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분더리히
연표
1930
프리츠 분더리히는 독일 팔츠 지역의 쿠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아버지는 합창단장이었다.
1935
프리츠 분더리히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나치에 의해 가해진 압력으로 직장을 잃었다. 프리츠가 5살 때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50
[프라이부르크 음악 학교 입학 및 성악 재능 발견]
프라이부르크 음악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호른을 전공했으나, 노래 교사에 의해 목소리를 발견하고 성악 훈련을 시작했다.
분더리히는 학생 시절부터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었으며, 1950년 프라이부르크 음악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그의 주 전공은 호른이었다. 그러나 노래 교사가 그의 뛰어난 목소리를 발견하고 훈련시키면서 성악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촉망받는 테너로 부상]
모차르트 오페라 역할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뛰어난 젊은 테너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리릭 테너 레퍼토리 전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분더리히는 특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관련 역할에서 곧 뛰어난 젊은 테너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재능은 빠르게 인정을 받아 리릭 테너 레퍼토리의 전체 범위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0
[가곡 해석의 대가로 인정]
피아니스트 후베르트 기젠과 함께 프란츠 슈베르트와 로베르트 슈만의 가곡을 인상적으로 연주했으며, 슈만의 '시인의 사랑' 녹음은 이 장르의 황금 표준으로 평가된다.
분더리히의 수정처럼 맑은 목소리, 정교하게 정확한 딕션, 지적이고 열정적인 해석은 그의 예술적 멘토였던 피아니스트 후베르트 기젠과의 협연에서 빛을 발했다. 프란츠 슈베르트와 로베르트 슈만의 가곡들을 인상적으로 연주했으며, 특히 슈만의 '시인의 사랑'에 대한 그의 유명한 녹음은 이 장르의 황금 표준으로 남아 후대 테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66
[비극적인 사고로 인한 사망]
독일의 전설적인 리릭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며 짧지만 빛나는 생을 마감했다.
1966년 9월 17일, 프리츠 분더리히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클래식 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의 뛰어난 재능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