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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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단, 프로 스포츠, 스포츠 구단 축구 구단

FC 포항 스틸러스는 1973년 창단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단으로, K리그와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국내외 주요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한 명문 구단입니다. 이회택, 최순호, 홍명보 등 50여 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했으며,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인 포항스틸야드를 건립하고 클럽하우스를 세우는 등 한국 축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특히 2013년에는 K리그 팀 최초로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는 더블 우승을 달성하며 40주년을 빛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73

[포항제철 축구단 창단]

포스코의 실업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대한축구협회에 선수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회택 등 13명의 창단 멤버와 초대 한홍기 감독으로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며 구단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73년 4월 1일 포스코의 실업 축구단으로 창단되었고, 5월 2일 대한축구협회에 선수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이회택 등 총 13명의 창단 멤버와 초대 한홍기 감독으로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며 구단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74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창단 이듬해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성균관대학교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창단 이듬해인 1974년에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성균관대학교를 꺾고 첫 우승을 기록하며 구단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1975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창단 2년 만에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을 차지하며 실업 축구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창단 2년 만인 1975년에 춘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을 거머쥐며 실업 축구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81

[추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추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실업 축구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혔습니다.

1981년 추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실업 축구팀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1982

[코리언리그 우승]

연중 리그로 개편된 코리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대구와 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2년 연중 리그로 개편된 코리언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실업축구는 연고지 제도가 없었지만, 구단 주관 친선경기를 대구와 포항 등에서 개최하며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

[프로축구 수퍼리그 참가 및 팀명 변경]

프로축구 수퍼리그의 원년 멤버로 가입하며 프로 축구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구와 경북 전체를 광역연고지로 삼고 포항제철 돌핀스로 팀명을 변경했습니다.

1983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출범한 프로축구 수퍼리그에 코리언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원년 멤버로 가입했습니다. 수퍼리그가 광역연고지를 채택함에 따라 대구와 경북 전체를 연고지로 하였고, 프로리그 가입에 맞춰 팀명을 포항제철 돌핀스로 변경하며 1983 시즌에 참가했습니다.

1984

[프로 축구단 전환]

정식으로 프로 축구단으로 전환했습니다.

1984년 2월, 포항제철 돌핀스 축구단은 정식으로 프로 축구단으로 전환하며 명실상부한 프로 구단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85

[팀명 변경 및 2대 감독 선임]

팀 명칭을 포항제철 아톰즈로 변경했습니다. 12년간 팀을 이끈 한홍기 감독이 부단장으로 승격하고 최은택이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85년에 클럽 명칭을 포항제철 아톰즈로 변경했습니다. K리그 1985 시즌을 앞두고 12년간 감독직을 수행해오던 한홍기 감독이 부단장으로 승격하였고, 최은택이 2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986

[첫 K리그 우승 달성]

축구대제전(현 K리그)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첫 프로 리그 우승입니다.

1986년 축구대제전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처음으로 프로 리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포항제철 아톰즈가 프로 리그에서 거둔 첫 번째 우승 기록입니다.

1988

[K리그 두 번째 우승]

최은택 감독의 뒤를 이어 이회택 감독이 부임한 후, K리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최은택 감독이 한양대학교 교수로 복귀하면서 이회택이 3대 감독으로 취임한 후, 1988 시즌에 리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1990

[포항스틸야드 준공 및 사용 시작]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인 '포항스틸야드'를 준공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축구부와 개장 기념 경기를 가졌으며, 1991 시즌부터 홈 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11월 10일 대한민국 최초로 축구 전용 구장인 '포항스틸야드'를 준공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축구부와 개장 기념 경기를 가졌고, 1991 시즌부터 이 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92

[K리그 세 번째 우승 달성]

4년 만에 K리그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강력한 팀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1992 시즌에는 4년 만에 K리그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꾸준히 리그 최강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93

[리그컵 우승 및 유니폼 광고 계약]

프로스펙스와 유니폼 광고 계약을 맺었으며,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3년에는 프로스펙스와 유니폼 광고 계약을 맺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같은 해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에 또 하나의 트로피를 추가했습니다.

