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실러
연표
1759
[운명의 시작: 실러의 탄생]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의 마르바흐에서 하급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신앙심이 깊어 처음에는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 했으나, 영주의 명령으로 사관학교에 입학하며 운명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1782
[첫 성공, 작가의 길로]
학생 시절 몰래 습작하며 자유에 대한 동경을 키워오던 실러가 자비 출판한 첫 작품 <군도>가 만하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됩니다.
독일 귀족 계급의 횡포에 반항하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철학 교수 아벨의 권유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은 경험은 실러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술 금지령, 극적 도주]
연대 의무관으로 복무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실러는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받게 됩니다.
자유를 향한 열망을 꺾을 수 없었던 그는 한밤중 만하임으로 극적인 도주를 감행합니다.
이후 도피 방랑생활을 하면서 (1783), <간계와 사랑>(1784)과 같은 중요한 작품들을 집필하게 됩니다.
1783
[ 집필]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 도주한 후 방랑하던 실러는 이 시기에 역동적인 희곡 을 집필합니다.
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창작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자유를 위한 개인의 투쟁과 권력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다루며, 실러의 초기 작품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1784
[<간계와 사랑> 발표]
도피 생활 중 실러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희곡 <간계와 사랑>을 완성합니다.
귀족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 속에서 순수한 사랑이 좌절되는 과정을 그려내며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 국내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후대의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787
[《돈 카를로스》 완성]
중병을 앓는 와중에도 크리스티안 쾨르너의 도움으로 대작 《돈 카를로스》를 완성합니다.
같은 해 네덜란드 독립사를 연구하며 학문적 역량 또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와 명성은 그가 1789년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부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1789
[예나 대학 교수 부임]
네덜란드 독립사 연구로 학문적 인정을 받은 실러는 예나로 이주하여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부임합니다.
이후 미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발표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고 강단에서 활발히 활동합니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미학, 철학, 역사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학생 수 감소와 신병으로 얼마 후 사직하게 됩니다.
1794
[괴테와의 운명적 만남]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선배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깊은 교분을 맺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문학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으로 풍자 시집 《크쎄니엔》을 발표하는 등 독일 고전주의의 황금기를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두 거장의 만남은 독일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1802년 실러가 바이마르로 이사하면서 이들의 공동 작업은 더욱 확대됩니다.
1799
[만년 희곡 창작의 시작]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실러는 오히려 더욱 불꽃같은 창작열을 불태우며 만년의 대표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대규모 역사극 《발렌슈타인》 3부작으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괴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시기에 《마리아 슈투아르트》(1800), 《오를레앙의 처녀》(1801), <메씨나의 신부>(1803), 그리고 그의 마지막 대작인 《빌헬름 텔》(1804) 등 수많은 걸작들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희곡들은 운명에 맞서는 인간 의지의 힘을 묘사하며 고대 그리스 비극 정신의 재현을 목표로 했습니다.
1802
[괴테와 함께, 바이마르 이사]
괴테와의 문학적 교류를 더욱 심화하기 위해 실러는 예나에서 괴테가 머물고 있는 바이마르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로써 두 거장의 공동 작업은 더욱 활발해지며,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는 실러의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만년 대표작들이 탄생하는 배경이 됩니다.
1805
[바이마르에서의 영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이자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노래했던 프리드리히 실러가 폐렴(폐결핵 추정)으로 바이마르에서 영면합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2005
[사망 200주년, 실러의 해]
실러 사망 200주년을 맞아 독일 전역에서 '실러의 해'라는 대규모 기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특히 만하임에서는 국제 실러 축제가 개최되어 전 세계 극단들이 그의 작품을 공연하며 거장의 예술혼을 기렸습니다.
한국 국립극단 또한 실러의 《군도》로 폐막 공연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위상을 재확인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