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왕국
연표
1618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 연합]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과 프로이센 공국이 요한 지기스문트에 의해 동군 연합을 이루며 미래 프로이센 왕국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요한 지기스문트의 통치 아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과 프로이센 공국이 동군 연합을 이루어, 훗날 프로이센 왕국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초석이 놓였습니다.
1660
[프로이센 공국 해방]
프리드리히 빌헬름 선제후가 프로이센 공국을 폴란드와 스웨덴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프로이센의 독립적인 위상을 강화했습니다.
'대선제후'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선제후는 프로이센 공국을 폴란드와 스웨덴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여 국가의 자주성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약소국이었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 상비군 제도와 중상주의를 도입하며 강력한 절대왕정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701
[프로이센 왕국 성립 및 프리드리히 1세 즉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하며 프로이센 왕국이 정식으로 성립했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레오폴트 1세에게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지원을 조건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역 밖의 프로이센에 대한 왕 칭호를 얻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를 수도로 삼아 즉위식을 거행하며 프로이센 왕국이 탄생했고, 이후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 전체가 프로이센 왕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713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즉위, 군사 강국 기틀 마련]
프리드리히 1세 서거 후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즉위하여, 부왕과 달리 강력한 군사력 증강과 관료제도 정비를 통해 프로이센을 군사 강국으로 발전시킬 기반을 다졌습니다.
프리드리히 1세가 서거하자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군사력을 유럽 4위권으로 끌어올렸으며, 실제적인 군사력은 유럽 최강을 자랑하게 했습니다. 관료제도를 정비하고 절대왕정을 확립하여 프로이센을 군국주의적이고 고도로 능률적인 관료주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1740
[프리드리히 2세(대왕) 즉위 및 영토 확장 시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서거 후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하여 계몽군주로서 군비 증강과 영토 확장에 힘썼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통해 슐레지엔을 획득하며 프로이센을 유럽의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는 즉위 후 병력을 20만으로 증강하고, 1740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및 7년 전쟁을 벌여 오데르강 유역의 슐레지엔 지방을 획득했습니다. 또한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여 동 프로이센을 브란덴부르크 공국과 연결시키는 등 영토를 확장하며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고 근대적인 법전을 편찬하는 등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1807
[나폴레옹 전쟁 패배 및 틸지트 조약 체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에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등에서 연달아 패배하여 틸지트 조약을 체결, 영토의 절반을 잃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속국으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재위 중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예나 전투와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했습니다. 1807년 틸지트 조약을 체결하여 영토의 절반을 상실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대륙 봉쇄령에 따른 경제적 압박과 프랑스군 주둔으로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이 되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샤른호르스트, 클라우제비츠, 슈타인, 하르덴베르크 등이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1815
[워털루 승전 및 빈 회의를 통한 강대국 부상]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며 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빈 회의를 통해 베스트팔렌 등 영토를 획득하여 인구 천만에 이르는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대 나폴레옹 해방전쟁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프로이센은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후 강대국의 반열에 다시 올랐습니다. 같은 해 빈 회의에서 폴란드 분할로 얻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보하는 대신 베스트팔렌 등을 획득하며 인구가 1천만 명에 달하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독일 연방에 가맹하여 오스트리아 제국과 세력을 양분했으나, 이 시기는 자유주의적 운동을 억압하는 반동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1848
[독일 3월 혁명 발발 및 실패]
3월 혁명으로 일시적으로 시민 중심 내각이 성립되었으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주 지배체제가 강화되고 개혁은 정체되었습니다.
1848년 3월 혁명으로 인해 캄프하우젠, 한제만 등 라인란트 시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이 일시적으로 성립되었으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지주 지배체제가 다시 강화되고 자유주의적 독일 통일 운동은 억압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프로이센에 정신적인 정체를 가져온 반동의 시대였습니다.
1862
[비스마르크 총리 취임 및 철혈 정책 선포]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내각 총리 대신으로 취임하여 "철과 피로써 독일의 통일을 결정한다"는 '철혈 정책'을 선포하며 독일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내각 총리 대신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의회와 언론의 요구를 묵살하고 "독일의 통일은 오직 철과 피로써 결정된다"는 유명한 연설과 함께 '철혈 정책'을 내세워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독일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1871
[독일 제국 선언, 프로이센이 맹주로 부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독일 제국이 선언되고 빌헬름 1세가 황위에 오르며,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의 맹주이자 중심 국가가 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철혈 정책 하에 프로이센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1871년 독일 제국이 선언되었고,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독일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며 프로이센 왕국은 통일 독일의 중심 국가이자 맹주가 되었습니다.
1888
[프리드리히 3세 즉위와 서거]
빌헬름 1세 서거 후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했으나, 동년 6월 15일 서거하며 짧은 재위를 마쳤습니다.
빌헬름 1세의 서거 후, 그의 아들인 프리드리히 3세가 프로이센 왕이자 독일 제국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지병으로 인해 같은 해 6월 15일에 서거하며, 99일 동안의 짧은 재위를 마쳤습니다.
[빌헬름 2세 즉위 및 식민지 확장 정책 추진]
프리드리히 3세 서거 후 빌헬름 2세가 즉위했습니다. 그는 비스마르크를 물러나게 하고 적극적인 식민지 확장 정책을 펼치며 유럽 국가들과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의 서거 후 그의 아들 빌헬름 2세가 프로이센 왕이자 독일 제국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189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를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주도로 적극적인 식민지 확장 정책을 추진했으며, 프랑스,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강대국들과의 경쟁과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결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18
[프로이센 왕국 및 독일 제국 종말]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 종말을 맞이했으며, 마지막 국왕 빌헬름 2세는 책임을 지고 망명했습니다.
빌헬름 2세의 식민지 확장 정책과 외교적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독일은 패전국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해 1918년 11월 9일 독일 제국과 함께 프로이센 왕국도 종말을 고했으며, 마지막 국왕 빌헬름 2세는 전쟁 패전의 책임을 지고 망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