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오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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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피터 오툴(Peter James O'Toole)은 20세기 연극과 영화계를 상징하는 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배우입니다. 1962년 데이비드 린 감독의 대서사시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T. E. 로렌스 역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으며, 강렬한 푸른 눈과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생애 동안 '베킷', '겨울의 사자', '굿바이 미스터 칩스' 등 수많은 명작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8회 이름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해 '오스카가 사랑한 불운의 천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2002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명예상을 수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고전 셰익스피어 비극부터 현대극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정통파 연기자였으며, 무대 밖에서는 리처드 버튼 등과 함께 연예계의 전설적인 '헬레이저(애주가이자 반항아)'로 통하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예술적 유산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불멸의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연표
1932
리즈의 세인트 제임스 대학교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의 도금업자이자 축구선수였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간호사였습니다.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대피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가톨릭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952
더블린의 애비 극장 드라마 스쿨에서 아일랜드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후 RADA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앨버트 피니, 앨런 베이츠 등 훗날 영국 영화계를 이끌 인재들과 같은 반에서 수학하며 연기력을 다졌습니다.
1954
졸업 후 본격적인 프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며 방송과 무대를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 해군 신호수로 근무한 뒤 연기자와 시인 중 하나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1956
1958년까지 이 극단에서 '리어왕', '오셀로' 등 고전 명작들의 주역을 맡으며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의 강렬한 무대 연기는 훗날 그가 대형 스크린으로 진출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959
[웨스트엔드 데뷔 및 올해의 배우상 수상]
연극 'The Long and the Short and the Tall'로 웨스트엔드에 데뷔했습니다.이 작품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연기로 1959년 '올해의 배우'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공연 기간 중 운명의 반려자가 된 배우 시안 필립스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60
[영화 'The Day They Robbed the Bank of England' 출연]
영화 제작자 줄스 벅의 눈에 띄어 하이스트 스릴러 영화에 출연했습니다.주요 배역 중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리며 본격적으로 영화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 시즌에 참여하며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등을 연기했습니다.
1962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주연 및 스타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서사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주인공 T. E. 로렌스 역을 맡았습니다.당시 무명이었던 그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BAFTA 영국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1963
그의 금발 머리와 날카로운 인상은 '전기 같은'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명성 속에서도 그는 '햄릿을 연기할 때의 외로움'에 대해 토로하며 예술적 고뇌를 드러냈습니다.
1964
자신이 설립한 'Keep Films'의 첫 제작 작품이었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실력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66
그간의 무거운 정극 이미지를 벗고 로맨틱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같은 해 존 휴스턴 감독의 '천지창조'에서는 세 천사 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 장악력을 과시했습니다.
1968
[영화 '겨울의 사자' 출연 및 세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캐서린 헵번과 함께 '겨울의 사자'에서 다시 한번 헨리 2세를 연기했습니다.동일 인물이 다른 영화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드문 사례를 남겼습니다.
캐서린 헵번과의 환상적인 연기 호흡은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1969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네 번째 후보에 올랐으며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전작들의 강렬한 모습과 대비되는 따뜻하고 섬세한 연기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72
[영화 '지배 계급' 출연 및 다섯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풍자 코미디 '지배 계급'에서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편집증 환자를 연기했습니다.자신의 제작사를 통해 만든 이 작품에서 그는 광기 어린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비평가들의 극찬 속에 다시 한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0
[영화 '스턴트 맨' 출연 및 여섯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냉혹한 영화 감독 역을 연기했습니다.70년대 후반 건강 문제로 공백기를 가졌던 그에게 화려한 재기를 안겨준 작품입니다.
다시 한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변치 않는 연기력을 입증했습니다.
1982
[영화 '내 인생 최고의 해' 출연 및 일곱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왕년의 인기 액션 스타 역을 맡아 코믹하면서도 애잔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실제 본인의 삶과도 맞닿아 있는 듯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7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1987
주연이 아닌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기품 있는 연기로 영화의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문을 휩쓸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89
[연극 '제프리 버나드는 몸이 안 좋다'로 올리비에상 수상]
실제 실존 인물을 다룬 연극 무대에서 뛰어난 희극 연기를 선보였습니다.이 작품으로 로런스 올리비에상 최고 코미디 연기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무대 배우로서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9
영화와 연극에 이어 TV 매체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연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그의 트로피 진열장에 또 하나의 중요한 수상을 추가했습니다.
2002
처음에는 '아직 현역이므로 더 기다리고 싶다'며 거절하려 했으나 결국 수상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8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며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했습니다.
2006
[영화 '비너스' 출연 및 여덟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노배우의 마지막 사랑과 열정을 다룬 '비너스'에서 모리스 역을 연기했습니다.명예상을 받은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여덟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노년의 쓸쓸함과 위트를 동시에 보여준 그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2007
중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목소리는 캐릭터에 완벽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평론 장면의 독백은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손꼽히며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2012
성명을 통해 "더 이상 열정이 남아있지 않다"며 무대와 스크린을 떠날 것임을 밝혔습니다.
영화계는 전설적인 배우의 퇴장에 존경과 아쉬움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13
오랜 지병 끝에 평화롭게 잠들었으며 그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사후에 출연작인 '제국의 몰락(2013)', '다이아몬드 카르텔(2017)' 등이 개봉하며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