1994

[조선맥주와 유니폼 광고 계약]

조선맥주(하이트)와 유니폼 광고 계약을 맺고 1995년까지 이어갔습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조선맥주(하이트)와 유니폼 광고 계약을 체결하며 기업과의 협력을 이어나갔습니다.

1995

[독립 법인 출범 및 K리그 준우승]

㈜포항프로축구라는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으며, K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95년 5월 29일 ㈜포항프로축구라는 이름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하며 구단 운영의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같은 해 K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위권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1996

[라데 보그다노비치 '10-10 클럽' 가입 및 FA컵 우승]

외국인 선수 라데 보그다노비치가 한국 프로 축구 최초로 10골 10도움 '10-10 클럽'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FA컵에서 우승하고 리그컵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96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라데 보그다노비치가 한국 프로 축구 최초로 10골 10도움을 달성하며 '10-10 클럽'에 가입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같은 해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리그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국내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97

[팀명 '포항 스틸러스'로 변경 및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아톰 캐릭터 저작권 문제로 팀 명칭을 '포항 스틸러스'로 변경했습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97에서 우승하여 아시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리그컵 및 아시안 슈퍼컵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97년 1월, '우주소년 아톰' 캐릭터 저작권 문제로 팀 명칭을 현재의 '포항 스틸러스'로 변경했습니다. 같은 해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97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정상에 올랐습니다. 또한 리그컵과 아시안 슈퍼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습니다.

1998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2년 연속 우승 및 프로 통산 200승 달성]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7-98에서 우승하며 2년 연속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프로 축구 최초로 통산 200승을 달성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1998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7-98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프로 축구 최초로 통산 200승을 달성하는 등 구단 역사상 빛나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0

[K리그 부진 및 감독 교체]

K리그에서 10개 팀 중 9위에 그치는 부진을 겪었으며, 박성화 감독이 자진 사임하고 최순호 감독 대행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2000 시즌 K리그에서 10개 팀 중 9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주전 골키퍼 조준호의 부상으로 골문이 취약해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으며, 부진의 여파로 박성화 감독이 자진 사임하고 2군 감독이었던 최순호가 감독 대행으로 포항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01

[FA컵 준우승]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1년 FA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대회에서의 선전은 팀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김병지 영입 및 최순호 감독 정식 부임]

울산 현대의 주전 골키퍼 김병지를 영입했습니다. 이는 1992년 차상광 이후 처음으로 주전급 골키퍼를 영입한 사례였습니다. 최순호 감독 대행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2001년 초 울산 현대의 주전 골키퍼 김병지를 영입했습니다. 이는 1992년 차상광 이후 처음으로 주전급 골키퍼를 영입한 사례로 팀 전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듬해에도 포항은 5위에 그쳤지만, 최순호는 6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하며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02

[FA컵 준우승]

FA컵에서 다시 한번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2년에도 FA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쳤습니다.

2003

[명가 재건 시도 및 시즌 7위]

명가 재건을 목표로 대폭적인 선수단 물갈이를 단행했습니다. 시즌 초 부진했으나 후반기 상승세를 타며 최종 7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03 시즌을 앞두고 '명가 재건'을 외치며 홍명보, 하석주, 이동국 등이 떠난 자리를 우성용, 이민성 등으로 채우는 대폭적인 선수단 물갈이를 단행했습니다. 시즌 초 부진으로 11위까지 떨어졌으나, 중반 이후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이어가 최종 7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2004

[K리그 준우승 및 문민귀 신인왕]

K리그 전기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문민귀가 신인왕에 올랐으며, 5년간 팀을 이끈 최순호 감독이 사임했습니다.

2004 시즌에는 전기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좋은 흐름을 보였으나,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패배하여 K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문민귀는 K리그 신인왕에 올랐으며, 5년간 팀을 이끌었던 최순호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사임했습니다.

2005

[최초 외국인 감독 부임 및 프로 구단 1천 호 골]

창단 이후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브라질 출신의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시즌 후반기에는 프로 구단 사상 최초로 1천 호 골을 터뜨리는 기록을 세웠고, A3 챔피언스컵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1월 6일, 창단 이후 최초로 브라질 출신의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파리아스 감독 데뷔 시즌에 포항은 통합 5위에 그쳤지만 공격적인 축구로 팬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시즌 후반기인 11월에는 수비수 이정호가 프로 구단 사상 최초로 1천 호 골을 터뜨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같은 해 A3 챔피언스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6

[K리그 준우승]

K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리그 최상위권의 전력을 유지했습니다.

