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젤란
연표
1480
[위대한 탐험가의 탄생]
포르투갈의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왕궁 시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과 출생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1505
[첫 원정길에 오르다]
인도 총독 알메이다 함대의 평범한 사병으로 합류하며 첫 원정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인도양 해상무역 장악을 위한 전투에 참여하는 등 여러 활약을 펼쳤습니다.
총독 알메이다의 목적은 인도양의 해상무역을 장악하는 것이었으며, 마젤란은 1509년 디우 해전에 참전하는 등 인도양에서 복무했습니다.
1511
[말라카 정복전 참전]
전략적 요충지이자 교통의 요지인 말라카 정복전에 참가하여 점령에 일조했습니다.
이후 1513년 모로코 파병 중 부상을 입고 제대하게 됩니다.
1517
[새로운 항로 개척의 꿈]
스페인 세비야로 건너가 서회항로(서쪽으로 돌아가는 항로) 개척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1518
[스페인 왕실의 지원 획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카를 5세)의 허락을 얻어 왕실과 계약을 체결하며 탐험 준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방해와 선원들의 불만 등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약 1년 5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탐험대를 꾸렸습니다.
1519
[대망의 출항 준비 시작]
5척의 배와 265명의 탐험대를 이끌고 에스파냐 세비야를 출발하여 산루카 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 시작]
서회항로 개척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산루카 항을 출발하여 대서양으로 향했습니다.
이 날은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탐험대의 목표는 남미 대륙의 남단에서 통로를 개척한 후 동남아시아 몰루카 제도로 가서 향신료를 싣고 희망봉을 돌아 귀국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미 대륙 도착 및 겨울나기]
대서양을 남하하여 남아메리카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1520년 1월에는 라플라타 강 하류에 이르러 겨울을 보냈습니다.
1520
[위기의 선상 반란 진압]
스페인 출신 선장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마젤란은 기습 공격으로 반란 주동자를 진압하고, 반란자들을 단호하게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엘카노는 용서하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반란 주동자였던 루이스 데 멘도사는 현장에서 처형되었고, 가스팔 데 케사다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호안 카르타헤나와 카톨릭 신부는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산티아고호 침몰]
선발 탐사를 위해 보냈던 산티아고호가 난파되어 침몰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마젤란 함대는 4척으로 줄었습니다.
[마젤란 해협 진입]
마침내 마젤란 해협 입구에 도달했습니다.
탐사팀을 보내 항로를 찾는 신중한 과정을 거쳐 해협을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산 안토니오호의 무단 이탈]
탐사를 위해 보냈던 산 안토니오 호가 선단을 이탈하여 도망쳐 버렸습니다.
마젤란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산 안토니오호가 난파된 것으로 판단하고 남은 3척으로 항해를 지속했습니다.
[마젤란 해협 통과 및 태평양 명명]
수많은 고생 끝에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반대쪽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너무나 험난한 해협을 건넌 직후 마주한 잔잔한 바다에 감격하여 이 바다를 '태평양'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가 지나온 해협은 훗날 '마젤란 해협'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당시 태평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에 이를 횡단하는 것은 목숨을 건 대모험이었습니다.
1521
[죽음의 태평양 횡단 끝에 괌 섬 도착]
108일간의 고통스러운 태평양 횡단 끝에 괌 섬에 도착했습니다.
탐험대는 갈증, 굶주림, 괴혈병에 시달리며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필리핀 도착 및 기독교 전파]
드디어 필리핀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세부섬에 상륙하여 이 지역 부족의 추장 주아나 일족과 부족 800여 명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등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위대한 탐험가의 비극적인 죽음]
마지막 섬인 막탄섬에 갔다가, 스페인 왕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추장 라푸라푸와의 전투인 '막탄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무거운 갑옷 때문에 불리했던 마젤란은 총과 대포로 응사하려 했으나, 선원들이 말을 잘못 들어 모두 후퇴해 버렸고, 남은 마젤란은 원주민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싸우다 비참하게 사망했습니다.
이때 마젤란의 나이 향년 41세였습니다. 마젤란의 죽음으로 그의 사랑을 받던 노예 엔리케는 선원들을 배신하고 세부 추장을 충동질하여 선원들이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콘셉시온호 자침]
남은 선원들은 3척의 배를 운항할 인원이 되지 못하자, 배 한 척인 콘셉시온호를 스스로 침몰시켰습니다.
[트리니다드호 고장 및 분리]
남은 두 척 중 트리니다드호가 몰루카 제도에서 향신료를 너무 많이 실은 탓에 침수되어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를 위해 트리니다드호는 몰루카 제도에 남겨두고 빅토리아호만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1522
[인류 최초 세계일주 대장정의 귀환]
출발 당시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구성되었던 함대는 마침내 빅토리아호 1척과 선장 엘카노를 포함한 18명의 생존자(도중 승선한 인디오 3명 포함 총 21명)만 남아 스페인 산루카 항에 겨우 귀환했습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를 실질적으로 완성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빅토리아호에 실려온 정향의 가치는 이 항해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충당하고도 남았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엘카노에게 '프리머스 서컴데디스티메'(우리 주위를 최초로 돈 사람)라는 칭호를 내리며 이 업적을 기렸습니다. 몰루카 제도에 남겨졌던 트리니다드호는 3년 뒤 겨우 4명만이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529
[세계일주가 가져온 사라고사 조약]
마젤란 탐험대의 세계 일주 성공으로 동남아 몰루카 제도의 귀속을 둘러싸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영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양국은 '사라고사 조약'을 체결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몰루카 제도의 독점적 지위는 포르투갈이 갖는 대신 스페인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몰루카 제도는 당시 매우 고가에 거래되던 향신료의 산지였습니다. 이 조약으로 포르투갈의 마카오 권익이 승인되었고, 필리핀은 경계선 서쪽에 위치했음에도 훗날 스페인령이 되었습니다.
1565
[필리핀 식민지화의 시작]
마젤란의 필리핀 방문은 스페인의 식민지화의 근거가 되었고,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에 의해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로 선언되며 수백 년에 걸친 수탈과 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필리핀이라는 나라이름은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스페인 수도사들의 전도가 시작되어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로마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