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카마 15호 사건
연표
1978
[페스카마호 건조]
254톤급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가 일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이 배는 훗날 끔찍한 선상 반란의 무대가 될 운명을 안고 바다에 나섰다.
배의 이름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건 당시 배의 선적은 파나마였으나, 실제 운항은 한국 업체가 담당하고 있었다.
1996
[페스카마호 부산항 출항]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가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을 태우고 부산남항을 출항했다.이 항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서막이었다.
[조선족 선원 추가 승선]
남태평양으로 향하던 페스카마호가 괌에 들러 조선족 선원 7명을 추가로 태웠다.이후 외국인 선원들의 낮은 임금과 차별 대우 등 열악한 환경이 선상 반란의 불씨를 지피게 된다.
한국인 선원들이 기피하는 힘든 원양어업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저임금의 외국인 선원 고용이 늘던 시기였다. 부족한 경력, 임금 체불, 무리한 작업, 차별 대우 등으로 외국인 선원들의 불만이 쌓여가며 선상 내 갈등의 위험이 커지고 있었다.
[조업 시작 및 갈등 발생]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시작했으나, 뱃일에 익숙지 않던 조선족 선원들이 선장의 강압적인 태도에 힘들어하며 하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이는 선상 내 갈등이 고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새로 승선한 조선족 선원들은 뱃일에 익숙하지 않았고, 선장이 이들에게 가혹한 기합을 가하자 곧바로 하선을 요청하는 등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열악한 작업 환경과 소통 부재는 불행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조선족 선원 하선 결정]
선장은 더 이상 조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조선족 선원들을 사모아에 하선증명서 없이 내리기로 결정했다.이 결정은 선상 반란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불씨가 되었다.
[끔찍한 선상 반란 시작]
새벽, 조선족 선원들이 선장을 살해하며 끔찍한 선상 반란을 일으켰다.1등 항해사를 제외한 한국인 선원들을 조타실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던졌다.심지어 타 선박 실습선원과 해사고 3학년 학생까지 산 채로 바다에 빠뜨려 총 11명의 선원이 희생되는 비극적인 살인극이 벌어졌다.
조선족 선원 6명은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1등 항해사를 제외하고,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선원 7명 전원, 인도네시아 선원 3명, 조선족 선원 1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살해된 시신은 증거 인멸을 위해 모두 바다에 던져졌다.
[페스카마호 통신 두절]
8월 3일 최종 교신 이후 페스카마호의 통신이 두절되었으며, 사모아 어업기지 입항 예정일에도 나타나지 않아 실종 상태가 되었습니다.
[입항 예정일 지나 실종 확인]
사모아 어업기지 입항 예정일이 지나도록 입항하지 않아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고 수색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페스카마호 실종 신고]
선원 송출 회사가 부산해양경찰서에 페스카마호의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8월 3일 이후 연락이 끊긴 지 보름이 지나서야 공식적인 수색이 시작되었고, 이는 거대한 비극의 전조였다.
[조선족 선원 제압 및 발견]
표류 중이던 페스카마호에서 생존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조선족 주범들을 제압하고 냉동창고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같은 날 오후, 일본 해상보안청 경비정이 이 표류 선박을 발견하며 끔찍한 선상 반란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료 소모로 배가 기울자, 이를 바로잡기 위한 작업 중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기지를 발휘해 조선족 선원들을 냉동창고에 가두고 나머지 한 명까지 포박했다. 1시간 뒤 일본 어업지도선이 지나가자 생존 선원이 직접 헤엄쳐 도움을 요청하며 구조의 손길이 닿았다.
[선상반란 사건 전모 발표]
일본 해상보안청이 선상 반란 사건의 충격적인 전모를 발표했다.조선족 선원들이 11명의 선원을 살해한 후 배가 표류했으며, 이후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주범들을 제압했다는 내용이었다.사건 처리의 관할권을 두고 국제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발견 당시 페스카마호에 한국인 1명과 인도네시아인 6명이 승선해 있었고, 조선족 6명이 감금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한국인 수가 가장 많으므로 한국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 해경, 선박 및 선원 인수]
부산 해양경찰서 구난함이 일본 해상보안청으로부터 페스카마호와 생존 선원 및 피의자들을 인도받았다.한국 관할권 하에 본격적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며,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었다.
사건 선박이 일본 영해에서 발견되었으나, 한국 정부는 중국 측에 한국이 예인 및 사법 처리에 관한 관할권을 행사할 것을 통보했다. 결국 6명의 조선족 주범이 체포되었다.
[페스카마호 부산 입항]
참혹한 비극의 현장이었던 페스카마호가 마침내 부산항에 입항했다.이로써 끔찍한 선상 살인 사건이 한국 수사 당국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되었다.국민들의 큰 관심 속에 진실 규명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주범 6명 1심 사형 선고]
선원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조선족 주범 6명 전원에게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법정은 이들의 끔찍한 범행에 대해 단호한 심판을 내렸으나, 이후 항소심에서 유명 변호사의 개입으로 감형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이들을 해상강도살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이 사건에는 형법 제6조의 보호주의가 적용되었다.
1997
[대법원, 최종 형량 확정]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항소심에서 결정된 형량을 최종 확정했다.문재인 변호사의 변호로 5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주동자로 지목된 1명은 사형이 유지되어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항소심에서 문재인 변호사의 변호로 전재천을 제외한 5명의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인도네시아 선원 중 실습생 살인에 연루된 3명은 강요된 행위가 인정되어 불기소 처분되었다.
2007
[주동자 전재천 무기징역 감형]
주동자로 사형이 확정되었던 전재천이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의 개입 여부는 명확하지 않으나, 여섯 명의 피고인 모두 현재까지 무기수로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