2006 시즌 K리그에서 준우승을 기록하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2007

[15년 만의 K리그 우승 달성]

K리그 챔피언십에서 정규리그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결승까지 올라 성남 일화 천마를 꺾고 15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FA컵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07년, K리그 정규리그 5위를 확정 지으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경남, 울산, 수원과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리그 1위 성남 일화 천마를 꺾고 15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오르는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FA컵 결승전에서는 전남 드래곤즈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2008

[FA컵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FA컵에서 경남 FC를 꺾고 12년 만에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리그컵에서는 수원에 패하며 우승 도전에 실패했으나, FA컵에서 경남 FC를 2-0으로 누르고 1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다음 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2009

[K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수립]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8-1 대승을 거두며 K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년 9월 1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무려 8골을 몰아 넣어 8-1 승리를 거두며 K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피스컵 코리아 우승]

피스컵 코리아 결승 2차전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꺾고 우승하며 역대 컵대회 결승전 최다골인 5골을 기록했습니다.

K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수립 사흘 뒤인 2009년 9월 16일 벌어진 피스컵 코리아 결승 2차전에서는 홈에서 역대 컵대회 결승전 최다골인 5골을 기록하며 부산 아이파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FIFA 클럽 월드컵 3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알이티하드를 꺾고 우승하며 전신 포함 통산 3번째, 역대 최다 아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3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으며, 데닐손은 4골로 득점왕에 올라 대회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년 11월 7일 일본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이티하드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포항 스틸러스는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2년 연속 우승(1997, 1998)을 포함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역대 최다 아시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FIFA 클럽 월드컵 6강전에서 아프리카 챔피언 TP 마젬베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에스투디안테스에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3, 4위 결정전에서 북중미 챔피언 아틀란테 FC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3위라는 호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특히 데닐손은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라 종전 대회 득점왕 기록을 경신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 사임]

FIFA 클럽 월드컵 3, 4위전이 열리기 전 재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이 돌연 이적 의사를 밝히며 팀을 떠났습니다.

FIFA 클럽 월드컵 3, 4위전이 열리기 전 포항과 2년 재계약을 체결하여 2011년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던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의 이적설이 나돌았습니다. 결국 파리아스 감독은 자녀 교육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며 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포항은 이를 계약 파기라며 위약금 지불을 요구하는 마찰 끝에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0

[와우데마르 레모스 감독 선임]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의 후임으로 브라질 국적의 와우데마르 레모스 감독이 선임되었습니다.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흘리 감독으로 부임하자, 포항은 2010년 1월 브라질 국적의 와우데마르 레모스 감독을 선임하며 새로운 감독 시대를 열었습니다.

[구정컵 국제축구대회 우승]

프리시즌 기간에 홍콩에서 열린 구정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0년 2월, 프리시즌 기간에 홍콩에서 열린 구정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레모스 감독 경질 및 박창현 대행 체제]

K리그 초반 부진한 성적으로 와우데마르 레모스 감독이 경질되었고, 박창현 수석코치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2010 K리그 첫 경기인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승리했으나 이후 월드컵 휴식기까지 11경기 2승 3무 6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성적 부진을 이유로 2010년 5월 10일 와우데마르 레모스 감독을 경질하고 박창현 수석코치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황선홍 감독 부임]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이자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황선홍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K리그 2010 시즌 리그 경기가 끝난 2010년 11월 8일, 포항 스틸러스의 프랜차이즈 레전드이자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황선홍이 부산 아이파크와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포항 스틸러스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2011

[K리그 정규 리그 2위]

K리그에서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데릭 아사모아와 아드리아누 슈바 외에는 특별한 보강 없이 임한 2011 시즌이었지만 시즌 초반 2위 자리를 점한 후 정규 리그가 끝날 때까지 2위를 수성하여 플레이오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그러나 울산 현대에 일격을 맞고 탈락했습니다.

