주의 필립스 곡선(NKPC)'이라 부르며, 현재 물가가 미래 기대 물가에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모형은 통화 정책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중앙은행원들은 이 복잡한 공식을 통해 금리 인상의 타이밍과 강도를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
[칼보 가격 설정 모델 통합]
길레르모 칼보가 제안한 시차적 가격 설정 방식이 필립스 곡선 모형에 완벽하게 통합됩니다. 모든 기업이 동시에 가격을 바꾸지 못하고 무작위적인 시차를 두고 조정한다는 설정은 현실을 더 잘 설명했습니다. 이 정교한 도구의 등장으로 인플레이션의 동학을 파악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칼보 모형은 수학적 간결함 덕분에 거시 경제 분석의 표준적인 뼈대가 되었습니다.
기업들이 가격을 유지하려는 성향과 물가 안정 사이의 연결 고리를 명확히 밝혀냈습니다.
이 이론적 성과는 이후 수천 편의 응용 논문을 낳으며 현대 거시경제학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1995
[킹과 왓슨의 실증 연구]
로버트 킹과 마크 왓슨이 필립스 곡선의 실증적 유효성을 다시 한번 검증하는 대규모 연구를 발표합니다. 그들은 특정 조건하에서 여전히 실업률이 미래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 유용한 지표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필립스 곡선이 폐기되어야 할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경제의 법칙임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은 '필립스 곡선과 통화 정책'이라는 연구를 통해 변동성이 큰 시기에도 곡선의 기본 원리는 작동함을 보였습니다.
다만 과거보다 그 관계가 약해졌으며, 다른 경제 변수들과의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함을 시사했습니다.
이 연구는 중앙은행들이 데이터에 기반한 세밀한 정책을 펴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습니다.
1997
[NAIRU 안정성에 대한 논쟁]
미국의 낮은 실업률과 낮은 물가가 공존하는 '골디락스' 경제가 이어지자 NAIRU 수치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과거 6%대로 믿어왔던 임계치가 기술 발전과 노동 시장의 변화로 낮아졌을 가능성이 논의되었습니다.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평탄화' 현상이 학계의 화두로 떠오릅니다.
제임스 스톡과 마크 왓슨은 NAIRU가 고정된 값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가변적 지표임을 주장했습니다.
로버트 고든 등은 생산성 향상이 물가 상승 압력을 흡수하여 곡선이 우호적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시기의 논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고도 실업률을 더 낮출 수 있다는 정책적 유연성을 부여했습니다.
1999
[갈리와 거틀러의 증명]
조르디 갈리와 마크 거틀러가 노동 비용 데이터를 활용해 뉴케인스주의 필립스 곡선이 실제 경제를 매우 잘 설명함을 입증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실업률보다 실제 생산 비용의 변화가 물가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는 필립스 곡선 분석의 중심축을 노동 시장의 긴장도에서 한계 비용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 역학: 구조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통해 NKPC 모델의 실증적 적합성을 높였습니다.
기업의 미래 가격 기대치가 현재 물가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데이터로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통화 정책 결정 시 노동 공유율(Labor share) 등 구체적인 비용 지표가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
[필립스 곡선 평탄화의 심화]
21세기에 들어서며 실업률의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현저히 줄어드는 현상이 뚜렷해집니다. 이를 필립스 곡선이 '평평해졌다(Flattening)'고 표현하며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세계화로 인한 저렴한 제품 공급과 노조의 약화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분업화와 중국의 세계 시장 편입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구조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낮아지면서 실업률이 떨어져도 임금이 급격히 오르지 않는 현상이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나, 동시에 자산 버블의 위험도 키웠습니다.
2008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며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치솟습니다. 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에 따르면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해야 했으나, 예상보다 물가 하락 폭이 크지 않은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라진 디플레이션' 미스터리는 필립스 곡선에 대한 새로운 연구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실업률이 10%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의지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기대 인플레이션을 고정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사건은 필립스 곡선 분석에서 '기대의 닻(Anchoring)'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10
[사라진 인플레이션의 미스터리]
금융 위기 이후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며 실업률이 매우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여전히 오르지 않습니다. 중앙은행들은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으나 인플레이션은 목표치인 2%에 미달하는 상황이 장기화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필립스 곡선이 완전히 '죽었거나' 잠들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게 됩니다.
미 연준은 양적 완화를 지속했으나 물가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아마존 효과로 대변되는 온라인 쇼핑의 확산과 고령화에 따른 수요 위축이 원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필립스 곡선의 예측력이 상실되면서 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중앙은행원들의 고민은 깊어만 갔습니다.
2012
[볼과 마줌더의 재해석]
로렌스 볼과 산딥 마줌더가 필립스 곡선의 평탄화 현상을 장기적인 기대 인플레이션의 안정으로 설명하는 연구를 내놓습니다. 그들은 곡선의 기울기가 변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관성이 강력해진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곡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데이터 속에 숨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론을 방어했습니다.
