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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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설가, 극작가, 번역가, 노벨상 수상자 문학가(시인/소설가)

페터 한트케는 오스트리아의 작가이자 번역가입니다. 그는 <관객모독>으로 유명하며, 기존의 관습을 깨는 전위적인 작품 활동으로 '우리 시대 가장 전위적인 작가'로 불렸습니다.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과거 유고 내전의 책임자로 지목된 밀로셰비치 옹호 발언으로 큰 논란을 겪기도 한 문제적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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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2

[오스트리아 그리펜에서 출생]

오스트리아 케른텐주 그리펜에서 은행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당시 유럽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1942년 12월 6일, 페터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케른텐주 그리펜에서 은행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애는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1961

[독일 그라츠 대학 법학 전공]

독일 그라츠 대학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하며 학문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지적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 미쳤습니다.

1961년, 페터 한트케는 독일 그라츠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열정은 문학에 있었고, 이후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66

[첫 희곡 <관객모독> 발표]

기존 연극의 관습을 깨는 파격적인 형식의 첫 희곡 <관객모독>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연극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66년, 페터 한트케는 첫 희곡인 <관객모독>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기존 연극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는 전위적인 시도로,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전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968

[희곡 <카스파어> 발표]

언어와 주체의 관계를 탐구하는 희곡 <카스파어>를 발표하며, 언어의 폭력성과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세계를 더욱 확장했습니다.

1968년, 페터 한트케는 희곡 <카스파어(Kaspar)>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언어 습득 과정에서 개인이 어떻게 길들여지는지를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1969

[희곡 <피후견인이 후견인이 되려 하나> 발표]

실험적인 희곡 <피후견인이 후견인이 되려 하나>를 발표하며 현대 연극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어갔습니다.

1969년, 페터 한트케는 희곡 <피후견인이 후견인이 되려 하나(Das Mündel will Vormund sein)>를 발표하며 연극 형식과 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보여주었습니다.

1971

[희곡 <말 타고 보덴제 호수 건너기> 발표]

희곡 <말 타고 보덴제 호수 건너기>를 발표하며 인간 심리와 사회적 관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냈습니다.

1971년, 페터 한트케는 희곡 <말 타고 보덴제 호수 건너기(Der Ritt über den Bodensee)>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숨겨진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감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2006

[밀로셰비치 장례식 참석 및 옹호 발언]

유고 연방 내전의 책임자로 지목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를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로 평가하는 연설을 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2006년, 페터 한트케는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던 중 사망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밀로셰비치를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로 규정하며, 1990년대 코소보 내전 당시 세르비아에 대한 NATO의 공습에 반대했던 과거 행적과 함께 국제 사회의 거센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2019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언어적 실험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유고 내전 관련 발언으로 인해 수상은 큰 논란을 동반했습니다.

2019년, 페터 한트케는 문학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과 인간 경험의 주변부를 탐구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옹호 및 코소보 내전 당시 세르비아 지지 발언으로 인해 수상 소식은 거센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코소보 내전 피해 당사자들은 그의 수상을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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