2012

[FA컵 우승 및 이명주 신인선수상 수상]

최전방 공격수들의 부진 속에서 '제로톱' 전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며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K리그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으며, 이명주가 K리그 신인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2012 시즌 초반 부진을 겪었으나, 6월 이후 세대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포항 특유의 패스 축구가 빛을 발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습니다. 특히 여름 이후 최전방 공격수들의 부진과 부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시도한 제로톱 전술이 팀의 색깔과 맞아떨어지며 마침내 FA컵 우승을 차지하고,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명주는 데뷔 시즌 빼어난 활약으로 K리그 신인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2013

[국내 최초 K리그-FA컵 더블 우승 및 창단 40주년]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만으로 시즌을 치렀지만, 유스 출신 선수들의 활약과 '스틸타카' 전술로 K리그 클래식과 FA컵에서 모두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K리그 팀 최초의 기록이자 창단 40주년을 자축하는 값진 성과였습니다.

2013 시즌을 앞두고 모기업인 포스코의 재정 악화로 인해 선수단 규모를 줄이고 외국인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얇은 스쿼드와 선수 전원이 국내 선수라는 점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스 출신 선수들의 활약과 포항 특유의 '스틸타카'가 빛을 발하며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FA컵에서는 16강전부터 계속 원정 경기를 치르는 불리함 속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으며, K리그 클래식에서도 리그 최종전 울산 원정에서 김원일의 결승골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K리그 팀 최초로 리그와 FA컵을 한 시즌에 석권하는 더블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우고 팀 창단 40주년을 자축했습니다. 고무열은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고, 황선홍 감독은 K리그 클래식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2014

[이명주 신기록 및 김승대 영플레이어상]

이명주가 K리그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신기록을 세우며 전반기 맹활약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 진출했지만, 리그를 4위로 마감하며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쳤습니다. 김승대가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며 3년 연속 수상자를 배출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14 시즌은 11년간 원클럽맨이었던 황진성을 비롯해 주축 선수들이 떠난 가운데 특별한 영입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반기에는 이명주가 K리그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5골 9도움) 신기록을 세우는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패로 조별예선을 통과하고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명주의 이적 이후 후반기에는 불안한 모습이 이어져 리그를 4위로 마감하며 다음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김승대가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함으로써 3년 연속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2015

[리그 3위 및 황선홍 감독 사임]

시즌 중반 신진호 복귀 후 15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신화용은 17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끌었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시즌을 끝으로 사임했습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2년 만에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며 불안한 예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신진호가 오랜 임대에서 돌아오며 팀 분위기가 달라졌고, 22라운드 FC 서울전 승리를 시작으로 36라운드 성남전까지 15경기 무패(9승 6무)를 기록했습니다.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황선홍 감독은 2015 시즌을 끝으로 포항 감독직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최진철 감독 선임]

황선홍 감독의 후임으로 최진철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최진철 감독은 2014년 AFC U-16 챔피언십 준우승과 2015년 FIFA U-17 월드컵 16강 진출 등의 업적을 거둔 인물이었습니다.

황선홍 감독이 팀을 떠나기로 결정함에 따라 포항은 새로운 감독을 물색했고, 2015년 11월 23일 2014년 AFC U-16 챔피언십 준우승과 2015년 FIFA U-17 월드컵 16강 진출 등의 업적을 거둔 최진철 감독을 팀의 새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2016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하노이 T&T FC에 3-0으로 승리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2016 시즌 첫 경기인 2월 9일 하노이 T&T FC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심동운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3-0으로 승리하여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최진철 감독 사임]

주축 선수 이탈과 부상 등으로 K리그에서 부진을 겪고 하위 스플릿이 확정되자, 최진철 감독이 부임 10개월 만에 자진 사임했습니다.

2016 시즌 김승대, 고무열 등 주축 선수들의 대거 이탈과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인한 팀의 부진으로 리그에서는 6라운드 종료 후 리그 10위까지 처졌으며,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별 리그 탈락했습니다. 결국 9월 21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4연패를 기록하였고, 하위 스플릿 추락이 확정되자 9월 24일 최진철 감독은 광주전을 마지막으로 부진한 성적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하며 부임 10개월 만에 포항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최순호 감독 복귀 및 김기동 수석 코치 합류]

제6대 감독을 역임했던 최순호가 12년 만에 포항 감독으로 복귀했습니다.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낸 김기동도 수석 코치로 합류했습니다.