그들은 핵심 인플레이션 지표를 활용해 위기 이후의 물가 동학을 분석했습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한번 2%에 고정되면 웬만한 실업 변동에는 물가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필립스 곡선이 여전히 유용한 틀이지만, 사용 방식이 달라져야 함을 시사했습니다.
2013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연구]
전 IMF 수석 경제학자 블랑샤르가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 계수가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실업과 물가의 관계가 1970년대에 비해 약 3분의 1 수준으로 약해졌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결과는 중앙은행이 실업률 하락을 이유로 성급하게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정책적 함의를 주었습니다.
그는 '필립스 곡선: 과거와 미래'라는 논문을 통해 장기적인 추세를 분석했습니다.
실업률이 NAIRU 아래로 떨어져도 인플레이션이 폭주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공식화했습니다.
이 연구는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추는 완화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논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2015
[재닛 옐런의 확신]
당시 미 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이 필립스 곡선의 유효성을 여전히 믿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화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녀는 노동 시장의 유휴 인력이 해소되면 조만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이론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금리 정상화를 준비하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옐런은 매사추세츠 대학교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동학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명했습니다.
비록 현재 물가가 낮지만 이는 일시적인 요인이며 필립스 곡선상의 역관계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 발언 이후 연준은 약 9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 금리를 인상하며 긴축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2018
[제롬 파월의 잭슨홀 연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잭슨홀 미팅에서 필립스 곡선이 너무 평평해져서 실업률만으로는 물가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시인합니다. 그는 별자리를 보고 항해하는 것과 같이 불확실한 경제 지표들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고정된 필립스 곡선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정책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파월은 인플레이션의 행방을 결정하는 변수들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음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기대가 하향 안정화된 것이 물가 상승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연설은 연준이 데이터에 기반한 유연한 정책(Data-dependent)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9
[필립스 곡선 사망설 논쟁]
주요 경제 전문지들이 '필립스 곡선은 죽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내며 학계와 시장의 열띤 논쟁을 부추깁니다. 실업률이 역사적 저점까지 내려갔음에도 물가는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이론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극단적인 회의론이 팽배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등은 필립스 곡선을 '사라진 법칙'으로 묘사하며 새로운 경제 지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곡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수평선에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논쟁은 거시경제학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뜨거운 학술적 이슈로 기록되었습니다.
2020
[팬데믹과 공급망 쇼크]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생산망이 멈추고 노동 공급이 급감하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합니다. 공급 부족과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이 맞물리며 물가가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잊혔던 필립스 곡선의 '공급 충격' 변수가 50년 만에 다시금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봉쇄 조치로 인한 항만 정체와 부품 부족이 제품 가격을 순식간에 끌어올렸습니다.
동시에 대규모 실직자가 발생하며 실업률이 폭등하는 등 필립스 곡선상에서 극한의 변동성이 나타났습니다.
이후의 상황은 필립스 곡선이 결코 죽지 않았으며, 특수한 상황에서 다시 날카로워질 수 있음을 예고했습니다.
2021
[인플레이션의 귀환]
잠잠했던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복구합니다. 실업률이 급격히 낮아지는 가운데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평탄해졌던 필립스 곡선이 다시 가팔라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경제학자들은 '일시적'이라던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에 경악했습니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7%를 넘어서는 등 필립스 곡선의 경고가 현실화되었습니다.
낮은 실업률이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를 올리는 '임금-물가 소용돌이'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필립스 곡선은 다시 한번 경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정책의 중심부로 복귀했습니다.
2022
[기대 인플레이션 안착 전쟁]
미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막기 위해 공격적인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을 단행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물가 기대가 1970년대처럼 제멋대로 튀지 않도록 '기대의 닻'을 고정하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필립스 곡선이 수직으로 변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처절한 사투였습니다.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경기 침체와 실업률 상승이 불가피함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이는 필립스 곡선의 상충 관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정책적으로 인정한 셈입니다.
중앙은행원들은 이제 곡선을 따라 이동하며 적절한 고통의 지점을 찾는 정교한 수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3
[현대적 필립스 곡선의 재정립]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아 학계는 노동 시장의 빈 일자리 수와 물가의 관계를 다룬 새로운 형태의 필립스 곡선을 연구합니다. 전통적인 실업률 지표보다 구인율과 퇴직률이 물가를 더 잘 설명한다는 증거들이 수집되었습니다. 필립스 곡선은 6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더 정교하고 현대적인 데이터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베버리지 곡선과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필립스 곡선 분석이 IMF 등 국제 기구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노동 시장의 빡빡함(Tightness)을 측정하는 방식이 고도화되면서 정책의 정밀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필립스 곡선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불멸의 이론'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