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폰 아둔야뎃
연표
1927
[푸미폰 아둔야뎃 출생]
푸미폰 아둔야뎃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태국에서는 모친이 평민이라는 사실을 반영하여 '프라워라웡트 프라옹짜오 푸미폰아둔야뎃'으로 불렸다.
푸미폰 아둔야뎃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당시 태국에서는 모친이 평민이라는 사실이 반영되어 '프라워라웡트 프라옹짜오 푸미폰아둔야뎃'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의 삼촌인 프라차티뽁 왕이 왕실과 평민 사이의 자식을 '프라옹짜오'로 부르도록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땅의 강함, 비교할 수 없는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28
푸미폰은 1928년 부친인 마히돈 왕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 태국으로 돌아왔을 때 방콕에 있는 메터 데이 학교에 입학했다.
1929
1929년 부친 마히돈 왕자가 사망했으며, 이로 인해 1933년 그의 모친이 남은 가족을 스위스로 데리고 가게 되었다.
1933
1929년 부친 마히돈 왕자 사망 후, 1933년 모친이 남은 가족을 스위스로 데리고 갔고, 푸미폰은 그곳 로잔에서 학교를 다녔다.
1935
['짜우파'로 승격]
형 아난타 마히돈이 태국의 왕이 되면서 푸미폰과 그의 누나는 태국 왕가의 가장 상위급인 '짜우파'로 승격되었다.
1935년 형인 아난타 마히돈이 태국의 왕이 되자, 푸미폰과 그의 누나는 태국 왕가의 가장 상위급인 '짜우파'로 승격되었다.
1938
1938년 형 아난타의 대관식을 위해 가족 모두 태국으로 돌아왔으나, 대관식이 끝난 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다.
1942
1942년 푸미폰은 로잔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45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푸미폰 가족은 태국으로 귀국했다.
1946
[태국 국왕으로 즉위]
형 라마 8세의 석연찮은 죽음 이후 푸미폰이 태국의 아홉 번째 국왕(라마 9세)으로 왕좌를 계승했다.
라마 8세에 즉위했던 형이 1945년 귀국한 후 1년 만에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자, 1946년 6월 9일 푸미폰은 태국의 아홉 번째 국왕(라마 9세)으로 왕좌를 계승했다. 형 아난타의 죽음은 왕궁 침대 맡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다.
1947
[학업 재개 및 전공 전환]
왕위를 계승한 후, 학업을 마치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가 전공을 법학에서 통치자로서의 준비를 위한 정치학으로 전환했다.
왕위를 계승한 다음 푸미폰은 삼촌(큰아버지)인 랑싯 프라유라삭디를 섭정 및 대리청정에 임명하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1947년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전공을 법학에서 정치학으로 전환하여 통치자로서의 준비를 했다.
[큰아버지 랑싯 프라유라삭디 대리청정 시작]
큰아버지 랑싯 프라유라삭디가 대리청정 역할을 맡아 1950년 3월 1일까지 재임했다.
푸미폰 아둔야뎃의 큰아버지인 랑싯 프라유라삭디가 1947년 1월 1일부터 1950년 3월 1일까지 대리청정 역할을 맡았다.
1948
[교통사고로 오른쪽 눈 실명]
제네바-로잔 도로를 운전하던 중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 부상과 오른쪽 눈 실명으로 의안을 하게 되었다.
1948년 10월 4일 푸미폰은 제네바-로잔 도로를 운전하다가 로잔 시외 10km 지점에서 트럭의 뒤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그는 척추를 다치고, 찰과상을 입었으며 오른쪽 눈을 실명하여 결국 의안을 하게 된다.
1949
[시리낏 왕비와 약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주 방문했던 프랑스 대사의 딸이자 사촌인 시리낏 끼띠야꼰과 조용한 약혼식을 올렸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는 동안 시리낏이 자주 방문하여 두 사람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푸미폰 곁에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졸랐으며, 푸미폰은 주변의 학교를 주선해 주었다. 1949년 7월 19일 두 사람은 조용한 약혼식을 올렸다.
1950
1950년 4월 28일, 즉위식 일주일 전에 푸미폰 왕은 시리낏 끼띠야꼰과 결혼했다.
1950년 5월 5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1951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의 첫째 자녀인 우볼라따나 공주는 1951년 4월 5일 스위스 로잔에서 출생했다.
1952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의 둘째 자녀이자 장남인 마하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1952년 7월 28일 출생했다.
1955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의 셋째 자녀인 마하 짜끄리 시린톤 공주가 1955년 4월 2일 출생했다.
1957
푸미폰 왕과 시리낏 왕비의 넷째 자녀인 쭐라폰 왈라일락 공주가 1957년 7월 4일 출생했다.
[사릿 타나랏 대리청정 시작]
태국의 총리이자 육군 장성인 사릿 타나랏이 대리청정 역할을 맡아 1963년 12월 8일까지 재임했다.
태국의 총리이자 육군 장성인 사릿 타나랏이 1957년 9월 16일부터 1963년 12월 8일까지 대리청정 역할을 맡았다.
1963
[타놈 끼띠카쫀 대리청정 시작]
태국의 총리이자 육군 장성인 타놈 끼띠카쫀이 대리청정 역할을 맡아 1973년 10월 14일까지 재임했다.
태국의 총리이자 육군 장성인 타놈 끼띠카쫀이 1963년 12월 8일부터 1973년 10월 14일까지 대리청정 역할을 맡았다.
1974
배우자인 시리낏 왕비가 1974년 1월 1일부터 1977년 12월 5일까지 대리청정 역할을 맡았다.
1988
태국 국민들이 '국민의 아버지'라고 부르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왕이 되고서부터 산간의 국민들을 만나며 그들이 처한 상황과 삶을 이해하고, 더 고치기 위해 노력했으며 19번의 쿠데타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태국 국민들에게 구심점이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1988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1990
푸미폰 왕은 입헌 군주로서 가장 최근 정치적인 위기를 포함하여 수차례 태국 정치에서 결정적인 중재를 했다. 초창기에는 군부 정권을 옹호하기도 했지만 1990년대 태국의 민주화를 촉진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직접 태국의 여러 곳을 시찰하며 민정을 살폈고, 왕실의 많은 재산을 시골 지방의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제공하였다.
2004
2004년 인도양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푸미폰의 손자 중 한 명인 우본라따나 공주의 아들이 사망하였다.
2014
2014년에 태국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 짠오차에 의하여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푸미폰 왕은 이를 승인하였다.
2016
[서거 및 세계 최장기 군주 기록]
향년 89세로 서거하여, 70년 126일간 재위하며 세계 최장기 집권 군주 기록을 세웠다.
2016년 10월 13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향년 89세로 서거했다. 그는 1946년 6월 9일부터 2016년 10월 13일까지 70년 126일 동안 재위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군주 기록을 세웠다.
2016년 10월 13일 푸미폰 국왕 서거 후, 시리낏 왕비가 2016년 10월 13일부터 2016년 12월 5일까지 태국 대리청정 체제를 재전담했다.
2019
2019년 5월 5일, 푸미폰 아둔야뎃 선대왕 시호가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