최진철 감독 사임 후 2016년 9월 26일, 포항 제6대 감독을 역임한 최순호가 12년 만에 포항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2016년 하계 올림픽 축구 남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낸 김기동도 친정팀의 수석 코치로 합류했습니다.

2017

[예산 감축 위기 속 손준호 K리그 도움왕]

모기업 포스코의 예산 감축으로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손준호가 14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도움왕에 올랐습니다. 리그 7위로 A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6 시즌 후, 포항은 모기업인 포스코가 예산 줄이기에 나서면서 문창진, 박선주, 김원일, 신광훈 등 포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주축 선수들이 차례로 이적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강현무 골키퍼의 성장과 양동현, 룰리냐, 심동운 등의 활약으로 공격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손준호는 14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도움왕에 올라 10년 만에 도움왕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주전 중앙수비수 김광석의 부상 등으로 실점이 많아지면서 최종 7위로 A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2018

[3년 만에 상위 스플릿 진출]

시즌 초반 부진을 겪었지만 후반기 뒷심을 발휘해 3년 만에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리그 4위를 기록했습니다.

2018 시즌을 앞두고 양동현과 손준호가 이적했지만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며 시즌에 돌입했습니다. 시즌 초반 하위권 성적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후반기에는 뒷심을 발휘하여 3년 만에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리그 4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2019

[김기동 감독 부임]

최순호 감독 사임 후 김기동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김기동 감독은 팀을 잘 추슬러 상위 스플릿으로 다시 진입시켰습니다.

2019년 4월 22일 최순호 감독이 사임하고, 4월 23일 김기동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김기동 감독은 2019시즌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포항을 잘 추스려 팀을 상위 스플릿으로 올리는데 성공시켰으며, 최종 리그 4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20

[K리그 3위 및 김기동 감독상 수상]

새로 영입된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의 활약으로 K리그 3위를 기록하며 차기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김기동 감독은 K리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2020 시즌에는 새로 영입된 스타니슬라프 일류첸코와 알렉산다르 팔로세비치의 활약에 힘입어 상위권으로 치고 나왔으며, K리그 3위를 기록하며 차기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와 같은 공로로 김기동 감독은 2020 시즌 K리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2021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주축 선수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 알힐랄 SFC에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K리그는 9위로 마감했습니다.

2021 시즌을 앞두고 일류첸코, 팔로세비치, 김광석 등 팀 내 주축 선수들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새로 영입된 임상협, 신진호 등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중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팀 내 에이스인 송민규를 전북에 넘기며 논란이 있었지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나고야 그램퍼스, 울산 현대 등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결승에서 알힐랄 SFC에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정규 리그는 파이널 B로 떨어졌으나 강등권과의 승점을 벌리는데 성공하면서 조기에 K리그1 잔류를 확정시키며 9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22

[K리그 3위]

K리그 3위를 기록하며 리그 상위권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22 시즌 K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며 꾸준히 리그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유지했습니다.

2023

[창단 50주년 기념 FA컵 우승]

창단 50주년을 맞아 FA컵에서 전북 현대를 꺾고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K리그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23 시즌, 창단 50주년을 맞아 FA컵에서 전북 현대를 무너뜨리고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또한 K리그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며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김기동 감독 이적 및 박태하 신임 감독 선임]

김기동 감독이 FC 서울로 이적한 후, 과거 팀의 원클럽맨이자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을 지낸 박태하가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15일에 김기동 감독이 FC 서울로 감독직을 옮기자, 과거 팀의 원클럽맨이자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기술위원장을 지낸 박태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2024

[코리아컵 2년 연속 우승]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울산을 3-1로 역전승을 거둬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K리그는 스플릿 A에 진출하여 최종 6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박태하 감독 체제에서 시즌 초반 무패를 기록하며 분위기가 좋았으나 중반 이후 패배가 증가했습니다. 간신히 스플릿 A로 진출했으나 스플릿 경기에서 6경기 무승으로 6위라는 성적으로 리그를 종료했습니다. 한편, 코리아컵에서는 결승전에서 울산을 3-1 역전승을 거둬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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