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
연표
1811
[천재의 탄생]
오스트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도보랸에서 안나 리스트와 아담 리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하이든, 훔멜, 베토벤 등 유명 작곡가들과 친분이 있는 궁정 음악가였다.
1818
[음악 신동의 시작]
7세 때 아버지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곧바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이는 리스트의 음악적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1820
[9세 첫 연주회]
9세에 쇼프론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고,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빈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는 리스트가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기회가 되었다.
1822
[빈에서의 정식 데뷔]
베토벤과 훔멜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고, 페르디난도 파에르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12월 1일 빈 란트스텐디셔 살 콘서트에서 정식 데뷔하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귀족 사회의 환영을 받았다.
1823
[세계 최연소 작곡가]
11세의 나이로 《디아벨리의 왈츠 변주곡》(S.
147)을 출판하며, 안톤 디아벨리의 변주곡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어린이 작곡가로 세계 최초 기록을 세웠다.
이 선집에는 베토벤의 유명한 디아벨리 변주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승 카를 체르니의 제안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역사상 유례없는 어린 나이에 국제적인 작품집에 이름을 올리며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827
[아버지의 죽음과 방황]
아버지 아담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받고 한때 성직자가 되려 했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단념했다.
파리로 이사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1828
[비극적 첫사랑]
샤를 10세의 상업장관 피에르 드 생크릭의 딸 카롤랭 드 생크릭과 사랑에 빠졌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관계가 끊어지며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 실연은 리스트에게 큰 충격과 방황의 시기를 안겨주었다.
1830
[혁명의 영감]
파리에서 일어난 7월 혁명에 깊은 영감을 받아 혁명 교향곡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빅토르 위고, 알퐁스 드 라마르틴 등 당대 주요 문학 및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적 성장을 이루었다.
[베를리오즈와 인연]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친분을 맺고 그의 악마적인 오케스트라 작곡 스타일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는 리스트의 작곡 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832
[피아노의 거장 결심]
니콜로 파가니니의 자선 콘서트를 관람한 후,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에서 거장이었던 것처럼 자신은 피아노에서 거장이 되겠다고 결심하며 피아노 기교 연마에 몰두했다.
이 결심은 리스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833
[베를리오즈 후원]
가난한 베를리오즈를 돕기 위해 《환상교향곡》을 포함한 그의 여러 작품을 피아노곡으로 필사하고 출판 비용을 부담했으며, 대중화를 위해 직접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이 행보는 동료 음악가를 향한 리스트의 깊은 연대 의식을 보여준다.
1847
[작곡 집중 선언]
키예프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일하던 중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권유로 피아노 연주 활동을 줄이고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하며, 리스트의 삶과 음악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리스트는 다구 백작부인과 헤어졌다. 공작부인과의 결혼을 추진했으나, 교황청과 비오 9세가 이를 승낙하지 않았는데, 이는 전 남편과 러시아 황제의 압력 때문이었다.
1861
[로마 이주]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의 결혼이 무산되자, 리스트는 로마로 옮겨가 조용히 지내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했다.
1865
[성직자의 삶 시작]
평생의 염원이었던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되어 교회 음악 작곡에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속적인 영광을 뒤로하고 영적인 삶에 깊이 몰두했다.
1869
[딸과의 갈등]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활동하던 중, 딸 코지마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결혼하며 개신교로 개종하자 이에 반발해 몇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는 등 가족 간의 갈등을 겪었다.
1876
[부다페스트 후학 양성]
사망 전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바인가르트너, 실로티, 자우어 등 수많은 명인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교육자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886
[피아노의 왕, 잠들다]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떠나던 최후의 연주 여행 도중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어 둘째 딸 코지마의 품에 안겨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아노의 왕은 그렇게 영원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