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분할
연표
1772
[굴욕적인 시작, 제1차 폴란드 분할]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주변국들의 간섭과 국력 약화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친러파를 앞세워 폴란드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이를 경계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에 폴란드 분할을 제의했습니다.
결국 세 강대국은 무정부 상태를 명분 삼아 폴란드 외곽을 침공, 폴란드 국회는 1773년 굴욕적으로 분할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는 국토와 인구의 약 30%를 잃었습니다.
폴란드는 야기에우워 왕조 단절 후 국왕 자유 선거와 귀족 다툼으로 국력이 약해졌습니다. 17세기 중엽 '대홍수'로 스웨덴과 러시아의 위협을 받았고, 특히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였습니다. 1772년 2월 6일 프로이센-러시아 합의, 19일 빈에서 분할 합의가 조인되었고, 8월 초 세 나라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프로이센은 동프로이센과 브란덴부르크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어 폴란드 무역의 80% 이상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적극적인 독일화를 추진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가장 많은 인구(265만)와 두 번째로 광대한 영토(83,000km²)를 얻었습니다. 러시아는 광대하지만 경제적 가치가 낮은 벨라루스 지역 등을 얻었습니다. 이 사건은 평화의 천사가 세 군주를 축복하는 풍자화 '왕들의 케이크'로 표현될 정도로 열강들의 노골적인 영토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2세는 서유럽의 개입을 기대했으나 외면당했고, 러시아의 협박 속에 '분할 세임'이 강제 개최되어 결국 모든 청구권을 포기했습니다.
1791
[유럽 최초의 성문 헌법, 폴란드의 개혁 시도]
제1차 분할 이후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2세는 폴란드 부흥을 위해 유럽 최초의 성문 헌법인 '5월 3일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폴란드는 세습 군주제이자 세계 최초의 입헌 군주제 국가를 지향했으나, 주변 강대국들은 이러한 개혁이 폴란드의 강대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분노했습니다.
이 헌법은 민주화 세력을 규합하여 삼권분립을 주창하고 부르주아지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며 농노제 등 귀족 특권을 폐지하는 등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프로이센 등 주변국들은 이를 자코뱅주의적이라 비난하며 폴란드에 대한 압박을 가속화했습니다.
1793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야욕, 제2차 폴란드 분할]
'5월 3일 헌법' 제정으로 개혁에 나선 폴란드는 보수파의 반발과 러시아의 침공(폴란드-러시아 전쟁)에 직면했습니다.
전쟁 중 국왕 스타니스와프 2세가 러시아에 항복하면서 개혁은 좌절되었고, 그 직후 프로이센이 가세하여 폴란드 영토를 재분할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혁명에 휘말려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프로이센과의 동맹으로 재기를 꾀했으나, 프로이센에 배신당했습니다. 1792년 폴란드-러시아 전쟁에서 폴란드군은 분전했지만, 국왕의 항복으로 개혁이 포기되었습니다. 프로이센은 혁명 프랑스와 싸우는 대가로 러시아에 폴란드 영토 분할을 요구했고, 1793년 1월 23일 양국 간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백러시아와 서부 우크라이나 지방 등 25만km²를, 프로이센은 단치히, 토룬, 마조비아 일부 등 5만8000km²를 획득했습니다. 폴란드의 국토는 21만5000km²로 더욱 축소되었고, 인구는 약 400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폴란드는 괴뢰국이 되었고 러시아군의 주둔이 심화되었습니다. 이 분할은 러시아군의 감시 아래 '흐로드나 세임'을 강제하여 승인되었습니다.
1794
[마지막 불꽃, 코시치우슈코 봉기]
2차 분할로 인한 굴욕과 억압에 맞서 1794년 3월, 개혁파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가 이끄는 대규모 봉기가 폴란드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비록 초기 승리도 있었으나,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빠른 진압으로 반란은 11월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봉기 진압 과정에서 코시치우슈코는 마치에요비체 전투에서 낙마하며 "이것이 폴란드의 끝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지며, 이 사건은 결국 3차 폴란드 분할의 직접적인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1795
[지도상에서 사라진 폴란드, 제3차 폴란드 분할]
코시치우슈코 봉기 진압 후 1795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세 강대국은 폴란드의 남은 영토를 최종적으로 분할했습니다.
이로써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주변국들은 폴란드라는 국명마저 지우기로 합의하며 123년간의 암흑기를 시작했습니다.
1797년 1월 26일 분할 조약이 조인되었으며, 이번에는 폴란드 대표의 참석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서갈리치아와 남마조프셰를, 프로이센은 바르샤바를 포함한 마조비아 전역과 리투아니아 일부를, 러시아는 빌뉴스를 포함한 리투아니아 잔여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2세는 강제 퇴위당해 러시아로 보내졌습니다. 러시아는 가장 광대한 영토와 부를 얻어 유럽 최강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18
[123년 만의 부활, 폴란드 독립 회복]
세 차례의 분할로 지도상에서 사라졌던 폴란드는 123년 만인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고 러시아 제국이 붕괴하면서 마침내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 국가로 재탄생했습니다.
독립 후 폴란드는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독립을 무력으로 억압하고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 개입하는 등 주변국과의 갈등을 겪으며 영토를 재정비했습니다. 이후에도 1815년 빈 회의에 따른 바르샤바 공국 해체, 1832년 폴란드 입헌왕국 러시아 편입, 1846년 크라쿠프 자유시 오스트리아 편입, 그리고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한 제2차 폴란드 분할(넓은 의미의 제5차 분할) 등 여러 차례 영토 관련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폴란드인의 끈질긴 독립 염원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