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비시 셸리
연표
1792
퍼시 비시 셸리는 1792년 8월 4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소설가 메리 셸리의 남편이자 낭만파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성장할 인물이었다.
1810
1810년 퍼시 비시 셸리는 두 편의 고딕 소설 "자스트로찌(Zastrozzi)"와 "성 어빈(St Irvyne)"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초창기 문학적 경향을 보여준다.
1811
1811년 셸리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무신론의 필요성(Necessity of Atheism)"이라는 산문을 발표하며 자신의 무신론적 신념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종교적 관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결국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811년 여름, 퍼시 비시 셸리는 16세의 해리엇 웨스트브룩과 결혼했다. 이 결혼은 그의 복잡한 개인사 중 첫 번째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1813
["매브 여왕" 발표]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사상가인 W. 고드윈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 이상을 노래한 시 "매브 여왕"을 발표했다.
1813년 셸리는 정치적 이상을 강렬하게 표현한 시 "매브 여왕(Queen Mab)"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1815
1815년 셸리는 "불가사의한 산적(The Mysterious Bandit)"이라는 시집을 출간하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816
[비극과 새로운 시작: 재혼 및 바이런과의 만남]
첫 아내 해리엇이 투신 자살하는 비극을 겪은 후, 고드윈의 딸 메리와 정식 결혼했다. 같은 해 스위스에서 시인 바이런과 만나 교우 관계를 시작했다.
1816년 셸리는 첫 아내 해리엇 웨스트브룩이 애정 생활의 파탄을 비관하여 투신 자살하는 큰 슬픔을 겪었다. 같은 해 그는 윌리엄 고드윈의 딸 메리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이 해 스위스 여행 중에는 저명한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알게 되어 깊은 교우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또한, 서사시 "고독한 영혼(Alastor)", "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Hymn to Intellectual Beauty)", "몽블랑(Mont Blanc)"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817
1817년 퍼시 비시 셸리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장편 서사시 "이슬람의 반역(The Revolt of Islam)"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사회 개혁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로 평가된다.
1818
[이탈리아 이주 및 "오지맨디아스" 발표]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이후 생애를 그곳에서 보냈다. 이 무렵 "오지맨디아스(Ozymandias)"를 발표했다.
1818년부터 퍼시 비시 셸리는 이탈리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는 그의 예술적 역량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이 무렵 그는 고대 이집트의 왕을 통해 허무한 권력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 "오지맨디아스(Ozymandias)"를 발표했다.
1819
[비판적 시선과 서정적 절정: 주요 작품 다수 발표]
영국 정부를 비판한 "무질서한 가면극"과 서정시 "서풍에 부치는 노래", 그리고 비극 "첸치 일가" 등 다수의 주요 작품을 발표했다.
1819년은 셸리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친 해였다. 그는 영국 정부를 비판한 "무질서한 가면극(The Masque of Anarchy)", 워즈워스를 풍자한 "피터 벨 3세(Peter Bell the Third)"를 발표했다. 또한 16세기 로마의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시극 대작 "첸치 일가(The Cenci)"와 그의 대표적인 서정시 중 하나인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산문 "개혁의 철학적 견해(A Philosophical View of Reform)" 등을 썼다.
1820
[대표작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발표 및 피사 정착]
그의 대표작이자 사상적 깊이를 담은 시극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하고, 이탈리아 피사에 정착했다.
1820년 퍼시 비시 셸리는 인류 해방과 이상주의를 주제로 한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서정 비극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를 발표했다. 또한 이 시기에 탁월한 서정시 "서풍의 노래(Ode to the West Wind)"와 "종달새에 부쳐(To A Skylark)"를 발표했으며, 셸리 부부는 이탈리아 피사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구축했다.
1821
["아도나이스" 등 문학적 유산 확립]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 "에피사이키디온"과 키츠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도나이스", 시론 "시의 옹호" 등을 발표했다.
1821년 셸리는 이상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시 "에피사이키디온(Epipsychidion)", 그리스 독립 전쟁에 영감을 받은 "헬라스(Hellas)", 친구이자 시인인 존 키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 "아도나이스(Adonaïs)", 그리고 시인의 예언자적 사명을 선언한 중요한 시론 "시의 옹호(A Defence of Poetry)"를 발표하며 자신의 문학적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1822
1822년 퍼시 비시 셸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묘사한 시 "구름(The Cloud)"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그의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서정성을 잘 보여준다.
[요트 사고로 비극적인 최후]
이탈리아 나폴리만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하며 30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822년 7월 8일, 퍼시 비시 셸리는 이탈리아 나폴리만에서 요트를 타던 중 갑작스러운 폭풍을 만나 익사했다. 이로써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30년의 생애와 문학 활동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1824
[유작시집 출간]
사후 그의 아내 메리 셸리에 의해 "퍼시 비시 셸리, 유고시선집"이 출간되어 그의 많은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1824년, 셸리의 죽음 이후 그의 아내 메리 셸리에 의해 유작시선 "퍼시 비시 셸리, 유고시선집(Percy Bysshe Shelley, Posthumous Poems)"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탄식(A Lament)"과 같은 훌륭한 시들이 다수 실려 있으며, 셸리의 문학적 유산을 보존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