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연표
1946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업가 대니얼 비아손의 주도로 전미 농구 리그(NBL) 팀 '시러큐스 내셔널즈'로 창단되었습니다.
1949
'시러큐스 내셔널즈'가 전미 농구 협회(NBA)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NBA의 강호 중 한 팀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55
[첫 NBA 챔피언십 우승]
알 서비 감독과 돌프 셰이즈를 앞세워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하며 첫 번째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1950년대 알 서비 감독의 지도 하에 돌프 셰이즈를 앞세워 강호로 군림했으며, 세 번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 끝에 1955년 첫 NBA 챔피언십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1963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재탄생]
시러큐스 내셔널즈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팀명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변경했습니다.
원래 연고지인 시러큐스는 상업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1963년, 팀은 루스벨트 페이퍼 창업주에게 매각되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현재의 팀명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개칭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1965
[전설 윌트 체임벌린의 귀환]
필라델피아 출신의 농구 전설 윌트 체임벌린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로부터 영입하며 팀의 황금시대를 예고했습니다.
원래 강한 전력을 가진 팀이었지만, 필라델피아가 고향이던 불세출의 센터 윌트 체임벌린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로부터 영입하면서 황금시대를 열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체임벌린은 이 영입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967
[챔피언십 탈환]
윌트 체임벌린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빌 러셀이 이끌던 보스턴 셀틱스의 9연속 우승 도전을 저지하고 두 번째 NBA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윌트 체임벌린의 활약을 앞세워 1966-1967 시즌 NBA 챔피언십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 시즌에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 68승 13패를 기록하고, 처음 50경기에서 46승 4패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1973
[역대 최저 승률 기록]
1972-1973 시즌에 9승 73패, 승률 0.109라는 NBA 82경기 정규 시즌 역대 최저 기록을 남기며 암흑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팀의 기둥이었던 윌트 체임벌린을 트레이드한 후 전력 공백으로 인해 암흑기가 찾아왔고, 특히 1972-1973 시즌은 '9승 73패, 승률 0.109'라는 희대의 기록을 남기며 82경기 정규 시즌 역대 최저 승률 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2011-2012 시즌에 갱신되기 전까지 역대 최저였습니다.
1976
[닥터 J, 줄리어스 어빙 합류]
ABA의 붕괴로 리그가 확장되면서, 뉴저지 네츠로부터 농구 아이콘 줄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며 팀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절망 같던 세월을 보내던 팀에 1976년 서광이 드리웠습니다. 팻 윌리엄스 단장은 ABA의 붕괴로 인한 리그 확장 과정에서 뉴저지 네츠로부터 농구 스타 줄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NBA 가입금이 없던 네츠가 어빙을 매물로 내놓자, 필라델피아는 과감하게 600만 달러를 배팅해 어빙을 영입했습니다.
1982
[모제스 말론 영입]
휴스턴 로키츠로부터 ABA의 스타였던 모제스 말론을 영입하면서 순식간에 전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모제스 말론을 주축으로 1980년대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1981년에 향토사업가 해롤드 카츠가 팀을 인수한 뒤 1982년에 휴스턴 로키츠로부터 역시 ABA의 스타였던 모제스 말론까지 영입하면서 순식간에 전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 둘을 주축으로 필라델피아는 1980년대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1983
[Fo-Fi-Fo, 세 번째 챔피언십]
줄리어스 어빙과 모제스 말론을 주축으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4-0으로 압도하며 세 번째 NBA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포스트시즌 퍼포먼스는 'Fo-Fi-Fo'로 기억됩니다.
1981년 향토사업가 해롤드 카츠가 팀을 인수한 뒤 1982년 휴스턴 로키츠로부터 모제스 말론을 영입하며 전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모제스 말론을 주축으로 1983년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이 이끌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4-0으로 스윕하며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동부 파이널에서만 1패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Fo-Fi-Fo' 포스트시즌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1984
어빙과 말론이 노쇠화되던 1984년에 데뷔한 찰스 바클리는 전투적인 플레이로 고군분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1992
[찰스 바클리 트레이드]
찰스 바클리가 마이클 조던이나 하킴 올라주원 같은 드래프트 동기들에게 밀리고 구단주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피닉스 선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찰스 바클리는 전투적인 플레이로 고군분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마이클 조던이나 하킴 올라주원 같은 드래프트 동기들이 자신을 앞서고, 카츠 구단주의 전횡과 투자 소홀, 투지가 없는 프런트에도 염증이 난 나머지 1991/92 시즌을 끝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해 피닉스 선스로 이적했습니다.
1996
[앨런 아이버슨의 등장]
컴캐스트에 경영권이 매각된 후, 드래프트 1번으로 조지타운대 출신 앨런 아이버슨을 지명하며 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6년, 카츠 구단주가 컴캐스트에 경영권을 팔면서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계열사 '컴캐스트 스펙테이커' 산하가 되었습니다. 팀은 정든 스펙트럼을 떠나 신축구장 '코어스테이트 센터'로 이전했고, 드래프트 1번으로 지명한 조지타운대 출신 앨런 아이버슨을 뽑으며 '5년 계획'을 선포하고 새 출발을 알렸습니다.
2001
[아이버슨, 파이널 무대에 서다]
앨런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한 수비 중심의 팀으로 리그를 압도하며 NBA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우승은 놓쳤습니다.
2000-01 시즌, 앨런 아이버슨을 필두로 에릭 스노우, 테오 라틀리프, 애런 맥키, 토니 쿠코치 등 수비수 4명을 앞세워 리그를 씹어먹었습니다. 플레이오프 동안 주축 선수들이 부상을 많이 입은 탓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1승 4패로 굴러떨어져 트로피를 얻지 못했지만, 앨런 아이버슨 시대의 정점을 찍은 시즌이었습니다.
2006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드]
앨런 아이버슨이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면서 팀을 떠났습니다. 아이버슨과 래리 브라운 감독의 불화, 그리고 지역방어에 시달리며 팀 성적은 부진했습니다.
아이버슨과 브라운 감독의 불화로 인해 2003년에 브라운 감독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떠났고, 아이버슨 홀로 남은 채 타 팀들의 지역방어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팀은 데릭 콜먼과 키스 밴 혼, 글렌 로빈슨 등으로 '2옵션'을 만들어 아이버슨을 보좌했으나 이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고, 아이버슨은 2006-2007 시즌 도중에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면서 팀을 떠났습니다.
2012
[이궈달라 트레이드 및 바이넘 영입]
팀 내 에이스였던 안드레 이궈달라가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었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부터 센터 앤드류 바이넘을 영입했습니다.
2012년 8월 9일, 팀 내 에이스였던 안드레 이궈달라는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었고,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부터 센터 앤드류 바이넘을 영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