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리투아니아
연표
1569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탄생]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루블린 연합을 통해 합쳐지면서 거대한 동군연합 군주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탄생했다.
이는 야기에우워 왕조가 세습 왕권을 선거 군주제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1572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 붕어와 귀족민주정 강화]
야기에우워 왕조의 마지막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가 후사 없이 붕어하면서 3년간의 공위 기간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연합 체제가 조정되었고, 귀족 계급인 슐라흐타의 권력이 크게 강화된 입헌 체제와 완전한 선거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1610
[모스크바 점령]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이 약체화된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1610년 9월 27일부터 1612년 11월 4일까지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통치했다.
이는 공화국 전성기의 군사적 위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1648
[황금기 쇠퇴 시작 (흐멜니츠키 봉기 및 대홍수)]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황금기'를 마감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동부 국경에서 발생한 대규모 흐멜니츠키 봉기와 1655년부터 스웨덴의 침략으로 시작된 '대홍수'는 국가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었다.
1683
[빈 전투 승리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신성 로마 황제 레오폴트 1세와 동맹을 맺고 오스만 제국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빈 전투의 승리는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오랜 항쟁에 있어 최종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1791
[세계 2번째 성문 헌법 제정]
국가 쇠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근대 유럽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문 헌법인 '1791년 5월 3일 헌법'을 제정하며 마지막 개혁을 시도했다.
이 헌법은 리베룸 베토 폐지, 삼권 분립, 국민 주권 확대 등 혁명적인 내용을 담았다.
1795
[국가 소멸 (폴란드 분할)]
주변 강대국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세 번에 걸친 영토 분할 끝에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유럽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569년 창건 이후 20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퇴장한 것이다.
1918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재독립]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이어졌다.
1918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별개의 민족 국가로서 다시 독립을 쟁취하며 오랜 염원이었던 자주권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